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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9일)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 특별 기자회견이 있었다. 취임 100일이 갓 지났는데 벌써 두 번째로 국민에게 사죄했다. 구체적인 사정이야 어떻든 정상적인 방법으로 선출한 대통령이 이렇게 자주 국민에게 사죄하는 상황 자체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현실로 받아들이기 착잡하다.

 

그러나 이날 이명박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그 착잡함조차 눌러버릴 정도로 실망스러웠다. 도대체 이명박 대통령은 무슨 생각으로 국민 앞에 섰을까?

 

오직 '30개월 이상만 안 들어오면 되는 것 아니냐' 강변하는 대통령

 

먼저 이번 사태의 핵심인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 문제를 살펴보자.

 

이명박 대통령은 '30개월 이상 쇠고기는 절대 들여오지 않겠다'고 했다. 누차 강조하지만 30개월령 이상의 쇠고기는 이번 부실 협상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30개월 미만 소의 위험물질이 아무런 제한 없이 들어오고, 광우병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된 미국의 사료조치는 오히려 후퇴했다. 협상에 위배된 상황이 발생했거나 광우병이 실제 발생했을 때 한국정부가 취할 수 있는 중요한 주권적 조치들은 모두 포기했다.

 

국민이 분노하는 것은 이 모든 엄청난 일을 불과 몇 시간만의 워싱턴 비밀회담에서 뚝딱 해치웠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오직 30개월 이상만 안 들어오면 되는 것 아니냐고 지금 강변하는 것이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을 보면 지난 대선후보시절 그가 각종 의혹에 시달리던 때가 떠오른다. 여성비하 발언, 독립투사 비하 발언 같은 온갖 실언들, 자녀들 위장취업과 위장전입 문제 등 지도자로서의 자질이 크게 의심되던 그 모든 검증 사안들이 BBK 한방으로 덮여버렸다.

 

당시 보수언론과 한나라당과 이명박 캠프는 마치 BBK 문제가 해결되면 이명박 후보의 모든 의혹과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처럼 선전했다. 그러나 BBK 의혹이 해소된다고 해서 그의 무능함과 부도덕함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가 그의 취임 100일간 똑똑히 봐 왔던 것과 같이.

 

마찬가지로, 30개월 이상의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오지 않는다고 해서 이번 부실 협상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과연 이 점을 알고 있을까? 알고도 30개월 문제만 언급했다면 그는 또 한 번 국민을 크게 기만하는 것이다.

 

만약 그가 협상의 구체적인 내용과 국민이 크게 분노하는 이유가 정말 '30개월령'에만 있다고 믿는다면, 그는 자신이 무엇을 협상했는지조차도 분간하지 못하는 것이거나 혹은 말로는 소통을 말하면서 실제로는 컨테이너로 장벽을 여전히 쌓고 있는 이중인격자일 뿐이다.

 

여전히 자동차·반도체가 국민 생명·건강보다 더 중요한 대통령

 

더 나아가서 이명박 대통령은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통상교역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이 살아남으려면 쇠고기 시장을 내어줄 수밖에 없다고 변명했다. 그러니까, 우리 국민의 생명과 건강보다는 자동차 한 대, 반도체 하나가 그에게는 더 중요한가 보다. 한 나라가 무역을 해서 먹고사는 가장 근본적이고 본원적인 이유는 그 구성원이 풍성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함이다. 그것이 바로 국가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무역을 위한 무역만을 생각할 뿐이다. 그것이 결국 국민에게 이익이 될 것인가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CEO 출신인 그는 아마도 무역을 통해 기업이 얼마나 많은 이익을 남길 것인가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수십 년간 사장님을 지낸 그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무역과 장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만 할 줄 알았지, 그것이 결국 무엇을 위한 것인가는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한 것 같다.

 

우리가 그렇게 쇠고기 시장을 내어준 세계 최강국인 미국은 전쟁터에서 허망하게 죽어 간 자국 국민의 시신 하나를 찾기 위해서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고 수많은 국익 손해를 감수한다. 버젓이 산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일부러 큰 위험에 빠뜨리는 어느 이름없는 약소국과는 비교 자체가 부끄럽다. 그것이 바로 '국가의 격'이다.

 

이명박 대통령 자신의 철학과 인생의 격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대한민국 국민과 이 나라의 품격은 그렇게 천박하지 않다. 적어도 우리는 자동차 한 대 더 팔기 위해 후손들의 미래를 담보로 거는 따위의 도박을 하지는 않는 국민이다. 아니, 21세기 하고도 8년이나 더 지난 지금 이 시대에 도대체 이런 기본적인 국민국가적 임무를 누누이 말할 수밖에 없는 이 현실이 너무나 참담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재협상을 할 경우의 국가 신인도 문제를 걱정하지만, 자기 나라 국민의 기본적인 생존권조차 헌신짝처럼 내던지는 대한민국 정부를 그 어느 나라가 문명국이라 여길지가 더 걱정이다. 내가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외국인들 사이에서는 이미 대한민국의 국가 신인도가 땅바닥에 떨어진 지 오래다.

 

정녕 국민이 무서운 줄 안다면... 대통령 자신이 마음을 바꿔라

 

국민을 무서워한다면서도 뒤로는 여전히 방송을 장악하기 위한 음모를 착착 진행시키는 이명박 대통령을 지켜보면서 참으로 무서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등 뒤에 칼을 감추고서 잠시 상대방을 안심시키기 위해 흘리는 악어의 눈물과 무엇이 다른가.

 

정녕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 무서운 줄 안다면, 온갖 방법으로 방송과 여론을 장악하려는 모든 기도를 즉각 중단하고 최시중 방통위원장을 해임하라. 그렇지 않다면, 겉으로는 국민을 무서워한다면서도 속으로는 방송을 장악하지 못해 지금 자신이 수세에 몰렸다고 여길지, 그 속을 누가 아는가.

 

지난 6월 10일, 대통령 자신의 말대로 그가 정말 청와대 뒷산에 올라 촛불시위를 지켜봤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도 즐겨 불렀다는 '아침이슬'을 목놓아 부르면서 광화문의 시민들은 얼마나 또 많은 피눈물을 흘렸는지 이명박 대통령은 알고 있을까. 일상의 중요함을 만사 제쳐놓고 그렇게 밤거리에서 아침이슬이 내릴 때까지 국민의 생존권과 민주주의를 외쳐야만 했던, 그렇게 우리 마음속에 알알이 맺힌 설움을 그는 알고 있을까.

 

대한민국에서 오직 한 사람,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 마음을 바꾸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기만적인 추가협상을 중단하고 즉시 기존 협상을 무효화 하라.

 

그리고 재협상에 나서라. 국민의 목숨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이 큰 결단을 내리고 그 이후의 어려움에 당당히 맞서고자 한다면, 나는 해 뜨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기꺼이 그와 함께 '아침이슬'을 부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블로거 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명박, #기자회견, #광우병, #쇠고기 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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