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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11일 오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18대 국회개원식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11일 오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18대 국회개원식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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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11일 오후 국회 개원 연설에서 촛불 민심과 인터넷 여론에 대한 자기 견해를 다시 한 번 피력했다.

이 대통령은 "부정확한 정보를 확산시켜 사회 불안을 부추기는 정보전염병은 경계해야 할 대상"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 사회는 법과 원칙이 무시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국민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와 인터넷의 발달로 대의정치가 도전을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먼저 이번 대통령의 국회 발언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촛불집회에 대한 대통령의 발언이 지나칠 정도로 이랬다저랬다 하기 때문이다.

시청 광장에 1만 촛불이 모였을 때, 보고를 받은 이 대통령은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고 누가 주도했는지 보고하라"고 버럭 호통을 쳤다. 그랬다가 6월 10일 시위 후에는 "저는 광화문 일대가 촛불로 밝혀졌던 그 밤에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바라보았습니다"라고 고개를 숙이며 국민과의 소통 부재에 대해 '뼈아픈 반성'을 했노라고 숙연하게 사과한 바 있다.

그러고는 불과 몇 주도 안 지난 지금 이 대통령은 다시 말을 바꾸어 버렸다. 그는 촛불 민심을 '정보전염병'에 감염된 병원체 같은 수준으로 매도해 버린 것이다. 이렇듯 촛불의 기세가 비등하면 물러나 머리를 숙이다가도 촛불의 기세가 약화되거나 한 고비 넘겼다 싶으면 다시 촛불을 공격하는 일이 우연인지 아니면 의도적인지가 궁금하다.

이 대통령의 본심은 무엇일까

대통령의 말에 일관성이 없으면 국민은 헛갈릴 수밖에 없다. 국민들은 대관절 촛불 민심에 대한 대통령의 본심은 무엇인지 알고 싶다. 대통령은 혹시 촛불 민심을 조용기 목사처럼 "마귀의 꼼수"라고 보는 것은 아닐까? 또는 추부길 홍보기획비서관처럼 "사탄의 무리"라고 여기는 것일까? 아니면 '무협작가' 이문열처럼 '내란을 선동하는 집단'이라고 간주하는 것일까? 

물론 이 대통령의 촛불관이 이런 정도로까지 처참한 수준은 아닐 것이라 본다. 그렇다면 이 대통령의 진짜 촛불관은 무엇일까? 촛불집회에 직접 참석했던 곽승준 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은 비교적 촛불집회에 대한 시각이 정확한 편이었다. 6월 2일자 <동아일보>가 보도한 기사에 나타난 곽승준 전 수석의 촛불집회 참가 소감을 살펴보자.

"건강에 대한 우리 국민의 관심이 아주 크다. 인터넷을 통한 민심의 소통 구조가 이를 하나로 묶어냈다. 단순히 불순 좌파세력의 선동 때문에 나왔다고 보기 힘든 것 같다. 정부가 왜 쇠고기 수입을 하는가에 관해 충분한 정보 전달이 부족했다." 

전 국정기획수석도 이런 견해를 밝혔는데도 이 대통령의 촛불관은 크게 변하지 않은 듯하다. "민심의 소통 구조를 인터넷이 묶어 낸 것"이 아니라 "민심을 배후에서 선동한 것이 인터넷"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대통령의 입에서 '정보전염병'이라는 험한 말이 주저없이 나오지 않았겠는가?

이런 이 대통령의 인터넷 관은 상당히 무지하고도 위험하다. 정확히 말해 무지하기 때문에 위험하다. 촛불 시민이나 누리꾼은 국민과 별도로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촛불 시민들은 광장에 나오는 수고를 아끼지 않은 사람들이다. 또한 현대 정보화 사회에서 '누리꾼'이란 곧 '국민' 자체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대통령이 촛불시민과 누리꾼에 대한 편향된 시각을 바로잡지 않는 한 국민 여론이나 민심을 제대로 읽기는 영영 불가능할 것이다.

이 대통령이야말로 정보불감증

이명박 대통령이 19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쇠고기 파동'과 관련한 특별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19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쇠고기 파동'과 관련한 특별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배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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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물리학의 양자역학적 세계관에서는 절대 진리도 없으며 절대 거짓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모든 것이 정보로 간주된다. 이 대통령이 신앙하는 '야훼'도 양자역학에서는 한낱 정보일 따름이다.

이런 점에서 국민 여론이나 민심이라는 것 역시 당연히 정보인데, 이것을 가장 신속히 알 수 있는 수단이 인터넷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인터넷을 마치 '묵시록의 징조'나 되는 듯이 여기면서 고작 조중동처럼 제한된 종이 활자를 통해 정보를 얻으려고 한다면 필경 정보불감증에 걸릴 수밖에 없다.

