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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나와 같이 "살을 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사람", "살을 빼기 위해 노력은 하지만 그 결실을 맺지 못하는 사람"들끼리 위로를 받기 위한 것이다. 그러니 이 글을 보고 (누구라도) 심리적인 동조를 하는 것은 환영이지만 인체생리학적 법칙을 설명하는 것은 삼가하길 바란다. 즉 이 글은 살 빼는 방법을 묻는 글이 아니다. 그냥 안 빠지는 사람의 처절한 넋두리이다.

언제나 신세 한탄, 난 왜 이래

 언제쯤 이 체중계 위에서 기뻐할것인가.
▲ 야속한 체중계 언제쯤 이 체중계 위에서 기뻐할것인가.
ⓒ 오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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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이 빠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군대에 있을 때, 두 달간 해외에서 방황할 때, 노가다급 아르바이트 할 때, 그리고 결혼사진 찍는다고 나름 노력할 때 기적처럼(?) 5킬로 이상이 빠진 적이 있었다. 살이 빠지니 일단 몸이 가볍고(당연하지) 일상에 '흥'이 났다. 당연히 다시 살이찌니 그런 상황이 자꾸 기억이 나더라.

그런데 만날 '기억'만 한다. 기억을 다시 현실로 만들기 위해 (최소한 내가 보기엔) 부단한 노력을 한다. 하지만 언제나 기억은 아주 멀리의 무엇이다. 나름의 노력을 시도한다고 설치고 있으니 짜증은 배가 된다.

"살이 언제 빠지나~" 하는 아쉬움이 아니라 "도대체 나의 체질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기에~"라는 신세한탄이 태반이다. 하루하루 이러한 신세한탄은 어김없이 반복된다. 사실 왜 안 빠지는 지 나는 안다. 그런데 이거 참 '어쩔수 없는 것'이라고 위로 받고 싶다. 그 위로가 다시 다이어트 실패라는 동선을 야기하겠지만 그래도 받고 싶다. 도대체 나 왜 이런것이유?

아침, 어제의 실수를 만회하리라 굳은 결심 그러나... 

어제 저녁을 계획보다 많이 먹었다. 다이어트 중이라고 술을 안 마신다고 하니 괘씸하다고 폭탄주를 따라주는 그 녀석 때문이다. 역시 친구가 적이다. 그래도 친구가 날 원하니 거절할 순 없다. 뭐 오늘 화끈하게 굶어주고 운동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래. 깔끔하게 아침을 굶어주자. 화끈한 새벽 운동까지 생각했지만 이미 시간이 늦었다. 머리도 아직 아프고 말이야. 시원한 냉수나 한 잔 마셔야겠다. 냉장고 문을 여니 3-4일 전 만들어놓은 냉커피가 있다.

이럴땐 갑자기 '남은 음식 처리하는' 가장의 사명감이 고동친다. 헹여나 여름 날씨에 음식이 잘못되면 그 죄책감은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 암~ 그렇게 낭비하면 안 된다고 배웠다. 그래서 냉수 대신 냉커피를 한 잔했다.

오전, 오늘은 아주 소식만을 할 것이다. 정말?

사무실이다. 오늘은 출근하자마자 마시는 자판기 커피도 마다했다. 나도 마음 제대로 먹으면 충분히 굶을 수 있는 사람이다. 얼마전 다이어트 관련 책을 보니까 살 빼는 것은 운동도 중요하지만 역시 식사조절이 관건이었다. 암~ 안 먹어야 성공한다.

11시다. 약간 배가 고프다. 아침을 안 먹어서 배가 홀쭉한 것 같다. 사무실 한 켠에 접대용 초콜릿이 있다. 맞다. 배가 고플 때 '한 개'의 초콜릿은 효과가 크다고 했다. 배가 고프면 늘상 떠오르는 전문적 이론(?)들이다. 암 이론은 상황에 따라 반드시 실천을 통해 검증해야 한다.

