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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지런히 자신과 세상을 다독이며 공부했던 <다산의 마음> 겉그림.
 부지런히 자신과 세상을 다독이며 공부했던 <다산의 마음> 겉그림.
ⓒ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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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으로 쓴 옛 사람의 글월을 해독할 수 없는 나를 비롯한 독자들에게 반가울 책 <다산의 마음>은 돌베개 출판사에서 우리고전 100선 시리즈로 기획한 열한 번째 책이다.

방대한 양의 글을 남긴 수다스러운 대학자의 소소한 생활습관과 가족, 이웃들을 글로 어루만진 흔적들이 살갑고 정겹고, 때로 착하고 장하다.    

다산은 문학, 철학, 정치, 경제, 역사, 지리, 과학, 의학 등에 걸쳐 500권이 훨씬 넘는 책을 쓴 선비다. 요즘 사람들 중에 이렇게 다양한 분야를 읽는 이를 찾기도 어려울 뿐더러, 다산처럼 여러 분야에 걸쳐 글을 쓰는 이는 더더욱 드물다. 다방면에 관심이 있어서 두문불출하고 공부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다산 스스로 '병통'이라고 말한 것처럼, 남에게 알리고자 글로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한 르네상스적 인간의 저작들은 후손들에게 전해지기 어려운 일이다.

책에는 제목처럼 다산의 마음이 곳곳에 뭍어나는 짧은 글들이 담겨 있다. 죽은 아이를 보내는 아버지의 심경을 담은 글이 눈길을 끌었다. 부모는 죽은 아이를 가슴에 묻는다는데, 다산은 여섯 번이나 그 고통을 느낀 아버지였다.

"네가 태어났을 때 나는 근심이 깊어 너를 농(農)이라고 이름지었다. 이미 내가 고향 집에 돌아와 있었기에, 장차 네가 살아갈 길은 농사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죽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었다. … 이웃 사람이 가는 편에 소라 껍데기 두 개를 보내며 네게 주라고 했다. 네 엄마가 편지에 쓰기를, 네가 강진에서 사람이 올 때마다 소라 껍데기를 찾다가 받지 못하면 풀이 죽곤 했는데, 네가 죽을 무렵에야 소라 껍데기가 도착했다고 하니, 참으로 슬프구나. … 모두 6남 3녀를 낳았는데, 살아남은 아이가 2남 1녀이고, 죽은 아이가 4남 2녀이니, 죽은 아이가 살아남은 아이의 두 배다. 아아, 내가 하늘에 죄를 지어 이처럼 잔혹하구나.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 139

"모습이 단정하고 예뻤는데 병이 들자 까맣게 타서 숯처럼 되었다. 그러나 죽기 전에 다시 열이 오를 때에도 잠시 어여쁜 미소를 보여 주며 예쁘게 말했었다. 가련하다! 구장(다산이 일찍 여읜 아들)이도 세 살에 죽어서 마재에 묻었는데, 이제 또 너를 여기에 묻다니! 오빠의 무덤 바로 곁에 둔 것은 서로 의지하며 지냈으면 해서란다." - 134 

태어난 지 24개월 만에 마마를 앓아 숯처럼 까맣게 타들어가며 죽은 딸이나, 유배지에서 들은 막내 아들의 죽음을 이야기한 글엔 아이를 잃은 아버지의 안타까운 마음이 절절하게 드러나있다. 

스스로 고칠 '개(改)'자를 처방하는 독실한 선비

퇴계를 우러르며 쓴 글의 한 대목과 자녀들에게 보낸 짧은 편지는 일기장에 꾹꾹 눌러 옮겨 써둔 말들이다.

"세상을 우습게 여기고 남을 깔보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고, 재주와 능력을 뽐내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고, 영예를 탐내고 이익을 좋아하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고, 남에게 베푼 것을 잊지 못하고 원한을 떨치지 못하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고, 생각이 같은 사람과는 한 패거리가 되고 생각이 다른 사람은 공격하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고, 잡스런 책 보기를 좋아하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고, 함부로 남다른 견해만 내놓으려고 애쓰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니, 가지가지 온갖 병통들을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다. 여기에 딱 맞는 처방이 하나 있으니 '고칠 개(改)'자가 그것이다." - 31

독실하다는 말이 자주 쓰이는 건 종교 앞이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다산이 아주 '독실한 선비'였다는 인상이 가시질 않았다. 두어 세기 전 한 선비가 지나치게 예민하게 자신을 돌아보며 쓴 글을 부적처럼 지니고 있으면, 조금은 더 깔끔하고 산뜻한 행동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은 소박한 기대감마저 든다.

