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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을 정리하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21년 전 사진 몇 장을 발견했습니다. 이 나라 민주주의 역사에 길이 빛날 87년 6·10 민주항쟁을 상징하는 고 이한열 열사 빈소 풍경과 시위현장 사진이었습니다. 

 

비록 지방의 작은 도시(군산) 시청 사거리에 차려진 빈소라서 왜소하지만, 가방을 멘 초등학교 여학생들이 이 열사 사진을 바라보는 뒷모습이, 거리시위를 문화로 재창조하고 있는 '촛불문화제'를 연상시켜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시간이 한가할 때면 옛날에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와 앨범을 뒤적이는 버릇이 있는데요. 이번에는 21년 전의 이한열 열사를 가슴으로나마 만날 수 있었으니 큰 수확이라고 해야겠습니다. 

 

매캐한 최루탄 냄새로 숨이 막힐 것 같은 거리 현장을 땀을 흘려가며 카메라에 담던 그때가 시나브로 떠오릅니다. 당시 대학생들과 시민단체를 따라 망월동 민주성지에도 몇 차례 다녀왔거든요. 작은 기록이지만 딸에게 남겨줘야겠다는 사명감도 작용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사과탄 터지는 소리와 화약 냄새 때문에 걸어다니는 것도 두려워하던 시절이었지만, 서울에 출장을 갈 때는 항상 카메라를 챙겼습니다. "경찰에게 빼앗기면 어떻게 하려고 카메라를 들고 다니느냐"라며 거래처 사장님이 걱정할 정도로 사회 분위기가 살벌했었거든요. 

 

빛의 예술이라고 일컫는 사진을 총각 때부터 취미로 해오면서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닫게 됐습니다. 오래 전에 촬영한 사진이나 친구 편지는 과거를 반추하고 모순된 현실을 바로 볼 수 있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해주거든요.

 

 

이한열 열사는 누구?

 

고 이한열 열사는 1987년 6월9일 연세대학교 정문 앞에서 시위 도중 진압경찰이 발사한 최루탄을 머리에 맞아 의식을 잃고 뇌손상으로 투병하다 7월5일 사망,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됐습니다. 

 

기록을 보면 연세대에 입학한 이 열사는 성실하고 모범적인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비디오를 통해 광주학살에 대한 사진 전시회를 보고, 학교에서 열리는 다양한 집회에 참석하면서 사회에 무관심했던 자신을 부끄러워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열사는 86년부터 실천적인 인간이 되겠다며 시위 현장에 뛰어들었고, 친구들에게는 이름 중 '열(烈)'자가 매울 열이라면서 자신과 최루탄은 불과 분의 관계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합니다. 또 이름의 끝 글자가 같은 김주열군과 자신을 비교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어쩌면 자신의 죽음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987년 6월 9일,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에 참가한 이 열사는 독재와 맞서 투쟁하다 최루탄에 피격당하고 쓰러졌으며, 그 피격사건은 전국으로 퍼져나가 분노한 학생, 시민들이 궐기하기 시작했고, 결국 87년 6월 항쟁의 함성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열사의 사망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진상이 밝혀진 직후에 발생했기 때문에 더욱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후 5일이 지난 7월 9일에야 '애국 학생 고 이한열 열사 민주국민장'으로 치러졌습니다.

 

1987년 숨진 이한열 열사는 14년 만인 2001년에야 권위주의 정권에 항거하다 숨진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결정되어 정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명예를 회복하였습니다.

 

 

진실과 정의가 승리했던 87년 6·10민주항쟁

 

87년 당시 군산시청이 있던 중앙로에서 가게를 운영했던 저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시위현장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군산초등학교가 가게 바로 앞에 있었는데, 대학생과 시민은 물론 초등학생들까지 전두환 신군부에 맞서 싸웠던 민주항쟁이었습니다.

 

저는 시위대에 합류해서 '호헌철폐!, 전두환 물러나라!'를 외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현장을 카메라에 담고, 목마른 시민들에게 마실 물을 떠다 주고, 더위에 지친 학생은 가게에서 쉬도록 하는 것으로 6·10 민주항쟁에 참여했습니다. 

 

시위현장을 남겨놔야겠다는 생각에 두려움도 잊고 현장을 카메라에 담다 최루탄 파편이 팔에 박히는 바람에 상처를 입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많이 작아졌는데요. 상처에 개의치 않습니다. 영광의 상처이기 때문이지요. 

