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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의 오렌지팜 지역을 취재했다. 오렌지 팜은 요하네스버그의 대표적 빈민지역인 소웨토에서도 쫓겨난 사람들이 정착한 곳이다.

 

황량한 벌판에 다 쓰러져가는 판잣집들이 늘어서 있었고 여기엔 80만에서 150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마당엔 큼직한 플라스틱 박스가 하나씩 설치되어 있었다. 빛바랜 집들에 비해 플라스틱 박스들은 설치 한지 얼마 안 된 것들이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수도 계량기였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것보단 좀 더 크고 복잡해보였다. 바로 선불제 수도계량기(Pre-paid Water Meter)였다.

 

미리 돈을 내고 카드를 사서 그 돈만큼의 물만 공급받을 수 있는 장치다. 가난한 이들에게 수도요금을 받지 못할 것을 대비해 요하네스버그의 수도회사가 도입한 시스템이다.

 

 요하네스버그의 수도가 민영화 된 것은 2001년부터다. 오랜 백인통치를 끝내고 만델라 정권이 들어섰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 한 것은 아니었다. 세계은행은 세계화란 이름으로 남아공에 대한 개발을 지원하면서 공공부문의 민영화를 요구했다. 그 중 하나가 물의 민영화다. 요하네스버그의 상수도사업은 프랑스의 다국적 기업 수에즈의 수중(요하네스버그 워터)에 넘어갔다.

 

 요하네스버그 워터는 상수도 사업을 하면서 가난한 사람에게도 깨끗한 물을 공급할 것처럼 얘기했다. 하지만 그들이 한 일은 수도망을 확대하고 정비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동네에 선불제 수도계량기부터 설치했다. 그들의 관심사는 가난한 사람들이 수도요금을 떼먹지 못하게 하는 것이지 그들에게 더 많은 물을 더 효율적으로 더 깨끗하게 공급하는 것은 아니었던 셈이다. 요하네스버그 워터가 진출하기 전 오렌지팜 사람들에게 수도요금은 사실상 공짜였다. 마을 공동수도에서 물을 길어다 쓰거나, 집에 수도가 있는 경우면 그냥 썼다. 다만 돈을 내지 못했을 뿐이다. 

 

 남아공의 상수도가 민영화되면서 또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이 있다. 바로 집단 콜레라 발병이 늘었다는 점이다. 요하네스버그 중심가 근처의 대표적 빈민 밀집지역인 알렉산드라. 알렉산드라의 판잣집들은 주스케이 강 근처에 몰려있다. 수도공급이 어려워지자 사람들은 더러운 강물을 생활용수로 이용했고 그 결과 콜레라 발생이 증가한 것이다. 이들에게 요하네스버그 워터의 깨끗한 수돗물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이 지역엔 선불제 수도계량기 조차 찾아볼 수 없었으니 말이다.

 

 블루 골드(BLUE GOLD). 세계 다국적 기업들은 앞으로 닥쳐올 물 부족 시대를 대비해 앞 다투어 물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석유보다 더 비싼 물은 더 이상 공공재가 아니라 아주 큰 이윤을 가져다주는 하나의 상품, 즉 ‘푸른 황금’이다. 물 부족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가 지혜를 모아도 모자랄 판에 이를 돈벌이로 삼겠다는 발상은 전문성과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전 세계로 번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세계화의 도도한 흐름에 우리라고 예외일 수 있으랴.

 

 쇠고기 장관고시가 강행되던 지난 달 29일, 이명박 정부는 물 민영화를 본격화하는 계획을 제출했다. 행정안전부는 '지방 상수도 통합 전문기관 관리계획'을 제출하고, 155개 시도지역의 상수도망을 고려, 3~15개 자치단체를 권역별로 광역화해 수자원 공사 등과 같은 전문기관이 관리하고 7개 특별시, 광역시는 경영혁신 후 자율적 판단에 따라 단계적으로 공사화를 추진한다는 게 뼈대다.

 

 지난 2003년 물 사유화 문제를 취재할 때 우려했던 것이 이제 우리 눈앞에서도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대통령 말대로 '값싸고 좋은 쇠고기'는 '안 사먹으면 그만'이지만 물은 어떻게 할 것인가. '비싸면 안마시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실용적인, 너무나도 실용적인 발상 앞에서 왜 난 머릿속이 하얗게 비는 걸까. 

 

ps. 그나저나 물 값이 오르면 청계천에 흘려보내는 수돗물은 어떻게 할 건지 그건 좀 궁금하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이재상씨는 인권연대 운영위원으로 현재 CBS PD로 재직중에 있습니다. 이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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