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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우병 위험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31일 밤 촛불을 밝히며 서울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미국 쇠고기 업계는 부시 대통령과 미국 행정부뿐만 아니라, 한국과의 역사적인 쇠고기협상을 수행한 무역협상 대표들과 의회 구성원들에게 큰 감사의 빚을 지고 있다. 우리가 오늘 그 같은 '환상적인 합의'(fantastic agreement)를 발표하게 된 것은 그들의 장기간에 걸친 협조와 노력 덕분이다." (그렉 다우드 미국축산협회 수석 이코노미스트의 4월 18일 발언)

 

미국축산협회(NCBA)의 이코노미스트가 '환상적인 합의'를 외칠 때 미국을 순방 중인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 기업인들과의 간담회에서 "쇠고기협상이 타결되었다"고 말하고 박수를 쳤다. 한미 양국 정부의 공식발표가 나오기 전이었다. 이 때문에 캠프 데이비드의 '하룻밤 숙박료'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선물'했다는 의심을 받았다.

 

박수를 유도한 것은 현장에 있던 한국인들이었다고 한다. 아무튼 청와대 측은 대통령의 발언과 박수가 나중에 문제될 것을 우려해 당시 현장을 취재한 기자에게 '쇠고기협상 발언과 박수는 없던 것으로 해달라'고 엠바고를 요구했다.

 

어쩌면 직감적으로 국내에서 큰 문제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했는지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첫 단추를 잘못 꿴 것은 이 대통령 자신이었다.

 

'당위'에서 '현실'로, 언론권력은 지금 '교체중'

 

2000년 2월 22일 오후 2시 22분에 문을 연 <오마이뉴스>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고 선언했다. 그로부터 불과 2년 10개월 만인 2002년 12월 19일 밤. 오마이뉴스는 "'언론권력' 교체되다 - 인터넷과 네티즌이 '조중동' 이겼다"고 선언했다.

 

'언론권력 교체되다'는 명제는 진보와 보수의 두 날개로 나는 균형잡힌 한국사회의 여론시장을 꿈꾸는 오마이뉴스의 '당위'를 담은 메니페스토(선언)였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 정부의 5년은 물론, '젊은 표가 낡은 세대를 물리친' 노무현 정부의 5년 동안에도 조중동은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5년여가 지난 지금, 우리는 전국에 선 '난장'과 '아고라(광장)'에서 화염병 대신 촛불, 돌멩이 대신 '댓글'로 무장한 '디지털 게릴라'들과 '1인 미디어 전사'들이 연대해 조중동을 무찌르는 현상을 목도하고 있다. 언론권력의 교체가 '당위'에서 '현실'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한 달 넘게 불타오르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촛불문화제가 처음 열린 것은 지난 5월 2일이다. 제1회 촛불문화제에 기름을 부은 것은 역설적으로 '조중동'이었다. 조중동은 캠프 데이비드 숙박료와 국민의 건강을 엿바꿔 먹은 것으로 의심하는 국민행동을 '광우병 괴담'에 현혹된 것으로 폄하했다.

 

5월 2일자 <조선일보> 1면 머릿기사의 제목은 "'광우병 괴담' 듣고만 있는 정부"였다. 다음날 <동아일보>의 사설 제목은 "反美 反李로 몰고가는 '광우병 괴담' 촛불시위"였다. <중앙일보>는 별도의 논평 없이 "정부 '미국 쇠고기 안전'"이라는 제목으로 정부 해명만을 비중있게 보도했다. 결국 민심이 '잘못되고 과장된' 정보와 일부 세력의 불순한 선동에 휘둘리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였다.

 

청계광장에서 "이명박은 매국노!"를 외치던 시민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조중동은 반성하라"고 외쳤다. 이어 안이 훤히 보이는 유리건물이어서 유달리 환하게 불을 밝힌 동아일보사를 향해 "너네들도 신문이냐, 전기세도 아깝다, 불 꺼라"고 외쳤다. 몇분 뒤에 동아일보사는 슬그머니 건물의 외부 조명을 껐다. 시민들은 환호했다.

 

87년 6월 100만 인파 압도하는 10만 촛불의 힘

 

"조중동은 쓰레기" '조중동에 광고내면 그날부터 불매운동'이라고 적은 플래카드를 두른 시민들이 5월 31일 밤 서소문 중앙일보 앞에서 야유를 보내고 있다.

이 광경은 21년 전 7월 9일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시청 국기 게양대의 태극기를 '조기'로 내리게 한 '피플 파워'를 떠올리게 했다. 87년 6월항쟁의 100만 인파를 압도하는 10만 촛불의 무서운 힘이었다.

 

당시 연세대에서 장례식을 거행한 이한열군 운구 행렬이 신촌로터리를 거쳐 시청 앞에서 노제를 지내기 위해 운집했을 때 주최 측은 플라자호텔과 시청의 태극기를 조기로 게양할 것을 요구했다. 시 당국은 국무회의 결의가 없으면 조기를 게양할 수 없다고 버텼다. 그러나 100만 인파의 성원을 안은 시민들은 경비원을 제치고 게양대에 올라 조기를 달았고, 그 순간 일제히 승리의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비폭력 시위에 대한 폭력 진압으로 일반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5월 31일 촛불문화제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전개되었다.

 

이날 저녁 7시에 시작된 행사를 마친 시민들은 밤 9시경에 서소문으로 진출했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중앙일보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선두에서는 "<중앙일보> 폐간하라, 불 꺼라"라고 외쳤고, 후미에서는 "조중동은 쓰레기"라고 즉석에서 애드립으로 구호를 만들어 전파했다. 일부 여대생들은 "조중동 광고내면 그날부터 불매운동"이라는 플래카드를 두르고 행진했다.

