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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성에 있는 무인 양심가게. 마을사람들이 가게 안에서 소주 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전남 장성에 있는 무인 양심가게. 마을사람들이 가게 안에서 소주 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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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이리 와서 술 한 잔 하겨.”
“아, 저요. 운전하고 왔는데요.”
“날도 더운데 조금만 혀. 맥주 할 거여 소주 할 거여.”
“고맙습니다. 맥주 조금만 주실래요.”

처음 본 사람한테 대뜸 술을 권한 곳은 주인 없이 운영되는 ‘무인 양심가게’였습니다.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단전리 신촌마을에 있는 이 가게 안에서 과자 한 봉지 터놓고 낮술을 들고 있는 분들입니다. 맥주 한 잔을 받고서야 서로 ‘신원 확인’에 들어갔습니다.

다짜고짜 술을 권한 분은 마을사람이었습니다. 그 분과 함께 술잔을 들고 있는 분들은 대처에서 바람 쐬러 온 사람이었습니다. ‘가까운 곳에 가서 시원한 맥주나 한잔 하자’며 들른 곳이 양심가게였답니다.

대처에서 온 분들은 양심가게 방문이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소문으로만 듣던 양심가게를 직접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습니다. “아직도 이런 곳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고까지 했습니다.

함께 간 슬비와 예슬이가 양심가게에서 과자를 고르고 있다.
 함께 간 슬비와 예슬이가 양심가게에서 과자를 고르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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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슬이가 과자와 음료수 값을 나무로 만든 금고에 직접 넣고 있다. 금고 위에는 외상장부가 놓여 있다.
 예슬이가 과자와 음료수 값을 나무로 만든 금고에 직접 넣고 있다. 금고 위에는 외상장부가 놓여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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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인 양심가게가 문을 연 건 지난 2005년 봄입니다. 경영난으로 문을 닫은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주민들이 주인 없는 가게로 운영하면서 시작된 것입니다. 이 가게가 입소문을 타면서 언론보도로 이어졌습니다.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 왔습니다. 현장체험 학습공간으로 이만한 데가 없다며 아이들을 앞세운 젊은 부모들이 특히 많이 찾았습니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지금도 날마다 외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광주나 전라도는 물론이고 강원도, 제주도에서도 찾아온다고 합니다. 가게를 둘러본 사람들은 또 “아직도 이런 곳이 있다”느니 “우리 사회는 아직 살 만한 곳”이라느니 하면서 저마다 감동을 안고 돌아간답니다.

무인 양심가게는 여전히 마을사람들의 자랑이었습니다. 농촌에 살면서 맛보는 뿌듯함입니다. 농사일을 끝낸 주민들은 양심가게와 그 옆 마을회관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외지인들이 보이면 ‘내 식구처럼’ 언제나 반갑게 대해줍니다. “농촌이 다 그렇다”며 “혹시 좋지 않은 것을 보더라도 슬쩍 눈 감고, 좋은 것만 보고 가라”는 말도 잊지 않습니다.

이 가게는 한때 도난사건이 터지면서 홍역을 치렀습니다.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세 정상을 되찾았습니다. 도난사건은 어린 학생들의 호기심 어린 행동으로 밝혀지면서 잠시나마 설치했던 가짜 CCTV도 철거했습니다.

주민들은 당시 속이 많이 상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격려와 응원을 해준 게 큰 힘이 됐다고 합니다. 심지어 피해 입은 금액을 후원하고 싶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마을사람들은 정중히 거절했답니다.

무인 양심가게의 상징인 나무금고와 외상장부. 장부에 적힌 글씨는 외상의 내용이고, 볼펜으로 다시 찌-익 그은 것은 외상했던 것을 갚았다는 표시다.
 무인 양심가게의 상징인 나무금고와 외상장부. 장부에 적힌 글씨는 외상의 내용이고, 볼펜으로 다시 찌-익 그은 것은 외상했던 것을 갚았다는 표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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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외상장부를 뒤적여 봤습니다. 급할 때 물건을 먼저 가져간 다음 돈을 갚고 볼펜으로 찌-익 그은 흔적이 여러 군데서 보입니다. 물건 주문도 여전합니다. 감기약을 사달라는 주문도 있고, 호빵 좀 갖다 놓으라는 글씨도 보입니다. 반듯하지 않고 맞춤법에도 어긋난 글귀들이지만 절로 입가에 웃음이 머금어집니다.

그 사이 가게에 변화도 있었습니다. 초기 동전을 담아뒀던 비누곽이 없어지고 동전교환기가 설치돼 있었습니다. 장성농협에서 선물한 것이랍니다. 싱크대는 면사무소에서 설치해 주었답니다. 마을사람들끼리 술 한 잔 나누는 기쁨을 맛보라고. 담배자판기는 KT&G에서 그냥 세워놓았답니다.

24시간 불을 밝히지 않은 것도 달라진 점입니다. 한밤중에 찾아올 손님도 없는데 부러 불을 밝히면 너무 아깝다는 게 이유입니다. 평소 근검과 절약이 몸에 밴 마을사람들의 결정이 고유가 시대를 맞아 더 빛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1년여 만에 다시 찾은 무인 양심가게는 여전히 정겹고 아름다웠습니다. 마을사람들은 여전히 양심껏 가져다 먹고 양심껏 계산을 하고 있었습니다. 또 외지인들은 온몸으로 감동을 하면서 마을사람들의 애틋한 정까지 듬뿍 안고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농사일을 끝낸 신촌마을 사람들이 무인 양심가게 앞에 앉아 휴일 오후시간을 즐기고 있다.
 농사일을 끝낸 신촌마을 사람들이 무인 양심가게 앞에 앉아 휴일 오후시간을 즐기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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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무인가게, #양심가게, #신촌마을, #무인양심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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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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