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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를 '웃음'으로, 그리고 '축제'로...

 

 

 

곰곰히 세어보니, 참석과 취재를 겸하면서 촛불문화제에 도합 15번을 참석한 것 같다. 별별 일이 다 있었다. 진압을 하고자 몽둥이를 들고 뛰어오는 전경과 다섯걸음 내에서 마주친 상황에서 미친듯이 뒤로 도망친 적도 있었으며,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자진연행'을 결심한 시위참가자들이 닭장차에 오르는 모습을 무력하게 지켜보면서 카메라 셔터를 누른 적도 있었다.

 

그런데, 시위가 진행될수록 뭔가 새롭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시위가 재밌다"는 느낌이 든 것이다. 시위 그 자체에 재미를 느낀 것이 아니라, 시위에 대처하는 시민들의 방식이 재미있다는 이야기다. 분노를 웃음으로, 시위를 축제로, 그렇게 승화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저마다의 생각과 사연이 깃든 자유발언도 수없이 들었다. 다양한 공연과 퍼포먼스도 함께, 그리고 곳곳에서 가끔씩 마주치는 유명인들의 존재도 만만치 않은 재미를 줬다. 하지만, 이런 요소들은 지금까지 시위를 위한 '양념'의 의미가 강했지만 점차적으로 위치가 뒤바뀌기 시작했다. 이순신 장군 동상 앞, 청와대로 향하는 길은 전경과 닭장차가 '봉쇄'한 가운데, 사람들은 태평로에서 시위를 '즐기기 시작한 것'이다.

 

 

'즐기는 시위'는 5일 저녁과 6일 새벽에 접어들면서 '축제'로 변하기 시작했다. 인근 음식점과 편의점은 한마디로 진열된 상품이 '거덜'날 정도로 날개돋친듯 물건들이 팔린다. 그런 가운데, 그 음식들과 더불어 맥주를 펼쳐놓고 빙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는 시민들… 시위는 이렇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5월 24일 저녁에 처음으로 가두시위가 시작된 이후, 주무대는 촛불문화제가 아니라 '가두시위'였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 가두시위 동안에는 경찰의 과잉진압과 맞물려 폭력과 연행으로 시민들을 분노케 했다. 사람들은 그러면서 본능적으로 터득한 것 같다. 곤봉과 물대포, 소화기가 아무리 시민들을 괴롭혀도 지속적인 의지를 즐기듯이 소화하는 한, 절대 그 폭력이 시민들을 굴복시킬 수 없음을 말이다.

 

이젠 아예 도로 한가운데서 저마다 준비해온 악기로 즉석공연을 한다. 연주자들의 즐거우면서도 진지하게 연주한다. 그걸 듣는 시민들도 즐겁기만하다. 몇몇 사람들은 그들의 연주에 율동을 곁들이기도 했다. 이건 '축제'다. 시위가 축제로 변한 것이다. '이명박 규탄 국민 축제'라고 할 수 있다.

 

 

 

이 '축제'를 몽둥이와 물대포로 해산시킬 수 있을까? 그랬다간 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이명박 정부와 경찰이다. 촛불시위를 BBC와 같은 해외언론도 주목하면서 보도하는 상황이다. 이런 신명나는 축제를 '탄압'하겠다고 나선다면, 그야말로 이명박 정부는 국제망신감으로 전락할 것이다. 이 축제, 그래서 무서운 축제다.

 

경찰에 대한 원망과 앙금의 현장

 

닭장차에 스티커나 준비해온 메시지를 부착하는 것도 시위방식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불법주차 스티커'는 이제 흔하다. 다음 이미지에서 확인해보시라. 재치와 함께 전경을 앞세워 휘두른 경찰의 폭력을 결코 잊지 않겠다는 뼈 있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닭장차를 사이에 두고 이뤄진 '전경과의 대화'

 

전경은 닭장차를 경계로, 닭장차의 위와 뒷편에 자리잡고 있었다. 위에서 시킨 것인지, 또다시 카메라를 들고 '불법 채증'을 시도해 주변에 있던 시위참가자들의 원성을 샀지만, 시위참가자들은 역시나 성숙했다. "찍지 말아달라"는 목소리와 함께 '대화'를 시도하려 한 것이다.

