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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1년 후 - 추락] 5월 3일자 <마리안느> 표지.
 [취임 1년 후 - 추락] 5월 3일자 <마리안느> 표지.
ⓒ <마리안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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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랄, 4년이나 남았다니…."

프랑스 시사주간지 <마리안느>의 5월 3일자 커버 타이틀이다. 뒤에는 사르코지 대통령이 왼손을 든 채 인상을 쓰고 있다.

사르코지 대통령 취임 1년(5월 16일)을 맞은 프랑스인들의 감정을 이것보다 더 간결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프랑스인들의 하락한 구매력을 강화시키겠다는 내용을 대선 제1공약으로 내걸며 화려하게 대통령직에 취임했던 사르코지.

그러나 1년 후, 그의 약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5월 28일 <프랑스 엥테르> 라디오 뉴스에서는 INSEE(경제 연구 및 통계 국립연구소) 발표를 인용, 현재 프랑스인들의 구매력이 1987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화려했던 취임, 그러나 초라한 1주년

"대형 슈퍼마켓에서 캐시어로 일하고 있는 30대 초반의 한 여성은 월급 1100유로(약 176만원)로 어린 딸을 키우며 산다. 월급에서 집세, 전화료, 전기료 등을 내고 나면 남는 돈은 겨우 200유로(32만원). 한 달을 버티기에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다행히 주말엔 친정에 가서 저녁을 먹고 부모가 챙겨주는 음식을 들고 와 간신히 생계를 연명한다."

"올해 칠순이 넘는 한 노인은 퇴직 연금으로 매달 900유로(약 144만원)가 나오는데 방세 600유로(약 96만원)를 내고 나면 남는 게 거의 없다. 이 노인은 '나머지 300유로(약 48만원)로 식생활을 해결하고 매달 날아드는 각종 납부고지서의 금액을 내는 게 가능하겠느냐'고 TV 카메라에 대고 울분을 터뜨렸다."

요즘 프랑스 언론에서 자주 보고 듣는 얘기들이다. 세계에서 경제력 5위(2007년 3분기 경제력 규모 기준)인 선진국 프랑스에서 어떻게 이런 일들이 발생할 수 있을까? 20년 전, 아니 10년 전 프랑스인들 중 어느 누가 이런 힘든 미래를 예측할 수 있었을까?

프랑스인들의 살림살이가 점점 더 악화되는 이유는 월급 인상률이 몇 년째 상승하고 있는 물가 인상률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어서이다. 유가 문제도 심각한 수준이다. 최고가를 계속 경신하며 상승하는 원유 값 때문에 자동차 운행도 점점 자제하고 있는 분위기이지만, 출퇴근 때 차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직장인들에게 휘발유 값은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래서 일부 직장인들은 10유로(약 1만6천원) 정도의 최소한의 휘발유를 넣거나, 그마저 불가능한 사람들은 외상으로 휘발유를 넣고 있다. 전에 없던 일들이다. 그때그때 결제를 못 하는 이들은 신분증을 대신 맡기고 월말에 월급을 받은 후에 한꺼번에 계산한다.

한 가지 직업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이 제2의 직업을 찾거나, '투잡' 생활을 하는 것도 이제 드문 일은 아니다. 앞에 언급한 슈퍼마켓 여점원은 주말에는 출장 미용 일을 하면서 가외 수입을 얻고 있다. 이전에 미용 기술을 익혀놓은 것이 다행이긴 하지만, 주말에도 딸을 보살필 시간이 없다는 문제를 안고 살 수밖에 없다. 2개의 직업에 종사하며 살아야 하는 미국인들의 상황이 프랑스인들에게도 이제는 바다 건너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실 사르코지의 구매력 향상 구호는 처음부터 실현하기 어려운 정책이었다. 가진 자에게 돈이 쏠리게 되어 있는 신자유주의 시스템을 유지, 강화하는 정책을 펴면서 그와 동시에 서민들의 구매력을 향상시키겠다는 것은 모순이었다. 친기업 정책을 장려하는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서민들의 구매력 향상을 위한 실질적 정책을 기대하는 것은 사막에서 눈을 기다리는 것처럼 공허한 일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분주한 일정, 그러나 국민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데는 인색

[1년 전 - 좋았던 시절] 2007년 5월 6일 결선투표에서 루아얄 후보를 제치고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된 사르코지 후보. 출구조사 결과 발표 직후 당사를 떠나며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리고 있다.
 [1년 전 - 좋았던 시절] 2007년 5월 6일 결선투표에서 루아얄 후보를 제치고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된 사르코지 후보. 출구조사 결과 발표 직후 당사를 떠나며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리고 있다.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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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코지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돈을 많이 벌고 싶으면 많이 일해라'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월급을 임기 6개월 만에 2.4배로 올려놓았다.

