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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고, 마음밭이 결고운 아이. 이런 만남 때문에 여행을 끊기 힘들다.
▲ 눈웃음 건강하고, 마음밭이 결고운 아이. 이런 만남 때문에 여행을 끊기 힘들다.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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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얼른 가요!"

아침부터 분주하게 서두르는 준호는 어제(6월 9일) 울기 일보 직전과는 다르게 의욕에 넘쳐 있었다. 깊은 잠에 빠진 것이 보약이 됐던 것일까. 이미 살이 벌겋게 달아오른 그의 피부가 혹독한 시련을 말해주고 있었지만 단 하루만에 쿠바 횡단에 대한 집념을 다시금 가감없이 드러냈다.

"그럼, 오늘도 힘내자구요!"

아침은 굶었다. 달랑 야채만 얹어 잼만 발라 파는 식빵이 1.8CUC(약 2달러)라는 사실에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 고민했지만 우리는 서로의 눈빛을 말없이 바라보다 가벼이 도리질하며 마음의 손뼉을 마주쳤다. '그냥 가죠.'

사실 공복에 무리하게 힘을 쏟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성을 마비시킬 정도로 터무니없는 가격을 극복할 만큼의 부르주아가 아니라면 그냥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다음 가게에서도 여행자가 감당하기에는 비싼 가격에 음식을 팔고 있길래 눈물을 머금고 지나쳐야 했다. 재미난 것은 돈에 대한 아쉬움 없이 자라 온 준호가 단 이틀 만에 나보다 더 가격에 민감해져 있더라는 사실이다. 어느 새 짜잘한 1페소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었다.

에너지를 아껴야 했다. 한 마디 말조차 필요한 게 아니면 내뱉지 않았다. 지난 밤 물을 챙길 수 없었기에 얼마 간 가다가 몸 전체 모든 수분이 말라버린 듯 건조해짐을 느꼈다. 물이 필요했다. 그런데 대관절 어디서 물을 구한담? 두 번이나 가게를 지나친 게 괜한 오버였나 후회가 밀려 들어왔다. 무엇보다 나보다 준호가 더 걱정이었다. 준호는 나보다 거의 2배나 더 많은 수분을 섭취할 만큼 물을 찾는 친구였다.

초라하고 볼품없지만 쿠바 농부들은 이런 곳에다 꿈을 기른다. 그나마 이런 곳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다른 곳은 아예 마당에다 적게도 몇 마리에서 많게는 수십마리씩 키우고 사는 집이 흔하다.
▲ 쿠바식 양계장 초라하고 볼품없지만 쿠바 농부들은 이런 곳에다 꿈을 기른다. 그나마 이런 곳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다른 곳은 아예 마당에다 적게도 몇 마리에서 많게는 수십마리씩 키우고 사는 집이 흔하다.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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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집이 우람한게 부활절 때는 몸값 톡톡히 하게 보인다.
▲ 칠면조 몸집이 우람한게 부활절 때는 몸값 톡톡히 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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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늘 그랬다. 사면초가 같은 상황일 때도 반드시 해결의 실마리는 존재했다. 세상에 완전한 절망은 없는 법이다. 내가 자전거로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도 앞이 캄캄했던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거의 모든 것이 명쾌하게 해결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낙심했을 때의 기억은 대부분 잊혀지게 되고, 그 때를 극복했거나 전화위복이 되어 더 좋은 기회로 만들었던 좋았던 기억만 대뇌피질에 저장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리 앞서 걱정을 끌어들여 초조해할 필요는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너무나 한가해서 개미 한 마리 기어가는 것조차 의식이 될 만한 나른한 풍경 속에 멀리 가드레일에 걸터앉아 아버지의 일을 구경하는 한 아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당장 그 아이의 아버지를 불러 찬물을 줄 수 없냐고 부탁했다.