'사치하지 마라'는 아들과 며느리에게 보내는 아버지의 당부 편지다. 요즘 사람들의 눈에는 까칠하고 피곤한 시아버지로 비치기 십상이지만, 다산의 염려가 오롯이 담긴 편지는 소비생활에 찌들고 이웃을 살필 줄 모르는 세태에 소리내어 읽어볼 만한 말들이다.

즐거움만 누리는 사람도 없고
복만 받는 사람도 없는 법인데
어떤 사람은 춥고 배고프며
어떤 사람은 호의호식하는가.
너는 길쌈 일도 하지 않았는데
어째서 아름다운 비단옷을 입는가.
너는 사냥도 하지 않았는데
어째서 고기를 배불리 먹는가.
열 집에서 먹을 음식을
어째서 한 사람이 먹어치우나. …

즐거움은 천천히 누려야
늙도록 오래오래 누릴 수 있고
복은 남김없이 받지 않아야
후손에게까지 이르게 된다.
보리밥이 맛없다 말하지 마라
앞마을 사람들은 그것도 못 먹는다.
삼베옷 거칠다 말하지 마라
그것도 못 입어 헐벗는 사람 있다.
아, 나의 아들들아
나의 며느리들아
나의 말 경청하여
허물없이 처신하라.

선비, 국화 그림자에 취하다

다산의 글이 술술 읽히는 데는 손을 움직여 가꾼 생활 이야기들이 한 몫 거든다. 지금의 명동, 명례방에 살 때, 시끄러운 집에 대나무 울타리를 치고 뜰에 화분을 놓아 한적한 풍경을 만들었다는 얘기나 다산초당에서는 유배된 자의 임시거처에도 불구하고 연못을 파고 정원을 가꾸고 살았다는 글 앞에서 나의 게으른 생활을 돌아보게 된다. 벽에 비친 국화 그림자를 혼자 보기 아까워 친구를 초대해 함께 즐기던 선비는 말한다.

"국화가 다른 꽃들보다 뛰어난 점이 네 가지 있다. 늦게 피는 것, 오래 견디는 것, 향기로운 것, 아름답지만 화려하지 않고 깨끗하지만 차갑지 않은 것, 이 넷이다. 그런데 나는 네 가지 외에 벽에 비친 국화 그림자를 특별히 좋아한다. 밤마다 국화 그림자를 보려고 벽을 치우고 등촉을 켜고 고요히 그 앞에 앉아 스스로 즐겼다.

가까운 그림자는 꽃과 잎이 서로 어우러지고 가지들이 정연하여 마치 수묵화를 펼쳐 놓은 것 같았다. 그 뒤의 그림자는 너울너울 어른어른 춤추듯 하늘거리는데, 마치 달이 동산 위로 떠오를 때 서쪽 담장에 비친 뜰 안의 나뭇가지 같았다. 멀리 있는 그림자는 어슴푸레하고 흐릿하여 마치 아주 엷은 구름이나 놀과 같은데, 사라질 듯 말 듯 휘도는 모습은 마치 일렁이는 파도와 같아, 번득번득 어릿어릿해서 이루 다 형용할 수가 없었다." - 109

이 책에는 백성들을 생각하는 청렴하고 따뜻한 정치가, 아내가 결혼할 때 입은 활옷을 잘라 서책으로 만들어 아이들에게 건네는 다정다감한 아버지, 국화 그림자 애호가 다산이 등장한다. 게다가 경자유전을 실천하자는 여전법에 이르면 공산주의자가 따로 없다. 자신을 둘러싼 다양한 풍경에 마음을 주고 살았던 강건하고 선한 한 남자의 일기와 편지를 읽는 것은 즐거운 독서다.

강진으로 유배되어 4년간 세 들어 살던 주막의 방 한 칸에조차 이름을 붙이며 살았던 조선 선비의 마음은 하루에 한 편씩 야금야금 아껴가며 읽고 싶은 글이다.


다산의 마음 - 정약용 산문 선집

정약용 지음, 박혜숙 엮어옮김, 돌베개(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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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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