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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에 있는 BBC 본사 건물.
 런던에 있는 BBC 본사 건물.
ⓒ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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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어떤 나라에도 BBC 같은 것은 없다. BBC는 높은 질과 그 영역과 범위, 국민의 신뢰에 있어서 독특하다…(중략)…BBC의 가치는 국가적인 가치로서 공정성·관용·역동성·창조성, 그리고 권력으로부터 독립성에 있다."

BBC에 관한 영국 정부의 최근 녹서(Green Paper) <모든 이를 위한 공공서비스 : 디지털 시대의 BBC(2006)>는 BBC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1922년에 창립되어 영국 근현대사와 함께한 BBC가 공정성과 다큐멘터리 등 심층 보도를 통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공영' 방송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BBC의 이같은 업적이 먼지 하나 없는 진공 상태에서 만들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권력과 자본은 BBC라는 거대 언론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계속해왔고, 이에 따라 BBC는 권력 및 자본과 보도의 중립성과 공정성 여부를 놓고 항상 긴장 관계를 유지해 왔다. 더욱이 BBC가 공영 방송의 틀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준 높은 수신료(연간 약 28만원, 2008년 기준)는 자주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그런데도 어떻게 BBC는 공영방송으로서 자존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BBC를 탐낸 권력자들... 초당적 반대와 여론 비판에 직면한 민영화

BBC는 역사적으로 권력자들이 소유하고 싶어했던 대상이었다. 마가렛 대처 총리는 방송의 위력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방송을 "이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형태"라고 말했다.

그는 집권 이후 BBC를 통제하기 위해 자신의 뜻에 맞지 않는 보도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또 "효율성을 증진한다"는 명분 아래 BBC 민영화를 추진하기도 했다. 이를 위해 1985년 피콕위원회를 설립, BBC의 재원 구조를 점검하도록 지시했다.

대처는 내심 이 위원회를 통해 수신료 방식을 없애고 민영화의 발판을 만들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위원회는 "BBC 라디오 1채널과 2채널은 민영화해야 한다"고 권고했지만, 중요한 재원에 있어서는 "기존 방식이 그나마 가장 나은 방식(least worst)"이라고 발표하면서 공적인 재원 조달 방법의 우수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대처는 이후에도 '새 채널, 강한 경쟁, 효율성 증진'을 골자로 하는 방송 백서를 발표하면서 BBC 민영화를 주장했다. 동시에 다른 상업 방송이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

하지만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의 장점을 높이 평가하면서 BBC를 자본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반대 의견이 만만치 않았다. 심지어 대처의 지지 기반인 보수당의 일부 의원들도 이러한 의견에 공감했다. 이는 '철의 여인' 대처의 파상 공세에도 BBC가 민영화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중요한 힘이 되었다.

BBC를 둘러싼 민영화 논란은 신노동당을 이끈 토니 블레어가 집권한 이후에도 제기됐다.

블레어는 경영 효율성과 재무 구조 안정성을 가장 중시했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방송의 공영성과 BBC가 그동안 쌓아올린 가치를 인정하는 국회의원들과 국민에 의해서 비판받았다. 여기에는 BBC 노조 및 방송 관련 노조(Broadcasting, Entertainment, Cinematograph and Theatre Union)들의 파업 등 내부의 저항도 한몫 했다.

 런던 BBC 본사의 TV 센터 건물.
 런던 BBC 본사의 TV 센터 건물.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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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칭 '진보적'이라는 노동당 총리의 거짓말 밝혀낸 BBC

문제는 민영화만이 아니었다. 세칭 진보적이라는 노동당도 BBC를 장악하려는 시도를 했다.

토니 블레어 총리는 2000년에 자신과 친분이 깊고 노동당 후보로 선거에 출마한 적도 있는 그렉 다이크(Greg Dyke)를 BBC 사장으로 임명했다.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인사가 BBC 사장을 맡아야 한다는 보수당과 언론의 강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블레어는 이를 강행했다.

많은 사람들은 다이크 사장의 편집권 침해 등을 우려했다. 하지만 그는 우려와 달리 이른바 'BBC맨'이 되었다. 비용 감축 및 일부 상업적인 프로그램 배치 문제로 마찰도 빚었지만, BBC 내규로 되어있는 보도의 공정성과 편집권 독립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면서 직원들과 호흡을 맞췄다. 이에 따라 BBC는 토니 블레어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언론 특유의 날카로움을 더했다.

그러던 중 BBC는 2003년 5월 '토니 블레어와 내각이 이라크 대량살상무기(WMD)의 위험성을 과장하는 방식으로 정보기관의 보고서를 임의로 조작했다'는 보도를 했다. 이에 정부가 발끈했고, 사안은 정부와 BBC의 사활을 건 진실 공방으로 이어졌다. 이 사안을 다룬 허튼 보고서는 2003년 1월 BBC가 이 보도와 관련해 철저한 내부 검증을 거치지 않았다며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이 결과에 대해 정치적인 논란이 많았지만 창사 이후 최대 위기를 맞은 BBC를 대신해 다이크 사장은 스스로 책임을 지고 깨끗이 사표를 냈다. 그는 고별사에서 "BBC 사장으로서 내 유일한 목표는 우리 편집권을 방어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후에 다이크 사장은 노동당의 재집권을 막기 위해 공개적으로 노동당을 비판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의 이라크 전쟁 참전에 관한 진실은 다르게 나타났다. 2004년 7월 "영국 정부의 이라크 WMD 관련 정보엔 심각한 결함이 있었다"는 버틀러 보고서가 발표된 것.

또한 BBC는 2005년에 방영된 <이라크와 토니 그리고 진실>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미국이 내세운 이라크 WMD 제거가 전쟁의 진정한 목표가 아니라 이라크의 정권을 인위적으로 바꾸기 위한 전쟁이었음을 블레어 총리가 이미 알고도 참전의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해왔다고 보도했다. 이 방송은 블레어 총리를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BBC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계기가 됐다. BBC는 지금도 권력 견제 역할을 충실히 하며 고든 브라운 총리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고 있다.

'공영방송의 모범'은 거저 이뤄진 게 아니다  

최근 한국 정부는 방송통신위원회를 통해 KBS·MBC·YTN 등 방송에 대한 노골적인 장악을 시도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아울러 출범 초기부터 공영방송인 KBS 사장에 대한 사퇴 압력이 여당 안팎에서 거셌다.

그러나 최소한 영국은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무조건 물러가라는 식으로 무조건 몰아붙이지는 않는다.

공영방송의 전범으로서 BBC의 빛나는 업적은 그냥 이뤄진 게 아니다. 공영방송의 가치와 그 우수성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무수한 노력과 저항을 통해 만들어졌다. 비싸지만 수신료 시스템을 유지하고 양질의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지지해준 국민과 국회의원 등 BBC 바깥사람들의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울러 권력과 자본에 맞서 편집의 독립권을 확보하려는 BBC 노조와 임원진 등 내부 구성원들의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그렇지 않았다면, BBC는 이미 권력의 손아귀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BBC의 인터넷 생방송 뉴스.
 BBC의 인터넷 생방송 뉴스.
ⓒ 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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