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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 프렌들리'를 내세웠던 이명박 정부의 언론에 대한 태도가 5공화국 때와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오죽했으면 '(기사)쓰지 말아달라' '(기사)빼달라' '(기사)바꿔달라'가 청와대의 3대 언론정책이라는 비아냥까지 있다. <오마이뉴스>는 3회에 걸쳐 그동안 청와대가 언론 보도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여왔는지, 문제점은 무엇인지 소개한다. <편집자주>

 

'쇠고기 협상 폭로' 기자가 돌아왔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의 '대통령 쇠고기 발언 삭제 요청'을 폭로한 뒤, '1개월 청와대 출입정지' 징계를 받았던 김연세 <코리아타임스> 기자가 지난 10일부터 청와대 출입을 재개했다.

 

김연세 기자가 징계를 받은 것은 지난달 8일. 당시 국무총리실도 함께 담당했던 김 기자는 한승수 총리의 한미 쇠고기협상 관련 대국민 담화 발표 이후 이어진 질의응답을 통해 "미국을 순방 중이던 이명박 대통령이 (한국보다 먼저) 한미 쇠고기 협상 소식을 전한 뒤 참석자들이 박수를 친 사실에 대해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비보도'를 요청했다"고 폭로했다.

 

언론의 취재자유를 제약하려고 했던 청와대의 행태를 고발한 김 기자의 질문은 방송사를 통해 생중계됐고, 광우병 파동으로 성난 여론과 맞물려 누리꾼 사이에서 큰 화제를 불러모았다.

 

그러나 김연세 기자가 청와대 출입기자단 운영위원회(인터넷매체를 제외한 신문사, 방송사 등으로 구성)로부터 1개월간 출입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은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김연세 기자가 한 총리에게 질문하는 과정에서 "며칠 전 이동관 대변인이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를 수입하는 것은 민간업자의 몫'이라고 했다"고 밝혔기 때문. 당시 이동관 대변인의 발언은 이 대변인의 '익명 보도' 요청으로 인해 모든 언론에 '청와대 관계자' 또는 '청와대 핵심 관계자'로 소개됐다.

 

결국 김 기자는 이동관 대변인에 대한 '실명 비보도 약속'을 파기했다는 이유로 동료 기자들로부터 징계를 받아야 했다. 기자가 자신이 보도한 기사가 아닌 취재원에 대한 질문 과정에서 실명을 공개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은 것은 초유의 일이었다.

 

김 기자에 대한 징계 소식이 알려지자, 다음 '아고라' 등 인터넷 토론장에서 '김 기자의 징계에 반대한다'는 청원 운동이 벌어졌고, 3만 명에 가까운 누리꾼이 이 청원서에 서명했다.

 

돌아온 김연세 기자 "변한 게 하나도 없네!"

 

정확하게 1개월 만에 청와대에 돌아온 김연세 기자가 한 첫 마디는 "변한 게 하나도 없네"였다. 여전히 청와대에서는 무책임한 '익명 보도' 요청이 남발되거나, 언론의 자유로운 취재 활동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일정에 대한 공식 브리핑이나 '방송용 멘트'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이동관 대변인 브리핑은 실명이 아니라 익명으로 보도해야 하는 것이 관행처럼 자리 잡았다.

 

실제 이동관 대변인의 '실명' 브리핑은 지난 10일 "한승수 국무총리와 전 국무위원이 이 대통령에게 일괄 사의를 표명했다"는 게 마지막이었다. '광우병 쇠고기' 파동, 화물연대 총파업 등으로 국민의 모든 관심사가 청와대로 향하고 있는 중요한 시점에서도 이 대변인은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대신 이 대변인은 3일 연속 익명 보도를 전제로 한 비공개 브리핑만을 진행하고 있다. "청와대에는 대변인이 두 명 있다. 한 명은 '이동관 대변인'이고, 다른 한 명은 '핵심 관계자'다"는 우스갯소리는 그나마 양호하다. 일각에서는 "청와대에 이동관 대변인 행세를 하는 유령이 떠돈다"는 '괴담'이 나돌고 있다.

 

지난 11일 '박근혜 총리설'에 대해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가야 진전이 있을 수 있는 것 아니냐, 여러 가지 구상 중 하나일지는 모르지만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고 보도된 '청와대 핵심 관계자' 역시 이동관 대변인이었다. 이에 대해 박근혜 전 대표 측 의원들이 곧바로 "청와대 대변인이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는데, 우리 입장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반응을 보여 '익명 보도'가 무의미해졌다.