말을 건넬 때는 무릎에 손을 대고 허리를 숙인 채 거친 호흡 한 번 하고 다시 허리를 곧추 펴 힘겹게 땀을 닦는 모션을, 마지막으로 눈썹이 바깥쪽으로 내려가도록 측은한 모습을 보여주는 최선의 라이브가 상대방의 마음을 흔들게 된다. 물론 대부분은 상대방의 인격이 결정하는 것이겠지만. 고맙게도 아이의 아버지는 일을 하다말고 집으로 내려가더니 마음까지 시원하게 만드는 얼음물을 가져 와 아낌없이 대접한다. 한 잔을 벌컥벌컥 들이키자 한 잔 더 부어주고, 그 한 잔을 또 원샷하자 다시 물을 따를 준비를 하는 것이다.

"아뇨, 됐어요. 고마워요. 저기 제 친구 보이죠? 곰처럼 달려오는. 쟤한테도 좀 주시면…."
"문제없어요. 원한다면 얼마든지."

고단한 하루를 힘겹게 인내한 후 준호는 조금 더 강해져 있었다. 여유를 찾고 손 흔드는 준호.
▲ 힘내! 고단한 하루를 힘겹게 인내한 후 준호는 조금 더 강해져 있었다. 여유를 찾고 손 흔드는 준호.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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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도착한 준호는 이게 웬 횡재냐는 표정으로 공손히 물을 받아 들고서는 천천히 들이켰다. 왼손을 오른 팔목에 살짝 바치고 마치 거룩한 종교제단에서 성수를 받아 마시는 듯한 경건한 행동에 난 고개를 뒤로 돌려 혼자 킥킥대며 폭소를 터트렸다. 물 한 잔에 속까지 시원했는지 낮은 탄성을 내뱉은 그는 한 잔 더 하란 남자의 말에 금세 또 화색이 돌았다. 아직 준호는 그럴 기회가 없었기에 남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거나 받는 것에 익숙치 않은 것이다.

"줄 땐 감사히 받고, 필요할 땐 겸손하지만 당당하게 요구하면 되는 거예요. 그리고 언젠가 준호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 땐 또 반대로 적극적으로 도와주면 돼요. 혼자 사는 세상은 아니잖아요?"

우리는 필요로 했던 너무나 귀한 물을 적재적소에서 공급받았으므로 답례를 하기로 했다. 비상식량이 있던 앞 패니어를 뒤져 내 것과 준호 것을 더해 아이에게 바(bar) 2개와 땅콩 과자를 건네주었다. 아이는 이방인에게서 과자를 받는 게 쑥스러운지 눈으로만 웃었다. 아이에게 준 것이 가격으론 더 비쌀지 몰라도 가치는 오히려 우리 쪽에 더 소중했다. 소박한 것이었지만 물을 감사히 마셨다는 진심의 제스처 정도로 됐다 싶었다.

"광야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는 혹독한 조건이에요. 하지만 이번만큼은 우리도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는 넉넉한 여정이 되었으면 해요."

그랬다. 여행 준비 중에 준호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우리는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면 기꺼이 도와주기로 계획을 짰었다. 정말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경우 도네이션을 하고, 그 경비는 전적으로 우리의 경비, 그 중 비상금에서 제하기로 했다. 우리야 급하면 여러 가지 대책이 있었고, 또 단지 재정 때문에 일정이 틀어지거나 망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시원한 물을 건네 준 아이의 가족, 그리고 준호.
▲ 함께 시원한 물을 건네 준 아이의 가족, 그리고 준호.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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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정이 그리 길지 않았다. 미리 약속된 마탄사스까지의 거리가 30km정도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오 이전에 일찌감치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는 날이 뜨거워 시내로 들어가자마자 또 감질맛 나는 내추럴 주스를 3잔씩 마셨다. 단 돈 3페소. 우리 돈 150원. 두 가게를 지나치며 주스 조그만 것 한 팩에 0.75CUC(18페소)짜리를 사먹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마탄사스에서는 선교사님을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쿠바에는 한국인 선교사가 단 세 가정만 거주하고 있다는데 이마저도 쿠바 정부로부터 정식 허가를 받은 분은 이곳에 거주하는 김성기 선교사님뿐이라고 한다. 실은 선교사님을 만나는 김에 한국으로 보낼 원고까지 겸사겸사 처리하려고 하던 참이었다.

