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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고향의 형수님이 정성스럽게 싸주신 어머니 제사 음식으로 아침과 점심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쫄깃쫄깃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인 갑오징어 부침개는 철부지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까지 곁들여 있어 맛이 배가되었습니다.

 

동해안과 서해안은 요즘이 오징어 철이라고 하는데요. 철부지 시절, 샘가에서 갑오징어를 다루는 외숙모에게 오징어 등껍질을 얻어 돛과 닻을 만들어 달면 멋진 장난감 배가 완성됩니다. 요즘 같은 찜통더위에, 빗물이 고인 곳에 오징어 등껍질로 만든 배를 띄워놓고 첨벙거리며 놀던 그때 그 시절을 어떻게 잊겠습니까.    

 

고소한 콩가루와 시금자(검은 깨) 가루를 넣고 시루에 찐 떡과 김치전은 냉동실에 보관해두었고요. 파전과 고추전, 버섯 부침개, 명태 부침개, 고추 부침개에 박대와 조기 등을 바리바리 싸주신 형수님께 감사하면서 모두가 돌아가신 어머니 덕이라는 생각을 지을 수 없습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속담은 아니지만 '살아도 부모 덕, 죽어도 부모 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옛날 동네 어른들이 자주 하셨는데요. 부모가 살아계실 때는 말할 것도 없고 돌아가신 후에도 부모의 은혜가 적지 않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멀리 떨어져 사는 형제들이 모여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우애를 더욱 돈독히 하고 자신의 존재를 재확인하는 명절날이나 집안 혼사, 제삿날이 '죽어도 부모 덕'이라는 말의 대표적인 사례가 되겠는데요.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형제들이 모일 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따라다니는 말이 되었습니다.

 

제삿날을 전후해 느꼈던 '부모 덕'

 

지난번 어머니 제삿날(2일)에도 부산과 평택 등에서 형제들과 조카들이 군산 형님댁에 모여 즐겁고 뜻있는 시간을 보냈는데요. 제사상에 절을 하고 둘러앉아 나누었던 추억의 대화는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올해로 예순여섯이 되는 형수님은 집안 제사를 어머니에게 물려받아 지내고 있는데요. 어머니의 손맛을 살려 다양한 음식을 넉넉히 해서 이웃과 참석한 가족들에게 나눠주십니다. 몸이 아파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제사를 모시는 형수님께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지요.  

 

형수님은 제사상도 전통 유교방식에 없는 성주 상을 정성을 다해 차립니다. 성주 상은 경을 읽을 때나 차리는 거라고 말을 해도 막무가내인데요. 국법으로 정한 것도 아니니 형수님의 지극한 정성으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성격이 호탕하고 매사에 긍정적인 셋째 누님의 시원한 웃음과 맛깔스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시간가는 줄을 모릅니다. 동생들을 등에 업고 다니다 울면 꼬집었다는 얘기. 째보선창 쌀가게에서 집까지 물을 길어다 밥을 해먹었던 얘기. 특히 어머니가 화내시던 표정과 목소리까지 흉내를 내가며 흉을 볼 때는 웃음바다가 됩니다.      

 

그러면 옆에 앉아 있던 막내 누님은 '조자룡 헌 칼 쓰듯 허네', '꾀로 망한 조조 같은 놈', '미친놈도 셋이 합하면 제갈량보다 낫다더라', '야야, 수양산 그늘이 강동 팔 십리를 간단다' 등 어머니가 자주 하셨던 옛말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웃습니다.

 

학교 문턱도 밟지 못했으면서 삼국지에 나오는 인물들의 행적을 파악하고, 외손자 생일도 기억하는 뛰어난 암기력에, 손가락을 꼽으면서도 아버지의 주산보다 빠른 계산 능력을 보인 어머니. 모두 여장부 같던 그런 어머니의 삶을 회상합니다.    

 

살아계시면 71세가 됐을 큰형님이 6살 때 외갓집에 놀러갔다 갑자기 몸이 아파 집으로 돌아와 죽었다는 이야기는 어려서부터 들었는데요.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 아파하셨을 아버지가 떠오릅니다. 삼대독자로 큰아들을 잃고 망연자실(茫然自失)했을 아버지와 당시 집안 분위기가 상상이 되기 때문이지요.

