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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와 괴테는 흔히 비교된다. 영국의 셰익스피어가 황홀한 상상력으로 동서고금을 날아다니며 글을 썼다면, 괴테는 자기가 경험하지 못한 것은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이백과 두보도 그런 관계였다고 하는데, 아무려나 두 사람 모두 춘란추국이라, 누가 더 위대하다 말할 수 없는 분들이다. 아무튼 여러 면에서 비교되는 두 사람은, 유언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괴테의 유언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좀 더 빛을"이다. 죽음 직전에 이 위대한 시인은 무언가 더 잘보고 싶었던 것일까? 자신의 한살이가 너무 어두웠다고 느꼈던 것일까? 바이마르 공국의 재상을 지내기도 했던 당대의 시인, 자연과학자(그는 비교해부학의 선구자다), 뛰어난 변호사이자 정치인은 아무튼 어두움 속에서 죽어갔다. 유언도 뭔가 심오한 듯 보인다. 나로선 "저 매화, 물 줘라"고 했다는 퇴계 유언이 더 그럴 듯 해보이긴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유언은 라이벌의 그것에 비하면 매우 세속적이다. 그의 죽음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으며, 유언장은 그저 재산 분배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의 묘비는, 인도와도 바꾸지 않으리란 문호가 남긴 마지막 말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아주 단순한 바람이 새겨져 있다. 내용은 이렇다.

 

"여기 묻힌 유해가 파내지지 않도록 예수의 가호가 있기를. 이 돌무덤을 보존하는 자에게는 축복이 있을 것이며, 나의 유골을 옮기는 자에게는 저주가 있으리라."

 

어떤가. 약간 의외 아닌가. 이 짧은 문장에는 아무런 문학적 수식도 어떤 복선도 없다. 그저 자기 무덤이 파헤쳐지지 않기를 바라는 절박한 마음뿐, 내 영혼이 방해당하지 않고 안식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대문호의 유언치곤 참 소박하다.

 

하지만 그럴 만도 한 것이 그가 죽은 17세기 영국에서는 시간이 지난 무덤을 파서 유골을 납골당으로 옮기는 일이 흔했다고 한다. 그런 과정 중에 유골을 잃어 버리거나 함부로 도굴되는 경우도 많았다니, 자기 무덤과 납골당이 붙어 있는 셰익스피어로선 겁날 만도 했겠다. 비명 덕을 봤는지 아무튼 그의 무덤은 지금도 잘 보존돼 있다.

 

하늘 아래 큰 작가 셰익스피어는 죽음 뒤의 안전이 두려워 소심한 저주를 비명에 새겼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살아생전의 안전이 공포다. 대통령이란 사람이 미국 한 번 다녀온 뒤로 식탁 안전이 무너져 버린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투표율은 따지지 말자. 그는 아무튼 간에 대한민국 국민들의 뜻에 의해 대통령에 뽑힌 사람이다. 당연히 그에겐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이 있다. 외국과 협약을 맺을 권리 또한 그에겐 있다.

 

그렇다고 국민 목숨을 담보로 잡고, 국가의 주권을 쓰레기처럼 내던지며, 극히 일부가 잘 먹고 잘 살자고, 광우병 쇠고기를 밥상에 차려 내놓으라고 누가 그랬는가. 대체 무슨 권리로 대운하를 파고(안한다고는 하지만 미덥지 못하다), 대체 무슨 배짱으로 과거를 묻을 권리를 일본에게 거저 넘겨주며, 대체 무슨 마음으로 언론계를 제 수하들로 채우려 하는가. 역사가 그리 하는 사람을 일러 무어라 하는지 아는가. 간단하다. 독재자. 우린 당신을 대통령으로 뽑았지, 종신총통이나 황제의 홀을 쥐어준 게 아니다. 제발 빠진 넋 챙기고 집나간 얼 수배해라.

 

나는 의료인으로 임상에서 환자를 볼 때 늘 주저한다. 과연 이 처방을 환자에게 투여해도 좋을까. 맥을 다시 잡고 증상을 다시 묻고 복진을 거듭 하면서 환자에게 혹시라도 있을 오진의 가능성을 줄이자고 노력한다. 그래도 임상은 어렵고 환자는 고통이 조속히 사라지지 않음을 원망한다. 일개 한의사도 환자를 볼 때는 주의를 다하거늘, 언필칭 나라의 제일 큰 머슴인 대통령은 왜 그렇게 고용인 뜻을 거스르는가. 아니 거스르는 정도가 아니라 그 주인을 협박하고 그 인을 해치려드는가.

 

대체 이명박 대통령은 무슨 배짱으로 재협상은 없다고 하고, 무슨 믿음으로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가. 그래서 무엇을 이루고자 하고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육신과 마음이 아프면, 병이 든다. 대통령 한 사람 덕분에 대한민국 온 국민이 병들어가고 있다. 

 

병명은 화병이다.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에서만 나타나는 병이다.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그렇다고 정의했다. 자료를 찾아보면 화병은 "주로 여성에게 나타나는데 남편의 외도 등 강한 스트레스를 적절하게 해소하지 못하고 참고 인내하는 데서 오는 가슴이 답답한 증세를 가리킨다"라고 말한다.

 

국민이 화병에 걸렸다. 왜 촛불시위에 여성들이, 어린 학생들이 많이 나오는지 아는가. 화병 걸려서 그렇다. 울화통이 치밀어서 도저히 집에만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먹을거리 살림살이 책임지는 주부들이 유모차 끌고 나오는 것이다. 순정한 싹들, 정말 귀하고 이쁜 우리 아들 딸이 거리에서 소리치는 것이다. 우리 죽기 싫다고.

