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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은 ‘이미지로 보여주는 삶’에는 열광하고 탐욕적으로 소비하지만 ‘현실적인 삶’은 외면하고 배제한다. 그리고는 이내 이미지조차 낡은 것으로 만들어서 버려 버린다. 끊임없이 새것만을 갈구하는 네오마니아(neomania)들이 돼 가는 것이다. 그러나 삶은 여전히 현실로 남고 그것을 견디는 사람들이 있다.” (<마지막 공간>, ‘여는 글’에서)

 

‘이미지’는 진짜일까, 가짜일까? ‘이미지’는 사실인가, 상상인가? ‘이미지’는 일회성 영상인가, 영원한 실체인가?

 

우리가 ‘이미지’라고 부르는 것은 흔히 실체를 그대로 담아내는 틀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런데 그 틀 안에 ‘이미지’ 주인(!)이 지닌 모든 것이 들어있느냐고 묻는다면, 그 누구라도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실체라는 의미가 ‘이미지’에 있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게다. ‘이미지’란 그런 것이다. 실체를 그대로 담아낸다 하더라도 어떤 실체가 지닌 속사정(?)마저 다 담아내는 것은 아닐 수 있는 게 바로 ‘이미지’이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인천에서 세상을 보는 틀을 만들어 온 내게는 서울 거의 모든 곳이 ‘이미지’이다. 물론 나는 서울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서울은 오히려 나를 모른다 할지 모른다. 눈과 비를 맞기도 하고 때론 뜨거운 여름 태양과 처절한 겨울바람을 맞으며 세월을 견뎌온 서울, 그 서울에 나는 출생 이후 거의 내 삶을 담지 않았다. 일 때문이라면 모를까. 결국 내가 서울을 (조금) 안다고 말하려 해도, 세월의 칼날 앞에 깎이고 변해 온 서울은 아마도 나를 모른다 할 게다.

 

재밌는 것은 서울에서 사는 사람들 중 누군가는 서울 어딘가를 제외하고 산다는 점이다. 그건 단순히 높고 화려한 ‘21세기 건물’ 아래 숨겨진(!) ‘20세기와 그 전 건물’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진짜 중요한 사실은 ‘20세기와 그 전 사람들’이 울고 웃을 줄 모르는 그 딱딱한 건물들보다 더 빨리 잊히고 사라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마지막 공간-청계천 사람들의 삶의 기록>을 통해 서울 한 자락을 본다는 것은 옛 동네, 옛 건물을 떠올려보는 것이라기보다 그곳을 일구고 그곳에 이름을 붙여 준 ‘그 때 그 사람들’을 추억하는 일이다.

 

‘어제’ 청계천과 ‘오늘’ 청계천은 같은가, 다른가

 

“청계천은 열광하는 이미지와 현실의 삶 사이에 있었다. (…) 그들에게 탈현대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은 허구의 삶이었다. 이미지는 탈현대, 현실은 더 나쁘게 변형된 근대였다. 다른 많은 사람들의 삶처럼 그것은 이 시대의 화두이다. 왜 탈현대를 살아가는 시대에 우리들은 근대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 이 물음을 소설가 박경리는 이렇게 말한다. ‘왜 삶의 문화를 원하고 쉼터를 원하는데 조경시설과 놀이터로 만드는가? 왜 삶의 복원을 원하는데 개발을 하는가?’”(이 책, ‘여는 글’에서)

 

내 기억 속 동네 풍경은 오로지 아파트였다. 그러나 동네를 조금만 벗어나면 거의 모든 것이 고만고만한 건물들이었고 초가집도 조금이나마 있었다. 길 상당수는 흙길인 데다가 꼬불꼬불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동네 안길 어디에서나 차보다 많았고 아파트는 위압적이지 않았다.

 

그랬던 동네 풍경은 예전 아파트를 서너 개는 얹어놓은 듯 하늘을 찌른다. 꾸불꾸불한 길은 다 곧게 펴졌고 동시에 더 넓어졌다. 그만큼 사람들은 주변으로 밀려나거나 혹은 동네 안에 갇혀버린 듯하다.

 

동네 중심에는 예전보다 더 많은 차들이 다닌다. 남모르는 이들은 동네 안길을 함부로 다니기 힘들다. 물론, 그 동네를 나는 참 불편해한다. 그래도 그곳을 전혀 모른 척 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때 그 사람들’을 추억하는 내가 여전히 숨 쉬고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정말 이제는 <마지막 공간>을 좀 안다고, 조금 읽어봤다고 말해도 되려는지. 황학동이 어디인지, 평화시장과 광장시장이 어디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내가 <마지막 공간> 어디쯤 서서 청계천을 그려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밀리오레, 러시아 타운 이야기도 이름 정도만 익숙하고, 그나마 세운상가가 가장 익숙한데 그것도 거의 이름 정도이다. 사실 이 책이 그 넓고 깊은 곳을 다 누비고 다녔다한들, 저 멀리 어딘가 사는 ‘다른 동네 사람’일 뿐인 내가 어찌 청계천을 말하고 평할 수 있을까 싶다. 그저 <마지막 공간>에 기대볼 뿐이다.