 

▲ 전경에게 2대2 미팅을? 전경과 대화를 시도하는 시민들, 14초를 넘기면 한 학생이 전경에게 "2대 2 미팅"을 제안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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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경에게 회식과 딸 소개팅까지? 9초를 지나면 한 시민이 "쏠 것"을 제안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31초를 지나면 "우리 딸도 소개시켜주겠다"고 제안한다.
ⓒ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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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화에는 전경들의 마음을 녹이려는 이야기가 많았다. 동영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전경에게 '미팅'을 제안하는 학생, "우리의 목소리와 함께 하면 회식비를 전액 제공하겠다"는 중년 남성의 이야기에 주변 시위참가자들이 환호하면서 전경과의 대화를 시도했고, 심지어 "딸을 소개시켜주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전의경 역시 명령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현장에 섰음을 알기에, 그들의 마음도 평범한 우리네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에 시도되는 대화였다.

 

'백미'는, 닭장차 건너편에 선 전경들과의 대화였다. 닭장차 건너편에 주저앉아 쉬고 있는 것으로 봐선 고참이었던 것 같은데, 그들은 대화를 받아줬던 것이다. 그 대화는 나도 시도했다. 나는 일단 "시위참가자들을 때리지 말아달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즉답이 날아왔다.

 

"안 때릴 거에요. 걱정마세요."

 

그 순간 시위참가자들이 하늘 높이 올린 "와~" 하는 환호성. 전경이 고달픈 처지 속에서 배고픔에까지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시위참가자들은 주섬주섬 챙겨온 먹을거리들을 차 밑바닥을 이용해 꾸준히 전달했다. 과자와 빵, 초콜릿 등이 주를 이루었는데 그때마다 "고맙다"는 이야기를 남기면서 그것을 받아가는 전경들의 모습을 차 밑바닥을 통해 지켜보니 '울컥' 했다.

 

사회에서였다면 서로 형과 동생이고 부모와 자녀였을, 서로 다를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이 아니던가. 나도 내 가방 속에서 초콜릿을 꺼내 그들에게 건네주었다. 이번에도 "고맙다"면서 그것을 받아갔다. '닭장차'라는 경계 때문이었을까? 박찬욱 감독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를 떠올렸다. 대화를 했다는 놀라움과 함께 서글픔이 한동안 가슴 속에 남았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시위, '국민 엠티'

 

그만하면 정말로 '국민 엠티'다. 밤이 깊어가면서 다소 쌀쌀해졌지만 못견딜 정도는 아니다. 서로의 체온과 대화로써 그 쌀쌀함을 이겨내며 밤을 지새운다. 나는 이런 시위가 주말마다 1주일에 1번씩만 이뤄져도 이명박 정부에 큰 압력을 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해외언론도 주시하는 상황에서 이 '국민 엠티'에 물을 뿌려댔다간 엄청난 국제적 위기를 자초할 것이다.

 

이미 이명박 대통령은 사면초가에 둘러싸여 있다. 어설픈 수습책 같은 것은 씨도 안먹히는 상황이다. 이미 대다수의 국민들이 이명박 대통령과 그 정책의 본질을 낱낱히 깨달았다. 신뢰는 이미 저 멀리에, 같은 방식으로 대처하다간 이 '국민 엠티'가 더 큰 압력을 가할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와 관련해서도 끊임없는 말장난을 일삼는 이명박 정부, 역대 정권 중 가장 악랄하면서도 직접적인 낙하산 인사를 시도하려다가 역풍을 맞고 있는 이명박 정부, 다시 한번 권한다. 국민은 이렇게 성숙한 21세기를 맞이했다. 그럼에도 1970년대 방식으로 일관하다간 큰코다칠 것이다.

 

이 '국민 엠티'를 무서워하길 권한다. 편안하게 앉아 노는 것 같아보여도 분노를 축제와 웃음으로 소화시켰을 뿐, 분노를 잊은 것은 아니다. 멋진 센스를 간직한 국민에 걸맞은 성숙한 정치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두고두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촛불문화제,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쇠고기,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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