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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을대문을 지나 붉은 장미꽃과 어울린 동계고택의 사랑채
▲ 동계고택의 사랑채 솟을대문을 지나 붉은 장미꽃과 어울린 동계고택의 사랑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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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원산 자연휴양림에서 상천을 따라 위천에 이르면 조선시대 중기 강직하기로 유명한 동계 정온 선생의 고택이 있습니다. 동계 정온 선생은 광해군이 어린 영창대군을 증살(방에 장작불을 지펴 열기로 죽이는 방법)한 것이 부당하다는 상소를 올렸다가 제주도에서 10년간 유배생활을 했고, 인조 때 발발한 병자호란이후 척화를 주장하다 화의가 이뤄지자 낙향하여 위천의 모리재에서 곡기를 끊고, 연명하다 죽게 됩니다.

정온 선생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조선 인조가 하사한 솟을대문에 걸린 정려문입니다. 안쪽으로 사랑채가 보입니다.
▲ 동계고택 입구에서 본 솟을대문과 정려문 정온 선생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조선 인조가 하사한 솟을대문에 걸린 정려문입니다. 안쪽으로 사랑채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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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 정온선생 고택의 솟을 대문에는 '문간공동계정온지문'이라 적힌 정려문이 걸려 있습니다. 인조가 척화를 주장하며 절의를 굽히지 않았던 정온 선생을 기려 하사한 정문입니다. 동계 고택을 둘러보기 위해 솟을 삼문을 지나 사랑채에 들어섰습니다. 붉은 장미가 화사하고, 고택의 짙은 갈색 기둥과 흰 창호의 문, 그 문에 만들어진 완자살,정자살 등의 문양이 한데 어울어져 진한 옛스러움이 느껴졌습니다. 마당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고택을 둘러보겠다고 인사를 건네자 어디서 왔냐며 반갑게 맞아주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이 곳 동계 고택을 꿋꿋하게 지키고 계신 종부 어르신이었습니다.

이제 피어나는 꽃도, 지면서 열매를 맺는 석류도 보입니다.
▲ 동계고택 안채의 석류꽃 이제 피어나는 꽃도, 지면서 열매를 맺는 석류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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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 한 잔 하고 가라며 안채로 안내하셨고, 정성이 가득 담긴 커피와 주전부리를 내주셨습니다. 잘 정돈된 안채 마당에는 듬직한 장독들이 줄지어 서 있고, 채송화와 석류꽃들이 소담스럽게 피어 있습니다. 긴 오후 햇살이 쨍하게 내리쬐는 오후, 툇마루에 걸터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긴 오후의 넉넉한 여유를 느껴 봤습니다.

종부 어르신께서 정온 선생의 위패가 모셔진 사당을 보여주기 위해 문을 열고 있습니다.
▲ 동계 정온선생의 위패가 모셔진 사당 종부 어르신께서 정온 선생의 위패가 모셔진 사당을 보여주기 위해 문을 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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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이 들면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은 물론 쌀, 과메기와 노자까지 얹어주며 보냈다는 경주 최부잣집에서 시집을 오셨다는 이야기부터 동계 정온 선생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종부 어르신은 낯선 이방인들에게 정온 선생의 위패가 모셔진 사당 내부까지 보여주시는 호의까지 베풀어주셨습니다. 먹다 남은 주전부리까지 싸주시려 하는 것을 손사레치며 마다했습니다.

동계고택을 나오면서 많이 흐뭇했습니다. 많은 민속마을이나 고택들이 사람들이 살아간다는 이유로 폐쇄적으로 변해버렸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찾아오는 객들에게 호의를 베풀고, 따뜻하게 맞아줄 줄 아는 곳들이 남아 있다는 것에 대한 기쁜 마음이었습니다.

거창하면 떠오르는 곳이 바로 수승대입니다. 유적지라기 보다는 관광지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세세한 눈길로 바라봐야 할 곳들이 많이 있습니다. 수승대의 거북바위는 물론이고, 바위와 어울어져 단정하게 앉아있는 관수루를 지나 만나는 구연서원, 요수 신권 선생이 지은 요수정 등은 수려한 경관과 암반 위를 흐르고 적시는 위천천을 사이에 두고 조화롭게 앉아 있습니다.

