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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에서 머물다 12일 오후 3시 동해선도로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서 입경했다. 금강산 관람객 피살사건이 일어난 지 33시간여가 흐른 뒤였다. 사건은 맛객(필자)이 금강산에 들어난 이튿날(11일) 새벽에 일어났다.

소식을 처음으로 들은 건 11일 오후 6시경 뉴스를 통해서였다. 첫 느낌은 놀라움이었다. 그리고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는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돌아와서 알게 되었지만 그 시각에 남한에서는 난리가 났다고 한다. 그 때문에 금강산 관광도 순조롭게 이뤄지지 않았을 것 이라고 미뤄 짐작했나보다. 하지만 금강산 현지에서는 별 다른 동요나 불안감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오히려 평온하기까지 했다.

 

밤에 온천욕을 마치고 나오니 로비에 있는 TV에서는 총격사건을 보도하고 있었다. 북측 직원 2명도 시청했지만 우리나 그쪽이나 서로 말은 없었다. 다만 잠시 후 그들은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피살지점으로 여겨지는 고성항 금강산해수욕장 일대는 맛객이 머물던 해금강호텔에서 한눈에 들어온다. 10일 오후 창문을 통해 고성항을 보며 참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육지가 80% 정도를 빙 둘러싸고 있어 마치 호수와도 같은 항이다. 천불산이 수면에 그대로 비칠 정도로 잔잔한 고성항에서 남북관계를 미궁 속으로 빠뜨릴 수 있는 파문이 일어나게 될 줄이야.

 

 

금강산 관광이 잠정 중단되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다음날 예정된 만물상 산행도 기약할 수 없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관광조장에게 물었다.

 

"오늘 산행 어떻게 되나요?"

"일단 차에 타시죠."

 

모두 탑승하자 관광조장이 관광객들에게 묻는다. 불안해서 모든 관광을 중단하고 지금 즉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관광객의 신변안전에는 아무런 하자가 없으니 남은 일정을 소화 시킬 것인가?

 

곧바로 돌아가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 또한 별 불안감은 느끼지 못했다. 드문 드문 보초를 서는 북측 초병은 전날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산에서 또는 식당에서 만난 북측 사람들은 여전히 밝은 표정으로 우리를 대해줬다. 하지만 북측 기자들의 모습은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남북출입사무소를 통과해 나오자 여러 방송국의 카메라기자가 취재전쟁을 벌이던 우리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취재열기가 뜨겁다. 남과 북이 이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해서 금강산관광이 조속히 재개되길 바라본다. 금강산관광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고 본다면.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금강산, #총격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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