한 개를 먹었다. 그런데 간에 기별도 안 간다. 그래서 한 개 더 먹었다. 단 것은 단 것을 부른다. 아~ 그러면 안 되지만 사무실 비상용 쿠키 몇 조작을 작은 접시에 담았다. 따뜻한 커피 한 잔 하고 말이다. 아침도 안 먹었는데 이 정도쯤이야~

점심, 다시 시작하자! 악순환의 가속화

방금전 초콜릿, 쿠키, 커피가 좀 마음에 걸린다. 점심을 소식해야겠다는 다짐이 든다. 최대한 자제하여 칼로리 섭취 자체를 줄여야겠다. 식당은 자유배식이다. 처음부터 적게 담으면 된다.

그런데 오늘 팀장이 나가서 먹잔다. 중국집이다. 간자장을 시켰다. 그리고 군만두 3조각을 예의상 먹었다. 난 속으로 투덜거린다. '사회생활화면서 살빼기 정말 힘들구나~'(사실 이것은 짜증이 아니라 먹은 것에 대한 합리화다) 살 뺀다고 대충 먹으면 팀장 체면이 뭐가 되겠느냐!(평소에도 이렇게 팀장 생각을 해야 할 터인데) 내 개인의 살빼기가 우리 조직의 팀워크보단 중요할 리 없다. 결론적으로 배부르게 먹었다.

오늘은 절대 커피를 안 마시려고 했는데 느끼한 음식을 먹고 오니 커피 한 잔이 어쩔 수 없다. 살 뺀다고 위장까지 배려서는 안 된다. 그래서 한 잔했다. 상식적으로 커피가 위에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체질이란 사람마다 다른 것 아니겠는가.

오후, 살찐 체형을 부러워하는 친구와의 고의적인 대면

잡담시간.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 좋아한다기 보단 항상 내가 먼저 말을 건다. "넌 정말 살이 안 찌는 체질이야?"(그 친군 말랐다. 그것도 아주) "응. 먹어도 안쪄. 미치겠어". "우와 정말 부럽다. 나도 그런 체질이면 좋겠는데~", "무슨 소리야 지금도 딱 보기 좋구만. 나도 너처럼 살이 조금 있으면 좋겠네."

나의 기분좋은 대화상대는 체질적으로 마른 사람이다. 그래서 나처럼 살이 붙어있는 경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만날 망언을 한다. "나 살 많이 쪄보여?". 대답은 알고 있다. "딱 좋구만~ 보기 좋아. 남자는 약간 살이 있어야 되는 거야!"(그 친구는 체질적으로 뚱뚱한 사람을 좋아한다. 뚱뚱한 사람들이 먹어도 먹어도 살 안찌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것처럼)

그러면서 난 친구가 분명 '체질' 때문에 살이 안 찜을 계속 강조한다. 이는 내가 체질적으로 살이 찐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기 위함이다. "체질 때문에~"라는 것은 비만인들의 원망의 소리이기도 하지만 다이어트에 대한 노력을 약간 다른 각도에서 상황 정리해 줄 수 있는 탈출구의 단어이기도 하다(체질 타령 하는 사람치곤 다이어트 성공하는 사람 없더라. 나처럼).

오늘도 여러가지 상황들을 정리한다. "난 그렇게 뚱뚱한 것이 아니다. (심지어) 남자다운 몸매다", "암~ 살은 체질적인 것이다. 나도 체질이 이런 것인데 너무 살빼기 위해 신경쓰는것도 그렇다" 등.

저녁, 결심과 좌절 하지만 심리적 위안을 추구하는 못난 인간의 모습

저녁은 굶었다. 오늘 점심도 잘 먹고 그랬으니 말이다. 암~ 다이어트 중이니까 말이다. 게다가 운동까지 열심히 해야지. 집에 왔다. 아내는 계속 "저녁을 조금이라도 먹어야지. 그러다가 밤에 뭐 먹게 된다"고 강조한다. 걱정말라고 다그친다. 나 결심을 야무지게 했으니까 말이다.

