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라는 것이 처음엔 시간도 많이 들고 몸도 고되고, 하여간 대단히 어려운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니었어요. 소풍가기 전날 너무 들떠 잠이 안 오는 것처럼 우리는 매주 목요일 밤이면 잠이 안와요. 아이들 만날 생각에 괜히 들뜨고 설레고…. 공부방 봉사는 우리에게 소풍가는 것처럼 신나고 즐거운 일이에요. 어른이 되어서도 이렇게 신나게 세상을 살았으면 좋겠어요."고3. 대학이란 고지를 향해 죽어라 달려도 모자랄 판에 봉사활동이라니, 그것도 일주일에 세 시간씩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소리에 처음엔 긴가민가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의외로 아주 자신(?)있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허준범, 최상재, 이용선, 윤준형 모두 김포외국어고등학교 유학반 3학년 학생들이다. 이들은 매주 금요일 오후 5시부터 8시까지 세 시간씩 공부방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친다. 영어? 아직 그네들도 공부하는 학생들인데 영어에 얼마나 자신 있기에 영어를 가르친다는 소리일까.
이들은 아이들에게 마술과 춤을 활용해 생활영어를 가르친다. 또 아이들 개개인의 관심사를 영어와 연관시켜 영어에 대한 흥미를 유발시킨다. 아주 기발한 교육방식에다 꽤 유능한(?) 선생님들이다.
이들이 아름다운 교회(김포시 양촌면 구래리) 공부방 아이들을 만나게 된 건 2007년. 만물이 소생한다는 봄이 그들로 하여금 뭔가 힘찬 기지개를 켜게 했다고 한다.
"우연히 친구들끼리 모여 '우리도 뭔가 보람된 일을 한 번 해보자'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우리의 뜻을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아름다운 교회 공부방 아이들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외국에서 살다 보니 생활영어는 그래도 다들 자신 있는 편이라 뜻을 모으기가 쉬웠어요."현재 유학반에서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은 모두 외국에서 몇 년씩 살다온 유학파들이다. 상재는 호주에서, 용선이는 미국에서, 준형이는 이태리에서, 준범이는 캐나다에서 3~10년씩 살다왔다. 그러한 경력때문에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생활영어를 가르치는 데는 별 무리가 없다고.
아름다운 교회 공부방 아이들의 사정은 다 고만고만했다. 대개의 경우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학원은 엄두도 못 낼 형편들이기에 교회에서 공부방을 만들어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이러한 공부방 아이들에게 생활영어를, 그것도 아주 기발한 방법으로 재미난 놀이처럼 가르쳐주는 외고 형·오빠들을 아이들은 '짱'이라고 표현한다.
"처음엔 어색해하던 아이들이 나중엔 금요일 오후만 되면 큰 도로까지 나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수업시간에도 처음엔 어수선했었는데 요즘은 아이들 눈이 호기심으로 초롱초롱 빛나요. 그런 아이들 눈을 보면 우리가 하는 일이 헛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그러나 공부하는 학생들 입장에서 보면 일주일에 세 시간씩 시간을 내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처음엔 그저 의욕에 넘쳐 시작했을지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더러 나태해질 수도 있는 문제 아닌가. 역시나 이들도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시험기간이 닥치면 사실 부담스럽기도 했어요. 그래서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시험기간이고 하니 대수롭지 않게 두 어 번 빼 먹은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목사님으로부터 불호령이 떨어졌어요. 아이들은 길가에 나가 목 빼고 기다리는데 우리는 말도 없이 나타나지도 않고…. 아이들이 상처를 받은 것이죠. 목사님이 그러셨어요.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는 게 옳다고. 이제 오지 말라고' 싹싹 빌고 용서를 빌었는데 그때 이후론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어요."
이후 이들은 더 열심히 교재를 준비하고 더 많은 흥밋거리를 만들려 노력했다고 한다. 아이들로 하여금 무조건식 주입교육보다는 공부가 놀이인 것처럼 또는 놀이가 공부인 것처럼 춤과 마술을 적극 활용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춤과 마술로 재미나게 단어의 뜻을 설명하면 아이들은 자연스레 배운 것들을 떠올리게 되고 그것이 바로 학습으로 이어지다보니 수업 시간 내내 유쾌한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게 되었다고 한다. 공부하는 것, 더군다나 어렵고도 어려운 영어공부가 그리 재미있으니 아이들이 금요일을 기다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 그러나 아이들만큼 그들도 금요일을 기다린다고.
"한 번은 너무 졸려 아이들에게 과제를 내어주고 잠깐 존 적이 있어요. 그때 누군가 살금살금 다가와 제 어깨를 주물러 주는 거예요. 그때 아이들의 마음이 느껴졌어요. 사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주는 것은 아주 작은 것인데 반해 아이들은 우리에게 너무 큰 사랑을 주는 것 같아요. 그때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내가 남에게 1개를 나누어 줄 때 나는 상대에게 10개를 덤으로 받는 것, 그게 바로 봉사인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이들의 당면과제는 당연히 대학. 학교 친구들과 비교하면 일주일에 세 시간씩의 학습시간이 뒤진다는 이야기가 된다. 혹, 그 친구들보다 뒤처지고 있다는 초조함은 없을까.
"금요일 수업을 마치고 공부방으로 올 때면 가끔 그런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수업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갈 땐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학교친구들이 3시간 동안 머리 싸매고 공부하는 동안 우리는 3시간 동안 정말 재미있게 놀았잖아요. 그것 때문에 우리가 그들보다 좀 못한 대학에 들어간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죠 뭐. 대학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 않습니까."
대학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실력이 모자라 좋은 대학을 포기했거나 아니면 자신만만하거나 둘 중에 하나다. 해답이 어떤 것이든 상관없지 않겠는가. 이들은 더불어 사는 세상을 알고 있고 하나를 나누어 주고 10개를 얻는 것이 봉사라는 것도 알고 있다. 이 청소년들은 18살이란 나이에 인생이 무엇인지 또 어떻게 사는 것이 제대로 된 인생을 사는 것인지 기특하게도 이미 눈치 채 버린 것이다.
훗날 이들은 회계사에 CEO, 항공사 등 우리사회 중요 일꾼이 되어서도 공부방을 계속 지키고 싶단다. 물론 먼 미래의 일이니 장담할 순 없겠지만 '꼭 그렇게 하고 말겠다'는 의지만은 확고하다고 못을 박는다. 그들의 꿈이 꼭 실현되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그들 말처럼 늘 소풍 나온 것처럼 신나는 세상이 되어주기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