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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들이었다. 국가권력이나 금권에 의해 마땅히 지켜져야 할 가치가 왜곡될 때, 그들은 거리에 서 있었다. 지학순 주교부터 김용철 변호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걸고 싸워야 하는 양심의 목소리가 태동될 때에도 그들은 자리를 함께 했다.

 

2008년 6월 30일 저녁, 그들은 다시 거리로 나섰다.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미국산 쇠고기'로부터 촉발된 촛불시위가 전경의 군홧발에, 상상을 초월한 과잉폭력진압에 피를 흘리자 서울시청 광장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한달을 조금 넘긴 사이, 시계가 순식간에 20~30년 전으로 돌아가버린 지금, 어쩌면 우리는 1987년의 그들을 기억하며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사제단은 저녁 7시 30분에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미사를 진행했다. 천주교의 종교행사였지만, 이 행사는 반드시 천주교인만의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시민들이 자리에 앉아 촛불을 들고 그들의 미사를 경청했으며, 신부와 스님이 손을 맞잡으며 거꾸로 돌려진 시계를 걱정하며 시대를 걱정했다. 종교의 화합, 그리고 시민의 화합, 종교를 초월해 뜻을 모으면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연출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경찰과 대비돼 더욱 빛난 아름다움

 

 

 

이 아름다움은, 경찰의 변함없는 대처와 대비돼 더욱 빛날 수 있었다. 경찰은 또다시 전경버스로 시청 앞 광장을 봉쇄했으며, 미사 이전에 전경과 약간의 실랑이를 벌인 시민을 "시민이 전경을 폭행했다"는 이유로 강제연행했다가 항의가 이어지자 "경미한 폭행이었다"는 조금은 우스운 해명과 함께 풀어줬다.

 

1시간 가량 이어진 행진이 끝난 이후에도 정복경찰을 동원해 시민들의 출입을 통제하려다가 사제단 신부들의 간곡한 호소에 호응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해산하고 집으로 돌아가자 머쓱하게 슬그머니 철수했다.

 

수십년 넘게 단련된 양심의 목소리가 나타나고 시민들이 그에 호응하면서, 경찰의 과잉대처는 오히려 개그처럼 느껴진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비폭력'의 힘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사제단의 김인국 신부는 시민들에게 '간곡한 호소'를 남겼다. 늦은 시간까지 시민들이 전경과 대치하다가 피를 흘린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염려한 것 같았다. 밤 10시를 넘기면서 시민들에게 '귀가'를 호소했으며, "국민들에게 힘이 될 때까지 사제단이 단식기도회를 계속하겠다"는 선언도 남겼다.

 

나로서는, 이 선언이 가질 힘을 유추해보려고 노력했다.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가졌으며, 그 영향력에 걸맞은 실천을 끊임없이 보여줬던 사제단이 시청 광장에 '계속' 남는 것만으로도 그 상징은 클 것 같았다. 그들은, '비폭력'이 가진 힘을 시위참가자와 경찰 모두에게 진실되게 보여줄 것이다. 안그래도 컸던 사제단의 존재, 더욱 크게 보였다.

 

미사 도중에도 사제단은 '사랑'을 이야기했다. 이명박 대통령을 사랑하자고 주문했으며, '경찰 형제'에게도 사랑과 애정을 보낸다고 했다. "대통령의 힘과 교만을 탄식했"지만, '사랑'과 '용서'를 말하는 신의 목소리를 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원수마저도 사랑하라고 했다던가? 진실된 목소리에, 시위참가자들도 격앙된 감정을 가라앉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 자신의 힘과 교만을 탄식하면서도 자신에게 '사랑'을 주문하는, 신을 섬기는 자 본연의 목소리를 말하며 그 자세를 지킨 사제단으로부터 무엇을 느꼈을까? 참고로 오는 4일에는 개신교인들의 기도회가 예정돼 있다. 아마, 그들도 '힘'과 '교만'에 빠진 누군가를 탄식하며 '사랑'과 '용서'를 이야기할 것이다.

 

▲ '촛불미사' 후 사제단 신부들과 함께 행진하는 시민들
ⓒ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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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진 후의 작은 축제들

 

행진 후의 시청 앞 광장은 말 그대로 '평화 속 작은 축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잔디밭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시민들, 단식농성을 시작하는 신부들을 찾아가 웃음꽃을 피우며 "힘내라"는 격려를 아끼지 않는 시민들, 사제단의 자문 변호사로서 모습을 드러낸 김용철 변호사에게 사인을 받고자 하는 시민들, 촛불을 모으며 작지만 아름다운 작품을 만드는 시민들, 현장을 뜨지 않은 통합민주당 국회의원과 토론을 나누는 시민들, 시민과 종교인, 그리고 정치인까지 어우러진 작은 축제의 모습이었다.

 

진정으로 기다려왔던, 정말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었다. 그동안 이어진 대치 속에서 피를 흘리며 싸워가는 시민들의 모습을 눈 앞에서 지켜봐왔던 나로서는, 그 작은 평화들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졌다. 소중하다는 것을 알지만, 막상 대하지 못하다가 눈으로 보면 그 소중함에 눈물마저 나는 경우를 살면서 종종 겪는다. 나는 그것을 느꼈다.

 

그 축제 속에서, 인터뷰를 시도하고자 하는 기자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이어졌다. 그 대열엔 나도 포함돼 있다. 다음은, 김인국 신부가 기자들과의 즉석 인터뷰에서 남긴 이야기들이다.