 

한의학에서는 기혈의 흐름을 중요시한다. 물이 흐르지 않으면 썩듯, 기혈도 흐르지 않으면 막힌다. 기막힘의 정서를 그 누가 알랴. 우리는 안다. 기가 막히고 피가 마르는 심정을 우리는 안다. 죄 없는 춘향이가 옥중에서 모진 장독에 힘겹게 뒤척일 때, 장화와 홍련이 계모 허씨부인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할 때 느끼는 그 먹먹하고 답답하며 환장할 마음을 우리는 안다.

 

알다 뿐이랴. 너무 기가 막히니까 살아 보려고, 어떻게든 살아야겠기에, 생업에 지치고 힘든 몸뚱아리를 끌고 세종로를 덮고 대전역에 넘치며 금남로 위에 모이고 서면으로 향하는 것이다. 그러니 제발 알라. 국민의 마음을. 화병에 걸리고 기다 막히고 피가 마르는 이 심정을 알라.

 

알고 나면? 들어라. 매를 때려야 알아듣겠는가. 옛 어른들은 말씀하신다. 마소는 매를 때려야 알아듣지만, 사람이라면 말로 해도 알아듣는다고. 맞아야 정신 차리면 마소 같은 존재라고. 국민들의 부르짖음이 두 달을 헤아린다. 아무리 귀머거리라도 아무리 벽창호라도 이렇게까지 말로 타이르면 알아들을 법 하지 않은가?

 

미국과 추가협상을 했다. 그 결과 검역주권도 되찾고, 30개월 이상 되는 쇠고기는 들여오지 않게 됐다고 조중동은 말한다. 믿을 수 있는가? 여러분은 믿을 수 있습니까? 잉크도 마르지 않았는데, 벌써 한미 간의 해석이 다르다. 우리 정부는 30개월 이상 쇠고기는 (국민이 납득하기 전에는) 무기한 안 들여온다고 나발을 부는데, 미국은 무슨 소리냐며 모르쇠를 놓는다. 그저 잠정적인 연기일 뿐이란다. 대체 무엇을 보장받았다는 것인가.

 

미국은 동물기업 테러법이라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고 황당한 법안이 있는 나라다. 시민운동가가 방송에 나와서 "쇠고기 회사가 무언가 수상쩍은 짓을 하고 있소"라고 말하면, 집이 아니라 감옥에 보낼 수 있는 나라다. 쇠고기 회사 이익을 법으로 지켜주는 나라다. 미국 농무부란 데는, 광우병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자기 돈 들여서 모든 소를 광우병 검사 하겠다는 청원을 거부하고, 나아가 소송을 해서라도 막는 곳이다.

 

그런 농무부가 보증을 해? 뭘 보증하는가. 업계의 자율 규제를 보증한다는 거다. 잘 읽어 보면 보증은 '구라뻥'이다. 개별 기업이 우리가 이렇게 저렇게 해서 30개월 이상 소는 여기에 넣지 않았어요라고 적어오면 도장 쾅 찍어준다는 거다. 30개월 이상, 미만을 치아식별로 구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학계 정설이다. 대체 무엇으로 그것을 구분한다는 것인가.

 

일본이 부러워 본 적은 처음이라고들 했다. 나도 그랬다. 최소한 일본 정도의 규제와 검역주권을 확보한다면, 미국 쇠고기 들여올 수 있을 게다. 게도 구럭도 다 잃어 버린 지금, 미국의 온정에 기대 겨우겨우 국민의 외침을 무마시키려는 꼼수는 접기 바란다.

 

화병이 무서운 것은 풍병이 뒤를 잇기 때문이다. 풍병은 중풍이요 마목이며 불인이다. 중풍은 태풍이 휩쓸고 간 뒤처럼 옴몸이 황폐해진 병이다. 팔다리를 못쓰고 말도 못하고 자리보전하고 누워 똥오줌 받아내야 하는 병이 중풍이다. 불인이며 마목은 팔다리를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감각 장애가 나타나 뻣뻣해지고 가려워지고 감각이 죽어버리는 병이다. 기혈이 막혀 상하좌우로 소통이 되지 않는 것이다.

 

화병이 풍병으로 발전하지 않으려면, 막힌 기혈을 뚫어야 한다. 정문일침(頂門一鍼), 정수리 백회혈에 쇠를 갈아 만든 날카로운 침을 놓으면 정신이 후다닥 든다. 국민이 내리는 일침을 달게 받으라. 한의학의 고전, 황제내경에서는 대의는 나라의 병을 고친다 했다. 촛불이야말로 나라의 병을 고치는 바른 처방이다.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다. 마지막 경고를 흘려듣는다면, 살고자 일어선 국민은 촛불을 횃불로 봉홧불로 바꿔 들게 될 것이다. 끝끝내 국민을 거스른다면, 횃불은 이윽고 요원의 불길로 타오를 것이다. 나는 그것을 바라지 않는다. 우리 국민은 그것을 원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만일 그것이 현실로 나타난다면, 그에 대한 모든 책임은 온전히 이명박 대통령에게 돌아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한일수 기자는 참의료실현한의사회 회원으로 대전 두리한의원장입니다.

이 글은 한겨레신문 왜냐면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화병, #촛불시위,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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