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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한일 외교 장관회담을 개최하자는 일본의 제안을 거절한 가운데 17일 오후 서울 세종로 외교통상부청사에서 일시 귀국한 권철현 주일대사가 독도 사태와 관련해 기자 간담회를 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정부가 한일 외교 장관회담을 개최하자는 일본의 제안을 거절한 가운데 17일 오후 서울 세종로 외교통상부청사에서 일시 귀국한 권철현 주일대사가 독도 사태와 관련해 기자 간담회를 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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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발언 이후 국내외 안팎에서 이를 규탄하는 시위들이 잇따르고 있다. 18일(현지시각) 낮 뉴욕 한인들이 맨해튼 파크애비뉴에 위치한 일본 총영사관 앞에서 집회를 가졌다. 그리고 19일 오전에는 선천성 뇌성마비 1급 장애인 최창현씨가 대구 국채보상기념공원에서 일장기를 짓밟는 퍼포먼스 후 독도행진을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촛불 시민들도 주요 현안에 덧붙여 일본의 독도 도발을 규탄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고, 얼마 전까지 촛불들을 규탄했던 보수단체들도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심지어 북한까지도 일본의 도발을 비판하고 나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대외적으로도 유명한 한민족의 민족주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간간이 들린다. 특히 정치권의 포퓰리즘적인 제스처(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들이 앞 다투어 독도를 방문한 일)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일장기를 불사르는 것과 같은 다소 과격해 보이는 국민들의 퍼포먼스를 한낱 '쇼'에 불과한 것으로 폄훼하는 경향이 있다.

순수한 민족주의와 과격한 국가주의 사이의 차이

고엽제전우회원 500여명이 16일 오후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독도 영유권표기를 규탄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고엽제전우회원 500여명이 16일 오후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독도 영유권표기를 규탄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송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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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우려는 언뜻 보기에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문제는 배타적 민족주의에 대한 반감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가지는 동일 민족에 대한 애정을 나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데 있다.

분명한 점은 지난 '황우석 사태'와 '<디 워> 광풍' 때 이슈가 된 과격한 국가주의와 독도와 관련된 순수한 민족주의를 구분하는 일이다.

전자는 '국익'이나 '국가의 대외적인 위상'을 맹목적으로 중요시한다. 따라서 소위 '황빠', '디빠'들이 생겨났고 그들의 잘못과 허위를 애써 눈감아 주려고 했던 것이다. 반면에 후자는 인간의 본질에 가까운 것이다. 민족적 자존심 혹은 자긍심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것이다. 떨쳐 버리고 싶어도 쉽게 떨쳐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얘기다. 국적은 언제 어느 때라도 버릴 수 있지만 민족은 자기가 버릴 수 있다고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흑인이 백인이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독도 문제는 약간 혼재되어 있기는 하지만 후자 쪽에 가깝다. 따라서 우려보다는 오히려 온 한민족이 정말 오랜만에 단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민족주의가 국가주의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다. 히틀러의 유대민족 혐오증은 2차대전 기간 동안 약 500만 명의 유태인이 학살당하는 비극을 야기했고, 1990년대 구 유고슬라비아 지역은 민족 간 분리 독립을 위한 전쟁의 광풍에 휩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다만 역사적인 교훈으로부터 잘 알 수 있듯이, 우리는 민족주의가 극단으로 치닫는 것을 경계해야 할 필요는 있다. 또한 우리 정치인들처럼 민족주의를 떨어진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한 정략적 술책으로 이용한다거나, 일본처럼 '역사'를 왜곡하여 자국의 실익을 챙기려는 꼼수는 반드시 규탄되어야 한다.

