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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장마라고 해야 하나? 장마가 시작되었다는 날 이후, 비 구경을 못한 지가 여러 날이 된다. 불볕더위가 푹푹 찐다. 체육시간 헉헉대며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공을 찬다. 녀석들은 더위도 아랑곳하지 않은 모양이다. 몸에서 찌든 땀내가 날 것 같다.

 

한 통의 편지가 감동을 주다

 

회의를 끝내고, 결재서류를 정리하는데 교무보조가 편지 한 통을 가져왔다.

 

'무슨 편지가 이러지?', 발신인이 없다. 수신인도 검암중학교장 앞이다. '내 이름도 모르고 썼나?', 그런데 발신인은 적혀있지 않으나 주소는 정확하다. 보낸 분이 학부모인가? 봉투가 두툼하다.

 

누가 보낸 서신일까? 궁금증이 더해진다. 교장실로 전화를 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편지를 써서 보내는 경우는 드물다.

 

학부모로부터 전화를 받다보면 학생 상담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가끔은 자녀 말만 믿고 학교생활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은 경우가 더러 있다. 앞뒤를 자르고, 자기주장만 펼칠 때는 난감하다. 그럴 땐 차분히 듣다가 전후 사정을 설명하여 이해를 구한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편지에 뭐가 담겨있을까? 혹시 학교에 불만을 적어놓은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봉투를 뜯었다.

 

편지지는 노트를 찢어 쓴 것 같다. 사인펜으로 휘갈겨 쓴 글이 달필이다. 편지지에 번호를 매겨 큰 글씨로 세 쪽을 적었다. 글의 내용은 길지 않다.

 

'존경하는 교장선생님!'으로 시작하고 있다. 봉투를 뜯기 전의 긴장감은 달아났다.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편지 내용을 그대로 옮겨본다.

 

내가 받은 편지

존경하는 교장선생님!

 

한 학생을 소개하고자 감히 이글을 올립니다. 많은 검암중 학생들이 훌륭하지만 우리 시영이가 가족 일원으로서 그러한 생각을 한 게 너무나 기특하기에 짧으나마 소개하고자 합니다.

 

소개하는 학생은 1학년 6반 정시영군입니다. 이 글을 올리는 저는 정시영군 어머니의 외삼촌이구요.

 

얼마 전 가족들이 모인 병원에서 우리 시영이가 참 기특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영군의 어머니가 종양수술을 받게 되었거든요. 결과는 좋게 나왔구요.

 

플러스 기쁨 속에, 병원비를 그 어린 시영군이 100만원이 든 통장을 아빠에게 건넨다는 것이었습니다. 물어본 즉, 초등학교 시절부터 안 쓰고 100원, 200원 모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찌 그 어린 것이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이 없었겠습니까? 그 어린 것이 어른스럽지 않습니까? 이 점, 가족만 알기엔 너무나 훌륭하기에 교장선생님이 칭찬해주시고, 힘을 주신다면 검암인의 자랑스런 인물로 성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족사랑, 학교사랑, 나라사랑이 아니겠습니까?

 

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시영이가 갸륵하기에 두서없는 몇 자 올린 것입니다.

 

자랑스런 검암인이 많지만 훌륭하신 교장선생님의 지도 하에 이러한 학생이 있다고 봅니다. 교장선생님의 좋은 교육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오. 교장선생님!

 

우리 학교에 이런 기특한 학생이 있다니!

 

편지를 읽고나서 '그 녀석 참 기특하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우리 학교 1055명의 학생 중 내가 이름을 기억할 수 있는 학생은 많지 않다. 1학년 6반 담임선생님부터 찾았다. 담임이 교장실을 노크한다.

 

"6반에 정시영이라는 학생이 있죠? 그 애 참 대단해요!"

"교장선생님께서 시영이를 어떻게?"

"여기 편지를 받았거든요. 내용이 사람을 감동시키네요."

"편지요?"

 

선생님께 편지를 건네자 의아해한다. 글을 다 읽으신 선생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선생님, 시영이 정말 기특한 아이입니다. 공부 잘하죠, 친구들과 잘 어울리죠, 그리고 얼마나 착한지요! 수련회 때문에 어머님과 통화하다 이번 일을 우연찮게 듣게 되었어요. 그러고 보니 어르신께서 시영이가 한 행동을 지켜보다 감동을 먹을 만하네요. 교장선생님, 우리 시영이 불러다 칭찬 좀 해주세요."

 

담임선생님이 시영군 칭찬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한다. 아마 자기가 맡고 있는 학급에서 시영이와 같은 착한 친구가 있다는 게 너무도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이다.

 

한푼 두푼 모은 돈으로 어머니 쾌유를 위해

 

점심시간, 복도가 떠들썩하다. 시영이는 어떤 학생일까? 얼굴을 보고 싶다. 시영이가 있는 교실로 갔다. 교장실에서 가깝다.

 

"여기에 시영이 있지?"

"시영이요? 저기 있어요. 야, 시영야! 교장선생님께서 찾으셔?"

 

앞좌석에 있는 친구가 시영이를 부른다. 시영이와 눈이 마주쳤다. 첫 인상부터가 서글서글하다. 점심을 먹고서 시영이가 교장실을 찾았다.

 

"시영이, 어머니께서 편찮으셨다면서?"

"종양수술을 하셨는데, 많이 좋아졌어요."

"그런데 시영이 참 대단하더라! 기특하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지?"

"무슨 말씀인지…?"

"선생님 다 알고 있어!"

 

그때서야 내가 뭣 때문에 자기를 불러 이야기를 꺼냈는지 알아차린 모양이다. 쑥스러워하는 녀석의 모습이 미덥다.

 

"담임선생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아냐! 다 아는 수가 있지!"

 

자총지종을 이야기하자 시영은 멋쩍은 듯 머리를 조아린다. 안경 너머 맑은 눈이 빛난다.

 

시영이는 한푼 두푼 돈을 아껴 자기만의 비자금(?)을 꽤 모았다고 한다. 그간 어른들로부터 세뱃돈이며 용돈을 절약하여 꼬박꼬박 통장에 넣었다는 것이다.

 

시영은 어머니가 큰 수술을 하신다니 큰 걱정이 되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에 고민을 하였다. 가족은 어려울 때 함께 할 수 있을 때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자기 통장을 슬그머니 아버지께 꺼냈다. 어머니가 쾌차하시기를 빌면서….

 

이를 지켜본 시영 어머니의 외삼촌은 진한 가족사랑을 느끼고도 남았으리라!

 

오늘따라 점심시간이 짧은 것 같다. 나는 시영군 등을 두들겨주며 격려를 잊지 않았다.

 

"시영이 성적도 좋다며? 이번 기말고사는 더 열심히! 도서실에서 책도 많이 읽고, 운동장에서 공도 힘차게 차고! 난 시영이 일로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네! 지금처럼만 하면 시영이는 부모님 기대에 어긋나지 않고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내게 편지 쓰신 분께도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알았지?"

덧붙이는 글 | 시영군의 어머니와 통화를 하였습니다. 목소리가 아주 밝았습니다. 건강이 많이 나아져 이제는 예전 하시던 일을 계속하고 있답니다.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태그:#검암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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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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