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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제부터다. 국민적 저항에 밀린 정부가 3일 일단 미국 측에 지난 4월 18일 타결된 한미 쇠고기 협상 내용의 수정을 공식적으로 요구했다.

 

그러나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이날 긴급브리핑을 통해 밝힌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 제한'만으로는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는 어렵다.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그동안 요구해온 수입고시의 독소조항에 대한 전면적인 수정을 요구하는 재협상이 이뤄질지 여부가 사태 수습의 관건이다.

 

우선 주목되는 것은 미국쪽의 반응이다. 정부의 사실상 재협상 요구에 대해 미국쪽은 아직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미국과 사전에 조율된 것은 없다"면서도 "국내 상황이 심각하고 한국내 여론이 어떻다는 것은 미국 내에서도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해 재협상에 응할 것이란 기대감을 나타냈다.

 

일부 보수언론에선 한미간 심각한 무역분쟁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지만, 반대로 미국 스스로 한국 쇠고기 시장 진입을 무작정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거대 축산자본의 이해와 대선 국면 속에 있는 미국정부가 한국의 요구를 순순히 수용할 리는 없다. 따라서 한미 정부간 본격적인 줄다리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의 비공식적 접촉에서 앞으로 재협상을 공식화하겠다는 의미"

 

정운천 장관이 3일 전격 발표한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30개월 이상 쇠고기 대해서는 수출을 중단해 주도록 미국쪽에 요청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초 언론에 배포된 자료에는 "미국쪽에 요청하겠다"고 돼 있었다. 기자들이 "이미 미국쪽에 요청했는지, 아니면 앞으로 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해 정확히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농림부 내부에서도 서로 해석이 달랐다.
 
이에 농림부 관계자는 "그동안 비공식적으로 (한미간) 접촉이 있었던 것을 앞으로 (재협상을) 공식적으로 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두번째로, 미국쪽으로부터 답신이 올 때까지 수입쇠고기 고시를 유보할 것이고, 고시 게재가 유보됨에 따라 검역대기 중인 미국산 쇠고기 물량을 포함해 검역을 전면 중단하겠다는 것이다.

 

정 장관은 이같은 고시게재 유보가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든 조치"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정부쪽에선 국민의 뜻에 따라 고시게재를 유보한 점과 검역 중단 카드를 통해 미국에 전향적인 답변을 요구하고 있는 점을 부각시켰다.

 

하지만 이 역시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이미 한달여 동안 수많은 시민들이 정부의 고시 철회를 요구했지만, 정부는 그동안 철저히 무시해 왔다. 이같은 정부 태도에 대해 국민적 저항이 거세지자, 뒤늦게 고시게재를 일단 유보하는 쪽으로 방향을 급선회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전면적 재협상 여부 관건, 30개월 이상 소만 금지는 "꼼수"

 

문제는 앞으로 어떤 내용을 가지고 협상이 진행되느냐다. 정부는 우선 미국 쪽에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출 중단을 요구할 방침이다. 한미 외교당국이 이미 수일 전부터 비공식적인 접촉을 통해 이같은 내용을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상태다.

 

미국쪽은 물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미국쪽에선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출을 위해 지난 4월에 동물성 사료금지조치를 강화했다는 입장"이라며 "만약 다시 협상이 이뤄지게 되면 한미간 논쟁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이 동물성 사료금지조치를 강화했다는 입장과 관련해서는, 한국정부가 미국의 동물성 사료금지 조치 강화 약속만 믿고 지난 쇠고기 협상과정에서 이 부분을 제대로 논의하지 않았거나, 이 과정에서 미국정부가 한국정부를 고의적으로 속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논란은 여전하다.

 

이밖에 이번 수입조건에서 크게 완화된 광우병특정위험물질(SRM) 규제 부분도 손을 댈지 관심거리다. 현재 고시내용에는 30개월 미만의 경우 뇌, 눈, 척수, 머리뼈, 등배신경절, 척주(등뼈) 등도 수입이 허용된다. 게다가 미국 학교급식에조차 금지된 선진회수육(AMR)도 수입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검역주권 보장 여부도 중요하다. 미국 내 도축장 승인권과 취소 권한의 경우 사실상 미국이 가지고 있다. 물론 고시 발효 후 일부 기간(90일동안) 동안 한국 정부가 새로운 작업장 등에 대한 권한을 가지는 것으로 돼 있지만 검역주권과는 거리감이 있는 대목이다.

 

시민사회단체 등에선 새로운 수입위생조건 고시의 독소조항에 대한 전면적인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부)는 "정부가 단지 30개월 이상 소에 대해서만 금지하는 방향으로 미국과 협상을 진행하는 것은 한마디로 국민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꼼수를 부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 장관 말대로 국민의 뜻을 받들겠다면, 고시내용에 대한 전면적인 재협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협상에 응할까...한미FTA 자동차 부문과 딜 가능성도

 

정부가 미국쪽에 재협상을 요구한 만큼, 공은 일단 미국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미국이 한국정부의 요구를 얼마만큼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미 무역대표부 등 행정부쪽에선 일단 신중한 접근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선거를 앞둔 미 의회쪽에선 쇠고기 재협상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미 무역대표부(USTR)쪽에선 구체적인 언급을 피한 채, "한국정부와 긴밀하게 협의중"이라는 말만 내놓고 있다. 대신 미 하원의 찰스 랑겔 세입위원장은 "쇠고기 문제는 주로 상원에서 다룰 것"이라며 "하지만 쇠고기 전면 재협상은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미국의 대형 축산자본인 타이슨푸드(Tyson Foods)와 카길 미트 솔루션(Cargil Meat Solution) 등에선 한시적으로 한국 수출 쇠고기에 대해 월령을 표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 역시 한국민의 미 쇠고기 불신과는 다소 동떨어진 대책으로 보인다.

 

정부쪽이나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이 쉽게 재협상 카드를 받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재화 국제무역연구원 통상연구실장은 "한국이 인정한 국제수역사무국(OIE)기준을 가지고 미국이 현재 일본 등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한국의 이번 요구는 OIE의 예외를 미국에 인정해달라는 것인데, 미국이 추가협상에 쉽게 나서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부에선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하기 위해선 한미FTA(자유무역협정)의 자동차부문 재협상 등 새로운 딜이 필요할지 모른다는 분석도 있다.

 

이해영 교수는 "랑겔 위원장이 쇠고기 문제는 상원이라고 말한 것은 결국 미 상원의 쇠고기와 미 하원쪽의 한국 자동차시장 전면 개방 모두를 요구한다는 것"이라며 "미 의회가 철저히 국익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에 대해 우리 정부도 국민건강권 확보 등 분명한 원칙을 가지고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태그:#미국산 쇠고기, #정운천, #재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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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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