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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두 달 동안 촛불정국이 가져온 대표적인 현상은 '언론'에 대한 자각이다. 경향, 한겨레 신문은 촛불을 들고 나온 시민사회를 진솔하게 보도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독자들의 의견광고가 몰리고 있는 반면 왜곡보도를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조선,중앙, 동아일보에 대해서는 광고주 압박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맞춰 공공미디어연구소(이사장 전규찬)가 11일 서울 세종로 영상미디어센터에서 연 포럼 ‘진보적 신문의 도약을 위한 탐색: 경향신문과 한겨레를 논한다’에 한겨레 신문의 안수찬 기자, 공공미디어연구소 도형래 연구원이 발제를 맡았고, 미디어스의 신학림 기자(전 언론노조위원장), 경향신문 김정섭 기자, 언론재단 이은주 연구원과 함께 '블로거 토론자'로 참여했다.

 

토론장에는 출판 관계자와 언론노조 회원 등 20~30여 명의 관계자와 시민들이 참여해 관심을 끌었다.

 

정직한 언론을 살린다는 독자들의 열망 앞에는 매우 구조적이고 지난한 문제가 놓여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포럼에서 제기된 주장은 두 가지 결론으로 수렴되었다. 첫째는 현재의 약탈적인 시장구조를 타파하지 않는 한 정상적인 언론환경은 꿈에 불과하리라는 점이다. 둘째는 참언론재단이나 국민포털 같은 대안이 제시되었다.

 

경향, 한겨레가 있는지 몰랐어요

 

포럼에 발제자로 참여한 한겨레의 안수찬 기자는 최근 '지식채널e'이 한겨레 20돌 기념 프로그램을 방영해 신문사 내부에서 화제가 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한겨레 신문은 1974년 10월 동아일보 직원들이 독재정권에 대항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하고 나서 15년 동안 모진 탄압과 구속, 정치깡패들의 행패를 견디고 나서 1988년 5월 15일 2만7223명이 마련해준 50억원을 종잣돈으로 창간된 신문이다.

 

하지만 지식채널e에서 이런 내용이 방영이 되었을 때 이러한 사정을 전혀 모르는 독자들이 이 정도로 많은지 한겨레신문사에서도 미처 예상치 못했다는 후문이다. 한겨레 기자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안 기자는 전했다.

 

경향신문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토론자로 참여한 경향신문 김정섭 기자는 올해가 독립언론 10주년째인데, 경향이 있구나, 경향이 그런 신문이구나 하는 평가를 이제야 받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겨레신문은 현대사의 한가운데서 많은 역할을 하였고 그만큼 관심을 많이 끌었지만, 경향신문은 더욱 외로운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폐간과 복간을 반복하고, MBC와 함께 정수장학회의 소유이던 적도 있었고 한화그룹으로 소유권이 넘어가기도 했다.

 

김 기자 본인도 입사 처음에는 재벌신문으로 입사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머리띠를 둘러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광화문 촛불문화제에 참여해본 사람들은 경향, 한겨레신문과 조중동의 실체를 잘 알고 있지만, 진보매체가 가야 할 길이 아직도 멀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진보매체의 발목을 잡는 것은 '불공정거래'

 

현재 신문구조에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해서 발제자, 토론자들은 '불공정거래'라고 입을 모았다. 시장에서 동종의 기업들이 경쟁을 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지만, 그것은 모두 '공정경쟁'이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몇몇 거대자본이 불공정한 방식으로 무리하게 판촉을 해나간다면 시장이 왜곡될 수밖에 없고 경쟁기업은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 현재 우리나라의 신문시장의 상황이다.

 

공정거래법에 근거한 현행 신문판매고시에서는 신문구독자를 모집하는 과정에서 연간 유료신문 대금(18만원)의 20%(3만6000원)을 초과하는 액수의 공짜신문이나 경품을 제공하는 행위을 불공정거래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조중동은 이런 법규정에 대해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신학림 미디어스 기자는 가족이 실제 중앙일보 판촉직원과 통화했던 사례를 들었다.

 

판촉직원은 중앙일보를 구독할 경우 1년 무료구독과 함께 월 구독료 2,000원 할인을 조건으로 걸었다고 한다. 월 구독료 15,000원을 1년 동안 무료로 구독했을 경우 18만원(무료)의 비용이 발생한다. 거기다 월 구독료 2,000원 할인을 1년 동안 합하면 24,000원인데 이것만 가지고도 중앙일보는 1년에 16만 8000원의 불공정거래를 저지르는 셈이다.

