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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오이 값 폭락으로 힘들어 하는 구례농민들의 오이를 적정한 가격에 수매하고, 판매 수익금으로 오이를 구매해서 촛불집회 참가자들의 타는 목을 적셔 주자는 기사(살처분하는 오이, 가슴 타들어가는 하우스 농가)를 올렸다.

 

기사 등록 하루 만에 수백 상자의 오이 주문이 들어왔다. 밀려 들어오는 주문에 잠시 행복했지만 기사 효력인지 오이 가격이 약정했던 가격보다 시중 가격이 올라 결국 오이를 판 수익은 마이너스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독자들과 약속을 했고, 촛불집회 참여자를 위해 주문하신 분들의 뜻과 촛불집회 참가자들에게 오이를 보내겠다고 주문하신 분이 있어 직접 구매해서라도 오이를 보내 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이틀 동안 이리 저리 오이를 구하기 위해 돌아다닌 결과, 농민들의 협조와 직접 구매를 통해 6월 5일 오이 1톤을 구했다.

 

오이 1톤을 저녁 내내 씻다

 

대책위에 전화를 해보니 서울에서 오이를 씻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씻어 오지 않으면 참가자들에게 오이를 주기 어렵단다. 서울 한복판에서 그 많은 오이를 어찌 씻을 것인가? 여기 저기서 오이를 차에 싣고 들어오니 오후 5시에 겨우 오이 씻는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트럭에 가득 실린 오이를 씻는 작업은 밤 11시에야 끝이 났다. 그물망에 오이 70개 정도를 담아 트럭에 싣고 나니 밤 12시. 내일 아침 7시(6월 6일)에 출발하기로 하고 잠시 잠이 들었다.

 

더 자고 싶은데 새벽 5시 익숙한 이장님의 방송 소리에 잠을 깼다. 친환경 논에 제초 일꾼으로 넣을 우렁이가 오늘 도착한다는 방송이 흘러 나온다. 마을회관 앞 집에 살기에 방송소리는 일람 소리와 같다.

 

졸린 눈을 비비고 아침을 챙겨먹고 서울로 출발한다. 반쯤 가리키는 기름게이지를 채우기 위해 주유소에 들렀다. 트럭 반절을 채우는데 들어가는 기름이 6만5천원이다. 기름값이 올라도 너무 올랐다.

 

우리가 먹는 채소 대부분이 석유를 기반으로 농사를 짓는 하우스 농사다. 지금 차에 실은 오이도 3월이나 2월 말에 정식한 오이로  2-3월은 날이 추워 하우스라고 해도 난방이 필요하다. 모두 기름으로 난방을 해서 키운 오이다. 

 

이렇게 생산한 오이가 가격이 폭락하면 농민들로서는 기름값도 안 나오는 농사를 짓게 된다. 그러다 보니 하우스 농사를 하다 보면 한 해 흑자, 한 해 적자, 몇 달 흑자, 몇 달 적자의 연속이다. 이런 식으로 흘러 가다 보면 결국 농민은 그나마 있던 땅도 저당 잡히거나 파산신고를 하게 된다. 

 

시골에 가장 많이 보이는 현수막은 외국인 신부와의 결혼알선과 파산신고를 도와준다는 플래카드다. 이 플래카드만 봐도 농촌의 현실을 알 수 있다. 그나마 빚없이 사는 농민들은 특용작물이나 시설재배, 축산을 하지 않고 소규모의 농사로 최소한의 소비를 하는 농민들뿐이다.

 

여고생이 선창하고 어른들은 따라하고...

 

 

남산을 지나 서울시청에 도착했다. 아직 촛불 집회 시작 전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대책위 천막 한 쪽에 오이를 내렸다. 약 7천개 정도다. 지금 봐서는 참가한 사람들에게 하나씩 나눠줘도 남을 것 같다. 오이를 하차하고 점심을 먹었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내려와 보니 다음 아고라 깃발이 펄럭이고 아직은 어려 보이는 여중생들과 여고생들 그리고 젊은 학생들이 "이명박은 물러가라"라는 구호를 외치며 행진을 하고 있다. 우리는 그 무리를 따라갔다. 여고생들이 선창을 하고 우리는 그 구호를 따라 외쳤다.


이제는 잿더미가 되어 사진으로만 보이는 숭례문에서 잠시 멈춘 참가자들은 광화문으로 향했다. 광화문 저편엔 청와대가 있다. 경찰이 세운 바리케이트로 청와대 가는 길은 굳게 막혀있었다.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연설과는 반대로 청와대로 향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마저 막는 형국이다.

 

예나 지금이나 국민의 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는 정권은 오래 갈 수 없다. 특별하게 주동자가 없다 보니 시위대는 잠시 쉬다가 걸었고 일사분란하게 하나의 구호를 외치지도 않았다. 참가자들은 자산들이 외치고 싶은 이야기를 종이에 담아 카드섹션을 했고 다양한 구호를 외쳤다. 깃발은 안국 역으로 향했다.

 

처음 시작할 때 고작 300~400명에 불과했던 참가자들은 숭례문 광화문을 지나자 몇 천명으로 늘어났다. 지하철역 앞에서 데이트를 하던 연인이 자연스럽게 행렬을 따랐고 역 앞에서 있던 학생들도 교복을 입고 참여했다. 유모차를 밀고 가는 아주머니와 아이를 업고 가는 젊은 엄마와 아버지, 팔짱을 낀 연인, 이제 막 학원에서 나온 것 같은 초등학생들까지 참여하자 거리엔 시민들로 가득했다.

 

깃발은 다시 시청 앞으로 향했다. 거기엔 이미 수천 아니 수만의 인파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밤이 어두워지자 촛불을 나눠주었다. 촛불에 불을 붙였다. 바람이 불었지만 불은 꺼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점점 더 밀려들었고 촛불 숫자도 늘었다. 오이 몇 천 개로는 이 많은 사람들의 지친 목을 달랠 수 없을 것 같았다. 시민들은 쌓여 있는 오이와 수박 등 물품들을 보고는 "마치 5·18을 보는 것 같다"며 좋아했다.

 

오이 먹는 모습은 끝내 보지 못했지만

 

 

시간은 벌써 자정을 행해간다. 시민들은 스스로 멈춰야 할 때를 알았다. 이제는 다시 내려가야 할 시간이다. 대책위에서는 가장 힘들 때 오이를 나눠 주겠다고 했다. 그 시간이 언제일까? 오이를 먹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끝내 보지 못하고 밤 12시 다시 구례로 행했다. 

 

트럭에 가득했던 오이는 촛불집회 참가자들에게 전해졌고 트럭은 다시 가벼워졌다. 다음날 몇몇 신문사와 인터넷 방송을 통해 오이가 새벽에 전경들과 촛불참가자들에게 전해졌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오래전 시위대에게는 화염병과 짱돌이, 전경들의 손에는 방망이와 방패가 들려 있었는데 이제는 폭력을 상징하는 물품이 사라지고 그 대신 촛불과 오이, 수박 그리고 익명의 사람들이 제공한 수없이 많은 물품들이 들려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오이 구매를 해주신 소비자 여러분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이 기사는 지난번 오이관련 기사에 대한 결과입니다. 이기사는 참거래농민장터(www.farmmate.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참거래장터, #오이, #촛불 오이, #참거래연대, #촛불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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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서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친환경 농산물 직거래 참거래농민장터(www.farmmate.com)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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