운동을 하러 갔다. 오늘부터 완전 설경구 다이어트 버전이다. 이어폰을 꽂았다. 영화 <록키>의 주제가가 나온다. 신난다. 한 시간 넘게 운동을 했다. 습기많은 장마철이라서 그런지 땀이 장난 아니게 나온다. 이 페이스면 1-2주면 아마 살이 쏙 빠질 듯 했다.

집에 왔다. 샤워를 했다. 이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시원한 맥주캔이 보인다. 나도 남자다. 운동과 샤워 후 촉촉히 젖은 머리결을 유지한 채 맥주캔 마시는 <사랑을 그대품안에>의 차인표처럼 되고 싶다. 암~ 살 빼는 것도 기분이 중요하다.

한 캔을 마셨다. 운동을 많이 한 것에 대한 보상이다. 아내는 이미 불안한 징조를 느끼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것은 곧 나타났다. 드라마 <식객>을 보고 있다. 맛있는 음식들이 너무 많이 나온다. 저녁을 굶고 운동은 과하게하니 역시 배가 고프다. 그리고 아까 빈속에 맥주를 마시니 속도 약간 그렇고 말이다.

  왜 이런것은 꼭 따라해야 하는것일까?
▲ 드라마 <식객>의 성찬라면 왜 이런것은 꼭 따라해야 하는것일까?
ⓒ SBS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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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성찬(김래원)이가 라면을 만드는 모습이 나왔다. 라면에 깻잎을 넣으면 국물이 얼큰해진단다. 맞다. 집에 남은 깻잎이 있다. 이런 집안 잔여품들은 항상 이럴 때 생각난다. 그래서 라면을 먹었다. 깻잎에 냉동만두 몇 점을 넣고 말이다. 두 숟갈 남은 밥솥에 국물과 함께 마셨다.

이거 30분 만에 맥주에 라면을 섭취하니 배가 많이 부르다. 아~ 이거 미치겠네. 생각해보니 오늘 하루 완전 개판이었다. 꿀맛 같은 잠을 자야 하는데 기분부터가 꽝이다. 아~ 이거 내일부턴 다시 굶어야겠다. 그리고 아마도 내일은 오늘과 다르지 않을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심리적인 동조상태가 제일 문제인 듯

역시 가장 큰 문제는 살이 찌는 그 '순간'에 대처하는 나의 심리적인 자세다. 언제나 긍정적인 해석이다. "소식이 가장 우선이다"라는 원칙은 "신나게 먹고 열심히 운동해서 살 빼자!"는 대안으로 변한다. 물론 이 원칙은 소식을 과식으로 만들고 그래서 배불러서 운동까지 못하게 하는 악순환을 거듭한다.

그리고  과식을 하면 "다음 몇끼를 굶어버려~"라는 기가찬 의지의 충만함도 문제다. 살 빼는 것은 장기적으로 습관을 바꾼다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제의 과식을 오늘의 단식으로 무마하고자 한다. 물론 단식은 5-6시간 후 음식을 과잉으로 요구한다. 차라리 그때 간단히 먹으면 좋은데 그 배고픔을 3-4시간 더 유지하다가 결국 과식으로 이어진다. 아까 말했던 "운동으로 살빼자"는 다짐이 결부되면서 말이다.

그리고 다이어트 실패를 자꾸만 '체질탓'으로 무마하는 심리 역시 문제다. 이건 체질이 그러하니 더 결심을 다부지게 해야하는데 체질이 이러한 것을 어떻게 하리, 너무 고심하지 말자는 위안론으로 변동한다.

그래. 어찌 이런 것도 극복하지 못하고 살을 뺀다고 할까? 그런데 상황 앞에선 늘상 해석이 (위의 내용처럼) 되어 버린다. 이러한 반복적인 상상력도 참 대단한다. 그러니 앞으로의 길이 더 걱정이다. 맨 위에도 말했지만 해결책 제시는 원하지 않는다. 그저 나같은 사람들끼리 위로나 하자꾸나.

덧붙이는 글 | 개인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http://blog.daum.net/och7896



태그:#다이어트, #다이어트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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