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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문을 두 번째로 발표한 지 불과 열흘도 되지 않아 서울 도심은 전쟁터로 변했다. 지난 28일~29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 추가협상을 거부하며 전면 재협상을 다시 요구한 10만여 시민들에게 경찰은 물대포와 경찰봉을 퍼부었다.

 

추가협상을 전후하여 조중동이 공권력 확립과 불법시위 엄단을 주문하자 화답이라도 한 것일까. 이내 폭력시위·폭력진압의 낡은 논쟁이 다시 우리 앞에 고개를 든다. 법을 어긴 시위대는 끝까지 추적해서 검거하겠다는 법무부 장관과 이명박 정권의 내각들은 오히려 두 눈을 부릅뜨고 29일 긴급 대국민 담화문까지 발표했다.

 

Ministry of Justice.

 

법무부의 영어 표현이다. 법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사법권'과 '정의'가 똑같은 단어를 쓴다는 사실은 무척 의미심장해 보인다. 법무장관, 아니 공명정대와 정의의 장관이 "엄정하게 사법조치"하겠고 엄포를 놓는 모습을 보며, 그리고 그 뒤에 아른거리는 이명박 대통령을 떠올리며 나는 오늘 2008년 6월의 대한민국의 'Justice'를 생각했다.

 

진실은 무엇인가?

한동안 잊고 있었던, 아니 누군가는 잊어버리고 싶어했던 이 질문을 다시 해 보자.

무엇이 진실인가?

 

폭력시위와 폭력진압을 논하기 전에 우리는 반드시 왜 그많은 사람들이 60일 가까이 차디찬 길바닥에서 촛불을 들고 아침을 맞이했는지 그 이유를 먼저 물어야 한다. 다행히 우리 모두는 그 답을 알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 때문이다.

 

정부는 오늘 담화에서 "국민 여러분이 그 동안 정부에 요구했던 사항들도 대부분 반영됐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거짓이다.

 

추가협상에서는 30개월 미만 소의 위험물질을 완전히 차단하지 못했다. 국민들은 어떤 위험물질이 안 들어오는지가 궁금한 것이 아니라, 위험물질이 하나라도 들어오느냐 마느냐가 궁금하다.

 

또 협상단 스스로 밝혔듯이 이번 추가협상에서는 본협상에서 심각하게 훼손되었던 검역주권은 상당부분 회복되었다고 했다. 그 말은 "상당하지 않은 부분은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다"는 점을 스스로 시인한 셈이다.

 

검역과 관련된 주권에 관한한 대부분의 국민들은 "상당하지 않은 주권"이라 하더라도 결코 다른 나라에게 이유없이 내어주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미국 내 도축장에 대한 한국의 승인 취소권이 사라졌고 불시검사도 미국허락을 받아야만 하며 광우병 발생 즉시 수입중단조치도 취하지 못하게 된 추가협상 결과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국민들이 걱정하는 핵심 사안인 광우병의 근본원인인 사료조치는 본협상에서 오히려 후퇴했고, 추가협상에서는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다시 생겨날 구조적인 개연성은 여전한 것이다.

 

거짓에 기초한 공권력은 불행을 잉태한다

 

 

게다가, 정부 협상단이 자화자찬한 QSA라는 프로그램도 결국은 미국 업자들에게 한국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내맡긴 것이라, 이는 한국 국민들이 지금까지 이명박 정부에게 요구했던 사항이 결코 아니다. 한국 국민들은 한국 정부가 자신들의 건강을 "정부차원"에서 지켜주기를 줄기차고 일관되게 요구해 왔기 때문이다.

 

요컨대, 오늘 법무장관의 담화는 거짓에 기초해 있다. 그가 엄포한 엄정한 법집행은 거짓에 기초해 있다. 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대한민국 경찰은 거짓에 기초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거짓 뒤에는 국민들의 요구를 눈가림으로 슬며시 넘어가고자 했던 이명박 대통령의 거짓이 있다. 국민을 섬기겠다며, 국민에게 사죄한다며, 소통한다며, 뜻을 받들겠다며 고개를 숙인지 열흘도 채 안 돼 물대포에 군홧발에 경찰봉을 휘두른 그의 거짓이 있다. 이 거짓에 가려진 진실을 조중동과 어용 지식인들은 결코 입에 담지 않는다.

 

거짓에 기초한 공권력은 불행을 잉태한다.

이것이 바로 6월28일 광화문의 진실이다.

 

다시 묻는다. 무엇이 진실인가?