 

촛불이 점화한 불매운동은 엄포가 아니었다. 6월부터는 날마다 조중동에 광고한 기업체 명단과 전화번호가 인터넷에 공개됐다. 해당 기업에는 시민들의 항의 전화가 폭주했고 홈페이지는 항의글이 잇따랐다. 보령제약·신일제약·천재문화·삼양통상·BBQ 등 견디지 못한 업체들이 '조중동에 광고하지 않겠다'는 사과문을 홈페이지에 속속 올리고 있다.

 

10년 전 김대중 정부 초기에 <월간조선>은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인 최장집 교수(고려대 정외과)에 대해 사상검증을 시도했다. 이를 계기로 1998년 '안티조선' 운동이 전개되었다. 그럼에도 최 교수는 결국 1년여 만에 위원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런데 촛불과 댓글로 무장한 '디지털 게릴라'들은 안티조선 운동이 지난 10년 동안 그렇게 애를 써도 이루지 못한 소비자운동을 '가볍게' 뛰어넘은 것이다(물론 2008년의 성취는 10년 동안 안티조선 운동이 뿌린 '씨앗'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6월 10일 3보1배 구호는 "얘들아, 미안하다 사랑한다, 고맙다"

 

10년만에 정권을 탈환한 이명박 정부는 민생경제를 내세워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상징조작을 했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의 '정보화'와 '탈권위'의 씨앗이 지금 이 땅에서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 이후 지구상에 처음 구현된 디지털 직접민주주의'로 만개되고 있는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4일 촛불집회와 관련 "촛불시위를 보면서 국민이 대단하고 위대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스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인터넷, 휴대전화를 통해 직접 민주주의가 실현된 중대 변화"라고 평가했다).

 

그런 점에서 오는 6월 10일 세계인들은 온라인 광장, '아고라'(포털사이트 다음의 토론방)와 오프라인 광장, 서울광장을 넘나드는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 이후 지구상에 처음 구현된 디지털 직접민주주의'를 목도하게 될 전망이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 회원과 네티즌들이 28일 오전 서울 태평로 조선일보사앞에서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며 벌어지는 평화로운 시민행진에 대해 조선일보가 거짓, 왜곡 보도를 하고 있다며 규탄기자회견을 연 뒤, 조선일보 게시판에 항의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이날 오전 10시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는 6·10민주항쟁 제21주년 기념식이 열리고, 12시에는 항쟁을 지도한 '국본'(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이 태동한 명동 향린교회에서 당시 항쟁에 참여했던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열린다. 또 오후 2시에는 박종철군 고문치사의 현장인 남영동 옛치안본부 분실에서 박종철 인권기념관 개관식이 열린다.

 

이어 오후 4시부터는 이날의 하이라이트인 박종철군의 부친 박정기씨와 이한열군의 모친 배은심씨 등이 참여하는 3보1배 행진(명동성당~서울시청 앞)이 거행된다. 당시 지도부에 참여했던 인사들이 6월항쟁 지도부의 산실인 명동에서 2008년 '디지털 직접민주주의'의 산실인 서울광장에 3보 1배로 도달하는 순간, 이날 행사는 정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6월항쟁 당시 '국본' 상임집행위원으로 홍보를 맡은 유시춘 전 국가인권위 상임위원은 그날의 구호를 "얘들아, 엄마·아빠도 왔다, 뒤에 할아버지도 오셨다"라고 정할 거라고 했다.

 

3보1배 뒤에 이들은 서울광장에 모인 청소년들을 지도하거나 앞에 나서는 대신에 "얘들아, 미안하다 사랑한다, 고맙다"고 외칠 예정이다.그 순간 역사는 민주주의에는 '공짜'가 없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일깨울 것이다.

 

고맙다, 2MB와 미국 그리고 조중동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쇠고기 협상 타결에 박수를 쳤던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 '박수칠 때 떠나라'는 조소와 고작 10%대의 지지를 받는 '얼리덕'(early duck) 신세가 되었다. 시대정신을 외면한 <조선>·<동아>는 청계천 덕분에 근처 땅값이 올라 앉아서 돈을 벌었지만, 지금은 청계광장에 올려든 이 '웬수 같은 촛불' 때문에 숨쉬기조차 어려운 형편이 되었다.

 

그러나 21년 전 박종철과 이한열의 죽음이 없었다면 6월항쟁이 가능했을까? 또 인용하는 것이 유가족에게는 죄송스런 일이지만 '탁! 치니 억! 하고 죽더라'는 정부의 소도 웃을 해명이 없었다면 국민의 분노가 그렇게 증폭되었을까?

 

6월항쟁 당시 화염병과 돌멩이로 무장한 시위대는 지금 '촛불'을 들고 '댓글'을 던지며 평화적으로 싸우고 있다. 그때는 100만 인파를 '국본'이 지도했지만, 지금은 그 역할을 집단지성이 대신하고 있다. 그런데도 '쌍팔년도'의 시위진압 매뉴얼에 익숙한 경찰은 여전히 '물고문' 대신에 '물대포'로 국민행동에 기름을 붓고 있다.

 

6월항쟁 당시 '피플 파워'를 점화한 것은 군부독재의 폭력이었지만, 2008년의 '촛불시위'와 '디지털 직접민주주의'의 구현을 촉발한 것은 민심을 외면한 이명박 대통령과 우리 국민이 먹기 싫다는 쇠고기를 굳이 먹이려는 미국 정부, 그리고 이를 부추긴 조중동이다. 그러나 한 달 넘게 지속된 촛불시위에 대한 외국 언론의 반응은 한 마디로 '환상적'이다.

 

고맙다, 2MB와 미국 그리고 조중동. 이런 환상적인 찬사를 듣게 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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