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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시작된 티베트인들의 평화시위에 대해 중국 정부가 폭력적인 방식으로 탄압하고 있습니다. 티베트로 향하는 교통과 통신이 차단되었고 시위대가 피신한 사원들은 봉쇄되었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티베트에 평화를'이라는 주제로 '티베트평화연대'에서 마련한 릴레이 기고를 싣습니다. 학자, 시민운동가, 국제문제전문가, 문인 그리고 문화예술인들의 릴레이 기고로 티베트 사태를 균형잡힌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편집자주>

내가 티베트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제네바에 있는 유엔인권위원회(현재는 이사회로 격상되었다)에서 티베트 활동가들이 중국 정부로부터 탄압과 모욕, 멸시를 당하는 것을 목격하면서이다.

 

많은 제3세계 국가들은 유엔인권위원회에서 자신들의 인권탄압과 서구로부터의 '부당한' 압력, 이 두 가지를 숨기고 저항하기위해 항상 중국의 힘에 기대어 왔다. 덕분에 티베트를 지원하고 티베트의 이슈를 꺼내는 것은 언제나 중국을 '공격'하고 '견제'하기 위한 서구의 몫이었고 제3세계 국가들은 중국을 지원하며 티베트 문제를 외면해 왔다.

 

따라서 국제사회에서도 티베트의 문제는 늘 미국과 서구에 지나치게 기댄 운동으로 오해되어왔다. 그러나 사실 서구와 미국의 '지원'에 일방적으로 기대어온 것이 아니라 중국의 지원에 기댄 제3세계 국가들의 외면을 받아왔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직한 대답일 것이다.

 

유엔에서 티베트 문제 완전 봉쇄하는 중국 정부

 

이때 만나 인연을 맺어온 친구 중의 하나가 티베트 망명정부에서 티베트의 생태문제를 다루어 온 '양첸'이다. 양첸은 인도로 피난을 간 부모에게서 태어난 난민 2세이다. 그녀는 나와 이야기를 할 때면 언제나 티베트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말을 후렴구처럼 중얼거렸다.(그녀의 오랜 꿈은 작년에 이루어졌다.)

 

그녀가 유엔인권위원회에서 중국 정부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 티베트 문제를 꺼내면 바로 중국정부는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그녀의 발언을 막았고, 심할 경우 그녀는 쫓겨났다. 인권이건 생태이건 티베트의 문제는 중국 내부의 문제이기 때문에 유엔에서 다루어질 이유가 없다는 것이 중국의 논리였다.

 

유엔인권위원회뿐만이 아니다. 유엔 빌딩에서 전개되는 모든 회의에서 티베트 문제는 봉쇄되었다. 비정부기구(NGO)가 주최하는 회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방콕에 있는 유엔 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의 건물에서 아시아 NGO들이 주최한 회의 소식지에 티베트 활동가의 인터뷰가 실렸다. 그러자 중국 정부는 바로 위협을 가했다.

 

티베트 문제를 유엔에 가져오는 것 자체를 용인할 수 없다며 신문을 도로 걷어가지 않으면 회의를 진행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위협했다. NGO들은 항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1면에 배치되었던 기사를 축소해서 2면으로 옮기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양첸은 이 때마다 '티베트의 생태를 이야기하고 걱정하는 것은 티베트인의 몫'이라며 발을 동동 굴렀다. 자신은 티베트 독립의 '독'자도 이야기하지 않고, 오로지 티베트의 환경이 중국 정부의 개발 정책에 의해 어떻게 파괴되고 있는지를 지적하고 그 대책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라고 호소했다.

 

그녀는 유엔에서 발언할 때 절대 '망명정부'라는 이름을 거론하지 않고 다른 몇몇 NGO의 연구원 자격으로 발언하려고 했지만 그 모든 것은 중국에 의해 저지되었다.

 

티베트의 생태 파괴는 아시아의 문제

 

양첸에게는 여권이 없다. 당연하다. 그녀는 난민이기 때문이다. 인도 정부에서 발급한 난민을 위한 여행증명서만 있다. 이 여행증명서로 여행하기는 지극히 힘들다. 초대장이 있더라도 공항에서 추방당할 수 있다. 또한, 인도로 돌아가려면 언제나 인도대사관으로부터 재입국허가를 다시 받아야 한다.

 

몇 년 전 그녀가 한국에 온다는 메일을 보내왔다. 광주에서 열리는 아시아와 생태문제에 대한 회의에 참석한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이 회의에 참석하도록 도와주면서 나는 수십 번이나 메일을 보냈고 한국대사관과 관계기관에 초대장을 보내야 했다. 천신만고 끝에 그녀는 한국에 왔고, 내가 연구원으로 있는 우리신학연구소가 주최한 티베트 환경을 위한 종교 간 대화 프로그램에서 중국 정부의 '개발 정책'에 의한 티베트의 생태 위기를 증언했다.

 

티베트는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로 흘러들어가는 대부분의 강이 발원하는 곳이다. 지금은 중국 정부에 의해 반으로 축소되면서 나머지 반이 다른 중국지방으로 편입되었지만, 원래 양쯔강·황하·메콩강 등 아시아의 주요한 강은 거의 모두 티베트에서 발원했다. 그러므로 티베트의 생태 위기는 곧 하구 지역 국가들의 생태 위기로 연결된다.

 

 

1990년대 후반 양쯔강이 대범람해 큰 홍수가 났었다. 그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가 양쯔강 상류의 무분별한 벌목이었다. 중국 정부는 홍수가 나고서야 부랴부랴 양쯔강 상류지역에서의 벌목을 금지했다. 그러나 어디 양쯔강 상류뿐이겠는가? 중국 정부는 이미 메콩강 상류에 대규모 댐을 몇 개 지었고, 몇 개는 공사 중이며, 몇 개 더 지을 예정이다.

