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씁쓸했다. 1980년대 태생인 나는 내 세대가 이런 세상을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말로만 듣고 책이나 사진, 영상으로만 지켜봤던 민주화 운동 시절의 모습이 아니던가. 조계사에는 경찰로부터 수배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및 '안티 이명박' 카페 관계자들이 지난 5일 밤부터 천막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경찰은 이걸로도 모자라 '종교인 사법처리'에 대한 운까지 뗐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지난 6월 30일의 '시국미사' 당시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김인국 신부가 '폭력시위 논란'에 대해 답변했던 이야기가 새삼 떠오른다.

"'폭력'에 대해서는 시민들도 책임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정부 당국자들이 알아야 할 것은 시민들은 애초에 비폭력 기조를 유지하려고 했지만 정부에서 폭력을 유도한 경향이 있다. 우리는 공안기관의 강경기조도 이명박 대통령의 진심이 아니라 기관장들의 '과잉'이라고 믿고 있다. 그속에서 촛불에 담긴 시민들의 마음을 지킬 필요가 있는 듯하다."

'종교인 사법처리'까지 운운하는 경찰의 대처, 과연 김인국 신부의 이야기대로 "이명박 대통령의 진심이 아닌 기관장들의 '과잉'인 것일까. 어쨌든 시민들은 경찰의 대처가 거셀수록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보이콧' 목소리를 강하게 내세우고 있다.

6대의 전경버스, 의경의 순찰... 고요 속 태풍

조계사 내에 설치된 '촛불시위 수배자'들의 천막농성장
 조계사 내에 설치된 '촛불시위 수배자'들의 천막농성장
ⓒ 박형준

관련사진보기


경찰은 무리해서 조계사에 진입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찌는 듯한 더위 속 조계사는 평온했다. 하지만 부근에 배치된 6대의 전경버스와 2인 1조로 짝지어져 조계사 주변을 끊임없이 순찰중인 의경들의 모습은 경찰이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8일 현재 조계사에서 3일째 천막 농성중인 수배자는 모두 6명이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소속의 박원석·한용진 공동상황실장, 김광일 행진팀장, 김동규 조직팀장, 그리고 '안티 이명박' 카페 백은종 수석부대표와 '미친소닷넷' 백성균 대표다.

그들은 천막에서 '평온 아닌 평온'을 누리고 있었다. 내가 그들을 찾아간 이유는, 지금껏 그들이 언론과의 인터뷰는 질리도록 했지만 그 목소리가 네티즌과 블로거들에게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미 구속된 안진걸 조직팀장과 같은 '참여연대' 소속인 박원석 공동상황실장을 찾았다.

물론, 그다지 반기는 눈치는 아니었다. 인터뷰 요청을 하자 그의 '뼈 담긴 대답'이 날아왔다.

"아이고, 광우병 걸려서 죽는게 아니라 인터뷰하다가 죽겠네요."

재차 요청해 어렵게 인터뷰를 하는 와중에도 그의 휴대전화에서는 계속해서 그를 찾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겉으로는 조계사 내의 천막에서 '평온'을 즐기는 것 같았지만, 긴장을 끊을 수 없는 그의 현실을 엿볼 수 있었다.

[박원석 실장 인터뷰] "타임머신 타고 과거로 돌아간 느낌"

조계사 내에서 천막농성 중인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박원석 공동상황실장
 조계사 내에서 천막농성 중인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박원석 공동상황실장
ⓒ 박형준

관련사진보기


- 박 실장이 조계사로 오기 직전에 인터넷매체 <민중의 소리>와 나눈 인터뷰 전문을 봤다. 현재 박원석 실장은 '1급 수배자 신분'이며 경찰의 전담 체포조만 20명, 인터뷰를 주선한 분도 휴대전화를 끄고 교통편을 갈아탔다고 하며, 인터뷰 이후에도 박 실장 본인도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는 부분에서 무척 놀랐던 기억이 있다. 현재는 많은 분들이 알고 있듯이 조계사에서 3일째 천막농성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러한 현실에 대한 감회가 있을 것도 같다.
"나 역시 예상하지 못했다. 정당한 국민의 권리를 '공안 탄압'으로 일관하면서 이명박 정부 스스로도 문제를 확산시키고 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랄까."

- 현재 조계사에서 지내는 데에는 불편한 점은 없는지.
"지금 한여름 아닌가? 날이 무척 더운 것 외엔 큰 불편함은 없다."

- 사실, 두달여에 걸친 시위 과정에서 시민들이 오히려 대책회의를 불신하거나 규탄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공동상황실장으로서 그 부분에 대해서도 고민이 컸을 것 같은데?
"촛불시위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해 창조적이면서도 역동적인 에너지를 보여줬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상황실장으로서 이 에너지를 잘 끌어안고 촛불이 죽지 않으면서 '쇠고기 전면 재협상'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려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운동단체나 시민단체의 방식과 시민들의 자발적 움직임 사이의 '소통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방식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을 테니 이견 제기나 충돌이 불가피하지 않았을까."

