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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며칠 전부터 콧물이 조금씩 훌쩍거려지더니 목이 잠기고 가래가 끼기 시작했습니다. 감기 기운이 슬며시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몸이 으슬으슬하고 말할 때마다 코맹맹이 소리도 나고 영 상태가 좋지 않았었지요.

하지만 몸살기운을 억지로 데리고서라도 한 달여 계속되고 있는 아름다운 촛불의 바다에 기꺼이 텀벙 뛰어들고 싶었습니다. 그렇잖아도 얼마 전 초등학교에 다니는 우리 집 쌍둥이 딸내미들이 아빠인 내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아빠, 우리도 촛불집회에 가요, 이번 주말에는 우리 가족 모두 꼭 함께 촛불집회에 갔으면 좋겠어요!”

서울광장 잔디밭은 가족끼리, 동료끼리, 이웃끼리 모인 촛불집회 소풍장소였다.
▲ 소풍처럼 평화로운 촛불집회 서울광장 잔디밭은 가족끼리, 동료끼리, 이웃끼리 모인 촛불집회 소풍장소였다.
ⓒ 이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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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집 네 식구는 가족회의를 통해 ‘72시간 릴레이’로 벌어지고 있는 서울광장 촛불집회 참가를 만장일치로 즐겁게 결의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어제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다음 마실 물과 약간의 간식거리, 돗자리 등을 챙겨 서울광장 촛불집회 현장으로 가족소풍을 떠났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가며 저와 아내는 두 딸아이의 손을 잡고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이들은 촛불집회에 참가하러 가는 길이 재미있으면서도 두근거리는지 생소한 긴장을 표정으로 드러냈습니다. 그러면서 아빠 엄마와 이미 잡은 손을 더더욱 꼬옥 힘주어 잡았습니다. 그러는 순간 나는 아내와 문득 눈이 마주쳤습니다. 우리 부부는 교차하는 시선 속에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에게 속으로 말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민주주의를 말해 줍시다. 우리 아이들이 국민의 주권이 살아있는 숭고한 민의의 광장을 느끼고 체험하게 해줍시다. 촛불집회가 두렵고 암울한 극단적 투쟁의 현장이 아닌, 국민의 뜻과 생각이 하나로 모아져 국민을 무시하는 독선적 정권에게 사과와 시정을 요구하는 소통과 연대의 장이라는 사실을 기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줍시다.”

아내와 나, 그리고 쌍둥이 딸
▲ 촛불집회 우리 가족 아내와 나, 그리고 쌍둥이 딸
ⓒ 이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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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내려 시청 앞 서울광장에 도착하고 보니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메우고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적당한 곳에 가져온 돗자리를 깔고 바닥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광장에 울려 퍼지는 민의의 함성과 당당한 외침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딸내미들은 아빠 엄마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협상무효, 고시철회!’를 따라하며 촛불을 들어올렸습니다. 나는 우리 집 쌍둥이 초딩 녀석들의 낭랑한 구호가 서울광장 촛불의 바다에 한 줄기 물결로 하나 되는 모습을 지켜보며 뭉클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노래도 부르고 구호를 외치며 촛불집회 가족소풍을 즐기고 있는 중에 우연한 조우가 있었습니다. 우리 네 식구가 앉은 자리 바로 옆에서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낯익은 얼굴의 몇몇 어르신들을 뵐 수 있었습니다. 바로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이신 박정기 선생님과 동료 어르신들이셨습니다. 나는 박정기 선생님(이하 아버님)의 손을 두 손으로 뜨겁게 잡았습니다. 그리고 고개 숙여 아버님께 인사드렸습니다. 아버님은 내 쌍둥이 딸내미를 쓰다듬으시고 ‘몇 학년이니?’ 하고 물으시며 기특하다는 듯 따스한 눈빛을 아낌없이 듬뿍 주셨습니다.

촛불이 물결을 이룬 서울광장에서 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열사의 아버님을 만나뵈었다.
▲ 박종철 열사의 아버님 촛불이 물결을 이룬 서울광장에서 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열사의 아버님을 만나뵈었다.
ⓒ 이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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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울광장 촛불의 바다에서 우연히 아버님과 조우하니 20여 년 전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한열 열사의 장렬한 희생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당시 서울시청 앞 광장을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매운 채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쳤던 수많은 민중들의 넘쳐나는 인(人)의 바다와 물결을 감격스럽게 회상해 보았습니다.

