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달 25일 미국 쇠고기 전면 수입에 반대하며 분신, 9일 낮 끝내 숨지고 만 고 이병렬씨의 빈소를 조문하는 행렬도 촛불집회의 양상과 비슷하다. 정치인이나  운동권 뿐 아니라 일반인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빈소는 고인의 둘째 형인 이용기씨(45)와 그 가족들,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 관계자들이 함께 지키고 있으며, 전북 전주에 거주하고 있는 고인의 어머니와 막내 동생은 뒤늦게 병원에 도착했다.

 

이날 가장 먼저 방문해 유족들을 위로한 이들은 민주화과정에서 자식을 잃은 어머니 아버지들이었다. 전태일 열사 어머니 이소선 여사, 박종철 열사 아버지 박정기씨,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 여사는 영정사진이 도착하기도 전에 장례식장에 도착, 빈소가 차려지는 것을 기다려 망자를 애도하고 유족을 위로했다.

 

특히 이소선 여사는 영정을 향해 "죽지 말고 살지 왜 죽었나, 죽는 힘으로 살아야지 왜 죽었나"라면서 흐느껴 한 순간 주변을 숙연하게 했다. 이 여사는 또 이용기씨의 손을 꼭 잡고 "어머니가 빨리 오셨으면 만나뵐 수 있었을텐데"라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이날 빈소를 차린 공몇 차례의 조문이 끝나자 빈소는 다시 썰렁해졌다. 다른 빈소 같으면 가족과 친척들만 달려와도 빈소가 분주할 텐데 이씨의 빈소는 한동 안 발길이 뜸했다. 빈소에 고인의 가족이 적은 것은 이씨가 10여년 전에 이혼을 했기 때문. 이용기씨는 딸이 있지만 재혼한 전처와 같이 살고 있기에 굳이 연락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대학생·까페회원, '생판 모르는 남'들의 조문행렬

 

그러나 가족이 적은 빈소를 '생판 모르던 남'들이 대신 채워주고 있다.

 

이날 7시 30분 경 빈소 근처를 서성이던 8명의 젊은이들이 쭈뼛쭈뼛 주변을 서성이나 싶더니 우르르 빈소로 들어갔다. 조문을 처음 하는 듯, 공공운송노조 관계자에게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간단히 요령을 설명 들은 이들은 영정을 향해 두번 절을 하고 상주와도 절을 한 뒤 서투른 조문을 끝낸 이들은 성균관대 학생들이었다. 사회복지학과 4학년 박진우씨 외 7명은 학교 안에서 서로 친하게 지내는 사이로 평소 시청 앞 촛불집회를 같이 나갔다고 했다.

 

이들은 "학교가 가깝고, 또 반드시 와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감사한 마음과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수줍게 말했다. 이들은 조문을 마치 그냥 가기가 아쉬웠는지 즉석에서 돈을 모아 조의금까지 내고 돌아갔다. 이들 외에도 각 대학교 학생회 대표 등 대학생들의 조문은 이어지고 있다.

 

고인이 생전에 활동했던 '이명박 안티까페' 회원들의 발걸음도 각각 이어지고 있다. 한 회원은 조문을 마친 뒤 빈소 밖에서 한참 동안 영정 사진을 바라보고 있기도 했다. 그는 "전주 지역에서 활동을 열심히 하시던 분이었다"며 붉어진 눈시울로 말을 잇지 못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인사들의 조문도 뒤를 잇고 있다. 천영세 민주노동당 대표를 비롯한 강기갑·광정숙·홍희덕 의원 등과 심상정 진보신당 공동대표도 조문행렬에 참여했다.

 

강기갑 의원은 "병원에 찾아갔을 때 위독하다고는 했지만 목소리도 알아듣고 살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 같아서 '아, 견뎌나올 수 있겠다' 싶었는데, 결국 그렇게…"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거동이 불편한 고인의 어머니는 막내 동생과 함께 전북 전주를 출발, 이날 저녁 9시 20분 경 병원에 도착했다. 그는 빈소에 들어서 영정 사진을 바라보면서 "내가 가고 나면 네가 나의 뒤를 따라야지 자식부터 먼저 가는 것이 어디 있어, 이게 왠 일이냐"라고 원망했다.

 

 

 


태그:#이병렬, #빈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