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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 안의 장독대 풍경
 단장 안의 장독대 풍경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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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조상님들의 슬기가 깃든 우리 한옥이 최고야, 멋스럽고 친환경적이고…,”
“조금 전에 먹은 구수한 청국장 맛이 우리 한옥문화 속에 버무려진 느낌이구먼.”

제천 청풍문화재단지 한옥마당 안에서였다. 구수한 청국장으로 점심을 먹은 일행들이 청국장처럼 구수한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하는 말이었다.

40여 명의 일행들을 인솔하기 위해 며칠 전 답사를 다녀온 청풍문화재단지를 다시 찾은 것은 6월 6일이었다. 그러나 연휴 첫날이어서인지 답사 때와는 달리 길은 고속도로에 들어서기 전부터 막혔다. 중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를 거쳐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가려던 계획은 꽉 막힌 도로 때문에 중부내륙고속도로로 변경했다.

거짓말처럼 시원하게 뚫린 중부내륙고속도로를 거쳐 제천으로 달렸다. 흙속에서 캐낸 산 금월봉에서 잠깐 쉬었다가 구불구불 내리막길 아래 금성면 성내리 길가의 명동기사식당을 찾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길이 막히는 통에 시간이 늦어져 우선 점심부터 먹기로 한 것이다.

구수하고 텁텁한 청국장 맛에 반하다

예약을 해놓았기 때문에 식탁에는 밑반찬과 청국장 찌개가 차려져 있었다. 일행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아주머니가 밥주발을 나른다. 아주머니와 작은 아이가 손님들을 받는 식당이어서 일손이 부족했다. 내가 거들고 나섰다. 일행들도 손수 음식 나르는 것을 돕는다.

“구수한 청국장 맛이 끝내주는구먼.”
“이렇게 맛있는 청국장은 정말 오랜만인걸. 식당 음식이 아니라 집에서 만든 청국장 같아요.”

음식을 먹고 있는 일행들이 칭찬하는 말을 들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혹시 맛이 없다거나 불평불만을 하면 어떻게 하나 은근히 걱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청국장이 끓고 있는 식탁
 청국장이 끓고 있는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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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집 풍경
 초가집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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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의 모든 책임은 내가 지고 있었다. 음식선정과 여행코스는 여간 신경 쓰이는 부분이 아니었다. 그런데 첫 번째 관문인 음식선정은 무난하게 통과하는 것 같았다. 모두 청국장 맛이 그만이라고 칭찬했기 때문이다.

반찬을 담아 내놓은 접시와 뚝배기들도 모두 옹기그릇들이었다. 옹기그릇에 담겨 나온 김치며 젓갈 등 반찬들도 하나같이 정갈하고 맛이 좋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음식은 역시 청국장이었다. 청국장 찌개가 맛이 없으면 다른 반찬으로는 대체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청국장 맛이 일품이었던 것이다.

“요즘 물가도 많이 올랐는데 이 정도 음식이 1인당 5천원이면 값도 아주 싸고 좋은 편이구먼.”

음식 값이 얼마냐고 물어 가르쳐 주자 하는 말이었다. 옳은 말이었다. 물가가 올랐다고 요즘 조금 유명한 음식점에서는 냉면 한 그릇에 7~8천 원씩 받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10여 가지의 감칠맛 나는 각종 반찬에 잡채와 부침개까지 곁들이고 버섯과 두부를 섞어 만든 재래식 전통 청국장 한식이 1인당 5천 원씩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들이었다.

고속도로에서 막히는 길 때문에 걱정했던 사람들이 맛있는 청국장으로 포식을 하고 나왔다. 마당도 제법 넓은 편이어서 버스를 대놓기도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다시 출발하기 전에 화장실을 찾으니 옆집을 돌아 찾아가라고 한다.

벼훑이, 홀태
 벼훑이, 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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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등에 짐 실을 때 사용하는 길마
 소 등에 짐 실을 때 사용하는 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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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 다 좋은데 화장실 이용이 불편해서 흠이구먼.”

화장실을 다녀온 일행 한 사람이 불평을 한다. 작은 음식점이라 화장실 시설을 따로 완벽하게 갖추어 놓을 수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음식점에서 청풍문화재단지는 가까운 거리였다.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오르내리며 돌고 도는 길 옆으로는 충주호 푸른 물이 녹음과 어우러져 더욱 싱그러운 모습이었다. 옆으로 또 하나의 다리공사가 진행 중인 청풍교를 건너자 문화재 단지 정문이 나타났다.

친절하고 자상하게 안내하고 설명한 문화해설사 정복순씨

우리 일행들이 정문 쪽으로 다가가자 말쑥한 양장 차림의 중년여성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선다. 그녀는 우선 안내도를 가리키며 설명을 했다. 문화해설사 정복순씨였다. 그녀의 설명을 듣다가 단지 내 문화재 안내를 정식으로 부탁했다.