 

다음날에는 남동생이 점심을 대접하겠다고 해서 군산에 있을 때 자주 들렀던 째보선창가 유락식당에 가서 '쫄복탕'(1만6천원)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복어는 '황복'과 '쫄복', '까치복'으로 분류되는데 그중 '황복'이 가장 비싸고 다음이 '쫄복'입니다. 가격이 장난이 아니었는데요, 동생에게 성찬을 대접받는 것도 돌아가신 어머니 덕이 아니고 누구 덕이겠습니까.

 

다른 식구들은 게장백반과 준치회덮밥을 시켜먹었는데, 누님과 동생이 권하는 게장과 준치회를 먹다 보니 무엇을 먹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도 약간 말려 만든 쫄복탕의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 맛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님에게도 군산 째보선창에 들르는 기회가 있으면 유락식당을 찾아 '쫄복탕'과 '준치회덮밥'(9천원)을 맛보실 것을 권합니다.

 

'쫄복탕'을 먹고 식당을 나오는데 귀신이라도 나올 것처럼 흉물스럽게 변해버린 동부어판장 건물이 버티고 서 있더라고요. 이제는 비린내도 가셔버린 어판장 건물과 생선상자들이 째보선창을 지키는 걸 보니 추억의 일기장을 누군가에게 빼앗긴 기분이 들면서 가슴이 허전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쩌다 새벽에 선창가에 나가면 "어찔라고 동상이 여기를 다 나왔댜! 뭐 줄 것은 없고 금방 들어온 거라 싱싱허니께 이거라도 갖다 맛이라도 보라고···"라며 갈치와 조기 등을 포대에 담아주던 형님들 얼굴이 건물 담벼락에 비치더니 이내 사라져버려 얼마나 서운했는지 모릅니다.

 

저녁에는 아내와 함께 조카가 사주는 '떡갈비'를 맛있게 먹었는데요. 떡갈비 역시 1인분에 1만7천원이라서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60년 전통의 떡갈비와 시원하고 상큼한 배추김치, 그리고 개운한 파절임 맛은 그대로 살아있었습니다. 떡갈비를 맛있게 먹을 수 있던 것도 어머니 덕이라는 생각에 입가에 작은 미소가 지어지더군요.  

 

어머니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

 

지금도 시골의 상가(喪家)에 가면 자기가 내는 술도 아니면서 "핫따 성님 오랜만이유! 내 술 한 잔 받으쇼. 이렇게 성님한티 술잔을 권허는 것도 돌아가신 양반 덕이랑게"라며 반가워하는 모습을 종종 보는 데 문상객이 취중에 하는 얘기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남에게 본보기가 될 수 있는 부부생활과 형제간의 우애, 그리고 사회생활에서의 원만한 인간관계는 첫째 자신의 능력에 달렸겠지만, 부모에게서 받는 영향이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해서 배를 곯으면서도 떳떳하고 당당했던 어머니의 삶도 정신적 재산으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부모 재산을 많이 물려받는 사람을 부러워합니다. 인간도 물욕이 있는 동물이니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재산을 지키는 것도 물려받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생각인데, 이렇게 물질적인 면에만 치중하다 보니 정서가 메말라가는 것 같아 여간 안타까운 게 아닙니다.

 

저와 아내와 딸 이렇게 세 식구가 원만하게 살아갈 수 있는 데는 돌아가신 어머니와 살아계신 장모님의 덕이 바탕에 깔렸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그저 아버지를 위하고 혈육이 우애하는 모습만 보여 주셨거든요.     

 

어머니는 일제강점기에는 모주와 떡장수를 하셨고 해방 후에는 물장수와 쌀장수를 하면서 모은 돈으로 논도 사고 집도 넓혀갔습니다. 그렇게 고생하며 모은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기는커녕 남에게 떼이고도 조용히 살아가는 어머니가 이상하게도 보였고 밉기도 했습니다.

 

60년대 초에 수백만 원을 가져가 소식이 없어 떼인 것으로 알았는데 20년 후에 30만원을 가져와 용돈으로도 쓰시라며 고개를 숙이는 송씨 아저씨에게 고맙다며 따뜻한 점심을 해주실 정도로 여유롭게 사셨던 어머니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높게 부각되는 것은 제가 부모가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아가 생전의 어머니가 500년 묵은 느티나무 그늘처럼 시원하고 편하게 다가오는 것은 나이를 먹고 철이 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남에게 돈을 떼이고도 화를 내지 않던 어머니의 큰 그릇을 이제라도 헤아릴 수 있어 푼수는 면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자위해봅니다.


태그:#어머니제사날, #부모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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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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