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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저녁, 경찰청사 앞에선 무슨 일이?

 

중심 자체가 바뀌었다. 촛불문화제보다 이제 '시위'에 무게중심이 있다. 게다가, 시위참가자가 줄어들듯 줄어들듯 하면서도 줄지 않으면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6월 3일 시위에는 한가지 '의미'가 더 추가됐다. 법적 근거에도 없는 과잉진압으로 일관하는 경찰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을까?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은 서대문구 미금동에 위치한 경찰청사로 향했다.

 

물론, 청사 정문 앞에서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닭장차와 전경 병력이 빈틈없이 방어벽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늘 그래왔듯이 그 앞으로 가 흔적과 목소리를 남긴 것만 해도 의미가 있지 않은가? 시민들은 이제 이 닭장차만 보면 '센스'를 발휘한다. 스티커도 종류별로 참 다양하다. 다양한 스티커를 붙이면서, '분노'의 표시로 타이어의 바람을 빼는 식이다.

 

 

 

 

이 정권이 확실히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 근거로는 '말'에 있다. 경찰에 대한 시민의 분노 원인을 직접적으로 제공한 어청수 경찰청장은 '폭력시민' 운운하면서 "동생 관리나 잘 하라"라는 비아냥과 함께 '공공의 적'으로 분류되고 있다.

 

"깐마늘 가격 40% 인상"에 분노했던 적이 있던 이명박 대통령 본인도 마찬가지다. "촛불 1만 개 구입 자금 출처"에 대한 보고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면서 참모들에게 불호령을 내려 시민들을 자극시켰고, 이명박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도 촛불시위 참가시민들을 '실직자' 운운하면서 "그 형에 그 동생"이라는 표현을 완성시켰다.

 

이런 말들을 내뱉으면서 장관이나 수석비서관 몇몇 경질한다는 것을 '민심수습책'이라고 내놓는 것을 보면서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시민들은 그럴수록 자극받아 시위에 나선다.

 

 

이순신 동상 아래에서의 대치

 

이젠 친숙한 장면이다. 광화문 이순신 동상을 기점으로 그 주변을 닭장차와 경찰 병력으로 물샐 틈 없이 막아서면서 시민들과 대치를 벌이는 장면은 3일 밤에도 연출됐다. '청와대'를 향한 길목을 빈틈없이 막아낸 이 장면을 볼 때마다 서글플 수밖에 없다. 물대포와 소화기 분사, 방패찍기로 몽둥이 하나 들지 않은 시민들을 진압하는 경찰과 연계시켜 생각해보라. 이런 장면을 볼 때마다 시민들의 탄식을 떠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경찰은 누구를 위한 경찰인가."

 

'청와대'를 지척에 둔 민감한 지점임에도, 별다른 탈은 없었다. 일부 시민들은 아예 도로에 주저앉아 먹을거리를 나눠먹고 있었고, 근처에서는 작은 음악회를 연주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음악을 즐기며 박수를 치는 시민들, 서로 누구인지 모르지만 금세 친해져 대화를 나누며 웃음을 나누는 사람들, 하지만 그 건너편에는 굳은 표정으로 방패를 앞세우며 청와대를 수호하는 경찰이 있다.

 

 

 

 

 

내가 조심스레 대치전선 가장 앞에 접근해 멀찍이 촬영한 장면에는 '양복 차림'도 몇몇 눈에 띄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을 규탄하기 위해 청와대 지근거리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고, 일부 시민들이 50m 이내까지 접근했다는 것을 보고받았을까? 그랬다면 뭘 느끼고 뭘 말했을까? 과연 사태의 본질은 제대로 해석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그랬다면 '민심수습책'이랍시고 한가롭게 장관 경질 운운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위는 결코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 것이다.

 

 

여전히 이어지는 '횡단보도 시위'

 

▲ 광화문 사거리 앞 횡단보도 시위 횡단보도 시위는 멈추지 않는다.
ⓒ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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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들은 새벽 2시를 기점으로 시위대가 '해산'됐다고 보도했다. 많은 사람들이 돌아갔으니 '해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늘 그래왔듯이 '완전해산'은 아니다. 시위대는 둘로 나뉘어져 각각 시청 앞 횡단보도와 광화문 사거리 인근 횡단보도에서 '횡단보도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그 '횡단보도 시위'마저도 순탄치 않았다. 나로서는 대치병력 건너편에 '양복 차림'이 있었다는 점이 미심쩍었다. 그래서인지 방패를 든 의경들이 횡단보도 차단을 시도한 것이다. 물론, 시민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길 좀 건너게 해달라"면서 격렬히 항의한다. 그 항의가 통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또다른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의경들은 곧 차단 태세를 풀고 다시 횡단보도 인근으로 물러섰다.

 

이 기사를 쓰고 있는 현재 시각은 새벽 3시 56분이다. 현장에서 온 전화를 받았다.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고 한다. 밤을 지새우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 이 열기,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열정적으로 만들었을까? 무엇이 이들을 분노케 했나? 이명박 대통령은 '장관 경질'이 아니라 쇠고기 협상을 비롯해 본인이 추구하고자 하는 모든 정책에 대해 대답할 차례다.

 

▲ 횡단보도 시위 막는 경찰의 모습 "길 좀 건너게 해달라"는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릴 것이다.
ⓒ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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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 현장,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제 시위는 거의 매일 이뤄지고 있다. 강철체력이 아닌 이상, 매일 취재에 나설 수는 없다. 하지만 집에서 쉴 때도 괴롭다. 취재를 하는 입장이든, 참여를 하는 입장이든 집에서 그 장면을 중계로 지켜보는 일이 더욱 괴롭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시쳇말로, 피가 끓는다고 해야 할까?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이미 역사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고. 그렇듯, 역사는 이름 모를 시민들 스스로의 힘으로 일궈내는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그 '괴로움'을 느끼는 것 같다. 괴로움도, 참여해 발산하는 열정도, 그 모두가 역사를 일궈나가는 원동력일 것이다. 2008년 6월이 돼서도 대한민국 국민은 여전히 그 '원동력'을 발휘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촛불문화제, #이명박, #촛불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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