 

[김인국 신부 인터뷰] "시민과 대통령 사이 무서운 그림자에 호소한다"

 

-오늘 이 자리(시청 앞 광장)에서 미사를 진행한 취지는 어디에 있나?

"시민들과 이명박 대통령 사이의 '소통 장애'가 무서운 그림자를 불러왔다. 시민들은 짓밟힌 자존감 속에서 감정이 격앙돼 있다. 시민들과 이명박 대통령 사이의 무서운 그림자에 호소하고자 한다."

 

-그동안 '폭력시위' 논란이 있었다.

"'폭력'에 대해서는 시민들도 책임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정부 당국자들이 알아야 할 것은, 시민들은 애초에 비폭력 기조를 유지하려고 했지만 정부에서 폭력을 유도한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공안기관의 강경기조도 이명박 대통령의 진심이 아니라 기관장들의 '과잉'이라고 믿고 있다. 그속에서 촛불에 담긴 시민들의 마음을 지킬 필요가 있는 듯하다."

 

-특정 보수언론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우리 사회의 진실의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그 특정 보수언론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자주 입장을 변화시킨다. 후안무치하다고 할 수 있는데, 사회적으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책회의 측은 '이명박 퇴진' 구호를 내걸고 있다.

"글쎄, 대책회의는 대책회의고, 우리는 우리다. 우리는 이명박 대통령도 사랑한다. 그가 국민적 기대가 부응하는 바를 실현하는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

 

여기서 비하인드 스토리를 이야기하고 싶다. 마지막 질문은, 내가 요즘 들어 안면을 트고 가끔씩 인사를 나누는 <문화일보> 기자가 던진 것이다. <문화일보>의 논조가 깊게 스며든 질문이라, 나로서는 김인국 신부의 발언을 받아적는 와중에도, 그 <문화일보> 기자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문화일보>에 소속된 기자라 어쩔 수 없이 그런 질문을 던진 것일까?

 

그 다음으로 주목받은 인사가 있다면, 김용철 변호사일 것이다. 사인 요청이 잇따르자 다소 쑥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그에게 다가가 인터뷰를 시도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언론 인터뷰를 질리도록 했던 경험 때문일 것이다.  무엇을 묻든 즉답을 피했으며, 철저하게 원론만 이야기했다.

 

[김용철 변호사 인터뷰] "자문변호사일뿐...오해 피하려고 촛불 집회 안 나와"

 

-이 자리엔 어떻게 오셨나.

"사제단의 자문 변호사가 3명이다. 그중 하나가 나(김용철 변호사)다. 사제단의 자문 변호사로서 신부님들과 함께 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

"오해를 피하기 위해 촛불집회에 단 한번도 참석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이 자리에는 신부님들이 오시면서 자문 변호사로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나왔다."

 

-삼성….

"아아, 그 부분은 이야기하지 말자. 재판중인 사건인데…."

 

내가 실수했다는 것을 느꼈다. 민감한 부분이라 섣불리 말할 수 없었을 텐데 말이다. 어쨌든, 가까이에서 보고 직접 이야기를 나눠 본 김용철 변호사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수많은 언론 인터뷰를 보면서 단련된 흔적이 역력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라고 소개했을 때의 김용철 변호사의 반응도 재미있다.

 

"어? 거기, 아무나 다 기자잖아?"

 

웃으면서 시도했던 내 반박은 다음과 같았다. 나는 목걸이로 차고 있던 명함을 들어올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에이, 이 명함은 아무나 안줘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명함은, '이달의 뉴스게릴라'로 선정되거나 3개월간 버금 5개 이상 작성한 시민기자가 발급 대상이다.

 

▲ 사제단 신부들의 단식 농성 천막에서 만난 김용철 변호사와 영화배우 김부선씨.
ⓒ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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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단'의 등장, 본질을 일깨우다

 

촛불시위가 애초에 내건 명분은 '비폭력'이었다. 하지만, 이야기하자면 2박 3일은 충분히 소비될 그 과정들을 통해 폭력이 오가면서 전경과 시민들이 피를 흘린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사제단의 등장과 간곡한 호소 덕분에 '본질'을 되찾을 수 있었다. 사제단의 등장으로써, 촛불시위 참가자들은 명분싸움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됐다. 게다가, '가톨릭 신부'라는 신분도 정부가 쉽사리 건드릴 수 없는 특이점이 있다. 사제단의 등장은 시위참가자들에게 마음의 위안과 함께 그런 보호벽을 제공해줬다.

 

'본질'의 싸움이다. 사제단의 등장으로써, "촛불시위 진압을 공세적으로 바꿀 것"이라던 경찰의 방침은 상당부분 명분을 잃었다. 현장에서만 봐도, 시청 앞 광장을 빈틈없이 포위했던 전경버스도 두세 대 가량만 남겨두고 철수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시민 중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질긴 놈이 이기는 것"이라고. 그렇다. 나는 거기에 한마디 더 보태고 싶다. "질기게 명분을 지키는 놈이 이기는 것"이다. 경찰은 이미 1980년대식 진압방식을 동원하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천명한 것 자체에서 명분싸움에서 지고 있다.

 

그런 진압으로 사람들이 기가 죽어 시위를 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것일까? 그렇게 대치하고도 아직도 본질을 모르는 것에서 안타까움을 느낄 따름이다. '본질'을 다시 깨달은 촛불시위, 또다른 국면을 맞이할 7월은 그렇게 새로 다가왔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촛불, #국민토성, #조중동 반대, #촛불시위, #사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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