법무부, 아니 '공명정대 부서'의 지휘를 받는 검찰은 MBC <PD수첩>을 조사하기 위한 전담팀을 꾸렸다. 1년도 되지 않아 180도로 논조를 바꾸었기 때문에 유언비어를 유포했음이 100% 확실한, 그리고 그렇게 사회불안을 야기한 조중동을 수사하겠다는 얘기를 나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들을 위한 수사전담팀을 구성하기는 커녕 세금을 들여 회사 현관문을 보호하는 공권력을 우리는 보았다. 당신들이 말하는 공명정대와 사회정의와 엄정한 법치란 이런 것인가?

 

진실은 무엇인가?

공명정대하고 정의로운 우리의 정부와 검찰은 아직도 인터넷을 뒤지며 촛불시위의 배후와 주동자와 선동자를 색출하기에 혈안이다. 그렇게 밝혀 낸 다음 아고라의 1등 글쟁이는 아쉽게도 촛불시위를 극렬하게 반대하는 글만 올렸다. 배후가 명명백백 밝혀졌는데, 구속되었다는 소식은 아직 듣지 못했다. 배후가 밝혀졌는데, 여전히 10만이 넘는 인파가 어두운 서울의 밤을 촛불로 밝혔다.

 

도대체 무엇이 진실인가?

오늘도 TV 토론회에는 어용 지식인들이 나와 처음에는 순수했던 촛불집회가 변질되었다고 한탄한다. 내가 참가했던 5월2일의 첫 번째 촛불집회는 "이명박 탄핵집회"였다. 내가 기억하는 한, 당시 현장에서는 쇠고기 수입 반대만큼이나 이명박 탄핵의 구호가 많이 들렸다. 당신들이 그렇게 칭찬해 마지않는 그 순수한 촛불집회보다 지금 우리는 훨씬 온건하고도 점잖은 요구를 하고 있음을 당신들은 알고 있는가?

 

청와대로 가자는 시위대더러 체제전복세력이라는 당신들은 지난 대통령이 취임한 지 보름만에 탄핵을 입에 올렸던 사실을 기억하는가? 군대에 쿠데타를 종용하고 군 고위 지휘관이 그에 화답했던 망극한 일들을 벌써 잊었는가?

 

2008년 6월, 민주주의는 거꾸로 가고 있다

 

대통령이 대학을 못 나오고 영부인이 빨치산의 딸이라는 것이 그렇게 중죄라면, 그래서 조중동마저도 그렇게 못난 대통령을 끌어내리라고 돌멩이를 던졌다면, 지금 우리 국민의 생명을 남의 나라 업자에게 팔아 먹으려는 현 대통령의 매국행위가 최소한 그만큼의 중죄는 아닌지 먼저 생각해 볼 아량 정도는 가져야 지식인이요 언론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나.

 

전 대통령에게는 검찰의 독립을 위해 그렇게 용감하게 맞서던 젊은 검사들이 이제와서는 방패에 찍혀 피를 철철 흘리며 끌려가는 시민들을 구경만하면서 찍소리도 못하는 그 더러운 충성심이 당신들의 진실이요, Justice인가?

 

정부와 국가와 공권력이 거짓을 딛고 서 있으면 나라와 국민이 불행해진다. 현명한 우리 국민들은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어쩌면 우리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미국산 쇠고기보다도 진실과 정의에 기초하지 않은 대한민국을 국민들은 훨씬 더 걱정할지도 모른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녹을 먹는 대통령과 공무원과 경찰들이 도리어 그 주인에게 물대포를 쏘고 방패를 날리고 경찰봉을 휘두르는, 그렇게 해서라도 자기 주인의 입에 미친 쇠고기를 기어이 집어 넣으려는 이 미쳐가는 대한민국을 우리는 기어이 제자리로 돌려 놓을 것이다.

 

잃어버렸다는 지난 10년을 거치며 적어도 우리는, 한국의 민주주의는 이제 완성되었고 경제만 좀 더 좋아지면 선진국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이미 국민들의 눈높이는 월드컵 4강만큼이나 높아져 있다. 노무현도 정동영도 그래서 성에 차지 않았고, 이명박의 부덕함이나 거짓말도 그래서 잠깐 눈감아 주었다. 적어도 민주주의 만큼은 거꾸로 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과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불행하게도 이명박 대통령의 부덕과 거짓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기본을 뒤집었다. 국민과 대통령 사이의 최소한의 암묵적 합의는 산산조각이 났다. 우리는 다시금 시계를 20년도 더 되돌려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을 보아야만 했다. 그것도 21년전 군사독재정권이 국민에게 항복한 바로 그날에.

 

진실은 무엇인가?

국민들은 안전한 먹거리를 원한다. 국민들은 전면적인 재협상을 원한다. 그리고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원한다. 60일 가까이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촛불 하나로 아침이슬을 맞으며

그렇게 우리는 광화문 네거리에, 신새벽 뒷골목에 다시금 어느 시인의 절규를 적는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태그:#이명박 , #광우병, #촛불집회, #폭력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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