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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을 푸르게 가꾸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광우병과 조류독감 등이 논란이 되면서 육식을 멀리하고 채식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급증한 것이다.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올해 초 2천여 명에 불과하던 홈페이지 일일 평균 방문자 수가 최근 4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회원 수도 3배나 늘었다. 그러나 육류 중심의 급식과 빈약한 채식식당, 삼겹살로 대표되는 회식문화 같은 사회인프라의 미비로 채식에 대한 신념을 유지하기 가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대한민국 1%라고 알려진 50만 명의 채식자들, 이들이 이 땅에서 채식을 고수하려면 얼마나 힘겨운 과정을 겪어야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기자가 1주일 동안 직접 채식을 체험했다. 도전은 달걀과 우유까지 먹는 락토오보(유란채식) 단계로 정했다. 채식을 처음 결심한 이들에게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처음엔 고기 덩어리만 안 먹으면 되니 별 어려움은 없을 거라고 여겼다. 고기를 상추에 싸먹으면 맛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던 '순수 육식주의자'였지만 고작 1주일 못 버틸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착각이었다.

 

메뉴 9개 전부가 육류라니...

 

지난 9일, 학교 구내식당 메뉴 9가지 중 살코기가 없어 보이는 음식은 눈에 띄지 않았다. 돈가스, 육개장 등이 자리잡은 식단표에서 채식주의자가 갈 곳은 없었다. 카오팟(태국식 볶음밥)만이 유일하게 겉으로 보기에 살코기가 보이지 않는 음식이었다.

 

그러나 눈대중으로 넘기기엔 불안했다. 배식 아주머니께 재료가 뭐냐고 묻자 모른다는 대답이 퉁명스레 돌아왔다. 순간 머쓱해 얼른 음식을 받아 수저를 들었는데 아뿔싸, 곳곳에 작은 고기조각이 포착됐다.

 

진열된 음식샘플을 보며 부지런히 눈품을 팔아 골랐지만 재료표기가 없으니 한계가 있다. 맞은편 후배에게 고기를 얹어주니 좋다고 웃는다.

 

"낙지도 안돼? 그럼 대체 뭘 먹으란 거야"

 

 

11일 저녁엔 광화문에서 여자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애초 약속은 다른 곳에 잡았는데 근처에 마땅한 채식식당이 없어 급히 장소를 바꿨다. 전날 인터넷으로 찾아본 서울시내 채식식당 37곳 중 하나였다. 그나마 일부 메뉴만 채식이 가능한 곳이었다. 그래도 개인당 1만~3만원 정도를 잡아야 하는 다른 채식식당에 비하면 저렴한 편(6500원)이다.

 

"낙지도 안 돼? 그럼 대체 뭘 먹으란 거야."

 

여자친구가 먹던 낙지비빔밥을 권하는 소리에 고개를 젓자 "편식한다"고 핀잔이다. 누군 맛있는 것 몰라서 안 먹는 줄 아나. 야속한 마음에 고개를 숙이고 밥만 먹었다. 삐졌냐고 물어 속을 또 긁는다.

 

'아서라, 참자 참아. 이 넓은 세상에 내 편 하나 없구나.'

 

합숙연수에 회식까지, 진퇴양난이구나

 

13일·14일은 합숙연수가 있었다. 가장 큰 고비였다. 연수원에 채식메뉴가 따로 있을 리 없었고 다른 식당을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예상대로 도착 당일 점심부터 주메뉴는 제육볶음이었다. 아쉬운 대로 상추쌈과 콩나물만 식판에 얹어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눈길은 자꾸 고기가 담긴 옆 사람 식판에 머문다. 디저트로 나온 식혜의 단맛이 유일한 위로였다.

 

저녁엔 삼겹살 회식이 이어졌다. 살코기가 익어가면서 술잔이 왔다갔다 했다. 다들 지글지글 고기 익는 소리에 흥이 겨운 듯 했다. 냄새가 진동했고 삼겹살은 내오기 무섭게 사라졌다. 문득 내 앞에 오롯이 자리한 청국장 뚝배기 한 그릇이 슬퍼보였다.

 

"한 점 먹어봐. 하루 먹는다고 세상 안 바뀌어."

 

얄밉고도 고마운(?) 권유였다. 그냥 하루만 제껴? 30분을 고민하다 겨우 참았다. 청국장은 어찌나 소화도 잘 되는지 금방 뱃속이 헛헛하다. 속이 허전한데 술이 들어갈 리가 있나. 할 일이 없어 앞에 놓인 고기라도 구워주려 하니 괜찮단다. 도저히 부탁할 수가 없는 표정이라나. 앞에 놓인 소주 한 잔을 털어 넣었다. 기분 탓일까, 유난히 쓰다.

 

설상가상으로 다음날엔 함박스테이크 정식이 나왔다. 스테이크를 빼고 나니 고를 것은 감자튀김과 샐러드뿐이었다. 쌀밥에 감자튀김과 샐러드라. 느끼함을 꾹 참고 한 숟갈씩 넘겼다. 하지만 결국 가져온 대부분을 남겼다. 다 먹은 식판을 설거지코너에 놓으며 "잘 먹었다"고 했으나 하나도 잘 먹지 못했다. 집에 가는 버스가 그리워졌다.

 

15일은 밖에 나갈 계획이 없어 그나마 맘이 편했다. 종일 집에 있으니 입이 부쩍 심심해 주전부리를 잔뜩 사왔다. 애초 채식을 시작하면서 살 좀 빠지길 기대했는데 군것질이 전보다 늘어 몸 두께가 그대로라 속상하다. 저녁은 콩국수를 말아먹고 일찍 잠자리에 누웠다.

 

단체급식, 채식을 막는 큰 장벽

 

육류 중심의 단체 급식은 채식을 방해하는 커다란 장벽이다. 기업이나 학교에 입주한 대형급식업체 중 대부분은 채식자를 위한 메뉴를 개발하지 않고 있다. 가끔 운영하는 샐러드바 정도가 대부분이다.

 

업체 측은 아직 채식자의 비중이 적어 수익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별도의 메뉴구성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들고 단가가 매우 낮기 때문에 특수한 경우에 맞추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재료표기 역시 많은 급식식당에서 이뤄지지 않아 채식자들이 육류가 포함됐는지 별도로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이에 대해 CJ프레시웨이 홍보팀 성지연씨는 "급식은 싸고 빠르게 음식을 제공해야하는 것이 먼저"라며 "앞으로 2000~30000식(食) 이상의 기업이나 학교 측이 직원복지차원에서 강력히 요청한다면 고려해 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형급식업체 관계자는 "(재료표기요청은) 재료가 당장 떨어질 경우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항상 관리하기 어렵다"며 "구체적으로 고객들이 요구하면 응할 것"이라고 답했다.

 

한편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채식메뉴 구성을 단순히 경제적 관점에서 보지 말고 '식품선택권'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원복 한국채식연합 대표는 "호주와 영국에서는 교도소에서도 식품선택권을 인정받아 배식 때 채식을 선택할 수 있다"며 "선진국에서는 이를 기본적인 인권·행복추구권으로 인정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반면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이나 학교·군대 등에서 육류를 일방적으로 강요해 이른바 '식탁 민주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이 대표는 "앞으로 우리나라도 건강·환경·동물보호 등을 이유로 채식자들이 크게 늘 것"이라며 "급식업체들이 사회공헌활동 차원에서 1주일에 한두 번 정도 채식메뉴를 제공하는 것은 크게 부담이 될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태그:#채식, #채식주의자, #채식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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