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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공항의 "웰컴 투 시드니" 문구.
 시드니 공항의 "웰컴 투 시드니" 문구.
ⓒ 윤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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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Welcome to Sydney)."

세계적으로 까다롭기로 이름난 검역을 통과한 다음(영국 여왕의 비행기 안에 소독약을 뿌릴 정도다), 시드니 공항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문구가 "Welcome to Sydney"다. 그러나 '천혜의 관광도시' 시드니에서 내보이는 환영의 제스처는 거기까지다.

그 다음부터, 모든 국내외 여행객들은 호주 최대의 투자은행인 맥쿼리은행의 수익 창출을 위해 지갑을 활짝 열어야 한다. 시드니 공항의 과반수 지분을 인수, 직접 운영하는 맥쿼리은행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수준의 공항 이용료를 징수하기 때문이다. 시드니로 출항하는 항공사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달리 어찌해 볼 방도는 없다. 맥쿼리은행 방계 회사인 맥쿼리공항이 독점 사업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억울하면 당신도 개인 소유의 국제공항을 가지면 될 것 아니냐"는 우스개가 나왔을까.

"웰컴 투 시드니... 맥쿼리 위해 지갑 여세요"

6월 29일자 <데일리텔레그래프>는 '맥쿼리은행의 새로운 공항 벗겨먹기(Macquaire Bank's new airport rip-off)'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7월 중에 8층짜리 새 주차 건물이 완공되면 이용료를 대폭 인상할 것으로 알려진 맥쿼리은행을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지정된 주차 공간을 장기 사용하는 경우 1년에 1만8000 호주달러(약 1600만원)의 사용료를 내야 하는데, 이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주차료를 부담하고 있는 이용자들을 화나게 만들었다. 특히 차량 대여업자들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데일리텔레그래프> 보도에 의하면, 맥쿼리공항은 2006~2007 회계연도에 거의 7000만 호주달러(약 600억원)에 육박하는 전대미문의 주차료 수익을 올렸다. 이곳 주차료는 뉴욕 J. F. 케네디 공항의 두 배이고, 런던 히드로 공항보다도 비싸다.

또한 맥쿼리은행은 그동안 무료로 서비스되던 셔틀버스 운행을 중단, 연간 200만 호주달러를 절약하겠다고 발표해 소비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이는 수익 창출에만 매달리는 전형적인 독점 경영의 폐해 중 하나로 지적됐다.

사정이 이런데도 공항을 관할하는 연방정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안토니 알바니스 교통장관이 "불공정 행위가 발생할 경우, 호주소비자위원회(ACCC)가 연방법원에 고발할 수 있다"고 밝혔을 뿐이다. 그러나 그래미 세뮤얼 호주소비자위원회 의장은 "공항 주차 요금 시스템을 체크하는 건 정부 소관"이라고 잘라 말했다.

'맥쿼리은행이 시드니 공항을 벗겨먹고 있다'고 보도한 <데일리텔레그래프>.
 '맥쿼리은행이 시드니 공항을 벗겨먹고 있다'고 보도한 <데일리텔레그래프>.
ⓒ <데일리텔레그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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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이용료 인상... 민영화 6년이 불러온 재앙

6월 28일, 시드니 공항에서 해외로 떠나는 아들을 전송한 프랭크 카리오티는 "시드니 공항은 이미 비싸기로 소문났다"면서 "맥퀴리은행은 아마 공항을 걸어 다니는 사람들한테도 사용료를 징수할 것"이라고 비아냥거렸다.

2007년 한 해 동안 시드니 공항을 이용한 국내외 여행객의 숫자가 3200만 명에 이른다. 그렇다면 시드니의 첫인상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시드니 공항의 실태가 어쩌다가 이런 지경에 이른 것일까?

불과 6년 전까지만 해도 시드니 공항의 사정은 딴판이었다. 연방정부 교통부에서 직접 관할했기 때문이다. 가끔씩 공항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는 불평이 들려왔지만, 그들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아주 성공적으로 치러낸 당사자들이다.

그러나 2002년 7월, 거센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를 신봉했던 존 하워드 총리의 결단으로 시드니 공항은 민영화됐다. 시드니 공항의 지분 과반수를 확보, 직접 운영하기로 한 맥쿼리공항에 50년 장기임대를 해주는 한편, 임대료를 인상하지 않고 49년 동안 계약을 연장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그 결과 맥쿼리공항은 시드니 공항(72.1%), 브뤼셀 공항(54.9%), 코펜하겐 공항(53.4%), 영국 브리스톨 공항(32.1%) 등 유수의 공항에 투자한 세계 최대의 민자 공항 회사(The word's largest private airport owners)가 됐다. 거기에다 일본 공항 터미널에 대한 전략투자 규모를 늘리려던 맥쿼리공항의 시도는 일본 정부의 견제로 주춤한 상태다.

인프라스트럭처 전문, 맥쿼리은행

맥쿼리은행 로고.
 맥쿼리은행 로고.
ⓒ 맥쿼리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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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쿼리은행 방계 회사인 맥쿼리공항이 운영하는 시드니 공항에는 민영화 이후 시설개선 등을 위한 상당액이 투자됐다. 물론 민영화 초기부터 엄청난 이익을 올린 건 두말할 나위 없다.

