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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토론의 목적은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쪽을 수세에 몰리게 하기 위함이라 하였다. 하지만 토론의 진정한 의미는 '다른 의견'을 의무적으로 들어야 함에 있다. <디워> 사건 때 평론가 입장을 최소한 '토론회'라는 공간에서는 대중들은 들을 수 있었다. 물론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가는 또 다른 문제이다. 토론을 일상의 자양분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은 '반대의견'을 꼼꼼히 듣고 이를 어떻게 반론해야 하는지를 고민한다. 그 고민이 지성의 성숙을 또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듣는 것'은 무척이나 힘들다. 그것도 자신의 주장과는 다른 소리를 듣는 것은 더 그렇다. 게다가 그 주장이 초등학생도 '반박'할 수 있는 어이없는 것이라면 더 그렇다. 다시 말해, 토론이 삶의 지성으로 재작동하기 위해서는 토론자들의 수준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사회에서는 대중의 뜻이 아닌 오직 '논리'에 의거하여 자신의 의견을 올곧게 피력하는 사람을 소위 '논객(論客)'이라 부른다.

보수진영에는 제대로 된 논객이 없는가!

최근 쇠고기 정국과 촛불시위는 모든 토론 프로그램의 단골 주제이다. 그리고 십중팔구 토론회의 승자는 대개 '좌파'라고 불리는 자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뛰어난 논객이어서 그런것은 결코 아니다. 상대방이 워낙 비논리적이기 때문이다. 친정부쪽이나 촛불시위의 불법성, 폭력성을 강조하는 집단들은 나름 새로운 식견을 보여주고자 하지만 언제나 한계에 못 미친다. 그래서 토론회는 언제나 싱겁다. 정확히 말해 토론회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들의 비논리성을 보자. 그들은 촛불시위에 나온 사람들 이면의 '배후'를 자꾸만 말한다. 그런데 시위참가자의 99%는 '그냥' 나왔는데 자꾸 배후가 있단다. 없다고 하여도 그래도 다 '조종' 당하는 거란다. 미칠 지경이다. 그 배후도 단순한 단체개념이 아니라 친북좌파 어쩌고 저쩌고다. 즉 한총련 깃발이 그 시위현장에 있었으니 너희들 다 이적단체의 하수인들 아니냐하는 논리다. 이게 뭔소리야?  

또 특정언론의 잘못을 지적하는데 자꾸 '다른 신문도 마찬가지다'를 되묻는다. 또한 그동안의 '사회적 공헌'을 운운한다. "너희들 잘못했잖아!"를 외치는데 "잘못했습니다"라는 이 짧은 표현이 그렇게 싫단다. 즉 다른 신문들의 오보에는 왜 그렇게 반응하지 않느냐, 국가적 기여가 충분하니 용서받아도 된다고 주장한다. 이게 논리란다. 얼마나 허탈한가.

문제는 토론회에서 소위 논객의 위치를 부여받은 자들이 이런 것을 물고 늘어지니 상대편 역시 그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다음 아고라' 댓글 수준의 방어밖에 할 수 없다. 즉 상대편의 의견을 듣고 그에 합당한 반론을 제기하면서 사회적 지성의 수준을 올려야 하는 그들이 결국 네티즌의 (지나간) 이슈를 넘지 못한다. 대중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 이상을 논해야 하는 자리에서 '당연한 것'을 다시 반복하니 이거 얼마나 속 터지는 일인가. 그만큼 지금 토론회에는 논객이 없다. 특히 스스로 토론의 격을 저하시키는 보수진영 패널의 수준은 논리적으로는 이제 설명조차 할 수 없는 비논리성 투성이다.

진성호 의원. 여전히 보수진영의 수준을 드러내다

진성호 한나라당 의원
 진성호 한나라당 의원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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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26일) 밤 MBC <100분토론>에 진성호 의원이 나왔다. 조선일보 기자 출신으로서 소위 '미디어'에 대한 안목이 있는 사람이다. 논객없는 보수진영에 새로운 논리를 제시해주길 기대했다. 그것이 옳든 그르든 말이다. 게다가 중앙일보, 동아일보와 같이 비교되는 것을 자존심 상해하는 조선일보 아닌가?