그런 이 대통령이 되레 촛불 민심을 '정보전염병'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어디서 누구에게 들은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정보전염병은 지금 상황과는 맞지 않는 용어다. 촛불 민심은 사후 공인된 여론조사에 의해 그 정확성이 충분히 입증되고도 남음이 있지 않았던가?

'정보전염병'이란 말 그대로 잘못된 정보가 창궐해 그것을 다수가 급속도로 믿게 되는 현상이다. 이를테면 얼마 전 있었던 '나훈아 괴담' 같은 것이다. 촛불 민심이 나훈아 괴담 수준이라는 것인가? 촛불민심이 정보전염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이 대통령이 정보불감증에 걸린 것이라고 보는 것이 단연 합리적이다.

대의정치는 직접민주주의의 최소한

'법이 도덕의 최소한'이듯이 '대의정치는 직접민주주의 최소한'이다. 대의정치는 불가피하게 실시하는, 어느 면으로는 마치 법처럼 필요악의 성격을 띠는 임시적 제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대의정치를 일견 민주주의의 정석처럼 말하는 사람은 수단과 목적을 혼동하는 오류에 빠진 것이다.

대의정치를 신봉하는 사람치고 정보화에 밝은 사람은 거의 없다. 그들의 세계관 또는 정치관 자체가 구시대적이다. 따라서 역동하는 현대 사회의 맥을 짚는 데 그들은 번번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은 "국민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와 인터넷의 발달로 대의정치가 도전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발언은 우선 국민에게 '우리 대통령이 독서가 짧은 대통령이 아닌가?'하는 걱정을 안긴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들은 국민의 소극적 정치 참여를 걱정하면 했지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우려하는 일은 없다. 그러기에 외신들은 앞 다투어 한국의 촛불 집회에 주목하면서 '환호'에 가까운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국위를 실추하고 사회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경찰의 폭력 진압이나 '컨테이너'이지 정치에 적극적인 촛불이 결코 아니다.

현대 학자들은 대통령이 말하는 대의정치라는 것이 이제는 도전 받을 때가 되었다는 데에 대체적인 합의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현대 정치에 직접민주주의적인 요소를 가미할 방법론을 진지하게 연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촛불 집회는 인터넷과 디지털을 통해 직접민주주의 가능성을 제시한 선구적인 '모멘텀' 같은 것으로 파악할 수가 있다. 따라서 이 대통령의 말처럼 촛불집회가 대의정치에 도전한 것이라고 해서 그것이 결코 부당한 것이 아니며 불온한 것은 더욱 아니다.

어느 면에서 '나훈아 괴담' 류의 정보전염병 같은 것은 해결방법이 있다. 그 괴담은 당사자의 기자회견으로 의혹이 일소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괴담으로부터 떳떳한 이 가수가 아주 인상적인 방법으로 기자회견을 연출한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훈아는 아무리 악성 정보전염병이라고 해도 당당하게 나서서 누리꾼과 격의 없는 소통을 시도한다면 금세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우리 사회를 멍들게 한 진짜 정보전염병들

10일 저녁 '미국산쇠고기 수입 전면 재협상 촉구 및 국민무시 이명박 정권 심판 100만 촛불대행진'에 참석한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세종로네거리, 청계광장, 태평로, 서울시청앞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사진 3장 합성)
 10일 저녁 '미국산쇠고기 수입 전면 재협상 촉구 및 국민무시 이명박 정권 심판 100만 촛불대행진'에 참석한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세종로네거리, 청계광장, 태평로, 서울시청앞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사진 3장 합성)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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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대선 국면에서는 'CEO'라는 정보가 과잉으로 넘쳐났다. 그래서 대부분의 한국인은 CEO가 정치를 하면 경제를 살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747'이라는 숫자로 단순화시킨 정보에 감염됐다. 덩달아 다른 CEO 하나도 유일한 진보정당 후보보다 더 많은 표를 얻었다. 혹시 이런 것들은 한국인이 CEO라는 정보전염병에 감염되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토록 많은 촛불 시민이 열정적으로 광장에 나온 것은 이 대통령도 말했듯이 인터넷의 위력이 아니라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터넷을 필두로 하는 정보화 사회야말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대세이지 않은가? 정보화 사회를 낙관적으로 보는 기술결정론이든 아니면 다소 비판적으로 보는 사회구조론이든 하나 같이 정보화 사회를 인류가 거부할 수 없는 대세라고 보는 점에는 견해가 일치한다.

이렇게 볼 때 인터넷의 '독'을 운운하고 그것을 거부하는 듯한 이 대통령의 발언이야말로 지구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아주 희귀한 소수 의견임을 깨우쳤으면 좋겠다. 인터넷은 피할 수 없는 대세다. 이 대통령이 신조로 여기는 개방화· 세계화는 차라리 피할 수 있을지언정 인터넷과 정보화는 절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필자 김갑수는 소설가로서 오마이뉴스에 장편 <제국과 인간>을 연재 중입니다.



태그:#정보전염병, #정보불감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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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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