퇴계 이황 선생의 시를 비롯해 많은 이들의 시와 이름이 새겨진 거북바위입니다.
▲ 수승대의 거북바위 퇴계 이황 선생의 시를 비롯해 많은 이들의 시와 이름이 새겨진 거북바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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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승대는 백제시대때 신라로 보냈던 백제의 사신을 송별하던 곳으로 원래는 근심을 떠나보내는 곳 이라는 수송대(愁送臺)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수송대가 수승대로 바뀌게 된 것은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퇴계 이황 선생이 유람을 나섰다가 처가가 있는 거창의 처가에 머물르며, 수승대를 들르겠다고 했다 합니다. 갑작스런 왕명으로 발걸음을 되돌리면서 한 수의 시를 보내게 됩니다. 그 시 속에 수승(搜勝)이라 대 이름을 새로 바꾸니..라는 문구가 나오는데, 그 이후로 수승대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고 합니다. 수승대의 거북바위에는 암각된 시문과 이름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습니다.

관수루 기둥중 하나는 비틀릴대로 비틀려 인상적입니다.
▲ 구연서원 관수루의 비틀어진 기둥 관수루 기둥중 하나는 비틀릴대로 비틀려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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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바위에 앞서 구연서원의 관수루가 가장 먼저 눈에 띕니다. 구연서원은 요수 신권 선생이 제자에게 학문을 가르치던 서당이었고, 요수 신권 선생의 사후에 서원이 되었습니다. 관수루는 정면3칸, 측면 2칸의 평범한 누각이지만 왼편에 놓인 커다란 바위와 어울려 마치 삼척의 죽서루의 축소판을 보는 듯 했습니다. 관수루는 구연서원의 문루로 조선 영조때 세워 졌습니다. 관수는 맹자에 나오는 말로 '물을 보는데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물의 흐름을 봐야 한다.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다음으로 흐르지 않는다'며 군자의 학문이 이와 같음을 알려주는 이름입니다.

굵은 누하주는 누각 전체를 듬직하게 받쳐 주고, 차마의 네 귀퉁이를 받치는 활주도 나름대로 작은 누각을 장대하게 보이는 역할을 합니다. 안쪽의 누하주는 자못 인상이 깊습니다. 마치 빨래를 짜 놓은 듯이 한참을 뒤틀린 기둥입니다. 마치 일부러라도 나무를 붙들고 비틀어 놓은 듯이 뒤틀린 곡선이 섬세하기 그지 없습니다. 뒤틀린 기둥은 꽉 압축되어 있는 듯 하여 오히려 더 튼튼해 보입니다.

구연서원의 뒷쪽에 자리잡은 사당채의 담장에 꽃이 아름답게 피어있습니다.
▲ 구연서원의 사당영역의 꽃담 구연서원의 뒷쪽에 자리잡은 사당채의 담장에 꽃이 아름답게 피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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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수루를 들어서면 넓은 마당 한쪽에 서원이름을 대표라도 하듯 커다란 돌거북 세마리가 힘겨울 정도로 큰 비석을 지고 있고, 앞으로는 커다란 배롱나무를 배경으로 구연서원의 현판을 건 강당과 사당이 앞뒤로 나란합니다. 서원치고 동,서재가 없는게 특이합니다. 사당 주변을 아우르는 꽃담장은 숨어있는 보석과 같습니다. 진흙으로 담을 쌓고, 기와편을 꽃모양으로 만들어 넣은 꽃담장입니다. 배롱나무의 꽃이 피어나는 7월이 되면 그 화사함을 넘겨 주겠지만, 지금은 구연서원 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입니다.

구연서원을 나와 위천천의 물줄기를 따라 오르면 금새 거북바위에 이릅니다. 퇴계 이황 선생이 보냈다는 시편도 이곳에 새겨져 있고, 당대 문인들의 시편과 이름들이 빼곡합니다. 마치 거북의 온 몸에 문신을 해놓은 흉칙한 모습같기도 합니다. 구연교를 건너면서도 거북바위에 적힌 글자들은 여전히 가득합니다. 시편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름을 새긴 것은 시대를 넘나드는 낙서문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아가면서 새겨진 시편과 이름에 대한 안내판 하나 만들어 세워 놓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구연교를 지나 위천천을 건너면 또 다시 요수 신권 선생의 흔적을 만나게 됩니다. 자신의 호를 따서 만든 요수정입니다. 맑은 계류가 거침없이 흐르고, 머리를 한껏 치켜든 거북바위의 전경이 손에 잡힐 듯 다가 옵니다.

수승대에서는 자연,인간,연극이라는 주제로 해마다 거창국제연극제가 열립니다. 올해로 20회를 맞는 거창 국제연극제는 오는 7월 25일부터 8월 10일까지 열린다고 합니다. 연극은 극장에서나 보는거라 생각했는데 거창 국제연극제는 수승대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위천천의 맑은 물속에서 피서를 즐기며 볼 수 있는 것이어서 새삼 구미가 당겨집니다.

