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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넘도록 하나의 촛불은 다른 하나의 촛불을 불렀다. 아니 촛불이 촛불을 찾아와 서로 부둥켜 안았다 해야 마땅할 것이다. 촛불은 세대를 성별을 국가를 초월해서 타올랐다. 가만히 촛불을 들여다 보면 '희생'이라는 언어가 읽혀진다.

 

고정관념은 그렇다. 초를 보면 나는 '희생'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제 몸을 태워서 주위를 밝히는 초의 본질 때문일 터이다. 또한 마음 상태로 표현하자면 '외롭다'이다. 가끔 나는 어두운 방에서 어둠에 갇혀 산다고 생각을 했다. 그럴 때면 형광등 스위치를 켜는 대신 촛불을 켜고 내 방을 밝힌 촛불을 오래 바라보곤 했다.

 

촛불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은 효순이, 미선이 사건으로부터 시작해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반대시위를 통해 천천히 바뀌었다. 촛불은 희생을 넘어 저항으로 거듭났다. 곧 촛불은 진실을 밝혀주는 빛이며 저항의 뜨거운 목소리가 되었다.

 

거리에서 "촛불아, 모여라"를 이구동성으로 외치며 촛불들은 연일 광장에 모여 집회 또는 문화제를 열고 있다. 세상에 무슨 큰 일이 일어났을까 궁금해서 해도 달도 별도 구름도 빗방울도 내려와 보고 혀를 차고 갔으리라. 촛불들이 모여 이토록 간절히 외치고 외쳤으므로 해도 달도 별도 구름도 빗방울도 내려와 촛불의 목소리에 귀 기울려 듣고 함께 놀다 갔는데 촛불이 그토록 보고 싶어 하는 당사자는 꼼짝달싹도 안하고 있으니 그것들은 틀림없이 혀끝만 쩌쩌, 쩌쩌, 쩌쩌, 쩌쩌, 쩌쩌 찼을 것이다.

 

촛불이 무서워서일까? 아니면 촛불을 무시해서 일까? 무섭다는 건 촛불에 타 죽을 수도 있을 두려움일 테고, 무시한다는 건 촛불 따윈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만함일 텐데 정말 그런 건가. 어쩌면 촛불을 모이게 한 당사자는 촛불과 만날 자격 혹은 수준 미달일 수도 있다.

 

요즘 나는 "짜증나서 못 살겠어"라고 자주 말한다. 꼬집어 말하자면 죽을 만큼 먹고사는 게 힘든 세상도 아닌데 촛불을 타오르게 한 당사자는 경제, 경제, 경제를 운운하며 경제를 살리겠다(지난날 어떤 택시를 타면 기사들이 앵무새처럼 대통령 때문에 경제가 망했다는 둥 사는 게 힘들다는 둥 열변을 토했는데 그때 만난 기사님들한테 나는 묻고 싶다. 요즘은 살만하세요?)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더니 졸병들은 너나할 것 없이 뉴타운 타령을 시작하고 여전히 당사자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한반도에 대운하를 판다 고집하고 나아가 공공기업과 의료보험 민영화를 한다고 하니 나는 더 못 살겠다. 경제를 살린다는 말과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말은 분명 나를 위한 게 아니다(그렇다면 누구를 위한 말인가?).

 

뿐만 아니라 당사자는 영어몰입식 교육과 함께 0교시와 심야보충수업을 허용해 입시전쟁터를 연출했으며, 졸속적이고 굴욕적인 한미 쇠고기 협상은 위험에 빠진 초에 불을 댕기게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이처럼 마음에 불을 댕기고 활활 타고 있는데 불 지른 자가 편안히 있을 수 있는지 의문이다.

 

불이란 무엇인가. 사전을 뒤적이면 불이란 명사로 물질이 산소와 화합해 높은 온도로 뜨거운 열과 빛을 내며 타는 것을 일컫는다. 물질은 절대 혼자서 불을 발생 시킬 수 없다. 불은 원시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인류에게 없어서는 안 될 난방과 조명을 선사해 주었다.

 

그러나 불을 잘못 다루면 무시무시한 화재를 불러왔다. 불은 분명 두 얼굴을 가진 신(神)일 수도 있다. 고로 나는 촛불을 '열(熱) 난 신의 소리'라 주장하고 싶다. 신의 소리는 조용하면서 세상을 채우는 아우성이다. 제 몸을 태우던 촛불은 마음과 마음을 하나로 모아서 거대한 빛을 뿜어내고 있다.

 

진실을 밝히는 촛불은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고 신자본주의에 저항하고 어떻게든 잘 살아보자고 하는데 당사자는 눈과 귀를 열려 하지 않고 촛불을 진정 시킬 기색조차 없어 보인다. 이러다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오지 않을까 싶어 참 걱정이다. 그냥 잘 모르겠으면 촛불이 가자고 하는 대로 가보면 안 되나.

덧붙이는 글 | 윤석정 시인. 2005년 경향신문으로 등단


태그:#촛불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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