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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저녁에도 어김없이 촛불이 켜졌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평일 저녁, 촛불의 규모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불씨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지난 6일, 경찰의 '시청 원천봉쇄 작전'이 일어나자 갈 곳 잃은 '촛불'은 잠시 휘청거렸다. 그러나 이내 다시 청계광장, 혹은 강남역 부근으로 옮겨 소규모 집회를 통해 작은 불씨를 지펴가고 있다.

 

확실히 촛불은 줄었다. 7월 중순 들어 거리에 모인 시민들의 숫자만 놓고 본다면 말이다. 경찰의 집회장소 원천 봉쇄,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실무자 구속 및 사무실 압수수색 등 이명박 정부의 노골적인 '촛불 옥죄기'를 놓고 보면 숫자가 준 것도 무리는 아니다. 두 달이 훌쩍 넘은 '길거리 투쟁'에 대한 피로도도 높아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로 나온 시민들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촛불을 들고 있다. 이 날도 300여개의 촛불이 차분하게 청계광장을 환하게 밝혔다. 그저 "작은 불씨마저 꺼서는 안 된다"고 외치면서 말이다.

 

'불씨'를 자청한 이들의 담담한 표정이 궁금했다. 왜 이들은 이처럼 매일같이 거리를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향후 '촛불'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16일 저녁 청계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있는 '현장파' 시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왜 거리 고집하나]  "정부가 안 변하는데 촛불만 변할 수는 없다"

 

 

집회 시작 전부터 청계광장에 나와 있던 중앙대 재학생 이승선(28)씨는 "국민들이 승리했을 때 촛불을 꺼야지, 지금처럼 흐지부지한 상태에서 끝나게 되면 결국 정부에 항복하게 되는 것 아니냐"며 '촛불 유지'를 강조했다.

 

그는 "촛불 집회에 대한 경찰의 폭력적 탄압이 심화되는 상황인데 한 사람이라도 계속 나와서 이곳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이명박 정권의 원천봉쇄 작전에 이대로 질 수만은 없다"고 거듭 외쳤다. 

 

강원대에 재학 중인 김아무개(25)씨도 "우리가 70여 일 동안 꾸준히 노력해 얻어낸 것도 많지만 아직 만족할만한 성과가 없었기 때문에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대중의 운동과 정치참여가 항상 일관된 형태로 지속되진 않는다고 본다"며 "정부와 경찰의 탄압과 이데올로기적 선전, 그리고 매일 지속된 거리 정치에 대한 피로감 등 촛불이 준 것에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므로 단순히 숫자가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만으로 일희일비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여의도에서 회사 업무를 마치고 청계광장을 찾았다는 곽경택(34)씨는 "주권은 나한테 있는 건데 정부에서 계속 이를 무시하고 있으니까 촛불을 놓을 수가 없다"며 "우리는 당연한 것을 찾고자 나오는 것이니 꼭 승리할 것이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경기도 의정부에서 온 정창희(42)씨도 "국민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가 변한 것이 없는 상황에서 촛불이 변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향후 촛불은] "국민의 마음속 촛불이 꺼질 때까지 계속 돼야"

 

그렇다면 비가 오는 평일에도 우비를 입고 거리에 나온 '열성 시민'들이 말하는 '촛불의 미래'는 도대체 무엇일까? 이날 거리에 나온 시민들은 한목소리로 "여기서 '촛불'을 꺼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외대에 재학 중인 이동현(26)씨는 "단순히 시민 숫자만 놓고 촛불이 끝나가고 있으니 다른 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는 동의할 수 없다"며 "그저 거리의 촛불 숫자를 놓고 따질 게 아니라 국민들 마음속의 촛불이 꺼지느냐 아니냐를 잘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씨는 "지금처럼 매일 꾸준히 집회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며, 나도 시간이 날 때마다 역할을 다하기 위해 이렇게 나오고 있는 것"이라며 "단 10명이 모이더라도 작은 불씨를 끄지 않고 이어간다면 결정적인 순간에 분노의 물결을 모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온 이상신(39)씨는 "불씨가 완전히 꺼지면 다시 켜기는 정말 힘들다"며 "평일은 불씨 개념으로 약하게나마 각 지역에서 촛불을 이어가고, 주말에는 한 곳으로 집중하는 방향으로 대규모 집회를 이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씨와 함께 있던 동대문에서 온 최민호(40)씨는 '촛불의 진로'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아무 말 없이 자신이 가져온 피켓만을 내보였다.

 

"긴 호흡 강한 걸음 5년 내내 촛불이다."

 

"정부의 촛불 억압은 촛불이 무섭다는 것을 반증... 더 세게 들어야"

 

또한 정부의 '촛불 죽이기'는 결국 '촛불 공포증'에서 나온 것인 만큼, 앞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촛불을 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민주시민'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김덕엽(30)씨는 "집회를 원천 봉쇄하고 대책위 관련자는 구속시키며, 심지어 색깔론으로 덮어씌우기도 하는 등 정부에서 촛불을 억압하는 것은 거꾸로 말해 정부가 촛불을 무서워한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셈"이라며 "때문에 촛불은 앞으로도 계속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촛불'은 그저 한 순간 폭발한 것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만이 누적되어 나타난 만큼 국민들의 분노가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것"이라며 "단순히 요 며칠 촛불의 규모가 줄고 늘고 한 것은 핵심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강원대 재학생 김아무개씨도 "'촛불파'냐 '제도파'냐의 논의가 꾸준히 진행되고 있으나 촛불을 제도권 정치로 수렴하기에는 우리 정치의 수준이 기대 이하"라며 "2차례의 고시 연기, 대운하 중단 등 이명박 정부를 '일시 정지'시킬 수 있었던 성과는 결국 '촛불의 힘'이었고, 그러기에 아직은 촛불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얻어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앞날에 대한 생각 없이 그저 소신껏 촛불만 들겠다"는 말도 나왔다.

 

정창희씨는 "촛불의 미래에 대해 내가 예상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면서 "지난 5월 2일의 시작도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한 것이 아니었고, 불현듯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폭발한 것인 만큼, 단지 나는 촛불의 큰 흐름 속에서 내가 할 일을 다할 것"이라며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태그:#촛불 집회, #광우병 쇠고기, #이명박, #청계광장, #촛불 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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