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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20일 오후 청와대에서  대통령실장과 수석 인선내용을 발표한 후 인사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20일 오후 청와대에서 대통령실장과 수석 인선내용을 발표한 후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조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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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황식 대법관
ⓒ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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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이른바 인적쇄신이 한창 진행 중이다. 대통령실장과 수석비서관 등 청와대 참모진 인사가 20일 발표되었고, 총리⋅장관 등 내각도 어떤 방식으로든 조만간 새로 꾸려질 것 같다.

그런 가운데 법원이 난데없이 정부 인사에 끼어들었다. 김황식 대법관이 감사원장으로 내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일부 언론은 '확정'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김 대법관의 임명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현직 대법관이 임기 도중에 정부의 고위직으로 간 경우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어서 법원 안팎에서 말들이 많다. 지금은 정치인이 된 이회창씨가 대법관 임기를 5개월 정도 앞두고 김영삼 정부의 감사원장으로 간 사례가 유일하다.

김 대법관은 74년 법관으로 임용된 이래 30여 년 동안 판사로 일해왔고, 2005년 11월에 대법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런데, 임기(6년) 절반도 채우지 못한 채 갑자기 감사원행을 택한 것이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판사는 "(김 대법관의 감사원행은) 본인의 판단에 불과할 뿐"이라며 애써 의미를 축소했지만 "이번 일로 법원이 받을 타격이 적지는 않다"고 우려했다.

곰곰 한 번 생각해보자. 사법부의 최고법관이 임기 도중에 정부의 고위직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 맞는가.

대법관의 감사원행, 사법부 독립 훼손 우려

우리나라 헌법을 보자. 입법권은 국회에(40조),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66조 4항),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101조)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것이 누구나 아는 삼권분립의 원칙이다.

국가의 권력을 입법·행정·사법으로 나누고, 상호 견제·균형을 유지하여 권력의 집중과 남용을 방지하려는 원리이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국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다.

그 중에서 특히 사법부의 독립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해방 이후 군사정부 시절까지 법원의 판결이 결과적으로 정권을 옹호하는 역할을 해왔던 경우가 많았다. 특히 시국 사건 등 국가와 관련된 소송에서 국민보다는 정권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군사정부 시절 일부 소신있는 판사들이 시국사건에 무죄를 선고하거나 검찰의 구속영장청구를 기각하여 뒷조사를 당하고 협박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버텨오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의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지금은 어떤가. 최소한 형식적으로는 정부가 법원에 간섭하고, 법원이 정부의 입장을 고려하는 일은 없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사법불신'이라는 말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법원이 국가와 가진 자를 위한 기관이라는 오해를 사고 있기 때문이다.

대법관이 임기중에 감사원장으로 갈만큼 한가한 자리인가

거창하게 삼권분립과 사법부의 독립을 얘기한 것은 이것이 아직도 한국 사회가 해결할 과제로 남아있어서다.

법원이 국가기관의 한 축으로 역할을 하려면 특정 정권이나 정치세력의 영향력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국민도 그것을 간절히 원할 것이다.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대법원 본관.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대법원 본관.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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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다시 사법부의 독립을 훼손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치권력에 휘둘린 사법부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수세 국면을 벗어나고자 사법부의 최고법관에게 자리(감사원장)를 제안했고, 대법관은 결과적으로 그 손을 잡은 셈이다.

언론 보도를 보니 "김 대법관을 후보로 놓고 청와대가 인사검증을 벌인 결과 큰 결격사유가 없어 본인에게 감사원장 내락을 통보했다"고 한다. 또한 지역 안배(호남)도 고려한 인사란다.

물론 대통령의 인사권은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기관의 한 축인 사법부의 고위법관이 행정부로 자리를 옮겨 사법부 독립과 재판권 행사에 지장을 초래한다면,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현 정부의 인적 쇄신이 3권 분립을 훼손하여 추진할 만큼 절박한가. 아니면 대법관이라는 직책이 임기 도중 감사원장에 눈을 돌릴 만큼 비중없고 한가한 자리인가.

정부의 인사부담은 덜겠지만, 사법부 불신은 커질 수도

법원은 정부의 공권력 행사가 적절했는지 판단하는 유일한 기관이다. 또한 정부의 정책이 적법한지,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았는지 판단하는 것도 법원의 몫이다. 따라서 법원의 판결은 정부의 정책에 제동을 걸 수도 있고, 국민의 권리를 침해한 공권력 행사에 손해 배상을 내리는 경우도 있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수사기관에서 강압수사로 인권침해를 받았을 때, 국가의 무리한 법 집행으로 개인의 재산과 자유를 침해당했을 때 호소할 수 있는 기관은 어디인가. 바로 법원이다. 법원을 인권의 최후 보루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대법원의 판결의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대법원 판례는 우리 사회에서 사실상의 구속력을 지닌다. 정치·경제·문화 등 사회전반에 관련된 사건들은 대법원 판결을 통해 합법이 되기도 하고, 불법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엊그제까지 국민과 정부 사이에서 심판을 보던 사람이 정부로 발길을 돌렸다면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혹시 국민들은 법원 역시 정부의 편이라는 오해를 하지는 않을까.

굳이 책임의 비중을 따지자면 정부보다는 김 대법관 자신이다. 청와대로선 사람 한 명이 아쉬운 마당에 누구에겐들 손을 내밀고 싶지 않았으랴. 하지만 헌법으로 임기와 신분이 보장된 김 대법관은 신중하게 처신했어야 한다.

신뢰를 쌓기는 어렵지만 잃는 것은 한순간이다. 그는 자신의 처신 때문에, 사법부가 마치 정부의 정책을 지지하거나 동조하는 기관인 것처럼 비취질 우려가 있다는 것을 몰랐을까. 법원 내부에서도  "사법부 역시 정치적"이라는 오해를 살 수 있는 나쁜 선례가 되었다고 걱정한다.

이번 일로 정부의 인사 부담은 덜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국민은 소신있는 대법관을 원한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 문 위의 '정의의 여신상'. 한 손에는 저울을, 다른 한 손에는 법전을 들고 있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 문 위의 '정의의 여신상'. 한 손에는 저울을, 다른 한 손에는 법전을 들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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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취임사에서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현하는 재판을 할 수 있도록 신명을 바쳐 최선을 다하겠으며 국민의 기본권 보장, 소수자 배려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겠다"던 김 대법관은 무슨 이유로 30여 년간 지켜왔던 법관 자리를 박차고 나가게 되었는지 공개적으로 밝혀야 한다. 

김 대법관이 정말로 국가와 국민을 사랑한다면, 감사원장으로 가는 것이 급선무가 아니다. 오히려 판결로써 '전관예우' '유전무죄'의 오명을 쓴 사법부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힘을 썼어야 한다.

국민들은 정권이 어려울 때 대법관이라도 나서 정권에 힘을 실어주기를 원할까, 아니면 대법관이 임기동안 소신 있는 판결로 정부를 견제하고, 국민의 권리를 지켜주기를 원할까. 김황식 대법관의 답변을 듣고 싶다.

임명절차를 지켜봐야겠지만 어쨌거나 이번 감사원장 인사에 삼권분립의 원칙은 없었다. 물론 국민에 대한 배려도 없었다. 그저 청와대와 어느 대법관의 밀실교감만 있었을 뿐이다.

이번 사건은 역설적으로 대법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었다. 국민은 정권의 '구원투수'가 아닌 소신 있는 대법관을 원하고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용국 기자는 법원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대법관, #감사원, #감사원장, #사법부 ,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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