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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강 줄기 멀리서 바라본 백운산
동강 줄기 멀리서 바라본 백운산 ⓒ 이승철

"인터넷에서 찾아보니까 아주 위험하고 날카로운 산이던데 오를 수 있을까?"

지난 10일 백운산 등산로 중에서 제장나루나 점재나루를 찾아가려고 했는데, 길을 잘못 들어 찾아간 곳이 문희마을이었다. 문희마을 등산로 입구에 세워진 안내판을 보며 일행 한 사람이 지레 겁을 먹는다.

"높이 883미터에 거리도 1,9킬로밖에 안 되잖아, 오르는데 문제 없겠는데 뭘 그래?"

언제나 자신만만한 다른 일행이 걱정 말라는 듯 핀잔을 준다. 오르는 코스는 칠족령 쪽 능선을 타고 오르는 길과 왼쪽 구름재 쪽 삼거리 능선길이 있었다. 우리가 어느 코스로 오를 것인가를 의논하고 있을 때 마을 주민 한 사람이 나타났다.

일행을 겁먹게 한 주민의 한마디 "등산객이 떨어져 죽었습니다"

"이 안내판 한 번 읽어보십시오, 이 백운산 만만한 산이 아닙니다. 등산로도 험하고 날카로워서 작년에도 사고로 한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도 교사 한 분이 벼랑 아래로 떨어졌는데 시신을 찾기도 매우 힘들었답니다."

마을 주민의 말은 그렇잖아도 지레 겁을 먹고 있던 일행의 발길을 붙잡고 말았다. 평소에도 겁이 많았던 일행 한 사람은 자신은 포기하겠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이나 다녀오라고 주저앉는다. 그러자 마을 주민이 다시 나섰다.

"오늘 같은 날은 괜찮습니다. 눈비가 오거나 바람이 심하여 날씨가 나쁜 날 오르는 것이 위험하지요, 조심해서 오르시면 괜찮을 겁니다. 오늘처럼 좋은 날씨엔 산 위에서 술만 마시지 않으면 괜찮을 것입니다. 다녀오세요?"

 일행을 겁먹인 등산로 입구 경고문
일행을 겁먹인 등산로 입구 경고문 ⓒ 이승철


 등산 중에 내려다 본 동강
등산 중에 내려다 본 동강 ⓒ 이승철


주민의 말을 들으며 주저앉았던 일행이 다시 일어섰다. 마을 주민에게 어느 길로 오르는 것이 쉬운 길이냐고 다시 물었다. 왼편 구름재 쪽 삼거리 길은 거리는 가깝지만 급경사여서 매우 힘들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동강을 안고 오르는 능선길이 아주 아름답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50세 전후로 보이는 마을주민은 매우 친절하고 자상한 사람이었다.

"정상까지 1,9킬로미터라는 저 이정표는 잘못된 겁니다.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3킬로미터쯤 될 겁니다. 어느 등산객이 저 안내판 엉터리 안내판이라고 저렇게 흔들어 망가뜨려 놓았답니다."

마을 주민이 덜렁거리는 안내판을 손으로 가리키며 하는 말이었다. 주민과 작별하고 산행에 나섰다. 동강 줄기를 감싸 안고 오르는 절벽 능선길이었다.

지천으로 많은 뽕나무 오디와 산딸기를 따먹으며 오르는 길

앞에 동강이 가로막고 흐르는 문희마을은 뒤편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높직한 산자락에 안겨 있었다. 농촌이지만 논은 보이지 않고 어설프고 작은 밭뙈기 몇 개가 바라보인다. 마을이래야 10여 호의 농가와 펜션이 드문드문 서 있는 모습이 퇴락한 농촌의 풍경이었다.

"우와! 이 오디 좀 봐, 이거 좀 따먹고 올라가지."

일행 한 사람이 탄성을 지른다. 주차장 옆과 마을 안길 옆에는 몇 그루의 커다란 뽕나무들이 서 있었는데 잘 익은 까만 오디가 새까맣게 열려 있었다. 너도나도 뽕나무 밑에서 오디를 따 먹는다.

일행들 다섯 명 중에 세 사람이 당뇨병 환자니 당뇨병에 좋다는 오디는 반가운 간식거리일 수밖에 없었다. 뽕나무에 다닥다닥 열린 오디들은 아무도 따지 않고 방치된 채 너무 익어서 후두둑 후두둑 저절로 떨어지고 있었다.

 저 봉우리가 백운산 주봉
저 봉우리가 백운산 주봉 ⓒ 이승철


 등산사고자의 추모 돌탑
등산사고자의 추모 돌탑 ⓒ 이승철


십여 분간 오디를 따 먹은 일행들의 입술이 거무스름해졌다. 손가락과 손바닥도 온통 불그스레한 오디물로 물들었다. 일행들은 서로 마주보며 웃음보를 터뜨렸다. 모처럼 동심으로 돌아간 일행들이 위험한 등산길에 대한 공포로부터 벗어나는 모습이었다.

조금 더 올라가자 길가에 빨갛게 익은 산딸기들이 나타났다. 백운산은 유명한 산이어서 등산객이 많은 편이었다. 그러나 대부분 제장마을이나 점재마을 쪽을 이용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등산객이 많지 않은 이곳 길가의 오디나 산딸기는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았다. 일행들은 길가의 산딸기를 따먹으며 올라가기 시작했다.