황산마을은 수승대 건너편에 자리잡은 거창 신씨의 집성촌입니다. 조선 연산군때 요수 신권 선생이 이곳에 머물면서 집성촌이 되었다고 합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수령이 무려 600년이나 되는 느티나무가 마을 지킴이처럼 서 있습니다. 덩치가 어찌나 큰지 옆에 세워둔 오토바이가 작아보일 정도입니다.

길게 이어진 담장위로 기와가 얹혀져 있고, 그 틈으로 새생명이 소담스럽게 피어났습니다.
▲ 황산마을의 담장 위에 핀 꽃 길게 이어진 담장위로 기와가 얹혀져 있고, 그 틈으로 새생명이 소담스럽게 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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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공터를 지나 고가를 포근히 감싸고 있는 담장을 따라 마을을 들어섰습니다. 이끼가 낀 고풍스런 담장의 선이 길게 이어집니다. 세월이 절로 느껴지는 담장입니다. 긴 담장 위에는 그 작은 틈으로 생명의 싹을 틔웠고, 노란색 꽃들이 무리지어 피어났습니다. 황산마을의 마을 돌담길은 지난 2006년 고성 학동마을,산청 단계마을, 성주 한개마을,강진 병영마을 등 10여 마을과 함께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고가를 둘러보기 위해 신용원씨 댁에 들어섰습니다. 마당에 계신 분에게 인사를 드리고 사랑채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사랑채에 앞의 반송이 고택 사랑채의 고풍스러운 느낌을 한층 더해주고, 담장너머 수려한 산세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황산마을 신용원 고가의 사랑채에서 바라본 풍경입니다.
▲ 황산마을 고가의 사랑채에서 바라본 풍경 황산마을 신용원 고가의 사랑채에서 바라본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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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옥을 둘러보게 해달라고 부탁드리니 흔쾌히 그러라 하시며 자신의 집으로 안내하셨습니다. 안채에 인기척이 있어 사랑채만 둘러보고 서둘러 나왔던 신진범씨 댁이었습니다. 솟을 대문을 지나 사랑채 앞마당에는 철모르고 피어난 분홍빛 철쭉과 노란색의 기린초가 화사하게 피어 있고, 안채로 드는 중문 터를 지나 안채로 들어섰습니다.

냉장고에서 찬 음료수를 내오시며 줄게 별로 없다며 낯선 이방인에게 권하십니다. 이렇게 안채를 둘러볼 수 있게 해주시는 것도 고마운데 대접까지 받으니 더욱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더구나 곳간채 뒷편으로 안내하시더니 따먹어 보라고 하십니다. 무언가 하고 봤더니 빨갛게 익은 앵두였습니다. 오랫만에 먹어보는 앵두의 새콤함이 혀를 타고 흐릅니다.

익을대로 익어버린 누런 보리가 고택과 어울려 한껏 운치가 피어납니다.
▲ 황산마을에 무르익은 보리밭 풍경 익을대로 익어버린 누런 보리가 고택과 어울려 한껏 운치가 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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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마을 역시 농촌의 현실을 비껴갈 수 없었나 봅니다. 특별한 일을 하려해도 젊은이들이 없어 실행할 수 없다고 합니다. 실제로 황산마을 곳곳에는 잡초가 무성한 채 쇠락해가는 폐가들이 종종 눈에 띄고, 그런 곳들은 염소가 제 주인 양 무심하게 풀을 뜯고 있습니다. 황산마을에는 고택체험이 가능한 곳으로 사랑채도 통채로 빌려 옛 선현들이 즐기던 풍류를 여유롭게 즐길 수 있습니다. 평소때보다 휴가철 특히 국제연극제가 시작되는 주간에는 좀더 비싸다며 미안스러운 마음을 담아 말씀하십니다. 

거창의 위천에 자리잡고 있는 동계고택과 황산마을은 옛 전통과 문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입니다. 사는데만 집착하느라 많은 것을 잊고 사는 각박한 요즘 사람과 사람사이의 정을 느껴볼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습니다.여행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뜻하지 않은 아름다운 풍경과 뜻하지 않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아닌가 합니다. 이번 거창여행을 통해 소문난 여행지 외에다 다른 여러 곳을 둘러보긴 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거창 사람들의 따뜻한 인심이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동계고택, #정온, #황산마을, #수승대, #거북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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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글과 사진을 남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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