역동적이고 에너지가 펄펄 넘치는 사르코지 대통령은 날개 달린 새와 같은 모습을 보였다.

예를 들면 오전엔 프랑스 남부 지방에 나타났다가, 오후엔 아프리카로 날아간다. 다음날엔 아침 일찍 엘리제궁에서 장관 모임을 여는가 하면, 오후엔 다시 대서양에 있는 프랑스령 마르티니섬을 찾는다.

며칠 전에는 새벽같이 파리 남부 근교에 위치한 렝지스 수산 도매 시장을 방문하며 다시 한 번 자신의 부지런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러한 사르코지 대통령의 이동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다.

프랑스인들은 이처럼 동분서주하는 대통령을 이전에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문제점은 내무부장관이 해야 할 일도, 외부부 장관이 해야 할 일까지 대통령 자신이 하려 한다는 것이다. 경미한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해 있는 경찰을 방문하는 것도 대통령이고, 어부들의 파업을 진압하기 위해 브르타뉴 지방에 출동하는 것도 대통령이다. 이렇게 사르코지 대통령은 경찰서장, 농수산부 장관이 해야 할 일까지 서슴지 않고 발 벗고 나서서 한다.

당연히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도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집중되고 있다. 이제 국무총리가 누구인지, 국방부 장관이 누구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다. 이런 슈퍼맨 사르코지 대통령이 자신의 월급을 올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정작 중요한 사항, 즉 국민의 뜻을 헤아리고 그들과 유기적으로 소통하는 데에는 소홀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지난 1년 동안 피용 총리가 이끄는 내각과 대통령 사이에서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도 사르코지 정부의 특징 중 하나다. 가장 최근의 불협화음은 TV 시청료 인상에 관한 것이다.

1월 8일, 사르코지 대통령은 모든 국영방송에서 광고를 제거하고, 그로 인한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시청료를 인상하는 대신 2월말에 정부위원회를 구성하여 새로운 자금 출처를 모색한다고 발표했다. 5월 27일 <룩셈부르크 라디오 TV>(RTL)에서 사르코지 대통령은 대선 공약대로 "TV 시청료를 인상하지 않겠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러나 여당인 대중운동연합(UMP) 원내대표인 장-프랑소와 코페가 주재하는 시청료 조정위원회에서 제시하고 있는 3개의 안에는 1년에 116유로로 국영방송 운영 자금의 80%를 충당하고 있는 현 시청료를 물가 인상에 맞게 인상한다는 안도 있다. 위원회의 대다수가 찬성하고 있는 이 안은 대통령 발언과 어긋난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립TV노동조합은 6월 18일 파업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6월 18일은 위원회의 결정이 나오기 1주일 전으로 <라디오 프랑스>, <라디오 프랑스 엥테르나소냘> 등 다른 매체에서도 파업에 가담할 확률이 높다. 장-프랑소와 텔라디에 언론노조 대변인은 "사르코지가 시청료 인상을 거부하는 것은 국영 방송을 살해하는 행위이며, 이는 TF1이나 M6 같은 사영 방송사에게 광고를 몰아주기 위해서다"(<르몽드> 5월 29일자)라고 비판했다.

부유층 위주-친미 일변도 정책, 품위 없는 행동... 추락하는 지지율

사르코지 대통령은 취임 1년 동안 많은 일을 추진했다. 공기업 연금제 개혁, 법원 개혁, 친미 일변도 정책, 교원 감축 정책 등이 그것이다. 내년에 1만1천여 명, 그 후엔 해마다 2만여 명의 교사를 감축하겠다는 사르코지의 정책에 교사와 학생들이 반대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지만, 커다란 변수가 없는 한 이 정책도 그대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친미주의자인 사르코지 대통령의 이른바 '개혁' 정책은 부시 미국 대통령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며, '사르코지가 부시를 따라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사소한 예를 한 가지 들면, 사르코지 대통령이 외부 인사를 맞을 때 상대방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는 제스처도 부시를 모방한 것이라는 이야기마저 나오고 있다.

또한 기업인 세제 혜택 등의 친기업 정책, 재산세 감면 등의 기득권층 보호 정책 등도 사르코지가 지난 1년 동안 중점 추진한 사항이다. 그 결과 부유층은 상당한 혜택을 받았지만, 서민층은 부담이 늘어났다.