엉터리 거리표기 등산 이정표, 표기를 정확하게 했으면

조금 올라가다가 길은 오른편으로 향했다. 칠족령 쪽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오르막길이 아니어서 길은 평탄하고 쉬웠다. 등산로 입구에서 지레 겁을 먹었던 일행도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그렇게 30여 분을 걸었을까, 갈림길이 나타났다. 오른편 칠족령으로 가는 길과 왼편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나뉘어 있었다.

"어, 이 이정표 좀 봐? 정상까지 2, 3킬로미터네. 입구에선 1,9킬로미터라고 했는데, 한참을 걸어왔는데 오히려 더 멀어졌잖아? 그럼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반대방향이었단 말이야?"

일행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래서 입구에서 만난 주민이 이정표 표기가 잘 못되었다는 말을 했었던 모양이었다. 정상을 향하는 길 쪽으로 표시된 이정표였다.

"저 물줄기 좀 봐? 굽이굽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지."

삼거리에서 조금 올라가자 동강을 병풍처럼 감싸고 세워진 절벽 위의 능선길이다. 절벽 위에서 밑을 내려다본 일행이 감탄을 한다.

 칠족령 전망대에서 바라본 동강, 저 멀리 보이는 다리가 제장나루
칠족령 전망대에서 바라본 동강, 저 멀리 보이는 다리가 제장나루 ⓒ 이승철


 조심스러운 등산로
조심스러운 등산로 ⓒ 이승철

"어, 조심해, 저 절벽 아래가 아찔하구먼."

덩달아 동강을 내려다보던 다른 일행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주춤 물러섰다.

"길이 미끄럽거나 특별히 위험하진 않구먼, 그냥 조심해서 오르면 되겠어."

겁먹은 일행을 바라보며 다른 일행이 안심을 시켰다.

능선길을 따라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서 만나는 풍경들은 아름답기 짝이 없었다. 멀리 가까이 바라보이는 푸른 봉우리들도 아름다웠다. 그러나 발아래 펼쳐진 동강의 물줄기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산수화의 진경을 보는 것 같았다.

위험하지만 아름다운 등산길 동강 풍경에 취하다

"여기가 바로 등산사고가 났던 곳이구먼, 이 돌탑이 추모탑이야."

능선 길 옆 절벽 벼랑 위에는 돌탑이 쌓여 있었다. 그 돌탑 아래 부분에 추모의 마음을 담은 글이 새겨져 있었다.

"추모의 마음, 진정으로 산을 사랑했고, 진정으로 한백을 사랑했으며, 진정한 한백인이었던 한비님의 흔적을 이곳에 남깁니다. 1998, 10,17  한백 오름 일동."

추모탑을 바라보며 잠깐 숙연했던 일행들이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정상까지 오르는 길은 오른편의 절벽을 의식만 한다면 특별히 위험한 길은 아니었다. 날씨가 좋아 빗길, 바윗길에 미끄러지거나 거센 바람에 절벽 낭떠러지로 떠밀릴 위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심조심 정상에 오르자 시야에 펼쳐진 조망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칠족령 쪽 마지막 봉우리
칠족령 쪽 마지막 봉우리 ⓒ 이승철

 곱고 아름다운 동강풍경
곱고 아름다운 동강풍경 ⓒ 이승철


"이 산이 이거 동강 전망대나 다름없네 그려."

산을 오르면서 마치 양(羊)의 내장처럼 굽이굽이 돌고 돌아 흐르며 절경을 이룬 동강을 바라본 일행들이 정상에서 새삼스럽게 감동하고 있었다.

"위험하다고 등산 포기했더라면 이 좋은 경치도 못 보고 얼마나 억울할 뻔 했어?"
"그러게 말이야, 오늘 엄청난 실수를 할 뻔 했구먼."

등산로 입구에서 등산을 포기하려고 했던 일행이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인다.

정상에서 간식을 먹고 하산길로 나섰다. 안쪽 구름재 삼거리길로 내려올까 했지만 아름다운 동강을 다시 바라보고 싶어 올랐던 길을 되짚어 내려가기로 했다. 내려가며 바라보는 동강의 모습은 오를 때와는 또 다른 아름다움으로 다가오곤 한다.

하산길에서는 칠족령 전망대까지 들렀다가 문희마을로 내려왔다. 문희마을에서 다시 승용차를 몰고 미탄으로 나가는 길가의 동강풍경도 아름답기는 마찬가지였다.

"손을 벨 것처럼 날카로운 저 봉우리를 우리들이 어떻게 올랐지?"

동강변에서 올려다본 백운산의 모습이 정말 날카롭기 짝이 없어 보인다. 강변에서 직접 오른다면 새처럼 날아오르지 않는다면 전혀 불가능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어디 비집고 올라갈 수 있는 모습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문희마을의 이정표 정상까지 1,9km 칠족령쪽 오르막길의 이정표는 2,3km
문희마을의 이정표 정상까지 1,9km 칠족령쪽 오르막길의 이정표는 2,3km ⓒ 이승철


"오늘 무사히 올랐다가 내려왔지만 암튼 위험한 산임에는 틀림없어."

일행 한 사람은 아주 날카롭고 위험한 산을 올랐다가 내려온 것이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한 모양이었다.

"어느 산인들 위험하지 않은 산이 있겠어? 그래서 산에 오를 때면 항상 겸손해지라는 것이고, 그렇게 산을 오르며 늘그막에 철도 좀 드는 거지 허허허."

미탄면 소재지에서 점심으로 먹은 강원도의 토속음식 막국수의 맛이 동강의 풍경처럼 맛깔스러웠다.


#이승철#백운산#동강#문희마을#제장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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