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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철 1호선 동인천역에서 헌책방 거리로 가기 위해 반드시 지나쳐야 하는 중앙시장 골목길
 국철 1호선 동인천역에서 헌책방 거리로 가기 위해 반드시 지나쳐야 하는 중앙시장 골목길
ⓒ 김갑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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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철 1호선을 타고 인천으로 달리다 동인천역에 내리면 제일 먼저 반겨주는 곳은 중앙시장이다. 동인천역에서 배다리 입구까지 형성돼 있는 중앙시장은 개항과 맞물려 형성되기 시작했다. 한국전쟁 직후 연고지 없이 월남한 이들(반이상은 황해도민)이 여기를 근거로 노점상을 시작했다.

오늘날 배다리 중앙시장내 양키시장과 중앙시장을 따라 줄지어 있는 한복상가의 시작은 이때 부터다. 이곳 상인들은 70년 넘은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60~70년대 전성기를 보냈던 중앙시장은 동인천이 인천의 중심가 역할을 하던 90년 중반 까지만 해도 엄청 큰 번화가였지만 유통 시장의 급격한 변화와 상권 이동 탓에 한때 번화했던 거리는 이제 한산하기만 하다.

철길과 중앙시장 사이 골목길을 따라 걸어가면 굴다리가 나오는데 여기서부터가 인천의 배다리다. 중앙시장 건너편 배다리로 접어들면 오랜만에 찾아온 나그네 반기듯 헌책방이 반긴다.

배다리에는 1920년대에 문을 열어 70년이 넘도록 막걸리 '소성주'를 제조했던 인천 양조장과 아직도 많은 이들이 찾는 헌책방 거리,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창영초등학교와 여 선교사 기숙사 등이 자리하고 있다. 사람이 다니기 시작해 길이 된 배다리를 사람들이 여전히 오르내린다. 

배다리 지킴이로 통하는 곽현숙(59)씨는 그 길에 있는 헌책방 '아벨서점'의 주인이다. 이곳에서 나고 자라 이곳을 지키고 있다. 그가 배다리 지킴이로 통하는 까닭은 앞서 얘기한 것처럼 인천의 역사가 숨 쉬는 곳, 사람이 다니기 시작해 길이 된 길 배다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책이 좋아 서점 냈다가 혼쭐나고 다시 시작

아벨서점 주인 곽현숙씨. 그는 사람 마음에는 구구나 올 곧은 이에 대한 그리움이 있기 마련이라 이를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아벨서점 주인 곽현숙씨. 그는 사람 마음에는 구구나 올 곧은 이에 대한 그리움이 있기 마련이라 이를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 김갑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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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나이 쉰아홉이니 그는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때에 태어났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궁핍하게 살았고 살아 있음에 감사하며 살아야 했던 그 시절. 곽씨 역시 살기 위해 이일 저일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마련한 돈으로 어렵게 학교에 다녔다.

"지금도 그렇지만 10대 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스스로 아니라고 생각해도 순응해야만 하는 질서가 있잖아요. 그게 싫으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그 사회질서를 따라가고 있는 것을 느끼는…. 내 장사는 내 뜻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책도 실컷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헌책방을 시작했습니다."

73년 곽현숙씨는 배다리 맨 꼭대기 창영초등학교 앞에 서점을 냈다. 지금은 '우각로'라 불리는 이 길을 걷다 보면 양조장도 있고 선교사 기숙사도 있다. 이제는 이 길에 헌책방이 5군데밖에 없지만 90년대 초만 해도 40여개에 달했다고 한다.

"처음 책방 열 때가 박정희 시절이에요. 가게 이름에 외국어를 못 쓰게 했어요. 그래서 '정은서점'으로 했는데 나중에 '아벨서점'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책방 문 열고 1년 반 만에 집주인이 건물을 팔아버려 일반가정집을 구해 책방을 하기도 했고 기슭집(처마 밑에 담을 세워 만든 작은 집채)을 구해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3년 하다 보니 책방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79년에 그만뒀어요."

책방을 그만둔 곽씨는 2년 동안 방황했다. 공장일도 하고, 건축일도 하고, 담요를 떼다가 자전거를 이용해 내다 팔기도 하면서 나름대로 세상 읽기를 했다. 그러다가 2년 후 다시 그 길에 헌책방을 냈다.