 

“어둠이 내릴 무렵 김영문 씨는 평화시장 주위를 걷곤 한다. 평화시장 안에서 먼지를 마시면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이제 한 명도 남아 있지 않다. (…) 그러나 김영문 씨에게는 모든 것이 아직도 생생히 보이는 듯하다. 그에게 평화시장은 지울 수 없는 어떤 것이 되었다. 이렇게 평화시장 건물 사이에서 있으면 그는 일 끝나고 회의할 곳이 없어 새벽 별을 보면서 전태일 집이 있는 창동까지 친구들과 함께 걸었던 그 길을 다시 한번 걷고 싶어진다.”(이 책, 193)

 

<마지막 공간-청계천 사람들의 삶의 기록>

'첫 번째 이야기 황학동'에는 노점상 '붕어빵 아저씨' 백창기씨, 고물노점상(나까마) 김영범씨, 삼일아파트상가 서울다방 장군지 아주머니 이야기가 있다.

 

'두 번째 이야기 밀리오레, 러시아 타운'에는 동대문 밀리오레 'Levi's(리바이스) 가제웅씨, 동대문 밀리오레 'FILA인티모' 최선희씨, 러시아인(상인) 이야기가 있다. 

 

'세 번째 이야기 평화시장'에는 전 평화시장 재단사 김영문씨, 아동복 하청공장 '범식이네'의 김홍균·강애순 부부, 'ASIAMART(아시아마트)' 부띠 구룽 씨, 방산지하상가 '광희매듭'의 조석현씨와 매듭가게 '대양사'의 박미현씨 이야기가 있다.

 

'네 번째 이야기 광장시장'에는 사탕 파는 정씨 할머니, '우림승복' 이순남씨와 딸 '우림상회' 김혜영씨 이야기가 있다.

 

'다섯 번째 이야기 세운상가'에는 동산공업사 '홀로 사장' 김보영씨, 퀵서비스 일을 하는 정병문씨와 그의 부인 한명화씨, 중원문화사 안티모(세례명)씨 이야기가 있다.

청계천은 그 자리에 있다, 아니 ‘그 때 그 자리’에 없다. ‘그 때 그 사람들’이 참 많이도 사라진 곳에 청계천이 그대로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마지막 공간>이 태어나게 된 이유가 얄궂게도 ‘그 때 그 사람들’을 따라 그 시절 ‘쳥계천’도 사라지고 없기 때문이라는 점이 못내 서운하다.

 

청계천은 ‘마당’이고 ‘쉼터’였으며 어느덧 ‘역사’가 되었다. 물론 여전히 누군가 그 안에 살고 있다. ‘그 때 그 사람들’ 중 누군가도 여전히 있을 게다. 그러나 ‘그 때 그 사람들’이 알던 청계천은 없다. 그러므로 ‘마지막 공간’을 담아낸 <마지막 공간> 역시 역사가 된다.

 

인천 사람이라 불리는 게 맞다해야 할 내게 서울은 외지이며 때론 ‘외국’이다. 그런데 그곳에는 나보다 더 대한민국 서울 청계천을 사랑하는 외국인도 제법 많이 산다. 네팔에서 온 부띠 구룽씨도 그렇다. ‘똑똑하다’는 의미를 지닌 ‘부띠’는 1996년에 한국에 들어와서 한국인 아내와 결혼해 지금도 한국에서 살고 있다.

 

고향을 떠나 ‘외국’에 살고 있는 부띠 구룽씨. 한국에 와서 처음에는 봉제공장 일을 했던 그는 지금 여러나라 사람들을 대상으로 생활물품을 파는 잡화점을 운영하고 있다. 한 때는 옷가게 또는 공장을 운영할 생각을 할 정도로 그 분야 일에 매달리기도 했었다. 그는 지금 청계천 경제, 아니 한국 경제를 걱정하는 한국인이다.

 

“그는 대화 도중 네팔과 한국의 문화적 동질성에 대해 자주 언급했는데, 이는 그가 한국을 또 하나의 조국-고향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가 한국에 갖는 이런 친밀감은,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의 미래를 심고 키워야 하는 곳이, 이곳 한국이기 때문일 터다. 그리고 자신의 미래까지도.

 

이십대 청년으로 디딘 한국 땅에서, 그는 이제 사십 대 중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한 가정의 아버지와 남편이 되었고,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경영인으로, 참 많은 변화들을 겪었다.”(이 책, 242)

 

<마지막 공간>은 ‘청계천 사람들의 삶의 기록’이라는 이름도 달고 있다. 청계천하면 떠오르는 고가도로도, 동대문운동장도 청계천 사람들의 삶의 기록에서 나온 것이니 역사 속 ‘마지막 공간’이 된 그곳에서 중요한 것은 분명 사람이고 삶이다.

 

청계천 뿐 아니라 서울 곳곳이 ‘새 공간’을 만들어가는 요즘 숨가쁜 도시 서울의 ‘마지막 공간’에서 담아낸 15가지 인터뷰. 10개월이라는 짧고도 긴 시간동안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옮겨다닌 청계천 이야기는 <마지막 공간>을 통해 오늘 내게 이미지로나마 현실이 된다.

덧붙이는 글 | <마지막 공간-청계천 사람들의 삶의 기록> 글/윤홍은·김유경·김순천·이준님·홍경희·이지홍·진재연·류인숙·김해자·최영환·안미선·연정(이상, 12인). 사진/신대기·김정하(이상, 2인). 통역/성동기. 삶이 보이는 창, 2004.


마지막 공간 - 청계천 사람들의 삶의 기록

윤홍은 외 지음, 삶창(삶이보이는창)(2004)


태그:#청계천, #마지막 공간, #삶이 보이는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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