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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 따져보니 36시간 정도 될 듯하다. 하루하고 꼭 한나절 정도 되는 이 시간동안 세상 만물은 얼마만큼 진화, 발전할 수 있을까? 세상사 구석구석이야 확인할 길 없겠지만 이 시간동안 전국에서 모인 촛불들이 가득 메운 서울의 광장은 진화하고 또 진화했다. 이는 나아가 대한민국 전체를 진화시킬 거대한 동력이 창조되고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첫째 날, 5월 31일 저녁

 

10만 명이다. 전국에서 무려 10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들이 2MB를 만나야겠다며, 청와대로 향한다. 건국 이래 몇 번째 있었던 일일까? 이렇게 많은 국민들이 청와대 앞에 모여 정권 타도를 외치는 이 역사적 장면이!

 

결국 이 엄청난 규모의 시위대 앞에서 경찰은 소화기와 살수차를 동원해 엄청난 양의 물량 공격을 퍼붓기 시작한다. 시위대 역시 완강하게 저항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연행되며 만만치 않은 밤을 보냈다. 그리고 동이 트자마자 경찰은 본격적인 진압을 시작했고, 시위대는 해산된 채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조금은 답답한 시간이었다. 이 정도의 숫자라면 충분히 경찰의 물리력을 이겨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쩌면 일사분란하지 않음이 한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자연스레 한숨이 터져 나왔고, 가슴이 답답해져만 갔다.

 

둘째 날, 6월 1일 저녁

 

다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시청광장에 모였다. 간단한 집회 후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오늘도 역시 목표는 오직 2MB였다. 그러나 광화문 네거리에서 주차신공에 막히긴 어제와 마찬가지였다. 한참동안 경찰과 시위대 간 공방이 오간다.

 

멀뚱하니 서서 지켜보는 심정은 역시 답답함이었다. 대통령 만나러 가는 길이 이리 험난한 이 사회가 답답했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한 걸음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음이 답답했다. 이런 마음에 하릴없이 대열 맨 앞으로 향했다. 혹시 뭔가 해볼 수 있는 것은 없을까? 아니,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뭘 모르는' 생각은 여기까지, 정확히 여기까지였다. 한 걸음 떼지 못하고 있는 것은 나뿐이었다. 촛불은, 광장은 '한 걸음' 이 무색할 정도로 진화하고 있었다.

 

[장면 1] '주차신공'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주차신공', 이건 진짜 수출감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상품이 안된다. 대응법도 함께여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대응법까지 패키지로 묶여야 히트상품이 될 수 있다.

 

이날 시위대는 경찰의 '불법주차신공'에 맞서 '밧줄견인비급'을 내놓았다. 어디선가 굵고 긴 밧줄이 두어 개 나왔다. 시위대는 밧줄을 차바퀴와 뒷 꽁무니에 꽁꽁 묶었고, 이어 으쌰으쌰 한판 줄다리기를 벌인다. 그렇게 3대의 트럭을 시위대 뒤편까지 끌어다 놓았다. 굉장한 힘이다. 멋진 지혜다. 사람들은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불법, 형사처벌' 운운하는 경찰들에게 외친다.

"우리가 법이다! 이명박이 불법이다!"

 

[장면 2] 살수차엔 방수포대!

 

전날 살수차에 제대로 당한 터라 이제 살수봉만 나와도 움찔한다. 하지만 시위대의 준비정신은 보이스카웃을 뛰어 넘는다. 어제의 울분을 목구멍으로 다 넘기기도 전에 대형 방수포대를 준비한 시위대.

 

시민들의 '밧줄견인비급'에 맞서 경찰이 살수봉을 들이대자 휘리릭 파란색 방수포대 서너장이 사람들 머리위로 씌워진다. 살수봉이 움직이는 방향을 쫓아 좌로, 우로 움직이며 대응에 들어가는 방수포대! 아, 유비무환이다. 이 말은 정녕 오늘을 위한 것이었다!

 

[장면 3] 시위대, '언론자유'를 정의하다

 

가끔 정부와 언론 간 갈등이 불거질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논쟁이 '언론자유'다. 그 유래를 따져 묻자면 피곤할 만큼 케케묵은 논쟁이다. 특히 조중동마저 이를 들먹일 때면, 골치 아파진다. 하지만 이날 시위대는 광장에서 '언론자유'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내렸다.