 

정치인만이 아니라 국민도 익명 뒤에 숨어 있는 이 대변인의 존재를 모를 리 없다. 일부 기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청와대 핵심 관계자'로 시작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로 끝나는가 하면, 일부 기사는 이동관 대변인과 '청와대 핵심 관계자'를 혼용해 쓰는 촌극이 자주 벌어진다. 그때마다 누리꾼들은 "이동관의 이름을 '이핵심', '이관계'로 바꿔라"는 댓글로 이 대변인의 행태를 꼬집고 있다.

 

'김연세 기자 징계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은 청와대 대변인실의 무분별한 비보도·엠바고(보도유예) 요청과 익명 브리핑의 남발임에도, 그에 대한 개선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 비서관 유·불리 판단이 국민 알 권리보다 우선

 

'익명 브리핑'에 대한 긍정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민감한 사안이나 취재가 불가능한 사안에 대한 기자들의 정보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동관 대변인의 '익명 브리핑'은 기자들의 정보 갈증을 더 증폭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 대변인은 기자들의 거듭된 요청에 마지못해 브리핑을 하거나,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만 하고, 민감한 질문이 나오면 답변을 피했다.

 

지난 12일 익명 브리핑 당시 이동관 대변인은 청와대 내부 전산시스템인 '이지원(e-知園)' 자료유출 사건과 관련해 기자들의 질문이 계속되자, "지금 조사 중"이라며 즉답을 피하더니, "마음이 약해져서 안 되겠다"며 급히 브리핑 장소를 나갔다.

 

대신 이 대변인은 개각 인선과 관련 연일 "아직 대통령의 결심이 확고히 선 것이 아닌데 벌써 사람 이름까지 나오고 당혹스럽다", "인사 괴담이 퍼지고 있다"는 등 하마평의 진원지인 한나라당에 불만을 토로하는 데 집중했다.

 

'익명 브리핑'을 선호하는 것은 비단 이동관 대변인만이 아니다.

 

김병국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지난 4월 이 대통령의 방미를 앞두고 브리핑을 열었다. 그는 무려 1시간 30분 동안 한미 정상회담의 의미 등을 장황하게 설명하더니, 전체 브리핑 내용을 '엠바고(보도유예)'도 아닌 '비보도'로 처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까지 이와 관련된 국내의 모든 사전 보도를 틀어막겠다는 의도로 밖에는 달리 해석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새 정부 출범 후 처음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이 공동성명도 채택되지 못하는 알맹이 없는 회담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국민은 사전에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김 수석의 이날 브리핑 내용은 오히려 일부 외신에 보도돼 해당 외신사와 청와대 간 '약속 파기다, 아니다'를 놓고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전 세계인이 접할 수 있는 정보에 한국 국민만 차단돼 있는 것이다.

 

한 언론사 간부는 "대통령 방미의 전모를 설명하는 브리핑 전체에 '비보도'를 거는 것은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없었던 상식 이하의 행태"라며 "청와대가 '비보도'를 건다고 받아들이는 출입기자들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중수 경제수석비서관 역시 실명을 내놓고 하는 브리핑은 거의 없다. 역시 습관적으로 엠바고 내지는 익명 보도를 요청하고 있다.

 

참여정부가 박아놓은 '대못' 뽑겠다더니

 

 

청와대에는 '이동관 유령' 말고도 제2, 제3의 유령이 떠돌고 있는 셈이다. 청와대 핵심 참모진들이 '국익'이라는 애매한 기준을 내세워 정책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가 결국 취임 100일만에 수석비서관 일괄 사의 표명 사태를 낳았다는 지적이다.

 

청와대와 기자단 사이에 맺어지는 엠바고나 익명 보도 약속이 민감한 문제를 감추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데에는 청와대의 정례브리핑 제도가 흔들리면서 정보 접근권이 약화된 탓이 크다.

 

참여정부는 '취재 선진화 방안'의 일환으로 지난해 9월부터 청와대 춘추관에서 매일 오후 2시 30분 정례브리핑을 실시했다. 하지만 새 정부 출범 이후 정례브리핑 제도는 사라졌고, 대변인의 일정에 따라 예고 없이 수시로 열리기 때문에 예측이 불가능하다.

 

또한 '기자실에 박혀있는 대못을 뽑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이명박 정부는 오히려 더 단단히 취재처의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기자들의 청와대 비서동 방문취재가 여전히 막혀 있는 가운데, 비서관들에게 전화를 통한 간접취재 역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비서동 개방 문제와 관련 청와대 측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결정하게 될 것"이라며 "아직 결론이 난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비서실의 유·불리 판단이 기자들의 자유로운 취재와 국민의 알 권리보다 더 우선시 되고 있는 게 '프레스 프렌들리'를 내세운 '이명박 청와대'의 현실이다.


태그:#이명박 언론통제, #이동관 대변인, #김연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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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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