독도는 정치적 도구가 아닌 민족과 역사의 문제

독도 문제는 비단 민족주의의 문제만은 아니다. 지난 15일 오전 동북아역사재단 주최로 '일본 역사교과서 재조명' 학술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홍성근 연구위원은 독도 문제를 둘러싼 한·일간 갈등의 주요 원인이 한국은 독도를 일제의 한반도 침탈과정에서 야기된 역사 문제로 보는 반면에 일본은 오직 영토 주권의 문제로만 바라본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필자는 홍 연구위원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2004~2005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독도 문제를 역사 문제와 결부지어 강력한 대결자세를 취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이 때에도 당시 곤두박질치고 있는 지지도를 만회하기 위한 술책이라고 주장하는 반대세력들이 있었다. 결국 그들은 매국노로 몰렸다.

지금 이명박 정부의 강경론이 약발을 받지 못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3·1절 기념 연설에서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강조하면서 과거가 미래를 발목 잡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것은 뼈아픈 역사적 상처를 입고 그것이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는 국가의 대통령으로서 할 말이 아니었다.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는 진실을 알지 못하는 대통령의 발언이 효력을 발휘하기는 매우 힘들다.

우리는 지금까지 과거사 청산에 관한 국민들의 열망에 찬 시위 행동들이 있을 때마다, 늘 그것이 부당한 것이고 지나치면 큰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국민들을 협박해 왔다. 독도문제를 비롯한 종군위안부 문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은 결코 온전히 민족주의에 관한 문제가 아님을, 역사와 민족의 문제가 함께 결부된, 비정치적인, 우리가 반드시 지켜내야 할 것임을 애써 부정해 왔다. 그동안 안일한 민족과 역사에 대한 인식 때문에 우리는 아직도 일제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결코 전쟁불사론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다. 앞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과격한 국가주의와 더불어 배타적이고 호전적인 민족주의는 우선 경계되어야 한다. 다만 역사인식의 부재를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또한 잘못된 민족주의에 대한 반감에 의해 순수한 민족주의가 멸시받는 것에 대해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국민들의 순수성이 왜곡되는 일은 없어야

모 인터넷 신문에 한 독자의 글이 올라왔다. 모 독자는 이번 사태를 대하는 국민 대응에 대해 '매국노-민족'이라는 극한 대립구도가 예상된다면서 정부는 정부대로 외교 업무에 충실하고, 국민은 국민대로 정부의 외교정책에 관심을 가지고 그에 대한 의견을 표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가 보기에 독도 관광이나 일장기를 불태우는 일은 한낱 쇼일 뿐이라며 국민의 행동을 자제해 달라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이 분의 주장도 얼핏 보기에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과거 '황빠'들이 <PD수첩>에 했던 만행, '디빠'들이 진중권 교수에 했던 만행에 비하면 일장기 태우기, 독도관광쯤은 애교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 인터넷에 "뉴라이트 '일본과 국교단절 및 전쟁불사'라는 헤드라인이 떴다. 이거 환장할 노릇 아닌가? 비판의 화살은 바로 이런 무개념의 극우단체들을 향해 겨냥되어야 맞다.

국민들의 독도관광은 시위문화의 일종으로서의 하나의 '놀이'이다. 촛불시위현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축제를 즐기듯이 시위를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또한 순수하게 검역주권을 되찾고 자기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나온 촛불시민들의 마음과 그들이 일본의 독도 망언 규탄을 외치는 마음은 다르지 않다. 간혹 과격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 정도는 시민들 스스로 자정할 수 있는 능력을 이미 갖추고 있는 것이 촛불시민들이다.

촛불시위 현장에서의 노래와 춤, 재치 있는 유머와 웃음, 그리고 독도관광은 더 이상 쇼가 아니다. 과거의 엄숙하기만 했던 시위의 모습이 아니다. 그 만큼 우리의 시위문화도 발전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일장기를 태운다고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다. 또 지금까지 두 달이 넘게 촛불을 들어왔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고 점잖게 앉아서 강태공 낚시하듯이 세상을 바라보기만 할 것인가?

적어도 민족과 역사, 그리고 우리의 주권과 같은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소극적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순수한 민족주의, 애국주의. 주권의식이 왜곡되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태그:#독도, #민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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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땐 영문학 전공, 대학원땐 영화이론 전공 그런데 지금은 회사원... 이직을 고민중인 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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