 

인물사진을 선호하기 때문에 호국영령의 달인 6월에는 대전 국립묘지와 군산의 군경묘지로 야외촬영을 나갔는데, 기자로 착각한 유가족들이 "신문에 내지도 못할 거면서 사진은 왜 자꾸 찍어대느냐!"라며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땐 그만큼 언론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언론이 국민에게 믿음을 저버린 대표적인 예를 든다면 KBS의 '땡전뉴스'이고, 전두환의 주구노릇에 충실했던 '조중동'의 편파 왜곡보도일 것입니다. 특히 신군부와 타협하고 부자신문 대열에 합류한 <동아일보>와 외눈박이 신문 <조선일보>의 왜곡은 오늘도 하늘을 찌르고 있는데요. 머지않은 날에 국민의 냉엄한 심판이 내려질 것으로 확신합니다.

 

부천 성고문 사건과 박종철군 고문 사건으로 살벌한 공안 정국이 지속되며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분위기 속에서도 정의는 승리한다는 믿음과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민중의 저력에 기대를 걸었는데 결국 승리를 이끌어냈습니다.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고 세계 민주주의 역사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민주항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87년 6·10항쟁과 08년 촛불대행진

 

87년 6·10항쟁은 역사를 왜곡하고 국민을 배신한 전두환 신군부의 종말을 원했던 민중의 항거였다고 하겠습니다. 민주인사들을 빨갱이로 조작했던 그들은 부당한 방법으로 잡은 권력을 지키려고 거짓말을 밥 먹듯 했고, 민중을 탄압했으니까요. '탁 치니 억하고 죽더라'라는 박종철 의문사와 부천서 성고문사건이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9일, 6·10 민주항쟁 21주년을 맞아 연세대 학생들과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회원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원들, 우상호 전 통합민주당 의원, 한국진보연대 한상렬 상임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연세대학교에서 이한열 열사 추모제가 열렸다고 합니다. 

 

추모제에 참석한 이 열사 어머니 배은심씨는 연세대 학생들에게 "연세대의 21년 전 모습을 기억하고 싶어 참석해 준 많은 분께 감사드린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막고 파렴치한 이명박 정부를 규탄하고 자 10일 열리는 '100만 대행진'에 참석해달라고 당부했더군요.

 

연세대 이한열 열사 21주기 추모기획단은 10일 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와 기획단 소속 학생 3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연세대 정문에서 서울시청 앞 촛불집회 현장까지 이 열사의 영정 사진을 들고 행진하는 국민장을 재연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1987년 이 열사의 운구가 연세대를 떠날 때도 시청에 100만 명이 운집해 '독재타도, 호헌철폐'를 외쳤는데, 6월 민주항쟁 21주년인 10일 촛불문화제 최대 규모인 '100만 대행진'이 예정돼 있고 전날(9일) 밤에는 수천 명의 시민이 거리시위를 벌였다고 합니다. 

 

지난 8일 시위현장을 지켜보던 김대선 신부는 "정치인 하나 잘못 선택해서 많은 젊은이가 고생하다니 정말 불행한 일"이라며 "1980년 암울했던 시기가 다시 돌아오는 것 같아 불안하다"고 우려를 표시했다는데 그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 대통령에게 당부하고 싶은 한 마디

 

지난 5월18일 망월동 민주성지 구 묘역에서 신 묘역으로 가던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 씨가 박정희 시절보다 더한 과잉경호로 행사장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어처구니없는 보도를 접하면서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는데 '배후세력' 운운하는 이 대통령을 보면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열사 어머니가 5·18 민주항쟁 기념식장 출입을 못하고 민주화 호에 무임승차한 이 대통령이 주인공이 된 것은 국가적인 수치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세계적인 민주성지로 꼽히는 도시에서 독재시대에서도 보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한 마디만 당부합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9일 대선 승리가 확정되자 "국민은 위대하다"라며 감격했지요. 곧바로 이어진 국립묘지 참배 때는 "국민을 섬기겠습니다"라고 적었는데 약속을 지켜달라는 것입니다. 촛불문화제에 참여하고 있는 국민은 '딴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아니라 당신을 선택했던 국민이기 때문입니다.

 

 


태그:#이한열, #6.10민주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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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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