예를 들면 5월 28일자 TV 뉴스는 작년에 대형 상장 주식회사 대표들이 급여를 평균 58% 인상했다고 전했다. 이들의 급여가 이미 천문학적 수준임을 감안할 때, 인상 금액은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반면 프랑스 서민들의 급여 인상률은 바닥을 기고 있다. 한 작은 기업의 노동자들이 2개월간 파업을 벌여 힘겹게 쟁취한 인상액이 1인당 30~50유로(약 4만8천원~8만원)에 불과할 정도다. 한쪽에서는 돈이 남아돌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얼마 안 되는 금액을 얻고자 사투를 벌이는 상황이다.

당선 직후인 2007년 5월 9일 프랑스 언론 재벌이 제공한 호화요트를 타고 몰타섬에 들어가고 있는 사르코지. 맨 왼쪽 검은 상의를 입은 사람이 사르코지.
 당선 직후인 2007년 5월 9일 프랑스 언론 재벌이 제공한 호화요트를 타고 몰타섬에 들어가고 있는 사르코지. 맨 왼쪽 검은 상의를 입은 사람이 사르코지.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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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사르코지의 이러한 정책들을 프랑스 시민들이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취임 1년 동안 사르코지의 지지율은 계속 추락해, 5월 13일 여론조사기관 IFOP가 실시한 조사에서 사르코지의 지지율은 35%에 불과했다.

지지율 하락 원인 중 하나는 사르코지의 품위 없는 언동이다. 사르코지가 대통령 직위에 걸맞지 않는 거친 용어를 마구 사용하는 모습이 언론에 종종 보도되고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장면은 지난 2월말 농업전람회에서 생긴 일이다. 농민들에게 악수를 청하며 지나가던 사르코지가 마침 옆에 서 있던 한 농부를 스치고 지나가자, 이 농부는 사르코지에게 대뜸 반말로 "내 몸 건드리지 마, 재수 없어지니까"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사르코지가 즉시 "내 앞에서 꺼져버려, 바보 같은 자식"이라고 대꾸했는데, 이 장면이 언론에 크게 보도되며 사르코지를 곤혹스럽게 했다.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도 이 사건에 대해 한마디 거들었다.

"대통령에게 그런 종류의 막말을 서슴지 않는 시민도 있다. 나도 한 시민으로부터 '코나르'(바보라는 뜻으로 경멸적인 언어)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때 나는 그에게 다가가서 악수를 청하면서 '나는 시라크요'라고 인사를 했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그 시민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이 상황을 이해하려면 설명이 필요하다. 처음 보는 남자가 자기를 향해 "바보"라고 하자, 시라크는 거칠게 대응하는 대신 그 남자 스스로 자기 이름이 "바보"라고 밝힌 것처럼 하면서 그에게 다가가 '(당신 이름은 바보인가?) 내 이름은 시라크다'라고 답한 것. 이를 통해 시라크는 자신을 바보 취급했던 상대방이야말로 바보라는 식으로 상황을 역전시키며 수준 높게 반응한 것이다. 시라크는 대통령이라면 이 정도의 유머와 기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함으로써 사르코지의 직접적인 반응을 은근히 비판했다.

사르코지와 닮은꼴 이명박, 초라한 취임 1주년까지 답습할까

사르코지는 대선 당시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난 바뀌었다"고 누누이 외쳤다. 성급하고 다혈질적으로 비치던 자신의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지난 1년 동안 분주하게 움직이기는 하지만 국민의 목소리엔 귀를 기울이지 않는 대통령, 이른바 '개혁'을 밀어붙이지만 그것이 서민층이 아니라 부유층을 위한 것임을 확인시켜준 대통령을 보며 프랑스인들은 사르코지가 바뀌지 않았음을 깨닫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여러 가지 면에서 사르코지 대통령과 닮은꼴로 거론돼왔다. 그래서일까. 독선적 행태, 기업 우선 및 미국 일변도 정책 등 사르코지와 닮은꼴 정책을 펴던 이 대통령의 지지율도 취임 100일을 앞두고 10%대까지 추락했다.

대통령을 질타하는 시민들의 촛불이 점점 늘어나자, 이 대통령은 5월 15일 코엑스에서 열린 국가조찬기도회에서 '국민과 역사 앞에 교만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보면서 자신부터 바꿔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후 보름여 동안 이 대통령에게서는 바뀐 모습, 즉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이 대통령은 초라한 취임 1주년을 맞이한 사르코지의 전철을 밟으려는 것일까.

[이 대통령 '지금은 생각 중']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26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오마르 구엘레 지부티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앞두고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이 대통령 '지금은 생각 중']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26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오마르 구엘레 지부티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앞두고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 연합뉴스 배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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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사르코지, #이명박, #취임10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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