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부다 성을 오르는 길에서)
▲ 부다페스트의 연인 (부다 성을 오르는 길에서)
ⓒ 양학용

관련사진보기


헝가리로 가는 길. 국경을 넘어서자 도저히 유럽이라고 생각지 못할 만큼 도로가 울퉁불퉁 엉망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유럽과는 다른 점이 또 하나 있다. 바로 국경 관리사무소. 그들은 여권을 검사하고 자동차보험증까지 요구했다.

성가시기는커녕 반갑기까지 하다. 출입국도장은 물론이고 국경관리소 건물조차 볼 수 없었던 다른 유럽 나라들과는 사뭇 달랐다. 처음으로 이방인에게 관심(?)을 보이는 나라에 들어선 것이다. 직원이 우리 여권에 가득한 아시아 여러 나라의 비자를 뒤적이며 재미있어하는 모습도 정겹고, 도로에 온통 구멍이 난 도로도 오늘은 좋았다.

사실 아내와 난 네팔 산골아이들의 호기심어린 눈동자나 인도 삐끼들의 집요한 치근거림, 이란이나 터키 등 아랍국가 남성들의 이국여성에 대한 집적거림까지도 그리워질 지경이었다. 거리에서 만나는 유럽 사람들은 여행자에게 철저하게 무관심했다.

유럽은 유적이나 박물관이 아니라도 거리든 지하철이든 보고 배울 것들이 넘쳐나는 합리적인 이성의 제국이었지만 여행자를 건조하게 만들었다(결정적으로는 이틀 전 오스트리아 빈에서 21유로나 하는 불법주차 벌금딱지를 먹었기 때문이다. 주차비 아끼려고 도심에서 도보로 1시간이나 떨어진 주택가에 주차했다가 당한 일이라 더 약이 오른 상태였다).

...
▲ 오스트리아-헝가리 국경 ...
ⓒ 양학용

관련사진보기


부다페스트Budapest를 향하던 중 주유소에 들렀다. 독자들은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유럽의 주유소는 주유를 해주는 사람이 없다. 본인이 차에서 내려 원하는 만큼 주유하고 카운터로 가서 주유기 번호를 대고 요금을 지불하는 방식이다. 카운터에는 콧수염을 기르고 좋은 웃음을 가진 중년의 남자가 있었다.

"하이!"
"하이, 프렌드!"

(부다페스트의 밤)
▲ 가로등과 작은 자동차 (부다페스트의 밤)
ⓒ 양학용

관련사진보기


안녕, 친구! 아, 얼마 만에 들어보는 살가운 인사말인가. 진작 국경에서부터 알아봤지만. 이국인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민족, 헝가리에 들어섰다.

"3번이요. 얼마예요?"
"5000피아트(20유로 정도)네요. 어느 나라에서 왔죠?"
"어디일 것 같아요? 한 번 맞춰보세요."
"음… 당신은, 틀림없이 베트남사람입니다. 맞죠?"
"엥?…"

아시아를 여행하면서는 가는 곳마다 현지 사람 취급을 당하기도 하고 이후 미국에서는 남미사람으로 오해받기도 했지만, 유럽에서 베트남인 소리를 듣기는 또 처음이다.

여행이 길어지면서 얼굴이 새까맣고 샌들에 반바지에 반팔 티셔츠를 입은 내 몸매가 워낙 호리호리해서일까? 아니면 헝가리에 베트남 이민자가 많은 것일까?   

사람들은 나를 대게 중국인이나 일본인, 혹은 한국인으로 알아보는데, 여러 번 겪다보니 어떤 기준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방금 샤워한 얼굴로 선글라스를 끼고 나가면 틀림없이 일본인, 부스스한 머리로 꾀죄죄한 옷차림일 땐 또 영판 중국인 소리를 듣게 된다.

그리고 중간쯤일 때가 한국인이다. 지리상의 위치도 경제력도 중간인데, 재밌는 일이다. 우리가 서양인들을 나라별로 구분 못하듯이 동양인의 얼굴을 따로 알아볼 수 없는 그들의 선입견이겠지만. 

