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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1일 전북 전주시에는 약 3천여 명의 학생시민들이 거리에 나와 고시철회와 협상무효를 촉구했다.

 

촛불문화제가 끝날 때쯤 1500여 명에 이르던 시민들의 수는 거리행진을 시작하자, 그 수가 늘어나기 시작해 3천여 명으로 늘어났다. 가족단위 참가자와 '야간자율학습'이 없는 청소년들의 촛불행진이 눈길을 끌었다

 

이날 촛불문화제에 앞서 6시부터 한나라당사 앞에서 '고시강행 철회와 전면재협상 촉구'하는 삼보일배가 4일째 진행됐다. 여러 지역 인사들과 단체 회원들이 한나라당사 앞에서 촛불문화제가 진행되는 오거리 광장까지 삼보일배를 진행했다.

 

촛불문화제에선 대학생, 고3수험생, 주부, 화물노동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나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전주교대 율동패, 전주성심여고 그룹사운드 크로우, 청소년 비트박스팀 By the jb, 평화동성당의 밴드 씨알, 직장인 밴드 우리동네, 여성농민 청보리 사랑 등 다양한 사람들의 문화 공연도 이어졌다.

 

수능을 166일 남겨놨다는 한 고3 여학생은 무대에 올라 "2시간 공부하는 것보다 이곳에서 2시간 함께 하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고 말해 큰 박수 갈채를 받았다. 이어서 "이명박 정부의 1% 기득권층을 위한 정책에 반대한다" 며 "부모님이 만든 민주주의를 잃을 수 없다"고 목청을 높였다.

 

1부 촛불문화제는 9시경에 마무리됐다. 2부인 촛불대행진이 시작되자. 1500여 명의 촛불의 물결이 파도처럼 일어나 꿈틀거렸다. 사람들은 1987년 6월 항쟁의 산실이었던 민중서관 사거리로 이동했다. 사회자가 선창하면 시민들이 후창을 하며 피켓과 촛불을 들며 외치 미친 소를!" "청와대로!" "장관고시!" "철회하라!" "함께해요!" "전주시민!" 등의 구호가 동학의 횃불처럼 타올랐다.

 

오거리에서 500미터를 이동해서 민중서관 사거리에 이르자 참가자는 배로 늘어 3000여 명에 이르렀다. 뜨거운 열기가 자유발언으로 이어졌다.

 

첫 무대에는 초등학교 3학년 남자 어린이와 1학년 여자 어린이 남매가 올라왔다. 3학년 남자 어린이가 "초등학교 급식에 광우병 위험 소고기가 안 들어왔으면 좋겠다"라고 말하자, 1학년 여자 어린이는 "이명박 할아버지 싫어요"라고 대답해서 환호성이 폭발했다.

 

사회자는 즉석에서 "학부모들이 학교급식에 미국산 쇠고기가 유통될까 봐 걱정하니까, 정부에서 고작 내어놓은 대책이 원산지 표시를 확실히 하면 된다고 한다. 그런데 전북에는 원산지 표시하는 기계가 한 대도 없다"고 성토했다. 이어 "이명박 정권이 공무원 감축한다고 난리인데, 원산지 표시 감시할 공무원은 어디 있느냐"며 원산지 정책의 허구성을 폭로했다.

 

다음 연단에 오른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은 "부안에서 왔다. 부안하면 핵폐기장 떠오를 것이다. 저희 군민들이 똘똘 뭉쳐 핵폐기장 막아낸 것처럼 온 국민이 똘똘 뭉치면 미친 소를 막아낼 수 있다"며 학생시민들을 격려했다. 

 

연단에 오르지 못하고 휠체어에서 마이크를 잡은 김규정(중증장애인 지역생활지원센터)씨가 "함께 온 정신지체 친구들이 연단 뒤에서 촛불문화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고 말하자 시민들은 촛불을 들며 격려의 함성을 보냈다. 그는 "수차례 촛불문화제에 참석했는데, 오늘은 다른 날에 비해 참여자가 몇 십 배가 된다. 이렇게 많은 촛불이 모였다는 것은 민주주의가 살아있다는 것이다. 재협상하는 그 날까지 촛불을 들자!"며 결의를 다졌다.

 

다음 연단에 오른 초등학교 2학년 여자 어린이는 "우리 엄마 아빠가 나를 이렇게 예쁘게 낳아주셔서 감사하다. 나는 오래 살고 싶다. 이명박 할아버지가 광우병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마지막 연단에 오른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은 "우리 엄마 아빠에게 촛불 들고 나오라고 했는데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내 꿈은 경찰인데 이명박 아저씨 밑에서는 경찰하고 싶지 않다. 애기도 낳고 싶은데, 광우병 걸릴까봐 걱정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을 광우병 실험용 쥐로 알고 있다. 미친 소를 이끌고 청와대로 갑시다!"라고 제안하고 "촛불을 든 여러분을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인사말로 연단을 내려갔다.

 

고시가 철회되는 그 날까지 오거리에서 촛불을 들자는 약속으로 집회는 밤 11시 경에 마무리됐다. 손자의 손을 잡고 가는 할아버지, 아빠는 아이를 품에 안고 엄마가 끌고 가는 유모차는 '우리 집은 미국산 쇠고기를 반대합니다'라는 현수막으로 덮어져 있었다. 선생님과 학생들은 기념촬영을 하고 민중서관을 떠났다.

 

1987년 이후 시민과 학생이 민중서관 4거리에서 집회를 하기는 처음이다. 87년 6월 그 뜨거운 항쟁의 불씨가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태그:#광우병 , #촛불대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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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 기자는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일꾼으로, 불평등한 소파개정 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으로 2000년 6월 20일 폭격중인 매향리 농섬에 태극기를 휘날린 투사 신부, 현재 전주 팔복동성당 주임신부로 사목하고 있습니다. '첫눈 같은 당신'(빛두레) 시사 수필집을 출간했고, 최근 첫 시집 '지독한 갈증'(문학과경계사)을 출간했습니다. 홈피 http://www.sarang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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