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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 어리석음, 거짓이 오늘의 비극을 낳았습니다. 어린 여중생들이 촛불을 들고 시청광장에 처음 모였을 때 괴담이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은 배후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시위대가 줄지 않고 자꾸만 불어 수십만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모인 시민들은 청와대로, 청와대로 가자고 했습니다. 청와대로 가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순진하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명박산성을 쌓고 그 뒤에 숨어 국민의 소리를 외면했습니다.

 

순진한 국민들은 조금 과격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당신은 "이때!"라며 방패로 찍고 곤봉으로 내리치고 군홧발로 짓밟았습니다. 그러자 시민들도 화가 나서 과격해지고 그에 맞서는 전경도 흥분해 서로 수없이 피를 흘리며 다쳤습니다. 피흘리며 군홧발에 짓밟히며 차밑으로 숨던 여학생, 성난 시위 군중 앞에서 공포에 질린 채 떨어야했던 전경들, 누가 대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대한민국 CEO, 아메리칸그룹 왕회장 알현하러 갔었나

 

그 시작은 당신의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530만표라는 역대 대선 최고의 표차로 당선된 당신은 인수위 시절 '어륀지'로 대표되는 영어몰입교육과 대운하정책을 일방통행식으로 밀어붙이려 했습니다. 그리고 급기야 내각과 청와대 참모들을 구성할 때 '고소영', '강부자'로 비양되는 인사정책을 펼쳤습니다.

 

주변 그 누구의 말도 신경 쓰지 않은 채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직접 소개하며 "베스트 오브 베스트를 골랐다"고 자화자찬을 늘어놓았습니다. 국민의 눈에는 강남 땅부자들로 위화감이 느껴지고 위장전입, 논문표절 등으로 하자가 있어 보였지만 당신은 내가 뽑은 사람이기에 최고라는 교만의 극치로 보였습니다.

 

게다가 다종교사회인 한국에서 종교가 다른 수천만명의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 거리낌없이 교회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리고 정부를 복음화하겠다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 타종교인들을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주변을 살피지 않는 그 교만함과 일방통행식 사고방식은 급기야 집권한 지 두 달도 못되어 미국을 가면서 더욱 확연히 드러났습니다. 미처 국정을 살피지도 않고 국민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도 않은 채 미국행을 서둘렀습니다.

 

미국에서 당신은 스스로를 "대한민국 주식회사의 CEO"라고 소개했습니다. 순간 우리는 왕년에 정주영 왕회장님을 모시던 바로 그 CEO 이명박 대통령이 바로 아메리칸 그룹의 왕회장 부시 대통령을 알현하기 위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라는 선물보따리를 챙겨 들고 캠프데이비드를 방문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4월 14일까지 이견이 좁혀지지 않던 쇠고기 수입 협상은 당신이 미국을 방문하는 일정에 맞춰 전격적으로 타결되었습니다. 미국 방문을 통해 당신은 그 옛날처럼 왕회장이 바라는 바를 말하기 전에 앞서 실천했고 그 규모도 훨씬 파격적으로 했습니다. 하는 김에 화끈하게 왕회장님의 마음에 들게 한 겁니다.

 

 

애당초 미국에서는 더 많이 개방했으면 좋겠지만 수입 재개만 되어도 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30개월 이상도 받고 미국에서는 버리는 내장까지도 더 받아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미 축산업계에서는 협상 결과가 환상적이라는 평가가 흘러나왔습니다.

 

당신의 교만이 국익과 국민의 건강과 안전은 생각지도 않고 오로지 미국만 바라보는 어리석음으로 오버랩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초장에 몽둥이로 때려잡지 못한 점에 대한 반성?

 

국민들은 분노했습니다. 설마 설마했는데 정말로 미국의 입맛에 따라 간이고 쓸개고 다 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교만과 어리석음은 급기야 당신 입으로 "국정의 동반자"라고 했던 박근혜 전 대표마저 등을 돌리게 만들었습니다. 

 

분노한 어린 여중생부터 아이의 건강을 걱정해 유모차를 끌고 온 엄마부대까지. 그야말로 온 국민이 들고 일어섰습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어리석게도 그 촛불이 금방 꺼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적당히 추가협상이나 하고 공권력을 앞세워 좌파들이 선동하고 있다고 협박을 하면 수그러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촛불은 끊임없이 타올랐고 군사독재정권을 무너뜨렸던 87년 6월 항쟁과 맞먹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날 당신은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아침이슬'을 들으며 뼈아픈 반성을 했다고 했습니다.

 

"지난 6월 10일, …(중략)… 캄캄한 산중턱에 홀로 앉아 시가지를 가득 메운 촛불의 행렬을 보면서, 국민들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제 자신을 자책했습니다."

 

그 말을 한 지 일주일도 안돼 당신은 강경진압 방침을 밝히며 곤봉과 방패를 앞세워 국민들을 두들겨 패고 무자비하게 내리 찍었습니다.

 

순진했던 국민들은 6월 10일 그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보고 당신이 했다는 반성이 '아 내가 잘못 했구나. 국민의 뜻을 섬겨야겠다'는 것이 아니라 '왜 초장에 몽둥이로 때려잡지 못하고 이렇게 커진 뒤에 고생하는 걸까'에 대한 반성이라는 걸 곤봉에 머리가 터지고 군홧발에 짓밟히고서야 알았습니다.

 

위장반성 그리고 국민의 충실한 머슴론

 

'위장반성'. 곧 거짓말이었습니다.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지만 지난 대선 당시 당신은 BBK를 자신이 설립했다고 말하는 동영상이 나타나자 내가 좀 오버했다며 슬그머니 빠져나갔습니다.

 

쇠고기 수입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미국에서 돌아온 직후 당신은 장관들을 시켜 쇠고기 수입문제는 FTA와 관련이 없다, 분리해서 대응하자고 해놓고 최근에는 FTA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자백'했습니다.

 

이렇듯 당신은 교만과 어리석음, 거짓이 뒤범벅이 되어 국민의 가슴에 상처를 내고 온 나라를 비극으로 몰고가고 있습니다.

 

당신이 가야할 길은, 한편에선 촛불을 공권력을 앞세워 누르고 다른 한편에선 강부자, 고소영, 전통적 보수세력 등 당신의 지지자들을 모으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 입으로 말했듯 국민을 섬기고 국민의 충실한 머슴이 되어 국민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것이 당신도 살고 나라도 사는 길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겨레> 4일자 시론으로도 실렸습니다. 명진 스님은 <오마이뉴스>에도 이 칼럼의 기고를 허락해주셨습니다. 


태그:#촛불문화제, #명진스님, #이명박 대통령, #명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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