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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전쟁터입니다."

 

지난 29일(일요일) 새벽 촛불 집회 현장에 나가 있던 <오마이뉴스> 기자가 편집국에 날린 외마디 소리다. 현장에서 시시각각 접수되는 시위 상황을 듣고 있노라니 실제 전쟁터다.

 

폭우가 쏟아졌고, 비옷 한 장 걸친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물대포가 터졌다. 전경은 바로 눈앞에서 분말소화기를 직사했고, 다 쓴 철제 소화기통을 시위대에게 던졌다. 전경이 던진 보도블록과 쇠뭉치에 맞아 병원에 후송된 시위대도 많다. 비폭력을 외치면서 전경 앞에 누운 100여명의 시민들을 군홧발로 밟고 지나갔다. 살려달라고 애원하면서 머리를 들면 방패로 찍고 곤봉으로 내리쳤다.      

 

서슬퍼런 80년대식 공안정국의 부활

 

이뿐인가. 이날 0시30분께 회사원 장 아무개씨가 군홧발에 밟히는 충격적인 동영상이 공개됐다. 그는 인도 쪽으로 피신했는데 전경 10여명이 달려들어 짓밟고 곤봉으로 집단 폭행했다. '군홧발 여대생'으로 줄줄이 문책을 당했던 경찰이 또다시 저지른 일이다. 전경을 치료하던 의료지원단도 집단구타를 당했고, 프레스(PRESS) 완장을 찬 기자들마저 방패로 찍히고 곤봉으로 얻어맞았다.

 

심지어 국가인권위 인권지킴이단도 쇠뭉치에 맞아서 부상을 당했다. 곳곳에서 '시민의료단'의 구원을 요청하는 절규가 터져 나왔고, 여기저기서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시민들이 목격됐다. 과거 '백골단'을 연상시키는, 진압봉에 운동화 차림의 전경도 등장했다. 이날 국가권력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렸다. 서슬 퍼런 80년대식 공안정국의 망령이 부활한 것이다.  

 

이런 신 공안정국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것은 다름 아닌 이명박 대통령이다. 광우병 사건이 발생한 뒤에 무려 국민을 향해 두 번씩이나 '소통이 부족했다'며 고개를 숙인 이 대통령은 "국가정체성 훼손" 운운하면서 시위대에게 '빨간 딱지'를 붙였다. 그 뒤부터 사법기관은 더욱 과격해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장마비가 쏟아지는 날 시위대를 밤새도록 두드려 팬 뒤, 그날 오후 정부 5개 부처는  '과격폭력시위 관련 대국민 발표문'을 통해 "불행한 사고를 막기 위해 최루액 살포 등 강력 대응할 수밖에 없다"면서 '경찰 폭력'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사실상 선전포고를 했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 관계자를 구속하고, 간부 8명에 대한 긴급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섰다. 민주화된 이후 처음으로 시민사회단체인 참여연대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참여연대 담을 넘고 드릴로 문을 뜯는 해프닝도 벌였다. 대책회의의 모래 트럭을 불법적으로 빼앗은 데 이어 방송트럭까지 탈취했다.

 

 

경찰폭력, 관제홍보, 언론통제...

 

그리고 오늘, 전국의 읍면동장들을 불러모아 놓고 5-6공 시절에나 있었던 대대적인 '관제홍보'까지 선보였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최근 일부 기자들을 만나 "촛불 시위가 초기에는 문화제적인 성격을 가미해 평화적인 의사표현을 했지만 지금은 너무나 많이 성격이 변질된 만큼 언론에서도 촛불 집회라는 표현을 안 써줬으면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제는 노골적인 '언론통제' 행태까지 보이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가. 국가권력은 이미 '야만의 시대'인 80년대로 회귀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당시처럼 화염병을 든 게 아니라 촛불을 들었을 뿐이다. 쇠파이프를 들고 국가 전복을 외친 게 아니라 그 시작은 여중고생들이, 그리고 유모차를 끈 아줌마들이 헌법에도 명시된 건강권을 외쳤을 뿐이다. 일부 시위대가 감정적으로 대응했을지라도 그건 전부가 아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가해진 살인적인 경찰 폭력. 그건 어떤 식으로든 정당화될 수 없는 명백한 폭거이다. 국가 폭력이다. 지난 시위에서 부상당한 많은 전경들도 사실상 폭압적인 국가권력의 희생양일 뿐이다. 

 

21년전 6월 항쟁을 통해 '6·29 선언'을 이끌어낸 바로 그날 새벽에 벌어진 경찰 폭력.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수많은 피와 땀으로 항복문서를 받아낸 날 일어난 일이다. 21년이 지난 그날 시민들을 죽도록 두드려 패고, 그것도 모자라 전경버스를 이용해 서울광장까지 압수했다. 집회시위의 자유도 전경방패에 가로막혔다.

 

그런 뒤 조중동은 정부와 한 목소리로 시위대를 향해 '폭도'라는 누명을 뒤집어씌웠다. 오욕의 역사는 이렇듯 기막히게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항쟁은 시작됐다

 

하지만 폭력으로 촛불을 끌 수 있다는 오만한 정권을 일깨우기 위해서도 지금은 촛불을 들 때이다. 물대포와 방패·곤봉으로 촛불을 제압할 수 있다는 아마추어 정권을 위해서도 지금 촛불을 꺼서는 안 된다.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이명박 대통령과의 진정한 소통을 위해서, 민주주의를 질식시키는 '죽음의 정치'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비폭력의 촛불은 계속 활활 타올라야 한다.

 

지난 토요일을 고비로 항쟁은 이미 시작됐다. 여중고생, 아줌마 부대 등에 이어 신부, 수녀, 목사, 스님 등 종교인들도 나서고 있다. '경찰 폭력'에 맞선 종교인들의 비폭력 촛불이 서울광장을 채우고 있다. '촛불축제'를 전쟁터로 만든 오만한 정권의 대오각성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지금 길거리에 울려 퍼지는 노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사실을 정권은 절실하게 깨달아야 한다.

 


태그:#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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