(헝가리, 부다페스트)
▲ 오스만제국의 온천 (헝가리, 부다페스트)
ⓒ 양학용

관련사진보기


부다페스트는 온천으로 유명한 도시다. 아내와 난 도착해서 곧바로 온천으로 향했다. 중국을 지나고 나서 탕 속에 몸을 담가본 적이 없으니 우린 목욕에 목말라 있었다. 가이드북에 나오는 많고 많은 온천중에서 '남녀 따로'인 곳과 너무 비싼 곳을 제외하고 15세기 오스만제국 때에 지어졌다는 오래된 온천 중에서 한 곳을 선택해 찾아갔다.

왕궁이나 성전이라고 해도 될 만큼 큼직하고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ᄆ'자 모양으로 둘러서 있고 그 가운데에 3개의 야외 풀장이 들어앉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수영을 하고 일광욕을 즐기거나 아니면 그저 온천풀장에 몸을 담그고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광경은 풀장 안에서 체스를 두고 있는 이들이다. 아마 세계의 내놓으라하는 한량 중에서도 으뜸이 아닐까.

그리고 'ㅁ'자 모양의 건물에는 각기 다른 온도의 탕과 사우나실, 샤워실과 탈의실 등이 있었는데 우리 부부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것이 있었다. 샤워실 칸막이 아래로 방금 사람들의 몸을 이탈한 '때'가 살살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아, 그랬다. 이 나라 사람들이 '때'를 밀고 있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온천에서)
▲ '때'를 미는 민족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온천에서)
ⓒ 양학용

관련사진보기


어느 책에서 본 기억이 있다. 세계에서 때를 미는 목욕문화를 가진 민족은 한국인과 터키인뿐이라고 했던가. 이곳 헝가리에는 터키인, 그러니까 오스만제국의 문화가 남아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우리 부부는 신이 났다. 여행 떠나 처음으로 피부가 벌겋게 변하도록 때를 벅벅 밀었다. 아내와 나는 때와 함께 그간의 여독도 다 씻겨 내려간 듯이 환한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었다. 그리고 길 위에서는 참 작은 것에 행복해한다는 사실에 또 웃었다.

다음날 아침 '영웅광장'에서부터 본격적인 부다페스트 관광에 나섰다. 그곳에서 한 무리의 한국 관광객들을 만났다. 관광버스에서 우르르 쏟아지는 한국인들. 너무 반가운 마음에 한걸음에 달려가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한국 분들이죠? 어디에서 오시는 길이예요?"
"……."

그런데 그들은 꾀죄죄한 내 행색을 아래 위로 훑어보더니 "프라하요"라고  짧게 답하고는 사진을 찍느라고 바쁘다. 이런 썰렁함이라니. 내가 뭘 구걸하는 것도 아닌데 저런 눈빛은 또 뭐람.

10분 후, 가이드가 출발한다고 재촉하자 또 우르르 버스에 올라탄다. 일주일에 대여섯 나라는 돌아봐야할테니 내가 이해하자고 생각해보지만 여간 섭섭한 게 아니다. 헝가리 사람들도 "안녕, 친구!"라고 마음을 주는데 하물며 그리운 고국 땅의 바람을 싣고 온 사람들이….

(헝가리, 부다페스트)
▲ 영웅광장 (헝가리, 부다페스트)
ⓒ 양학용

관련사진보기



(부다페스트)
▲ 헝가리에서 가장 오래된 지하철역 (부다페스트)
ⓒ 양학용

관련사진보기


꿀꿀한 마음으로 공원을 지나고 박물관을 지나 '부다' 성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은 버스정류장에서, 헝가리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지하철역에서 각자의 일터로 향하고 있었다. 별로 바쁠 것 없다는 사람들의 눈빛이 여행자를 위로한다. 