'쿠바의 베네치아'라고 불린다는데 뭔가 살짝 아쉬운 감도 든다.
▲ 마탄사스 '쿠바의 베네치아'라고 불린다는데 뭔가 살짝 아쉬운 감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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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오세요. 환영합니다."

우리는 약도와 주소만 가지고 용케도 단번에 찾아갈 수 있었다. 김 선교사님은 미리 연락을 받아서 우리를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와, 이런 곳에도 한국 분이 계셨군요. 신기해요."

쿠바 전역에서 수도 아바나와 파견 나온 현대그룹 직원들이 거주하는 곳만 제외하면 아마도 순수하게 지방에 거주하는 한국인으로는 유일할 것이다. 게다가 쿠바 정부로부터 허가 받은 정식 선교사는 현재까지 네덜란드와 미국을 포함한 딱 3가정 있다고.

"우선 시장하시죠? 출출 하실 텐데 라면 어때요?"
"라면이요? 아니 그런 고급 양식을!"

라면이라 함은 우리 어머니들께서 자식사랑에 건강 걱정하시며 어릴 때부터 가장 멀리하라고 닦달을 해대던 인스턴트 계의 절대제왕 아닌가. 하지만 군대를 들어가거나 고국을 벗어나거나 둘 중 한 가지 경우에는 최고의 별미로 급변한다는 한국 최고의 진수성찬.

'파송송 계란탁'에 김치까지 곁들인다면야 어느 음식 부럽지 않는 영원한 식사대용 간식거리. 거절할 이유도 짐짓 예를 갖춰 내숭 떨 필요도 없었다. 주책스럽긴 해도 '감사합니다!' 이 한 마디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준호는 라면이 그다지 땡기지 않았나 보다.

하나에 1페소짜리 완전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결코 놓칠 수 없다. 바닐라 맛과 쵸코 맛이 있다.
▲ 아이스크림 노점 하나에 1페소짜리 완전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결코 놓칠 수 없다. 바닐라 맛과 쵸코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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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괜찮습니다.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아요."
"정말요? 이렇게 맛난 라면을 안 먹는다니. 정말 안 먹을 거예요? 배고플 텐데."
"네, 진짜 괜찮아요. 살도 빼야 하고."

준호는 예의상 거절하는 게 아니라 정말 마음에 없는 듯 보였다.

"알았어요. 뭐 그럼 나라도 맛있게 먹어야죠."

마탄사스 신학교 예배당. 아기자기하다.
▲ 세미나리요 마탄사스 신학교 예배당. 아기자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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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사모님이 거들었다.

"쿠바에선 정말 라면이 귀해요. 이 라면이란 게 말이죠. 사실 고국 떠나면 그렇게 그리워지거든요. 우린 가끔 멕시코에서 라면을 사 가지고 오면 개수까지 세어서 먹곤 했어요. 면은 아이들이 국물은 아까우니 우리가 밥 말아 먹고. 몇 년 전에 탤런트 유준상씨가 처남하고 우리집엘 다녀갔거든요. 여행 중에 우리 소식 듣고 밥 먹으러 여기까지 왔던 거예요. 그런데 글쎄 라면에 밥까지 훌훌 다 말아먹고 깨끗하게 비워냈지 뭐예요? 어찌나 잘 먹던지."

