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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6월 3일로 취임 100일을 맞았습니다. '경제 살리기'를 기대했던 국민은 벌써부터 실망과 분노를 느끼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미숙한 국정운영과 오만한 자세 때문에 경제정책은 방향감을 잃고 흔들리고 있습니다. 어느 곳이 어떻게 잘못됐는지 전문가들의 진단을 통해 'MB경제' 100일을 짚어봅니다. <편집자주>

"이게 아니었는데…."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난달 말 만났던 한 대기업 부사장인 A씨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현 정부 100일에 대해 물었을 때다. 잠깐 그의 말을 옮겨보자.

 

"처음엔 기대가 컸지. 물론 지금도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데, 요즘 쇠고기 문제 다루는 거 보면 (참여정부보다) 더 아마추어 같아."

 

뜻밖의 말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큰 수혜 계층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기업인, 그것도 재벌 고위임원의 입에서 '아마추어 정권'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그래도 현 정부 경제정책은 대기업엔 좋지 않느냐'고 말이다.

 

A씨는 "이렇게 환율정책을 써 내면 일부 수출이 많은 대기업 계열사 몇 개는 좋을 수 있다"면서 "오히려 수입 원자재 값만 올라가서 많은 기업들은 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업인들은 무조건 규제완화만 좋아하는 줄 아는 모양"이라며 "그것도 좋긴 하지만, 정책의 일관성이나, 정치사회적 안정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느 대기업 고위 임원의 충고 "참여정부보다 더 아마추어"

 

A 부사장은 나중에 그냥 자신 개인의 생각이라면서 의미를 부여하지 말아 달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기업인들 상당수가 현 정부와 경제팀에 대한 우려의 시각을 보내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또 다른 대기업의 B 전무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지난 정부에서도 일부 재벌 정책에 불만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물가 안정이나 전체적인 갈등 조정 능력은 지금보다 나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의 대내외적인 경제상황이 이명박 정부에 좋지 않은 것은 분명하지만, "이를 대처하고 풀어가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사례를 들어달라고 하자, B 전무는 "대표적인 것이 정부가 직접 개입해 물가를 잡는다는 발상 자체가 오히려 포퓰리즘적이고, 가계나 기업 모두에 도움이 안 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이들 기업인들은 경제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방법에는 동의했다. 그러면서도 사회적 갈등을 전혀 해소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정책을 추진하는 방식은 변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예견된 70년대식 성장지상주의 경제의 실패
 
실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중심으로 현 경제팀은 지난 3월 10일 올해 경제운용계획을 밝히면서, '7% 성장능력을 갖춘 경제'라는 제목의 실천계획을 발표했다.

 

올해 안에 6% 내외의 성장을 이루겠다는 목표와 함께 과감한 규제개혁과 세금감면, 사회기반시설 확대 등의 추진을 약속했다. 하지만 이미 작년부터 이어져 온 국제 원자재값 상승 등 대외환경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무리한 정책 목표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소장(한성대 교수)은 "재정부가 내놓은 그때 자료대로 정책목표가 달성된다면, 아마 노벨경제학상 후보에 오를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현 경제팀이 내놓은 경기회복 내용 등은 곧장 물가상승 압력을 높이고, 경상수지와 재정수지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면서 "게다가 환율정책은 사실상 과거 70, 80년대 수출기업에 대한 정부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김 교수의 우려와 지적은 현 정부 출범 100일도 되지 않아 현실로 나타났다. 국내 물가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면서, 한국은행이 설정한 물가목표 3% 후반을 훌쩍 뛰어넘은 상태다.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시중 장바구니 물가 상승폭은 이미 30~40%에 달한다.

 

엠비노믹스의 연이은 헛발질... 소비자, 기업 모두 등돌려

 

이 같은 물가폭등에 대한 정부의 대응도 1970년대식이긴 마찬가지. 이 대통령이 지식경제부의 업무보고 자리에서 나온 '물가관리 품목' 발언 한 마디에, 이른바 '이명박 물가지표'까지 만들어 정부가 직접 관리하기에 이르렀다.

 

최근 물가성적표는 이들 관리품목 가운데 상당수가 평균 물가상승률보다 더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식음료 업체인 H사의 정아무개 부장은 "대통령이 국민의 물가불안을 덜어주기 위해 그랬다고 이해하더라도, 문제는 그 아래에서 집행하는 관료들의 사고방식"이라며 "기업들이야 당장 눈 가리고 아웅식으로 동결하는 척하겠지만, 결국 값은 오르고 소비자들은 그것을 떠안게 돼 있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정부의 품목별 물가관리는 과거부터 있어왔던 것"이라며 "현 정부가 특정 품목별로 직접 관리를 했다는 것은 오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의 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정부 안에서도 별로 없다.

 

강만수 경제팀의 대표적인 환율정책도 마찬가지. 이들은 애초 국민에게 약속한 성장목표 6%에 크게 미달할 것으로 예상되자, 모든 정책수단을 성장률 끌어올리는 데 집중해 왔다.

 

이를 위해 급격한 환율 상승을 방관 내지, 부추겨왔던 것이 사실이다. 실제 올초 원-달러 환율이 900원대에서 최근에는 1050원대까지 큰폭으로 상승했다.

 

김광수경제연구소의 김광수 소장은 "이 같은 환율상승에 따른 원화약세를 인위적으로 유도하는 것은 불 속에 기름을 끼얹는 것과 같다"면서 "일부 수출대기업에게만 이익이 돌아갈 뿐, 수입원자재 값 상승에 따른 물가폭등은 고스란히 서민에게 전가된다"고 말했다.

 

강만수의 굴욕?... 경제팀 교체 목소리도

 

결국 이 같은 물가폭등은 쇠고기 정국과 맞물리면서 국민적 저항으로 번질 기미까지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부랴부랴 10조원에 가까운 돈을 풀면서, 민심달래기 나서고 있다. 국정쇄신을 위한 퇴진 압력을 받은 강만수 장관도 뒤늦게 각종 언론에 얼굴을 내비치며, "높은 물가로 인해 현재는 경제안정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환율정책에 대해서도, 그는 "안정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환율과 금리정책에 대해서도 안정을 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융시장 등에선 "결국 민심에 강만수의 성장드라이브가 한풀 꺾였다"는 반응이 나왔다. 일부에선 "강만수의 굴욕"이라는 평가도 이어졌다.

 

한 외국계증권회사의 애널리스트는 "현재의 경제 여건을 돌파하고 기업 등 경제주체들을 적극적으로 끌어안고 가기 위해선 경제팀 개편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경제정책은 견제와 균형 또는 정책 간의 조화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면서 "하지만 현 정부의 경제팀 내에선 전혀 이 같은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이어 "견제와 균형의 내부 시스템을 바로 세우고, 정책의 세련미를 높이는 유일한 방법은 사람을 교체하는 것"이라며 "법 규범과 경제원리를 존중하는 사람으로 새 경제팀을 꾸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그:#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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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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