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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마지막 날인 31일은 잔인한 날이었다. 6월 1일 새벽으로 이어진 효자동 청와대 앞 광우병 쇠고기 반대 시위자들에게 방패와 살수차를 이용한 경찰의 무력 진압에 피를 흘린 부상자들이 많이 발생했다.

 

이들에게는 돌멩이도 없었고, 화염병도 없었다. 하지만 공권력이라는 미명하에 청와대로 향하는 평화시위대에 무력을 사용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명박 정권이 5~6공 군사 독재시절로 회귀했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31일 저녁 7시 시청광장을 가득 메운 광우병 쇠고기 재협상 및 고시철회를 요구하는 참석자들은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집회를 이어갔다. 시청(서울)광장은 10만여 명이 참여한 이유로 정말 발디딜 틈 하나 없었다. 공연이 펼쳐졌고 연설이 이어졌다. 이날 아이들과 엄마 아빠 등 가족 단위로 참여한 사람이 많이 보였다.

 

공연 중에는 키가 작은 어린 아이를 위해 무동을 태웠고, 늙은 노인들도 상당수 목격됐다. 직장 동료들도 많이 만났다.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참석자들은 '이명박 물러가라', '협상무효, 고시철회' 등 구호를 연신 외쳤다. 간간이 흘러나온 광야에서, 아침이슬 등 민중가요를 따라 부르는 사람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시청광장 행사를 모두 마치고 평화 거리 대행진이 시작됐다. 각각 서울역 방향과 소공동 방향으로 향하는 거리 행진은 많은 참석 인파로 인해 상당한 시간이 지체됐다.

 

30분 정도 지체됐을까. 벌써 선두로 간 사람들이 서울역에 도착했다는 소식과 소공동으로 향한 사람들은 명동 롯데백화점 앞을 지나가고 있다는 방송이 나왔다. 나는 거의 끝머리에서 프라자호텔과 웨스턴 조선호텔 사이 길인 소공동으로 향했다. 이명박 대통령을 조롱하는, 광우병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보수언론 조·중·동을 반대하는 등 아이디어 피켓을 보며 절로 카메라 셔터에 손이 갔다.

 

4~5살쯤으로 보인 꼬마 아이를 목에 걸고 출발한 아빠와 그 옆을 걸으며 아이에게 손을 흔드는 엄마의 정겨운 모습이 거리행진을 한 참여자들에게 웃음꽃을 선사했다. 특히 아이 목에 걸어 있는 '광우병 소 싫어요', '대통령 할아버지 우리는 싫다구요' 등의 문구가 눈길을 끌기도 했다. 아이는 아빠가 땀을 많이 흘리자 목에서 내려 아빠, 엄마 손을 잡고 걷기도 했다. 이날 거리행진 참가자들은 '협상무효, 고시철회', '이명박은 물러나라', '평화시위 보장하라' 등을 외쳤다.

 

거리행진 중간에 조중동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편파왜곡, 물타기하는 수구 찌라시', '나쁜 것은 딱 끊읍시다' 등이 적힌 안티 조중동 스티커를 나눠주기도 했다.

 

한국은행 사거리에 도착해 명동 롯데백화점 쪽으로 좌회전을 할 무렵, 서울역으로 향했던 대오가 마치 이곳 사거리에서 합류가 됐다. 이곳에서 시위자들은 '민주시민 동참하자'라는 구호를 외쳤고, 지나가는 승용차들이 경적을 울려 화답하기도 했다. 이곳 사거리에서 동참하는 시민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사거리에서 거리행진으로 교통이 혼잡해지자 군복을 입은 에비군들이 나타나 교통을 통제하면서 시위대들에게 빨리 갈 것을 재촉했다. 몇 명의 교통경찰들도 수신호로 교통을 통제했다. 하지만 수백 여명의 예비군복을 한 참여자들이 교통을 통제하자, 교통경찰들은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기도 했다. 고유의 업무를 뺏았겼다고나 할까.

 

롯데백화점 쪽을 향해 가는 도중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도 함께 동참해 걷는 모습이 보였다. 안양에서 올라왔다는 두 명의 여고생들은 '이명박 물러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나를 보고 지하철 몇 시까지 운행을 하냐고 물었다. 주말이라서 11시 정도 타야 안양을 갈 수 있을 것이라고 하자, 그냥 날 새버리는 것이 좋겠다면서 시위대를 따라 행진했다.

 

이날 특히 주목을 끈 것은 금발에 여자 외국인이 동참이었다. 때문에 궁금했다. 그는 계속 행진을 하면서 함께했다. 그는 뉴질랜드에서 와 풍림전자 그래픽인테리어로 근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자 흔쾌히 수락했다.

 

KBS2에서 방송하고 있는 <미수다(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하고 있는 '폴리나'였다. 그의 손에는 '될 때까지 모입시다. 미친소를 넘고, 대운하를 넘어'라는 빨간 바탕에 흰색 글씨가 써있는 피켓을 들고 있었다. 그는 "식당가기가 불안하기 때문에 동참했다"고 동참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롯데백화점을 지나 종각 제일은행 본점을 지나고 조계사 앞에 주차돼 있는 경찰 버스와 경찰지프차에게 시위 참여자들이 '불법 주차 스티커'를 붙이기도 했다.  스티커에는 '과태로 부과대상차'라고 적혀 있고 발행처를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적었다.

 

이날 이곳을 지나는 시위대들은 스티커를 보고 신기하다는 듯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불법 주차 경찰차에 스티커를 발부한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불법 주차 스티커 주변에는 조중동을 끊자는 스티커가 많이 부착돼 있었다.

 

조계사를 지나 안국동에 도착했다. 주변에는 참여연대 느티나무 카페, 인사동 골목 입구, 한국일보 등이 보였다. 이날 차가 다니지 않는 이곳 광장은 많은 시위참여자들이 모여 있었다. 청와대로 향하는 쪽에 경찰병력과 경찰차, 살수차 등으로 방어벽을 쳐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참석자들은 연좌시위를 벌였다.

 

또 이곳에서도 눈길을 끈 퍼포먼스가 참석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벌린 입에 광우병 소고기가 막혀 있는 모형이었다. 이명박 대통령 모형에는 '미친소 너나 먹어'라고 적혀 있고, 소에는 30이라고 써, 30개월 소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듯 했다. 이날 '이명박을 점지하신 삼신할미 각성하라'는 현수막도 눈길을 끌었다.

 

11시 20분경 촛불을 뜬 노회찬, 심상정 진보신당 공동대표가 참여자들의 기념촬영 요구에 사진을 찍는 모습도 보였다. 시위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휴식을 취했고, 열띤 토론을 하는 모습 등도 엿보였다. 처음 출발할 때 아빠 목에 걸쳐 있던 아이도 이곳에 도착해 엄마 아빠와 아스팔트 바닥 앉아 휴식을 취하는 모습도 보였다.

 

며칠 째 광우병 쇠고기 촛불집회 참여로 몸이 말이 아니었다. 밤낮의 기온차로 인해 심한 기침을 했다. 여기에서 이만 집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종로3가까지 걸어와 지하철 막차를 탔고, 또 버스를 갈아타고 경기도 남양주 집으로 향했다. 이후 경찰의 무자비한 탄압이 자행됐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가 치솟았다. 


태그:#광우병 쇠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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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미디어에 관심이 많다. 현재 한국인터넷기자협회 상임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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