그럴만도 했다. 한국 슈퍼도 없으니…. 비싸도 사 먹기 힘들다면 얼마나 고급 음식일까. 그런 음식을 대접받는 자체로 그저 감개무량할 뿐이었다. 우리는 라면에 관한 찬양을 소리 높여 불렀다. 라면의 단점을 상쇄할만한 장점들이 마르지 않는 샘처럼 쏟아졌다. 라면 하나로도 무척이나 즐거운 이야깃거리가 되어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그럴수록 준호는 뭔가 고민이 깊어만 지는 모습으로 자꾸만 표정이 부자연스러워졌다.

쿠바를 찾는 많은 사람들은 환경을 지키는 유기농법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다. 하지만 쿠바라고 화학비료에 대한 욕심이 왜 없을까? 아직은 화학비료를 살만한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손쉽게 화학비료를 쓰게 된다면 끝까지 유기농법만을 고수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얼마나 유기농법이 지켜지고 문제점을 개선해 가면서 발달해 갈런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쿠바를 예의주시 하는 것이다.
▲ 신학교에서 운영하는 유기농장 쿠바를 찾는 많은 사람들은 환경을 지키는 유기농법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다. 하지만 쿠바라고 화학비료에 대한 욕심이 왜 없을까? 아직은 화학비료를 살만한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손쉽게 화학비료를 쓰게 된다면 끝까지 유기농법만을 고수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얼마나 유기농법이 지켜지고 문제점을 개선해 가면서 발달해 갈런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쿠바를 예의주시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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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왜요?"
"저도… 그냥 라면 먹을게요."

딱 봐도 결심이 무너진 듯한 천진한 모습이었다. 준호는 민망한 듯 어설프게 씨익 웃어 보였다. 어지간히 먹고 싶었나 보다. 사모님은 준호의 입장번복을 누구보다 반겼다. 이윽고 라면을 끓이고 김치까지 내오면서 식탁은 그 어느 것도 부럽잖은 최고의 만찬대가 되었다.

사모님이 정성스레 차려 준 라면에 울컥할 뻔하며 국물에 밥까지 말아 먹고 나서야 비로소 미련없이 수저를 놓을 수 있었다. 혀에 남아있는 짭짤한 잔맛까지 음미할만한 눈물나는 보양식이었다. 아침을 굶긴 했지만 라면 하나에 속이 확 풀어졌다. 흐르는 땀을 연신 닦아냈지만 티셔츠는 이미 땀으로 흥건했다.

얼마나 만족했는지 다 먹고 나서 서로 그냥 실실 웃기만 했다. 먹는 동안에는 쓰잘데기 없는 잡담같은 건 일체 하지도 않았다. 이 위대한 침묵과 무서운 집중력이란! 후식으로 나온 망고가 입 속에 들어갈 때 그제서야 잠시 우리의 마음을 홀라당 뺏어버린 몽환라면의 마법에서 풀려나올 수 있었다.

"역시 해외에서는 라면이 최고에요!"

우리의 마음은 하나가 되어 깔깔깔 웃으면서 뜨거운 점심의 열기를 매조지했다.

신학교 안에 위치한 선교사님 댁이 마탄사스에서 가장 높은 언덕 꼭대기에 있어서 그 곳까지 자전거를 이끌고 올라가야 했다.
▲ 마탄사스 신학교 안에 위치한 선교사님 댁이 마탄사스에서 가장 높은 언덕 꼭대기에 있어서 그 곳까지 자전거를 이끌고 올라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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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선교사님, 한국에 보낼 원고가 있는데 죄송하지만 인터넷 좀 쓸 수 있을까요?"
"네? 인터넷이요?"

뜬금없는 부탁에 별안간 선교사님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인터넷…. 그리고 쿠바. 그 후에 다가올 난리부르스에 대해 나는 전혀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선교사님의 명쾌하지 않은 표정이 나는 의아하기만 했다.

덧붙이는 글 |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 http://www.vision-trip.net



태그:#쿠바, #세계일주, #문종성, #자전거, #비전노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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