"그 당시 경제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았어요. 살림살이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헌책방은 꼭 필요한 곳이라 다시 열게 됐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한 게 있어요. 김구 선생의 글을 보다가 접한 건데 '처음부터 완성된 것은 없다. 열심히 하다 보면 차차 만들어지는 것이고, 하다 보면 알게 되는 것이니, 그렇게 스미는 노동이 있다면, 묵묵히 이 길을 걷다 보면 내 삶도 완성되겠지'하는 생각에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책에 대한 경계 없듯, 사람에 대한 경계도 없어

곽현숙씨는 책방만큼 매력있는 곳이 없고 여기만큼 넓은 세계가 없다고 말한다. 거쳐 간 책들만큼 거쳐 간 사람들이 많아서일까. 곽씨는 책과 사람에 대한 경계가 없다. 악서(惡書)라 하더라도 그 책을 집필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을 저자가 생각나기 때문에 책 속에서 또 다른 자신을 대면할 기회가 있다고 한다. 사람들 마음속에는 나쁜 기운이 차 넘칠 때가 있는데 이를 가다듬을 기회를 책에서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곽씨가 유일하게 경계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과잉이다. 물질 만능으로 표현되는 자본주의 시대를 모든 것의 과잉시대라고 경계한다. 그래서 그는 10대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모든 것을 왕성하게 받아들이고 소화하는 시기라 10대에 잠재되어 있는 힘을 사회가 보듬고 책임져야 하는데 아이들을 우리 사회가 도구화 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한다.

"서점에 책을 사러오는 엄마 중 꼭 몇 권씩 사주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때마다 한 권만 판다. 물질만 과잉이 아니라 부모의 지나친 욕심도 과잉이다. 과연 그것이 사랑인지 아니면 자신의 계산된 욕심인지 내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배고프듯 책도 배고프게 해야 한다. 책을 양껏 갖다주는 것보다는 책에 대한, 사람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키워줘야 하는 것이 어른들의 몫이다."

누구나 마음속 '올곧은 이에 대한 그리움' 있어

도로 끝에 위치한 건물이 창영교회다. 그 옆으로 선교사 기숙사 등 오래 된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곽씨는 저 꼭대기에서 서점을 열고 이 우각로를 따라 내려오며 서점을 냈다.
 도로 끝에 위치한 건물이 창영교회다. 그 옆으로 선교사 기숙사 등 오래 된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곽씨는 저 꼭대기에서 서점을 열고 이 우각로를 따라 내려오며 서점을 냈다.
ⓒ 김갑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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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아벨서점이 위치한 헌책방 거리는 사라질 위험에 처했다. 이 우각로를 관통하는 중동구 산업도로 건설공사가 예정돼 있어서다. 주민들의 반발로 일단 조정국면이지만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미지수다.

이곳 우각로는 일제 강점기에도 일제가 도로 폭을 넓히려 하자 길이 넓어지면 마을이 나뉘고 이웃이 멀어지게 돼 마을 공동체가 파괴된다 하여 당시에도 이곳 주민들이 도로확장을 반대한 곳이다.

"구도심이라고 하는 것은 낙후된 도시가 아니라 우리의 역사와 문화, 숨결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인천의 구도심으로 오늘날 인천의 역사가 담겨 있는 곳인데 이곳을 없애겠다는 발상은 역사를 도려내는 것과 다름없다. 서울에 비해 보잘 것 없을지라도, 저마다 형상을 하고 남아 있는 것들도 우리의 역사다.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하고, 때로는 과거와 화해도 해야 한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삶을 잃어 버리는 것이다."

처음부터 곽씨가 대책위 활동을 열심히 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시대가 그렇게 변한다면 또 그렇게 따라가야 하나하고 생각하다 충격을 받았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모든 것을 도려내고 나면 뭐가 남지 하는 생각에 움직였다. 헌책방이 살아 있어야 한다는 생각, 그루터기가 없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헌책방에서 시작된 그의 시야는 이제 배다리로, 인천으로 넓어졌다. 헌책방 거리만 소중한 것이 아니라 인천 곳곳, 사람이 숨 쉬는 모든 곳으로 뻗쳤다.

"내가 살고 싶어서였습니다. 내가 진실로 여기에서 살고 싶을 뿐입니다. 그 무슨 이상적인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존재하고 싶을 뿐입니다. 그래서 배다리를 지키는 일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재화의 많고 적음으로, 거주형태의 차이로 사람을 사회를 판가름한다. 재화의 많고 적음, 어디 몇 평 사는 것이 우리 삶의 기준이 돼서는 안 된다."

"우리네 삶이 시대의 흐름에 몸을 맡겨 흐르듯 사는 것 같지만 실은 그 안을 차근차근 들여다보면 누구나 한 점 그리움이 있습니다. 그 그리움을 따라 끝을 따라가 보면 자기 안에 올곧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있는 법입니다. 하지만 평수, 돈 이런 숫자들이 자꾸 올곧은 이를 쳐내고 있어요. 저는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고 같이 지켜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곽씨가 헌책방을 하면서 뇌리에 깊이 박혀 있는 장면이 하나 있다. 그것은 20여 년 전의 일인데 한 노인이 길가에 앉아 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책을 읽더란다. 혼자서 깔깔대고 웃다가 박장대소를 하기도 하고 무슨 책인 줄 모르겠으나 그렇게 신이 나서 읽고 있더란다.

곽씨는 "가장 큰 집에 앉아서 자유를 만끽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책을 읽는 것은 자신을 읽는 연습이자 그것을 그것으로 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과정이기도 해요"라고 말을 맺었다.


태그:#아벨서점, #인천 배다리, #곽현숙, #인천 헌책방거리, #백인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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