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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의 청와대 측근들을 향해 인사전횡과 국정농단을 정면으로 비판한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의 발언 파문이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강부자 내각' 파동 이후 수면 밑에서 꿈틀거렸던 여권 내부의 권력 갈등이 정두언 발언으로 마침내 폭발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청와대 측근그룹은 물론 당 지도부도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정 의원을 성토하지만, 당내 소장파를 중심으로 그가 "할 말을 했다"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작년 12월 대선 이후 이명박 그룹의 '파워맨'은 단연 정 의원이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아래 인수위)에 파견된 행정부 공무원 29명 중 정 의원의 모교인 경기고-서울대 동기동창이 5명에 이르렀다. '정두언맨'으로 분류되는 이들은 기획재정부·외교통상부·지식경제부에서 차관 또는 차관보 자리에 포진했다.

 

정 의원 자신은 인수위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보좌역 자리를 맡아 박영준 비서실 총괄팀장(현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과 함께 조각 작업에 매달렸다.

 

그러나 여권에서는 1월 중순경부터 "정두언은 더 이상 실세가 아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당시만 해도 크게 주목 받지는 못했지만, 정 의원이 인수위 시절 기자들과의 대화에서 자신의 위상 추락을 시사하는 말을 직접 하기도 했다.

 

인선 총괄하던 정두언, 1월 중순부터 권력 중심부에서 밀려나

 

그는 1월 11일 "지난 정권에서 차관 이상 지낸 사람 중 장관 후보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총리는 실무와 정치력, 인품을 겸비해야 한다"며 거침없이 얘기를 풀어갔지만, 2주 후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는 "사실 아는 게 없다는 걸 (기자들에게) 고백하러 왔다", "나도 주호영 의원(당선인 대변인)이 뭐라 말하는지 들으려고 왔다"고 머뭇거렸다.

 

새 정부 인사의 하이라이트는 당 대표와 함께 '빅3'로 불리는 국무총리와 대통령실장에 누구를 앉히느냐였다. 정 의원은 이 과정에서 '1승 1패'를 거뒀지만, 내용상 완패했다.

 

정 의원은 "새 정부가 '당장 쓸 수 있는 사람'보다는 '국민에 감동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는 인사 원칙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 국무총리로는 정치인·관료보다는 대학총장 출신의 중용을 선호했고, 이 때문에 손병두 서강대 총장과 어윤대 전 고려대 총장·안병만 전 한국외대 총장 등이 유력후보로 거론됐다.

 

물론, 전직 대학총장들을 총리 자리에 앉혔다고 해서 국민에게 감동을 줄 만한 인사로 비쳤을지는 의문이다. 더구나 당사자들이 자리를 고사하거나 검증 과정에서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여당 원로그룹을 중심으로 '정치인 총리 대안론'이 고개를 들었다. 국보위 참여 전력 등 국민에게 감동을 줄 만한 인선은 아니었지만 인사청문회의 파고를 넘는 데 큰 무리가 없다는 이유로 '한승수 총리'가 낙점된 것도 이같은 배경 때문이다.

 

총리 인선 과정에서 정 의원은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1월 말 한승수 총리 후보자를 내정한 뒤 한달간 여론을 지켜본 이 대통령은 자신감을 얻고 새 내각을 선보였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강부자 내각'이라는 비난뿐이었다.

 

인사 업무에서 손을 떼고 당에 돌아온 정 의원은 2월 26일 "지금 진행되는 정부 인선이 참으로 아슬아슬하다. 권력이 오만하다고 느껴지면 국민은 바로 등을 돌려버린다"는 논평을 발표했다. 정 의원과 '청와대 신(新)실세' 박영준 비서관의 갈등이 처음으로 표면화됐지만, 이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청와대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정 의원은 3월 23일 한나라당 후보 54명을 움직여 대통령 친형 이상득 의원의 총선 불출마를 요구하는 '거사'를 벌이기도 했지만, 이마저도 수포로 돌아갔다. 오히려 청와대 내에서 '정두언 라인'으로 분류되는 이태규 전 연설기록비서관이 자진사퇴 형식으로 권부에서 밀려나는 일이 발생했다.

 

 

류우익 비서실장 앉힌 정두언 "욕심없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정 의원은 이후에도 '청와대 정무라인 개편론'을 제기하는 등 줄기차게 청와대 신실세들을 겨냥한 투쟁을 전개했지만, 이 대통령과 정 의원의 거리는 갈수록 멀어졌다.

 

여당 지도부에서도 정 의원을 못 마땅하게 보는 고위당직자가 "내가 '정두언의 난'을 진압했다"고 자랑하는 일이 왕왕 있을 정도였고, 9일 최고위원회의에서도 "대통령을 바보로 만드는 말"(정형근 최고위원)이라는 말이 나왔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권력에서 멀어진 금단 현상 아니냐"는 말까지 했다.

 

그렇다고 해서 정 의원이 이명박 정부의 인사실패 책임론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류우익 대통령실장의 경우 정 의원이 만든 '작품'이라는 게 정설이고, 류 실장도 인책론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를 천거한 정 의원의 '판단 착오'도 지적할 수밖에 없다.

 

정 의원은 류 실장이 자신의 생각 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고 뒤늦게 불만을 토로했다. 정 의원 자신의 비유대로라면, 흥선대원군(정두언)이 "세도정치를 없애겠다"며 데려온 명성황후(류우익)가 대원군을 쫓아내고 또 다른 세도를 부린 셈이다. 정 의원은 7일자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욕심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된 것을 보면 대통령이 아직 상황을 정확히 모르는 것 같다"고 한탄했다.

 

그러나 정 의원의 뒤늦은 비판을 한낱 '권력투쟁'으로 치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인기가 땅에 떨어진 상황에서 "잘못된 인사가 이뤄졌고, 그 과정에서 나는 배제됐다"는 정 의원을 옹호하는 기류도 당내에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후보 55명이 '이상득 불출마'를 요구할 때 한발짝 물러서있던 원희룡 의원이 "권력투쟁에서 밀린 사람이 뒤통수치는 폭로이므로 무시해야 한다는 식으로 해서 문제의 실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고 태도를 바꾼 것도 당내 기류 변화를 보여준다.

 

한나라당은 9일 오후 의원총회에서 정두언 발언을 포함해 최근의 정국현안들을 논의하기로 했는데, 어떠한 해법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태그:#정두언, #한나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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