- 아시겠지만, 경찰은 현재 시국 종교행사를 주관한 종교인들을 대상으로도 '사법처리'의 운을 뗐다. 현재 박 실장은 '1급 수배자' 신분인데, 종교인들에게까지 '사법처리'의 운을 뗀 경찰의 대처에 대해 생각이 많을 것 같은데….
"과도한 움직임이다. 그런 대처방식으로 과연 촛불을 끌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너무 단순하고 무모한 발상이 아닌가. 우리 시민들은 과거 독재 정권의 탄압을 이겨내면서 민주화를 일궈낸 사람들이다. 20년 전에 그런 일을 해낸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 식의 대처로 과연 국민들을 물리칠 수 있을까?"

- 시민들은, '쇠고기' 문제 이외에도 언론사에까지 촛불을 확대시키면서 '조중동'과의 전면전까지 불사하면서 '언론 전쟁'을 치르고 있다. 시민활동가로서 어떻게 바라보셨는가?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역량과 의지를 확인했다. 정치권이나 시민사회에 많은 것을 맡겼던 '소극적 국민'이 아닌 '적극적 국민'이 재발견됐다. 국민은 그 자신에 대해 '계몽적 태도'로 일관했던 정치권이나 시민사회의 반성을 유도했다. 오히려 정치권이나 시민사회로 하여금 이러한 국민의 적극적인 의견제기와 행동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담아낼지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

-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같은 '참여연대' 소속이면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의 조직팀장을 맡았던 안진걸 간사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안진걸 간사는 이미 구속됐다. 동료로서 그동안 바라봤던 '안진걸 간사'는 어떤 사람인가?
"보기 드문 친구다. 열정적이면서도 혼자만 앞서지 않고 늘 현장에서 많은 분들과 함께 하려는 자세가 돋보인다. 딱딱하지 않으면서도 많은 분들이 함께 쉽게 할 수 있는 시민운동 방식에 대해 자주 고민하곤 했다. 후배지만, 훌륭한 활동가다."

- 언론과 누리꾼들은 '앞으로'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인만큼 '앞으로'에 대해 특히나 많은 고민을 했을 것 같다. 혹시라도 생각한 부분이 있는지?
"'촛불'은 계속 돼야 한다. 게다가, 정부가 '관보 게재'까지 강행하면서 '미국산 쇠고기 유통'은 현실이 됐다. 방향이 다소 확산돼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불매 운동'과 같이 생활 속에서도 참여할 수 있는 운동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

- 어제(7일), 일부 보수단체 회원들이 조계사로 찾아오면서 누리꾼들이 많은 걱정을 했다. 끝으로 누리꾼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누리꾼과 시민이 바로 '촛불'의 주역이었다. 지치지 마시고 두려워 마시길 바란다. 서로 믿고 함께 한다면, 지금은 이명박 정부가 모든 것을 마음대로 강행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엔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경찰, 과연 '무리수' 둘 수 있을까

조계사 앞에 내걸린 플랜카드. 불교계의 이명박 정부에 대한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조계사 앞에 내걸린 플랜카드. 불교계의 이명박 정부에 대한 생각을 읽을 수 있다.
ⓒ 박형준

관련사진보기


한진희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지난 7일에 있었던 기자간담회에서 "종교행사 명목의 촛불집회도 문화제 명목의 다른 촛불집회와 원칙적으로 같은 잣대로 판단해 위법 및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하겠다"면서, 경고하듯이 "채증이 다 돼 있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이에 대해 어청수 경찰청장도 "종교행사라도 도로를 장시간 점거하거나 그 위에서 연좌하면 집시법 적용 대상으로 볼 수 있다"고 재차 경고에 나섰다. 하지만, 선심이라도 쓴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어청수 경찰청장은 "우리는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이런 발언을 남겼다.

"종교시설이 치외법권 지대는 아니지만 신중하게 처리하겠다. 조계종이 협조해준다면 모르지만 지금으로서는 무리하게 경찰력을 투입해 체포영장을 집행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다."

당연히 힘들다. 종교시설에 경찰력이 들어가 체포영장을 집행했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경찰이나 이명박 정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테니 말이다.

조계사 건너편에 배치된 전경버스. 현재 2개 중대의 전의경 병력이 조계사 인근에 배치됐고 2인 1조의 의경 병력이 조계사 주변을 순찰하고 있다.
 조계사 건너편에 배치된 전경버스. 현재 2개 중대의 전의경 병력이 조계사 인근에 배치됐고 2인 1조의 의경 병력이 조계사 주변을 순찰하고 있다.
ⓒ 박형준

관련사진보기


'촛불'을 계기로 천주교·개신교·불교 모두 한목소리를 내세우고 있는 상황인 데다가, 종교시설에 경찰력이 들어가 강제력을 행사한다는 것에서부터 비롯될 상징성 자체가 국제적인 문제로 확대될 수 있을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과연 경찰이 '무리수'를 둘 수 있을지, 한여름 낮의 조계사는 평온하면서도 긴장된 분위기가 진행되고 있다. 수배자들은 그 천막 속에서 오늘도 기약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사제단, #촛불, #종교계 촛불합창, #폭력진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