 

경찰확성녀께서 살수를 예고하며 경찰 버스 위에서 취재 중인 기자들에게 내려가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언론자유 보장하라!"를 연호하며 내려오지 말라고 응원하는 시위대.  그 와중에도 시위대는 "조중동은 내려가!"를 연신 반복하며 외친다. 꿈쩍 않자, 한 중년 아저씨가 큰 소리로 외친다. "5분 후에 올라가서 기자증 검사하겠다! 여러분 그래도 되겠습니까?" 시위대가 메아리를 보낸다. "예" 중년 아저씨가 두어 번 경고를 보내자. 한 사진 기자가 슬그머니 내려간다. <조선일보> 기자란다. 환호하는 시위대를 뒤로 하고 중년아저씨는 버스 위로 올라 직접 기자들을 일일이 '검사'한다. 검사가 다 끝난 후, '위험물'이 제거되었음이 확인되자 환호하는 시위대.

 

경찰의 부당한 요구에는 '언론자유보장'을 주장하다가 조중동 기자들을 철저히 단속하는 모습. 어떤 이에게는 대단히 모순적인 모습이거나, 군중들의 비논리적 행태쯤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진정한 '언론자유'의 정의를 배웠다. 국민들의 이해와 독자들의 정당한 요구에 근거하지 않는 언론은 언론이 아니다. 또한 국민들의 이해가 철저히 관철되고, 그것이 대중들에 의해 검증될 때 언론자유는 대중들에 의해 무한대로 보호되고, 지켜진다. 이것이야말로 '언론자유'에 관한 진실임을 확신한다.

 

[장면 4] 해학과 풍자, 21세기 비폭력 시위대의 최대 무기

 


비장함은 찾기 힘들다. 물론 분노도 있고, 때때로 긴장감도 흐른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를 압도하는 것은 바로 해학과 풍자다. 해학과 풍자는 예로부터 못된 지배층을 비판하고 심판하는 가장 대중적이고 날카로운 민초들의 무기였다. 바로 이 해학과 풍자가 촛불시위에서 되살아났다.

 

경찰확성녀가 고운 목소리로 경고방송을 내보내자, 시위대는 "노래해, 노래해"를 외치고 "한 박자 쉬고, 두 박자 쉬고, 세 박자 마저 쉬고 하나 둘 셋 넷!"이라며 장단을 넣어준다. 경찰 버스 위에서 취재 중이던 기자들을 내려보내기 위해 버스 위로 올라간 일단의 전경무리를 향해서도 마찬가지로 외쳐댄다.

 

"노래해, 노래해", "춤도 춰, 춤도 춰", "웃겨 봐, 웃겨 봐" 장단을 한참 넣어 준 뒤 시위대에는 '까르르' 해맑은 웃음이 넘쳐 난다. 비장함이나 긴장감은 존재하지 않는다. 해학과 풍자의 힘은 본디 저 높은 가지에 매달린 '양반'들을 여기 민초들의 자리로 끌어 내려와 같은 지위에서 망신주고 욕하고 골탕을 먹이는 새로운 경지에서 비롯한다. 다시 살아난 광장에서의 해학과 풍자, 촛불시위의 지치지 않는 원동력이다.

 

촛불시위를 경험하며 고민에 휩싸인 사람들을 많이 본다. 나 또한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이다. 어떻게 하면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이 거대한 역사의 흐름이 지나온 역사의 교훈을 넘어서는 결과를 낳을 수 있을까?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고민의 근거를 어디에 둘 것인가? 시위대 안에 있어야 한다. 그들과 웃고 떠들고 즐기면서 진화하고 있는 광장 그곳에 서야 한다. 그 광장을 변화시키고 있는 이들과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관념에 빠지기 쉽다. 지나간 틀에 얽매여 나오지도 않을 답을 찾아 관념의 미로를 헤매이기 전에, 그들과 함께 고민을 나눠야 한다.

 

지금, 나도 그들과 함께 진화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새사연)의 대안정책 웹사이트 이스트플랫폼(www.epl.or.kr)에도 실렸습니다. 이종필 기자는 새사연 이사입니다. 


태그:#촛불집회, #비폭력 시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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