(부다 성 창틀 사이로 내려다본 다뉴브 강과 국회의사당)
▲ 아, 부다페스트 (부다 성 창틀 사이로 내려다본 다뉴브 강과 국회의사당)
ⓒ 양학용

관련사진보기


부다 성은 대단했다.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다뉴브 강과 고색창연한 도시의 풍경은 과연 으뜸이었다. '아, 부다페스트!' 짧은 감탄사 외엔 더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저 강을 따라 내려가면 루마니아 불가리아를 거쳐 바다로 갈 수도 있고, 강을 거슬러 오르면 독일까지 여행할 수도 있다.

강이 흐르는 도시의 풍요로움을 생각하며 성에서 내려오다 또 다른 풍요로움을 만났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언덕길 가장자리에 야생초가 자라고 있었는데, 그 자리의 아스팔트를 둥근 모양으로 누군가 잘라낸 것이다.

'어떤 사람일까.'

마치 아스팔트 작은 구멍이 화분인 것처럼 예뻤다. 아내는 쪼그리고 앉아 푸른 생명의 대견함을 쓰다듬는다. 그리고 야생초에게 콘크리트 화분을 만들어준 이름 모를 이에게도 고마움의 인사를 전한다. 아내와 난 아마도 이 작은 감동 하나로 부다페스트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아스팔트에 생명을 심는 사람들을 그리워할 지도 모르겠다. 여행자는 작은 일에 감동하는 법이니까.

이튿날, 부다페스트를 빠져나와 루마니아를 향해 달리던 중 우리 애마가 탈이 났다. 국경을 200㎞ 정도 남겨둔 한 시골마을을 지날 때였다.

"뿌다다당. 덜컹. 끼이이이."

갑자기 엔진소리가 경주용 차처럼 우람해지는가 싶더니 운전대가 요란스럽게 떨렸다. 그리곤 쇳덩어리가 도로를 긁는 소리가 났다. 차를 도로 한 편에 세우고보니, 아뿔싸! 애마의 배기관이 두 동강이 되어 덜렁거리고 있었다. 용접했던 흔적이 남아있는 걸로 보아 왕년에 치명상을 입고 봉합수술을 받았던 것이 틀림없었다.   

(헝가리에서)
▲ 병원에 간 애마 (헝가리에서)
ⓒ 양학용

관련사진보기


11살 먹은 중고 애마의 첫 고장이었다. 그런데 이런 시골 마을에 정비소가 있을라나? 조심스레 운전해서 마을로 들어섰다. 시골 마을에 난데없는 동양인의 출현으로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하하.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온 여행자예요. 그런데 이 마을에 정비소가 있나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보지만 말이 통할 리 없다. 별 수 없이 한 청년을 끌고 와서 차 밑으로 고개를 숙이게 해 애마의 상처를 보여주었다.

그제야 그가 어디론가 안내한다. 다행히 자동차정비소가 있었고 우리 애마는 30분 정도의 치료(용접)를 받았다. 치료비용은 5000피아트(20유로 정도). 이만하면 천만다행이었다.

내내 따뜻한 관심을 보내줬던 헝가리가 떠나는 여행자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려는 것이었을까. 잊지 말라고. 고마워, 헝가리. 우리 부부가 널 잊을 리가 있겠니. 우리들은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때'를 미는 민족이잖니. 하하. 그리고 애마야 부탁 하나 하마. 더 이상 아프지 마라. 아직 나그네 갈 길은 멀단다. 

덧붙이는 글 | 양학용 기자는 아내 김향미 님과 함께 2003년에서 2006년까지 3년 동안 배낭 하나씩 둘러매고 세계여행을 했습니다. 그 중 유럽에서는 중고차를 타고 6개월 동안 유럽 19개국을 여행했습니다.
기자의 개인 블로그: http://blog.naver.com/wetravelin



태그:#중고차여행, #유럽여행, #헝가리, #부다페스트, #오스만제국의 온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평화의 섬 제주에서 살고 있다. 나이 마흔이 넘어 초등교사가 되었고, 가끔 여행학교를 운영하고, 자주 먼 곳으로 길을 떠난다. 아내와 함께 한 967일 동안의 여행 이야기를 묶어 낸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이후,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 <아이들, 길을 떠나 날다>, <여행자의 유혹>(공저), <라오스가 좋아> 등의 책을 썼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