 

이 뿐만 아니라 부수에 대한 뻥튀기도 중대한 문제로 지적했다. 2중, 3중, 4중으로 신문부수를 뻥튀기하고 광고전단지조차도 뻥튀기하여 광고주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었다는 게 신학림 기자의 주장이다.

 

경향신문 김정섭 기자는 최근 신문부수를 실사하는 ABC협회의 부수조작을 보도한 경험을 말했는데, 1개 지국에서 최대한 해결할 수 있는 부수는 1만부가 채 안 된다고 한다. 하지만 ABC가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지국 1개에서 2~3만 부를 맡았다는 기록도 있다.

 

신학림 기자는 이것은 현장조작의 증거라고 말했다. 예컨대 ABC에서 신림지국으로 조사를 나가겠다고 조중동에게 통보하면 조중동은 신림지국 주변 지국들이 모두 신림지국의 부수를 분산하여 담당하고 있다고 현장에서 조작해 부수를 늘려왔다는 것이다. 이는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을 할 수 있는 근거도 될 수 있기 때문에 경향, 한겨레가 이를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향, 한겨레는 덥고 배고프고 갈 길이 멀다

 

한겨레 안수찬 기자는 한겨레 내부의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토로했다. 한겨레 내부에는 창의적이고 능력 있는 인재가 많이 있지만, 조직의 피로감이 누적된 상태에서 개인의 창발성을 보장해줄 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단적으로 자본의 문제다. 현재 한겨레는 200여명의 취재/편집 인력으로 지면을 만들어가기 때문에 매일매일 현상유지하기도 버겁다고 한다. 이 상황에서 새롭게 무엇인가를 시도하기란 현실적으로 대단히 어렵다고 말했다. 그것은 경향신문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촛불정국으로 나타난 광고주 압박 운동과 경향, 한겨레 구독운동이 가지고 있는 한계도 명확해 보였다. 한마디로 '보약은 될지언정 일용할 양식은 아니다'는 것이다. 현재는 냉정한 시장 판단이 필요하며, 자본의 힘을 기반으로 한 '새판짜기'가 필요한 시점이기에 기자/매체의 성실성이나 이념지향은 별개문제라는 지적이다.

 

신문을 만들기 위해서는 '현금'이 들어간다. 신문의 원가는 현재 구독료 15,000원을 훌쩍 넘는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다. 신문을 만들수록 영업손실이 커진다는 말인데, 이러한 상황에서 만약 신문발행부수가 급격히 늘어날 경우 오히려 유동성 위기가 닥칠 수도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신문의 제작이나 판매 등 전반적인 시장 구조가 중병을 앓고 있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진보매체의 역량에 대한 지적도 제기됐다. 토론회를 진행한 전규찬 이사장은 "토론회가 불쑥 나온 게 아니라 촛불정국이라는 문맥 속에서 발생했다"고 말했다. 여기서 새롭게 등장한 주체인 여성과 청소년이라는 미래의 독자들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함께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환경과 저널리즘 패러다임 자체가 완전히 변환되고 있는 상황에서 진보, 대중, 정론, 고급이라는 키워드 자체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이냐 하는 중대한 질문이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향과 한겨레가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는 점과 함께 경향, 한겨레의 변별성에 대한 고민도 촉구했다. 그리고 전문성 문제도 꼬집었다. 예컨대 CJD와 VCJD에 대해서 조중동이 PD수첩을 공격할 때 경향과 한겨레가 나서서 이 문제를 저널리즘의 관점에서 환기해 주고 대중과 교섭시켜 주고 지적 교선을 해주고 정보와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서비스를 해주지 않는 점은 분명히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것이다.

 

공공미디어연구소의 이날 토론회는 진보매체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과 시장상황에 대해 스스럼 없이 의견을 주고받은 자리였다. 이날 토론은 촛불정국이라는 문맥 속에서 자연스럽게 시작됐다. 앞으로 제기된 구조 문제를 타파할 수 있는 대안과 독자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참여의 장을 마련해 나가는 것이 관건이다. 공정한 보도와 공정한 시장은 공정한 독자들과 함께 지켜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태그:#공공미디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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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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