냉혹한 구조조정과 과감한 초기 투자를 활용하는 맥쿼리은행 특유의 경영 기법이 통했던 것. 맥쿼리은행은 지난 20년 가까이 뉴욕 월가의 내로라하는 투자은행들인 JP모건,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에서조차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엄청난 수익을 기록한 회사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맥쿼리은행이 글로벌 시장에서 월가를 주름잡는 투자은행들보다 수익률 측면에서 우위에 설 수 있었던 것은 그들과 직접 경쟁하지 않고 인프라스트럭처(Infra structure) 분야에 집중하여 도로, 항만, 공항 등의 대규모 기간산업(SOC) 건설에 투자하는 색다른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맥쿼리은행의 예상은 적중했고 급기야 맥쿼리은행은 '백만장자 제조공장(millionaires' factory)'이라는 별명을 얻기에 이르렀다. 특히 15년 동안 맥쿼리은행 CEO를 맡아서 15년 연속 수익을 올린 알란 모스는 '돈 버는 기계(money manufacturing machine)'라는 또 다른 별명을 얻었고 그 덕분에 수많은 임원들까지 호주의 부호 대열에 합류했다.

억울하면 개인 공항을 지어라?

자본주의 시스템을 택한 나라에서는 돈을 많이 벌었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사람을 탓하거나 비난할 수 없다. 그런데 시드니 공항을 운영하는 맥쿼리은행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칼럼니스트 브렌단 사나한은 7월 7일자 <데일리텔레그래프>에 현재 상황을 역설적으로 풍자하는 신랄한 칼럼을 게재했다.

"시드니 공항의 주차료 인상을 비난하기 전에 나는 맥쿼리은행이 시드니 공항을 소유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먼저 적시하고 싶다. 마치 영혼이 없는(soul-less) 파우스트처럼 맥쿼리은행은 얼굴이 없기(faceless) 때문이다.

맥쿼리 공항이라는 회사가 용병으로 뛰고 있을 뿐인데도 맥쿼리은행의 부도덕성을 성토하는 것은 공평하지 못한 처사 아닌가? 만약 시드니 공항의 처사가 불만스럽다면 나는 '브렌단 사나한 국제공항'을 만들었을 것이다.

진짜 문제가 되는 건 맥쿼리은행이나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은 정부의 어리석음이 아니다. 그 책임은 전적으로 개인용 국제공항을 갖지 못한 게을러빠진 시드니 주민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아무튼 당신들의 무지를 깨우는 마지막 경고(final call)라는 것만 잊지 마라!"

이 칼럼에 달린 수많은 댓글은 더 신랄하다. 그중에서 몇 개를 소개한다.

"브렌단, 주말 파티에서 잔뜩 취한 21살처럼 떠들지 마라. 911에 전화를 걸면 5분 안에 너를 주차장 밖으로 데려다 줄 것이다. 그 곳으로 너의 엄마를 부르면 맥쿼리은행이라고 별 수 있겠냐?"
"이렇게 심각한 사안을 두고 이토록 재미있게 쓰다니…. 그런데 당신 칼럼이 농담이 아니라는 사실이 섬뜩하구나."
"브렌단, 억울하면 맥쿼리은행 주식을 사라. 그 배당금으로 주차비 내면 그게 그거 아닌가. 그런데 요즘 주가가 폭락한 것 같더라."

시드니 공항.
 시드니 공항.
ⓒ 시드니 에어스페이스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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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의 젊은 가톨릭 청년들, 어떤 반응 보일까

7월 15일부터 20일까지, 세계 가톨릭 청년들의 대규모 축제인 제23차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 2008)가 시드니에서 열린다. 50만 명 이상이 참가 신청을 한 이번 대회에는 베네딕트 16세 교황도 참가한다.

주최 측은 해외 참가자가 12만5000명에 이를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시드니올림픽에 참가한 외국인보다 많은 숫자로, NSW주가 아닌 다른 주 참가자 17만5000명을 포함해 약 30만 명이 시드니 공항을 이용해 대회장으로 모일 것으로 예상된다.

맥쿼리은행에서 8층짜리 주차 건물 이용료 대폭 인상 문제에 관해 아직 최종 방침을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이 젊은 순례자들이 시드니 공항 이용료 인상의 첫 피해자가 될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됐을 때, 이들은 공공성보다 민간 기업의 수익 창출을 우선시하는 민영화 정책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할까? 관심 있게 지켜볼 일이다.

전력산업 민영화 계획도 논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한국에서도 공기업 민영화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호주도 요즘 두 가지 사안에서 민영화 논란이 거세다.

하나는 앞에 소개한 시드니 공항 건, 즉 민영화의 폐해가 이미 발생하고 있는 사안에 관한 논란이다. 다른 하나는 시드니가 주도(州都)인 뉴사우스웨일스 주(NSW)의 공공 전력 산업 민영화 계획을 둘러싼 논란이다. 하나는 현재완료형이고 또 하나는 미래형인 셈이다. 당연히 현재 발생하고 있는 시드니 공항 민영화의 폐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민영화를 추진하려는 NSW주의 태도는 완강하다.

공공 전력 산업 민영화 계획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NSW주 노동당 정부와 NSW주 노동조합이 맞서 자칫 이른바 '진보 세력'의 내부 싸움으로 비춰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표 대결로 갈 수밖에 없었는데, 5월 3일 이뤄진 노동당 당원 투표에서는 702 대 107로 민영화 계획이 부결됐지만 NSW주 정부는 노동당 소속 의원 투표로 최종 결정을 내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사전 협상이 결렬된 상태에서 4000여 명의 노조원이 참가하는 시위가 벌어졌고, 민영화에 반대하는 노동당 소속 의원 15명이 이에 합류하여 현재로서는 의원 투표의 최종 결과가 불투명한 상태다.


태그:#민영화, #맥쿼리, #시드니 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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