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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재보궐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했다. 민주당은 오랜만에 웃었다. 자유선진당도 자신들의 텃밭인 충청지역에서 완승을 거뒀다. 영남권에서는 무소속이 그 위력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승자임을 '선포'하기는 어렵다. 투표율은 23.2%였다. 유권자 여섯 명 중에 한명 꼴로 투표했다는 이야기다. 2000년 6월 8일 재보선 때의 21.0%에 이어 두 번째로 낮은 투표율이다. 이런 정도의 투표율로 대표성을 말하기는 곤란하다. 투표율이 이 정도라면 대의민주주의는 이미 작동 불능 상태다.

 

대의 민주주의는 이미 작동 불능 상태

 

투표율이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투표율 하락 추세가 갈수록 더욱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상 최대 표차라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고 하는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제17대 대통령 선거 투표율은 대통령 선거 사상 최저(63%)였다. 대통령선거 투표율은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1960년 3·15 부정선거(97.0%) 때 가장 높았다. 그 후 계속 떨어지다가 87년 6월 항쟁 이후 직선제로 실시된 87년 12월 제13대 대선(89.2%) 때 다시 올랐다가 계속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

 

총선은 투표율 하락 경향이 더욱 뚜렷하다. 85년 12대 총선 때 84.6%를 기록했지만, 그 후 계속 떨어져 지난 4월 총선 때는 46.0%로 사상 최저 투표율을 나타냈다. 2004년 제17대 총선 때 60.6%로 잠시 반등했지만, 이는 탄핵정국이라는 비상시국의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어쨌든 사상 최대의 표차로 승리했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취임 100일 만에 10% 선으로 추락했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승리했던 한나라당이지만, 그 후 한 달 조금 지나 실시된 재보선에서는 참패했다.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적어도 하나만은 분명해 보인다. 한국의 대의민주주의 시스템이 고장났다는 것이다.

 

단지 낮은 투표율에 따른 대표성의 문제만이 아니다. 정치인과 정당을 포괄하는 기존의 정치 시스템에 대해 국민 다수가 더 이상 이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사람들은 정치권과 정치 시스템에 대한 이런 불신을 간파하지 못했다. 되레 민주주의 절차와 가치를 무시하고, 오만하고 시대착오적 일방통행식 행보로 불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 됐다. 대책 없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 조치가 그 뇌관을 쳤다.

 

'거리의 정치'가 한국사회 패러다임을 바꾸다

 

촛불집회는 그런 점에서 놀랍고 새롭다. 한국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 등이 이에 대한 본격적인 조명에 들어갔다.

 

<경향>과 <한겨레>는 4일 사설 등을 통해 촛불민심이 이를 왜곡하고 있는 수구언론을 어떻게 징치하고 있는지 등을 소개하면서 정보와 여론의 소통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나아가 '거리의 정치'가 한국 사회의 패러다임을 통째로 바꿀 수 있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그 핵심 키워드는 '쌍방향 소통'과 '집단지성', 그리고 '시민주권'의 출현과 자발적이고 분산적이면서도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네트워크 연대(혹은 자율연대)'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제1항으로 무장한 '시민주권'들은 대통령과 정치체제가 국민의 의사에 반해 오작동하자 직접 '시민권력'을 행사하겠다고 거리로 나선 셈이다.

 

이대근 <경향신문> 정치·국제에디터는 오늘(5일) 기명칼럼 '100만개의 촛불, 거리의 의회'에서 이를 두고 '거리의 의사당에서 열린 거리의 의회'라고 했다. 이 '거리의 의회'가 "이명박이 던지는 의제를 부결"시켰는데도 "이명박은 촛불이 꺼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면서 그렇다면 "10일의 광장에 100만개의 촛불을 준비하자"고, 그리고 "광장을 떠나지 말자"고, "광장은 청계광장이나 시청광장이 아니어도 좋다"고, "직장의 작은 모임, 동회회도 좋다"고, "가정이라도 상관없다"고 했다.

 

이대근 에디터의 '발언'에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그렇다면 '광장'에 '100만'이 아니라 '1000만'의 촛불을 켜는 방법도 있을 수 있겠다. '거리의 의사당'은 '광장의 의사당'으로, '거리의 의회'는 '광장의 의회'로 확장되거나 진화할 수도 있겠다.

 

CBS가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 3~4일 이틀 동안 전국 19세 이상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한 전화 여론조사 결과도 '촛불집회를 계속해야 한다'는 의견이 64.5%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제 '촛불집회'는 한국 사회의 정치와 언론, 그리고 집회와 시위 문화를 근본부터 바꿔놓고 있다. 주권재민의 민주공화국이 어떻게 작동될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체험하는 '민주주의의 학습장'이자 '역사의 교실'이 되고 있다.

 

그것이 어떻게 어디까지 진화할지는 그 누구도 섣불리 예단하기 어렵다. 아마도 우리는 또 한번 전혀 새로운 국면을 체험하게 될 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이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야말로 무모하기 짝이 없는 헛수고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태그:#촛불집회, #거리의 의회, #재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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