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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다

 

6월 1일 자정에 나는 시청앞광장에서 시민들을 만났다. 대부분은 경복궁에서 경찰들과 대치하고 있었는데, 시청앞광장은 지친 시민들이 쉬고 있었다. 대학에서 음악동아리를 한다는 학생이 황급히 다가와 오늘 시위 안하느냐고 물었다.

 

그 학생은 이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끝내 몸이 일어서지 못했고 그것이 일반적인 대학생들의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촛불집회가 나날이 진행되는 것을 보고 나도 동참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 밤이 늦었지만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쇠고기 수입 반대를 의제로 시작됐던 촛불문화제는 중고등학생들에 의해서 촉발됐고, 시민들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리고 대학생들이 마지막으로 참여했는데, 전국에 있는 대학생들이 경복궁으로 시청으로 몰려들었다. 대학생들은 대학의 깃발을 내걸고 애써 연습한 안무를 시민들 앞에서 펼쳐보이며 경쾌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아직도 대학에는 냉소적인 분위기가 있다는 것을 대학생들은 전해주었다. 한 대학생은 강의실이나 동아리방에서 쇠고기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면, "그거 안 먹으면 되지 않느냐"거나 "우리가 해봤자 되겠냐?"는 등 애써 외면하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대학생들이 집회에 나오지도 않고 너무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많다"는 나의 질문에 부끄럽지만 부정하지 않겠다고 털어놨다.

 

한 50대 시민은 얼마 전 <위험사회>를 쓴 울리히 벡의 한국 방문 소식을 전해 주었다.

 

시민에 의하면 울리히 벡은 "대한민국은 내가 그렸던 <위험사회>보다 더 위험사회가 되고 있다"고 한다. 울리히 벡은 한 강연회에서 "20대가 정의를 이야기하지 않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 오늘이 오기 전까지 사실상 대한민국은 20대의 공백 상태라고 할 수 있었지만, 청화대 앞에 모여든 생기발랄한 대학생들은 이것이 한낱 기우일 뿐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대한민국아, 우리는 매일매일 나아지고 있다

 

축제의 형식을 빌려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2008년식 '행동'이다.

 

"386세대 입장에서는 지휘도 없고 체계도 없어 답답해 보이지만, 이것 역시 하나의 발전과정이 아닌가 생각한다. 부족한 부분은 앞으로 축적되고 학습될 것이지 그것이 본질은 아니다."

 

"나는 집회에 스무 번 넘게 참여했다. 4월 28일에는 200명에 불과했지만, 매일매일의 변화가 분명히 있다. 정부가 이것을 읽지 못하면 집권 내내 힘겨울 것이다."

 

50대의 한 주부는 "비폭력은 시간이 너무 걸린다"며 "사랑도 뜻뜻미지근하면 결국 깨지는 거 아니냐"며 평화와 축제 위주의 분위기를 경계했다.

 

40대와 50대, 이른바 386들은 2008년의 집회를 보면서 아쉬움이 무척 많은 눈치였지만, 2008년식 행동을 인정했다. 지회와 체계, 전략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0대의 주부는 축제분위기로 흐르고 있는 집회문화를 가리켜 "원래 시위는 축제가 맞다. 만약 비장한 분위기였다면 대중들에게 외면받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 윤도현 밴드가 참여한 촛불문화제를 예로 들었다. 그날 윤도현 밴드가 '축제'처럼 너무 노래를 많이 불렀다는 비판이 많았다는 전언을 소개했다. 그 자리는 분명히 콘서트나 축제와는 다르다는 것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때문에 굳이 '축제'와 '투쟁'을 구분하는 방식은 전근대적이었음이 드러났다. 형식은 축제를 하고 있지만, 분명히 메시지가 있다. 한 여대생은 생각이 달랐다. "2002년 월드컵처럼 축제분위기로 간다면 메시지가 분산될 수 있다. 시민들이 화가 단단히 났다는 것을 분명히 전달할 필요가 있다"는 거다. 집회에 열번도 더 참여했다는 30대의  한 시민은 2008년의 행동을 이렇게 해석했다.

 

"정치인이나 운동가의 연설이 아니라 각계각층의 개인적인 주장과 자유발언을 2~3시간이 넘게 하는 것이 더 생생하고 설득력 있다. 87년처럼 정보가 차단돼 있는 상황에서 몇몇 지식인들이 시민들을 계몽시키는 시대에 비해 2008년은 시민들이 담론을 만들 정도로 정보의 흐름이 빠르다. 설령 시민들이나 학생들이 잘 모른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학습해갈 것이다. 아이들 대신 공부를 해줄 수는 없지 않은가"

 

대한민국아, 우리는 매일매일 나아지고 있다

 

집으로 가지 않고 거리에서 서로 나누다

 

국가는 시민들에게 싸늘한 물대포를 뿌려댔지만, 상처받은 시민들은 서로에게 우의를 건네주었다. 밤새 감기걸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저희 형님이 사왔습니다. 돈은 안 받습니다. 앞으로 갈길이 머니 속을 든든하게 달래시기 바랍니다."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초코파이와 생수, 커피를 나눠주었다. 나도 초코파이를 하나 먹고 기운을 차렸다.

 

정부가 시민들을 지켜줄 수 없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우리는 서로 의지하며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절박한 상황으로 몰렸다. 새벽에 도우미의 절박한 목소리가 애잔하게 들린다.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흩어지면 최전선에 있는 시민들이 모두 연행됩니다. 새벽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이명박 정부는 결국 물리력을 동원해 대규모의 진압작전을 실시했다. 물리력과 물리력의 충돌은 이제 불가피해졌다. 앞으로 촛불시위가 어떤 국면으로 전개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성난 시민들은 "내일은 짱돌을 들고 오겠다"고도 했고 아예 지게차를 들고와 버스를 밀어버리겠다고도 했다. <맹자>라는 책에서도 "힘으로 누르면 당장은 억압할 수 있을지 몰라도, 힘이 떨어지는 순간 끝장이다"고 했다. 언제나 힘을 주고 있을 수는 없다. 물리력 동원은 이명박 정부의 패착으로 기록될 것이다. 시민들은 하루가 다르게 깨어나고 있으니까.

 

대한민국아, 우리는 매일매일 나아지고 있다


태그:#촛불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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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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