그렇다면 최소한 논리적으로 타당해야 한다. 예를 들어 조선일보의 왜곡보도와 시위대가 매일 쓰레기를 사옥 앞에 퍼붓는 것은 전적으로 다른 문제임을 지적해야 한다. 언론보도가 왜곡되면 대중들은 항의전화로 의견을 피력하거나 절독운동 혹은 사옥 앞에서 시위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기물을 파손'하는 것은 다른 문제임을 제시하는 것이 훨씬 논리적이다. 그런데 왜 조선일보 사옥만 파손하느냐는 식의 문제제기는 무엇인가?

또한 토론에 참여할 수준이라면 최소한 일반 대중들의 안목보다는 높은 식견을 가져야 한다. 즉 최근 연일 계속되는 시청 앞 보수단체의 연설수준보다는 높은 지성을 가진 자가 토론회에 나와야 하는 것이다.하지만 진성호 의원은 목청만 순진했을 뿐이지 그 내용은 기도회의 그들과 전혀 다를 것이 없었다. 높은 식견이란 '사건의 이면을 해석할 줄 아는 능력'이다. 다시 말해 사건만을 놓고 흥분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 이면의 메커니즘을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토론회에서 진성호 의원은 '다음 아고라'를 집단지성이라 칭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지적했다. 일부 네티즌들의 수준이 아무 몰상식하다는 것이 골자인데 이미 아고라 안에서 가혹할 정도로 왕따당하는 이들을 또 문제삼는다. 전혀 새롭지 않은 문제제기라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문제제기 자체가 사건의 표면에만 집착하는 결정적인 증거이다.

일부 관객이 물병 던졌다고 무관중 경기 해야 하나?

우선 아고라에 참여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집단지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 필요가 있다. 그저 자신의 몸에 가장 잘 맞는 매체에 의견을 낼 뿐이다. 기성언론과 달리 다음 아고라는 소통의 방식이 다르다. 누구나 주장할 수 있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가장 집단지성다운 모습이다. 즉 '하나의 의견'이 옳으면 그것을 추종(?)하거나 반대하는 세력이 생긴다. 그들은 또 그들의 공간을 찾아서 새로운 아지트를 마련한다.

보수언론들은 아고라에서 '다른의견'을 듣지 않는다라고 말하는데 이게 무슨 말인가? 지금 상황은 2MB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좀 더' 아고라에 몰릴 뿐이다. 그래도 다른 의견을 가진 자는 또 다른 공간을 만들어간다. 2주 전 '서강대녀'가 홍보한 것처럼 자기들만의 또 다른 아고라적 공간이 또 운영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렇게 대립적인 아고라의 의견들은 또 제3의 공간에서 치열한 설전의 근거가 된다. 즉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마니아를 모집하고 다시 재무장하는 것에 어떠한 '압박'도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가 있다면 홈 구장의 지나친 응원매너 정도가 될 것이다. 아~ 때론 역전패에 흥분해서 물병을 던지기도 한다. 물론 매너 빵점인 사람이다. 하지만 그가 물병을 던졌다고 '화려한 역전승을 펼쳤던' 어웨이 팀의 실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을 기다리던 '홈'으로 또 이동한다. 논리만 있으면 난감해야 할 쪽은 물병을 던진 자라는 것이다. 

결론인즉, 수십만명의 촛불시위의 메커니즘을 '다음 아고라의 어떤 댓글'에서 찾고 있는 그들의 수준이 정말 의심스럽다. 사직야구장에서 물병 던진 한 사람 때문에 롯데팬, 롯데야구단, 롯데 프론트까지 무조건 '욕먹어야' 하는가? 사건의 이면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이러한 것 때문이다. '댓글을 잠시 접고' 보자. '물병을 잠시 잊고' 보자. 평소 소통에 목말라하던 대중들의 논리적인 흐름이 보이지 않는가? 포스트시즌 진출에 목말라하는 롯데팬들의 열정이 프로야구 전체의 판도를 다시 만들고 있는 흐름이 보이지 않는가?

그런데도 그들의 논리는 간단하다. 물병이 나왔으니 앞으로 '롯데는 무관중 경기를 해야한다!' 이런 거다. 그런데 이런 논리가 토론회 단골 레퍼토리이다. 정말 남의 의견 듣는 것이 이렇게 힘든 줄 차마 몰랐다.


태그:#진성호, #100분토론, #보수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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