▲ 한옥에 대해 설명하는 문화해설사 정복순씨 한옥에는 우리 조상들의 멋과 지혜, 혼이 깃들어 있어서 볼때마다 가슴이 뭉클하다는 청풍문화재단지 문화해설사 정복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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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을 위해 선뜻 나선 그녀가 앞장을 섰다. 그때부터 그녀는 우리 일행들에게 단지 안의 몇 곳을 안내하며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을 했다. 첫 번째는 한옥이었다. 이 한옥도 물론 충주댐으로 인하여 수몰되는 지역에서 옮겨온 집이었다.

“이 단지가 어떻게 조성되었는지는 알고 계시죠? 이 문화재단지는 충주댐이 생겨 수몰되는 지역에서 옮겨온 문화재들을 한곳에 모아 놓은 것입니다.”

정복순씨는 먼저 문화재단지의 태생부터 설명했다. 충주댐의 건설과 수몰지역 현황, 그리고 이곳에 옮겨놓은 문화재들에 대한 설명이었다.

목화씨를 빼내는 도구 쐐기
 목화씨를 빼내는 도구 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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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릿단을 터는 개상
 보릿단을 터는 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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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 안으로 들어오세요. 이 집도 물론 수몰지역에서 옮겨온 집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세요? 마루 위의 천장모습이 다른 집들과는 조금 다르지요?”

정복순씨는 한옥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리 한옥만이 갖고 있는 우월성과 특징, 그리고 외국인들의 시각까지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이곳에는 1년에 5만 여명의 외국인 관광객들이 찾아옵니다. 그들 중에는 중국인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중국인들 중에는 지금도 은근히 우월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눈빛과 태도에서 확연히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정복순씨의 말이었다.

“그런데 그들에게 우리 한옥에 대한 설명을 해주고 특히 온돌문화에 대한 설명을 해주고 나면 그들의 달라진 태도를 금방 느낄 수 있습니다.”

아궁이와 구들을 통해 밥을 짓고 음식을 만들며 난방까지 하는 온돌문화는 세계의 많은 민족들 중에 오직 우리 민족만이 갖고 있는 아주 특별한 문화라는 설명이었다.

옛 생활도구들을 보며 추억에 젖는 노인들

그녀의 설명을 듣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재미가 있다. 처마 밑으로는 각종 도구들이 벽에 걸려 있다. 툇마루에 내려앉은 햇살이 포근했다. 일행들은 집 주변을 둘러보며 조상들이 사용했던 도구들도 살펴보았다.

“어! 저건 홀태 아녀?”

논에서 벼를 추수하여 곡식을 따내는데 사용한 벼훑이를 바라보던 나이든 일행이 신기한 듯 바라보며 감탄을 한다. 그는 본래 호남지방에서 농사를 하던 농부였다고 한다. 그래서 어렸을 때 사용하던 도구를 바라보며 남다른 감회에 젖은 것이다.

베자는 기계 베틀
 베자는 기계 베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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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자 방앗간
 연자 방앗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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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는 무명이나 삼베, 명주 옷감을 짜던 베틀도 비치되어 있었다. 베틀 앞에서는 여성들이 관심을 보였다. 도구들 중에는 소 등에 짐을 싣기 위해 사용하던 ‘길마’며 목화씨를 빼는데 사용했던 ‘쐐기’도 있었다.

“이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아세요?”

역시 나이든 노인 하나가 삼각대처럼 세워져 있는 목재 도구를 가리키며 묻는다. 그 도구에는 명패가 붙어있었지만 그 노인이 손으로 가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지 대답하는 사람이 없다.

“이게 바로 개상이라는 겁니다. 보릿단을 내리쳐 씨앗을 터는 도구지요.”
“보릿단을 손으로 내리쳐 씨앗을 털었다고요? 너무 원시적이네요.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우리들 옆에서 듣고 있던 청년 한 사람이 너무나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되묻는다.

“이런 도구를 사용했던 시기가 지금으로부터 불과 50~60년 전입니다. 그리 오랜 세월이 지난 게 아닙니다.”

그러나 그 젊은 청년에게는 아득한 옛날 이야기일 것이다. 그가 태어나기 훨씬 전의 이야기니까 말이다. 그래도 그 청년은 어른들 말이어서인지 쉽게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정복순 문화해설사는 단지 안의 유명 문화재를 찾아다니며 자상하고 친절하게 안내하고 설명을 해주었다. 그의 설명은 일행들이 문화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문화재 단지를 둘러보고 망월산성 위의 망월정에 오르자 시원하게 펼쳐진 풍경과 함께 서늘한 바람이 젖은 땀을 식혀준다.

한옥과 정서가 어울리는 소나무 풍경
 한옥과 정서가 어울리는 소나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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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우리 조상들의 멋과 지혜가 깃들어 있는 한옥이 새삼스럽게 자랑스럽구먼. 이제 아파트 생활 청산하고 시골에 내려가 저런 한옥에 살면서 구수한 청국장도 마음대로 끓여 먹고 살고 싶네 그려.”

발아래 펼쳐진 문화재단지를 내려다보며 감회에 젖은 표정을 짓고 있는 일행은 70대 중반의 노인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승철, #청풍문화재단지, #청국장, #문화해설사, #정복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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