 

이 댐 건설이 하구 지역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심도있게 연구되지 않았다. 비단 물뿐만이 아니다. 티베트가 메콩강에 미치는 영향은 양질의 토사를 계속 흘려보냄으로써 메콩강 하류지역의 농토를 기름지게 한다는 것도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메콩강 유역의 정부들이 연합 프로젝트에 가입하지 않았음에도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티베트가 멍들고 있다. 이전에는 히말라야의 눈 녹은 물이 흘러들던 강물을 그냥 마셔도 되었지만, 지금은 그 물을 먹고 짐승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보고가 있다. 중국의 동화정책에 의해 대규모로 한족이 유입해 들어왔다. 이미 라싸와 같은 대도시에서는 중국인이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전체 티베트 자치구를 보더라도 이미 한족이 50%를 넘어섰다.

 

눈과 얼음 그리고 바위로 뒤덮인 극한의 환경에 갑작스런 인구 증가가 미치는 생태 파괴는 말을 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공업폐수와 공업쓰레기들이 마구 버려져 물과 산을 오염시키고 있다.

 

지금 중국 정부는 티베트와 본토를 연결하는 철도를 놓고 있다. 이 철도가 완성되면 본토에서 지금보다 더 대규모로 인구가 들어올 것이고, 인구 증가와 이에 따른 생태 파괴는 불을 보듯 환하다. 정글은 파괴가 되더라도 놀라운 자기회복력을 가지고 있다지만, 극한적인 티베트의 생태는 한번 파괴되면 복구가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위험천만하게도 '핵 아카데미'라는 것을 세계의 지붕에 지어놓고 핵과 관련된 활동들까지 하고 있다. 따라서 양첸은 티베트의 문제는 결코 티베트의 문제만이 아니라 전체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생태에 영향을 미치는 아시아의 문제라고 힘주어 강조한다.

 

 

미국이 남용하는 티베트, 버림받아야 나설 것인가

 

양첸은 아시아의 많은 시민사회운동이 티베트 망명정부의 활동에 대해 '친미적'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본다고 안타까워한다. 사실 한국에 알려진 달라이 라마와 자유 티베트 운동도 미국에 의존하는 친미적 이미지가 강하다. 티베트인들의 최근 항쟁에 대해 국내의 몇몇 단체들이 '친미적'이라는 이름으로 연대를 외면했던 것처럼, 양첸이 방문하였을 때도 그녀에게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낸 단체들이 있었다.

 

민망해하며 사과하는 나에게 그녀는 '그들의 오해를 이해한다'면서 '그러나 티베트와 관련된 운동이 친미적이라는 것은 오해'라고 극구 해명했다. 양첸은 '달라이 라마는 정치인이기 전에 종교인이며 자신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한다 하더라도 부르는 곳은 어디든지 가는 사람이며, 그것이 티베트 불교의 정신'이라고 했다.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면, 그것은 그를 이용하는 사람 탓이다. 그녀는 사실 티베트가 없어질지도 모른다고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정말 달라이 라마가 그러한 사람인지 아닌지, 그것은 내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적어도 어디서 부르건 간에 달려가서 한번이라도 알려야 할 만큼 티베트 문제는 제3세계로부터는 철저히 외면받아왔다.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가 미국으로 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양첸으로부터 더 큰 감명을 받은 말은 티베트 운명에 대한 말이었다. 그녀는 그것이 티베트의 운명이라면 할 수 없지만, 티베트는 원래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티베트의 해방을 지지하는 나 같은 사람들이 있는 한 티베트는 사라지지 않는 것이라고 나를 위로했다. 그녀와 대화하면서 나는 정치를 넘어서는 정치, 정치의 무화로서의 티베트 해방운동을 볼 수 있었다. 무정치의 정치.

 

내가 보기에 오히려 부끄러운 것은 이들의 운동이 '친미적'이라고 외면하는 한국의 몇몇 운동단체다. 물론 티베트의 인권과 생태가 지금 중국뿐 아니라 미국에 의해서도 남용되고 있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또 하나 분명한 사실은 미국이 중국과 대대적인 화해를 하거나 공모를 하게 된다면 그들은 바로 티베트를 외면할 것이라는 점이다.

 

사태를 분명히 봐야 한다. 티베트가 '친미적'인 것이 아니라 미국이 티베트를 남용하고 있다. 다른 제3세계가 중국의 눈치를 보고 공모를 하면서 외면하는 동안에 말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운동은 티베트가 미국에 의해서 버림받고 나서야 움직일 것인가? 이건 '정치'이지 '운동'이 아니다.

 

운동의 몫은 억압받고 가난한 이들의 편에 서는 것이지 적이 그들의 편에 섰다고 해서 그들을 외면하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티베트의 운동을 비난하는 이들은 바로 이 운동의 가장 근본적인 원칙을 망각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티베트에 평화를' 릴레이 기고에 사용된 글씨체는 서예가 김성장님의 글씨입니다. 이 기사는 성신여대 문화콘텐츠 학부 강사이자 <닥쳐라 세계화>의 저자인 엄기호씨의 글입니다. 

티베트평화연대 홈페이지 www.peacetibet.com


태그:#티베트, #양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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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발발한 티베트인의 평화시위에 대하여 중국정부의 폭력적인 탄압에 항의하고 한국인들의 지원과 국제적인 연대의 흐름에 동참하기 위해 시민,평화,종교,인권단체등이 모여 3월25일에 결성한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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