군사독재의 모진 고문으로 숨져간 박종철 열사
▲ 고 박종철 열사를 생각해 보다. 군사독재의 모진 고문으로 숨져간 박종철 열사
ⓒ 이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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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 촛불집회에서 87년 6월 민주화운동 당시 장렬하게 산화한 이한열 열사를 떠올렸다.
▲ 고 이한열 열사 서울광장 촛불집회에서 87년 6월 민주화운동 당시 장렬하게 산화한 이한열 열사를 떠올렸다.
ⓒ 이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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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도 당시 독재정권은 국민을 무시하고 깔보며 무차별적인 폭정을 펼쳐나갔습니다. 국민을 물리력으로 제압하고, 폭력으로 길들이려는 저들의 어처구니없는 일방적 파쇼통치가 몸서리치게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이 땅에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고 정의를 쟁취하겠다는 거대한 민중의 저항과 물결을 끝내 이기지는 못 했습니다.

나는 마치 성탄전야처럼 서울시내 곳곳에 흐르는 물결처럼 아름답게 불을 밝히며 국민주권을 외치는 신성한 백성들의 정정당당한 요구를 벅찬 가슴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기기라’는 역사의 준엄한 경험과 교훈을 울컥한 마음으로 되새겨 보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저녁 7시부터 시작된 서울광장에서의 촛불집회가 정리되면서 국민들의 거리행진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네 식구는 서로의 팔짱을 낀 채 한 손에는 촛불을 다른 한 손에는 ‘이명박 OUT'이라고 써진 유인물을 들고서 행진하는 사람들의 뒤를 따라 천천히 걸었습니다. 까치발을 해서 저 멀리 앞 쪽으로 행진하는 사람들의 대열을 바라보니 그야말로 장관, 장관이었습니다.

아~! 헤아릴 수 없는 촛불의 행렬, 행렬, 행렬...

한 장의 유인물이 국민들의 현 정권에 대한 분노를 말하고 있다.
▲ 이명박 OUT 한 장의 유인물이 국민들의 현 정권에 대한 분노를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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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태워 세상을 정의롭게 밝히는 촛불을 치켜든 시민들의 손
▲ 촛불, 촛불, 촛불 스스로를 태워 세상을 정의롭게 밝히는 촛불을 치켜든 시민들의 손
ⓒ 이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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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네 식구는 서울광장을 출발해서 광화문 네거리를 지나 서대문 네거리를 거쳐 독립문 네거리까지 이르는 평화로운 소풍 행진에 동참했습니다. 행진의 대열에는 갓난아이를 유모차에 데리고 나온 젊은 새댁부터 예쁘게 교복을 입고 나온 중고생들, 아빠 엄마의 손을 잡고나온 초등학생들, 그리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들, 아주머니들이 있었습니다. 이 땅의 당당한 국민들이 거리에 있었습니다.

독립문 네거리를 걷다 우연히 본 식당의 간판이 코웃음을 치게 한다.
▲ 강부자? 독립문 네거리를 걷다 우연히 본 식당의 간판이 코웃음을 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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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행진이 독립문 네거리에서 사직터널 입구 쪽에 이르자 경찰버스와 전경들은 이미 그곳을 장벽으로 막아서고 있었습니다. 시민들은 그들을 향해 엄청나게 큰 스피커처럼 볼륨을 높여 소리쳤습니다. ‘차 빼라, 차 빼라!’ 그리고서 사람들은 연이어 ‘이명박은 물러나라!’ ‘고시철회, 협상무효!’를 지휘자 없는 장단에 맞춰 단호하게 외쳤습니다.

그날 저녁 우리 가족은 한바탕 벌어진 촛불집회 길거리 가족소풍을 무사히 마치고서 아쉬웠지만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둠이 짙게 깔린 돌아오는 길에 나는 내 아내와 아이들과 맞잡은 손을 그냥 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작은딸아이에게 슬며시 물었습니다.

촛불을 든 아내와 쌍둥이 딸
▲ 쌍둥이 딸과 아내 촛불을 든 아내와 쌍둥이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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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인아, 오늘 촛불집회에 다녀온 소감이 어떠니?”
“아빠 저는 오늘 두 가지를 느꼈어요. 첫째는 국민들의 하나된 요구와 목소리를 외면하는 이명박 대통령이 분명 잘못되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제가 목표로 하는 꿈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외교관이나 영문학자가 되고 싶기도 하지만 시민운동가가 되고 싶다는 새로운 목표가 추가되었어요.”
“그래, 좋은 생각이다. 아빠도 오늘 우리 가족의 촛불집회 참가가 정말 의미 있었다고 생각한단다.” 

나는 작은딸아이와의 짤막한 대화를 끝으로 오늘의 촛불집회 가족소풍을 차분하게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이명박 정권이 하루라도 빨리 국민에게 사과하고, 국민의 뜻에 따라 순종하는 겸손한 머슴이 되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6월 7일 촛불집회 다녀와서 쓴 글이며, <6월 항쟁 응모글>입니다.



태그:#촛불집회, #광우병, #촛불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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